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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진짜 살인자는 저 너머에 있다

<달콤, 살벌한 연인> <미스터 브룩스> <성난 변호사> 등에서 살펴본 살인범의 도(道)

<달콤, 살벌한 연인>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제작자를 만났다. 스릴러를 만들었지만 맨날 보는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였던 그는(당시 나이 40대 중반, 남성) 그 영화의 반전과 그런 반전을 창조한 감독의 재능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진짜 기가 막히지 않아? 그런 반전 한번이라도 본 적 있어요?” “두번.” 그는 당황했다. “**** **하고 *** ***. **** **는 지금 극장에서 해요, 가서 보세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아니, 그걸 베꼈다는 얘기가 아니라….” 아아, 그 말만은 하지 말 것을 그랬습니다.

그와의 대화를 원고지 36매로 옮겨야 월급이 나오는 밥벌이의 절박함도 잊고 잠시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해 한없이 가벼운 나의 조동아리를 뉘우치고 있자니 그가 비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그래도 이거 들으면 놀랄걸?” 같은 감독이 준비하고 있다는 엄청난 연쇄살인 이야기를 신이 나서 들려주던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했다. “미안하지만 범인이 누군지는 절대 비밀….” “**이요.” 응? 어떻게 알았지? 아아, 자다가도 아는 척을 참지 못해서 입술만 꼼지락거린다는 나의 저주받은 조동아리여.

하지만 15분 전의 교훈을 잊지 않고 지금껏 마음에 품고 있는 한마디가 있다. “그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외국 도시괴담이잖아요. 베꼈네, 베꼈어.” 그 후로 10년이 흘렀지만 다행히 그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참고로 그 도시괴담의 살인 동기는 사랑이었다. 그러니까 치정 살인. 영화 <용서는 없다>에 나와서 혹시 무지한 관객이 모를까 영화 제목의 뜻을 장황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는 내레이터, 아니 주인공 역할을 하는 부검의 강민호 교수(설경구)에 의하면 동기 없는 범죄는 없다더니, 그 엄청나면서도 범인과 동기를 절대 짐작할 수 없으리라 주장하던 연쇄살인의 동기도 결국 거기서 거기, 치정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살인까지 진부하리라는 법은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이 표절과 복제의 시대에 진정 독창적인 살인범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도(道)를 걸어야만 할 것인가.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면 살인 무기의 독창성일 텐데, 1990년대 영화인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냉동 고등어로 두들겨맞다가 그걸로 사람을 찔러죽이고 <하몽 하몽>에서 돼지 뒷다리로 사람을 때려죽인 이후, 그것을 능가할 영화를 아직 본 적이 없다(하지만 <하몽 하몽> 이전에 이미 양 다리로 사람을 죽인 다음 그걸 구워 먹어 증거를 은닉한 추리소설이 있긴 했다).

<미스터 브룩스>

살인 무기에 있어서는 오히려 현실이 상상을 능가한다. 2013년 미국의 도나 렌지라는 여자는 88kg의 체구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풍만한 가슴으로 남자친구를 눌러 질식사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영화였다면 그게 말이 되느냐며 놀림감이나 됐겠지(여배우 구하기도 힘들었을 거고). 혹은 의지의 힘으로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 중국 지식인 계선림이 문화대혁명 시기의 고난을 담은 회고록 <우붕잡억>에는 자살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압수당한 지식인이 벽돌로 자기 정수리에 대못을 박아 죽었다는 일화가 나온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애초에 궁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인간의 의지는 그토록 강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살인범이 있다면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나(최강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 죽이는 데는 열심이었으나 자격증을 따는 데는 소홀하여 운전면허가 없는 미나는 혼자 시체를 치울 수가 없어 외부 인력을 동원하지만, 궁지에 몰리니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버스를 갈아타면서 여행 가방에 성인 남자의 시체를 실어나른다. 네이버 프로필에 따르면 그 시체 정경호의 몸무게는 72kg, 최강희는 48kg, 게다가 무릇 시체를 묻는다 하면 산으로 가야 하는 법, 그걸 끌고 무려 산길을 오른다(해발 193m의 심학산을 오른 이후 산하고는 연을 끊은 나로서는 그저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48kg인 데는 이유가 있는 거구나).

