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이경영이 안 나오네?” 무려 <인터스텔라> 리뷰 밑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지난 1년간 오죽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면 그런 댓글까지 등장했을까. 도대체 그는 왜 그렇게 강박적으로 많은 영화에 얼굴을 비쳤던 걸까. 2011년 <씨네21> 신년호(786호)를 통해 거의 10년 만의 공식적인 인터뷰를 가졌던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사는 일산으로 갔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그는 동네라는 ‘구역’을 정해두고, 그곳을 중심으로 지낸다고 했다. 겉으로는 조용한 생활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는 이 휴지기에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과 제작자를 만나고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사무실도 매니저도 없는 그에게 일산에서의 시간은 다음 작품을 위한 암중모색을 의미하기도 했다. 일산에서 그를 만난다는 건 이 모의의 시간이 어떻게 구성되나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1997년 5월, 박찬욱 감독의 <3인조> 개봉을 앞둔 이경영은 당시 데뷔 11년차의 중견배우였다. 그때까지 35편의 필모그래피를 가진 이경영을 수식하는 단어는 ‘다작배우’였다. 코믹, 액션,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1년에 3~4편의 영화에 주•조연으로 등장해 주요 흥행작에 이름을 올리는 패턴이니, 왕성한 활동 사이로 자칫 배우의 이미지가 소모될 우려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았다.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103호) 그는 “결국 내 살 깎아먹기지만 그것이 남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출연하게 됐다”라며 잇단 출연의 변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18년의 연기 경력을 더한 2015년, 지난 4년간 30여편의 출연작을 더한 이경영을 수식하는 말은 또다시 ‘다작’이다. 지난해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 이경영이 출연한 <군도: 민란의 시대>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같은 시기에 개봉하면서, 다작의 아이콘으로서 그의 상징성은 공고해졌다. 본격적인 활동이 감지된 2012년부터 <베를린>(2012), <신세계>(2012), <더 테러 라이브>(2013),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관능의 법칙> (2014), <타짜-신의 손>(2014), <허삼관>(2014) 등 한국영화의 주요 화제작에 이경영이 함께해왔으며, <은밀한 유혹> <소수의견> <협녀: 칼의 기억> <내부자들> 등을 비롯해 올여름 블록버스터로 내정된 <암살> <서부전선>까지 개봉을 앞둔 영화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작품이 한두편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한국영화의 핵을 구성하는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이경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작자와 감독들에게는 캐스팅 리스트에서 항상 고려의 대상에 오르는 배우이자, 관객의 관심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우 이경영. 그에게 십수년 전 그때처럼 ‘지금, 소모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똑같은 질문을 돌려줘봐도 좋지 않을까. 얼마 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미생>을 끝낸 이경영에게 인터뷰 시간을 내달라는 연락을 취했다.
<미생> 최 전무의 압도적 캐릭터
일산의 카페로 간 건 이경영의 요청이었다. “하루 시간이 비니 일산으로 오라”는 주문이었다. 설 연휴가 끝나면 그는 곧바로 김대승 감독 <조선마술사> 크랭크인 때문에 지방에 갈 참이라고 했다. 촬영과 촬영 사이에 개봉영화의 무대인사와 인터뷰 스케줄이 연달아 이어져 있어서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만날지 곤란하다 싶었다. 의외로 그와 시간 약속을 잡는 과정은 쉬웠다. 매니지먼트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옛날 방식’의 스케줄 관리를 고수하는 그는 직접 문자를 받고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을 되돌려주는, 기자에겐 매우 ‘속 편한’ 인터뷰 대상이다. 자택이 있는 일산은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그가 붙박여 있는 그만의 공간이다. 겨울의 끝물, 모처럼 휴지기를 맞은 그는 감기로 고전 중이었다. <미생> 속 최 전무의 중저음 보이스에 살짝 비음이 섞인 그는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주사를 맞기 싫다는 이유로 미련하게 몇날 며칠을 그냥 버티고 있다는 말에 “그게 그렇게 무서우세요?”라는 말과 동시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탓에 웃음이 터진다. 당장 오 차장(이성민)과 팽팽히 맞서던 <미생> 속 최 전무의 캐릭터를 말끔히 비우고, 자연인 이경영과의 대화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조용한 일산 생활에도 <미생> 신드롬의 여파는 아직 유효해 보였다. 요즘 그는 ‘최 전무’라는 호칭을 얻었다고 한다. 그간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에 얼굴을 내비쳤지만 어디 나가서 캐릭터의 이름으로 불리는 건 그에겐 퍽 생경한 경험이다. “인기요? 어딜 돌아다녀야 체감하는데, 촬영이 있으면 일터에만 있고, 아닌 날에는 일산 집에만 있으니 그런 건 전혀 모르죠. 그런데 가끔 주유소에 가면 ‘아, 최 전무님’ 하면서 비타500도 넣어주고, 그럴 땐 좀 신기하긴 하더라고요.” 최근엔 이런 일도 있었다며 말을 꺼내놓는다. “저도 광고 한편 찍었어요. 이경영이 아니라 <미생>의 최 전무 이미지를 요구하는 단발성 기획이겠죠. 옛날 같으면 못하겠다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빚도 갚아야 하고…. (웃음)”
<미생>이 그에게 대중적 인기를 가져다주었다면 이토록 커다란 폭발 지점을 형성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이경영이 보유한 거래목록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그는 후광과 존재감에 있어서 남다른 DNA를 가진 배우다. <미생> 제작진이 거듭 출연을 고사하는 이경영에게 출연을 설득한 건 바로 오 차장과 대척점에 서 있는 최 전무의 존재감이었고, 이경영은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빠른 시간 안에 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는 전문배우였다. 공간을 장악하고 꽉 채워줄 범접할 수 없는 최 전무의 아우라는 시청자들에게 앞서 현장에서 상대배우에게 먼저 묵직하게 전달됐다. <미생>의 촬영을 끝낸 뒤 천 과장 역의 박해준은 이경영에게 그간의 고통을 토로했다고 한다. “천 과장이 <미생> 끝나고 그러더라. ‘선배님 다른 건 몰라도 이제 최 전무실 안 가서 너무 좋네요. 그동안 최 전무실 신이 있을 때마다 교무실 끌려가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베를린>의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 ‘리학수’, <신세계>의 한국 최대 범죄조직의 보스 ‘석 회장’, <더 테러 라이브>의 방송국 보도국장 ‘차대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화이의 친아버지 ‘임형택’ 등 매 작품 캐릭터는 달라졌지만 그 구심점에는 항상 이경영의 중량감 있는 포스가 함께했다. 1990년대 그가 흔히 구사하던 덧니를 드러내며 웃던 귀여운 웃음의 자리는 이제 희끗한 백발과 말끔하게 차려입은 슈트가 차지했다. 이경영이 내건 ‘게임의 법칙’의 한도에서 판단해볼 때 화면 안으로 그가 들어왔다는 건 곧 섣불리 속을 알 수 없으며,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는, 그래서 함부로 그를 도덕적 잣대로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정 질량의 품격을 형성한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작동원리가 빤해 보이는 등장이지만, 관객은 아직까지는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적어도 ‘이경영 캐릭터’로 통하는 한 조직을 이끄는 중후한 보스 이미지의 원형을 형성한 건 박찬옥 감독이 연출한 <파주>(2011)에서였다. 단 네 장면, 대사 한마디 없이도 그는 비주얼만으로 개발의 거센 풍광 속, 모호한 도덕성을 가진 조직 보스 캐릭터를 100% 소화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동안 특별출연과 우정출연 등으로 채워진 필모그래피에 머물렀던 그에게 <파주>의 출연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현재의 이경영으로 가는 꽤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파주>의 김주경 PD는 “신선함과 무게감을 동시에 가진 배우였어요. 나이에 비해 젊고 댄디하고 중후한 중년의 느낌이 이 배우에게는 다 있었죠. 촬영과 분장의 힘에 배우가 가진 세월과 연륜의 힘이 더해졌는데, 솔직히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나올 줄은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죠”라고 했다.