또는 무기의 다양화를 시도하는 수가 있다. 비닐로 감싼 권총이라는 진부한 무기를 고집하는 <미스터 브룩스>의 프로페셔널한 연쇄살인범 브룩스씨(케빈 코스트너)와 다르게, <오로라 공주>의 멋모르는 비자발적 연쇄살인범 정순정(엄정화)은 송곳과 가위와 면도날을 비롯해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동원하여 “다섯명을 죽였다, 용서는 바라지 않는다”. 그래, 원래 잘하는 게 없으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해보는 거야. 그래서 내가 거친 직종이 대여섯개에, 회사가 열 몇 군데, 가시는 걸음걸음 사뿐히 즈려밟은 명함만 거의 서른종이다.

그래도 진정한 살인범으로 남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잡히지 않아야 한다. ‘샘의 아들’도, ‘잭 더 리퍼’도, 잡히지 않아서 전설이 되었다. 살인범이 스타가 되는 것은 무척 쉬운 일어어서, 수감 중인 범죄자의 자서전 출판이 금지되었을 정도지만, 전설이 되는 길은 그보다 험하고 고되다. 내가 바로 샘의 아들이라고 자랑하고 싶은 것도 참아야 하고. 하지만 그보다 어려운 경지는 세상 사람 모두 그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벌할 수가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몇년 전 스페인에서 10대 소녀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용의자와 공범들이 체포되었고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시체가 나오지 않아 기소가 불가능했다. 경찰은 아마도 살인자들이 소녀의 시체를 강에 버렸고 결국 바다로 떠내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영화 <성난 변호사>와 비슷한 실제 상황이지만, 이 또한 궁극의 경지엔 이르지 못했으니, 무기를 쓰지 않는 살인이다.

사람이 죽었다, 시체가 있다, 동기도 있다, 하지만 직접 죽이지 않았으니 기소는커녕 비난마저 불가하다. 이 무수하고도 낯익은 살인을 건드린 영화는 <소수의견>, 형을 받아야 하는 범인은 밝혀졌지만 형을 내릴 수 없는 진짜 살인자는 아직도 저 너머에 있다, 매우 안전하고도 안락하게.

경찰, 귀신 중에 골라보세요

어엿한 살인범이 되기 위해 있으면 좋은 두세 가지 것들

<시크릿>

머리 나쁜 경찰

직업은 형사인데 있는 집 자식인 건지 입성은 연예인인 <시크릿>의 성열(차승원)은 아내(송윤아)가 살인범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 남몰래 증거를 인멸하고 다닌다. 립스틱이 묻은 와인잔을 깨뜨리고 CCTV 복원 데이터를 지우고 귀걸이를 숨기면서 성심과 성의를 다하지만…. 주변 사람 다 알아, 다 알고 있다는 걸 너만 몰라. 명색이 형사인데 있는 집에서 낙하산 타고 내려온 건지 이토록 허술한 그를 위해 살인범은 솔선수범하여 기나긴 내레이션에 재연 연기까지 불사한다. 원래 범행을 설명하면서 범인을 밝히는 건 범인 자신이 아닌 형사나 탐정의 몫일 텐데, 안 그런가, 소년 탐정 김전일?

<이웃사람>

마음의 친구

연쇄살인 경력 최소 30년을 자랑하는 <미스터 브룩스>의 브룩스씨는 그만큼이나 오래된 친구가 하나 있다. 마셜, 살인을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나타나 용기를 북돋아주는 연쇄살인범의 진정한 벗,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고 브룩스한테만 보이는, 말하자면 헛것. 그런 허깨비와 백년해로할 정도로, 한 마리 고독한 늑대와도 같은 살인범들에게도 벗은 필요한 법이니, <이웃사람>의 경비원 아저씨도 친구인지 원수인지 모를 다른 아저씨 하나를 달고 다닌다. 그리고 때로는 그가 보지 못한 것을 그 친구가 볼 수 있으니, 그의 정체는….

<그놈이다>

참을성

검사보이자 영매가 주인공인 미국 TV드라마 <고스트 앤 크라임>은 실제 수사에 참여한 영매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귀가 얇은 편이라 그런 영매들의 이야기를 모은 정가 2만9천원짜리 논픽션 <심령수사>를 할인가로 사서 봤다가 쓴맛을 보고는 귀가 두꺼워졌다). 하지만 거기에도 일말의 진실은 있겠지. 완전범죄가 귀신 보는 꼬마 덕분에 들통나는 <식스 센스> 때까지만 해도 흔들리지 않았던 마음이 <그놈이다> 덕분에 흔들렸다, 실화라잖아.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돌아온다던데 한국 범인들은 굿하는 자리에도 가면 안되겠다. 갈 거면 자서전 써놓고 가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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