<파주>의 보스 캐릭터는 이후 충무로의 많은 장르영화에서 이경영의 활용법을 명시한 가이드로 작용해왔다. 적어도 이 카테고리 안에서 이경영 말고 다른 배우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 된 지 오래다. 손꼽을 만한 조연배우들이 뚜렷한 개성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이경영은 오히려 전형적인 캐릭터를 수행하되,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함으로 개성을 숨기고 그 역할로 침투하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배우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의 방송국 국장 차대은은 위기에 빠진 앵커 윤영화(하정우)를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을 하다가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단숨에 그를 외면하는 양면적인 얼굴을 보여준다.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 이경영과 함께 작업한 윤종빈 감독은 이경영의 마스크가 주는 독보적인 미학이 이를 든든하게 백업해준다고 말한다. “선악의 역할이 동시에 가능한 데다 둘 중 어느 역할을 맡든 ‘멋있는’ 얼굴이죠. 솔직히 어느 시대로 가더라도 주인공을 해야 하는 얼굴인데 작은 역할을 제안해도 신경을 안 쓰고 승낙해주니 제작진 입장에서는 미안하면서도 고마울 수밖에요.”
불러주는 현장엔 가야 한다
최근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블록버스터 시즌에 개봉하는 규모가 큰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정지영 감독과 함께한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1985>(2012)를 비롯해 <26년>(2012), <또 하나의 약속>(2013) 같은 작은 독립영화도 한축을 형성하고 있다. 예전부터 함께 작업해오던 동료들과의 작업, 또 새롭게 영화계로 유입되는 젊은 신인감독과의 작업에 딱히 구분이 있지 않고 꾸준히 병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장르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일하는 배우가 됐다. 덕분에 같은 이미지의 출연이 거듭 들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마음이 약한 이 배우는 거절하는 게 좀체 안 되는 것 같다. “올해는 그래서 작품 수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했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친분이 있는 경우엔 ‘좀 도와주세요’ 하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또 ‘이번 한번만’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데, 가끔 이런 이유로 선택한 작품들이 흥행이 잘 안 되면 마음이 더 불편하고 아파요.” 물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한동안 휴지기를 가졌던 현장에 대한 애정이었다. “제가 정한 기준은 사실 한 가지예요. 다신 못 돌아올 줄 알았던 현장에서 지금 일하고 있다는 거죠. 영화가 불러주는데 둘러댈 이유와 변명을 딱히 마련하지 못했어요. 가능한 선에서라면 나를 불러주는 현장에는 가야 한다는 게 제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출연작이 하도 많아 한국 영화계에 ‘이경영 쿼터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말이 나돌 정도다. 워낙 새로운 이들과의 인연, 작업을 좋아하는 그를 두고 최근에는 주변 지인들이 걱정의 말을 보태기도 한다. <베를린> <신세계> <군도: 민란의 시대> 등 매 작품 배우 이경영을 누구보다도 ‘아낌없이’ 활용해왔던 사나이픽쳐스의 한재덕 대표는 이제 오히려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이들 중 하나다. “요즘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오죠. (웃음) ‘제안이 온다고 다 하지 마라. 그러다 너무 많이 나와서 안 부를 수도 있지 않나’라고 옆에서 말을 해줘도 듣지를 않는다. 10년간 쉬었으니 찾아주기만 해도 고맙다며 웃으시는데, 그럴 때 보면 득도한 이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이경영은 이를 두고 이제 50을 넘긴 나이 덕분에 가지는 여유라고 말한다. “단순해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 알코올성 치매가 생긴 건지…. (웃음) 덕분에 한 작품을 빨리 비우고 또 다음 작품을 빨리 채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철이 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제 은사님이 배우는 철들면 죽는다고 하셔서 죽기 싫으니까 죽을 때까지 철 안 들고 이렇게 계산 없이 연기하려고 해요.”
예기치 않은 단절과 공백이 배우에게 끼친 영향은 이경영의 바이오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사이 과거 주연급으로 함께 활동했던 배우들이 부침을 겪으며 일선에서 물러날 정도로 긴 시간의 터널이 지났다. 그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성공적으로 재기했고 살아남았다. 영화의 환경과 주 관객층의 취향이 변하는 동안 그를 이렇게 신선한 배우로 건재하게 해준 결정적 요소는 무엇일까. <미생>에서 하 대리로 출연한 배우 전석호는 현장에서의 모습에서 그 대답을 찾는다. 그는 나이 차는 많이 나지만 이경영과는 한양대에서 연기를 공부한 선후배 사이다.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이경영) 형님에게 많이 배웠어요. 장면을 그려보면서 ‘내가 이렇게 가는 게 좋을까?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나을까?’ 하면서 상대배우에게 제안하고 연구하고 노력하세요. 관객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상대배우와의 호흡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결국 그게 최종적으로는 관객에게 전달되는 사항이니까요.” 연기 선배인 이경영이 그에게 강조한 부분도 딱 하나였다. ‘상대방에게 말을 하듯이 연기하라.’ 후배를 향한 조언은 그가 연기를 하면서 쭉 고수해온 원칙이기도 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경영은 자연스럽게 웃고, 자연스럽게 화를 내는 일관된 연기톤을 적용시키는 배우다. 윤종빈 감독은 이렇게 ‘말하듯이’ 하는 연기가 이경영의 연기를 어느 순간에도 세련되고 모던하게 만들어주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경영 선배는 더빙 시절부터 연기를 했는데도, 그 당시의 ‘쪼’(말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배우예요. 예나 지금이나 적용이 가능한 배우인 거죠.” 전석호도 같은 맥락에서 이경영의 톤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요즘 영화의 패턴을 습득하려고 일부러 노력해서 만들어진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예전부터 이런 자연스러운 톤을 구사해왔고, 그러다보니 특정 시대에 영향을 받지 않고 녹아들 수 있었던 거고요.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죠.”
최동훈 감독 <암살>에선 절대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자기 전, 맑은 정신으로 시나리오를 읽는다는 그는 머릿속으로 최대한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을 수행한다.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은 굉장한 변수가 뒤따르는 작업이에요. 현장에 가면 어떤 표현이 지금 상황에 맞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집중하는 게 곧 일이지요. 가끔 생각이 떠오르면 감독님께 제안을 하기도 하는데, 감독님이 아니라고 하면 포기도 굉장히 빠른 편이에요. (웃음) 배우로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감독이 이 영화를 준비하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존중이 그보다 앞서기 때문이지요.”
충무로에서 지금, 이경영의 존재가 가지는 의미는 점점 각별해지고 있다. 다른 대체제를 찾지 못해서 거듭 찾게 되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지만, 역으로 이제 그 나이대의 배우가 가진 분위기와 이미지의 ‘이경영’이 있기에 아예 염두에 두고 써내려가는 시나리오도 등장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촬영을 마친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그에게 또 다른 경험을 안겨준 작품이라고 말한다.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암살 프로젝트를 다룬 이 영화에서 이경영은 뼛속까지 친일파인 절대악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감독님이 무척 고맙더라고요. 어찌보면 최근 많이 사용된 무게감을 가지고 평이하게 할 수도 있는 역할인데 감독님이 <게임의 법칙>(1994)이나 <세상 밖으로>(1994)에서 보여준 경박하기도 하고 욕망 덩어리 같은 그런 이미지를 요구하시더라고요. 옛날 이미지를 다시 보여주려니 좀 쑥스럽기도 한데, 그게 그렇게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그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무서운 악역이라 무대인사도 못 갈 거 같다면서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한편으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서부전선>에서는 전쟁의 최전선에 투입돼 싸우는 민족주의자의 모습도 기다리고 있다. <협녀: 칼의 기억>에서는 대나무밭을 중력의 저항을 최소화한 채 날아다니는 무술 고수, 스승 역할로 등장하니 이 또한 기대작 중 하나이다. 액션과 무술은 워낙 이경영의 개인적 취향이 지배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조만간 리암 니슨의 <테이큰>식 액션을 이경영이 소화하는 작품이 나와도 그럴듯하게 어울려 보일 것 같다. 그는 “솔직히 이제야 연기를 조금 느끼기 시작하는 그런 나이인데, 일 많이 해야죠”라며 각오를 다진다. 그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전부 그에게 검토의 대상이다. “시나리오를 읽는 건 배우 고유의 권한이에요. 선택을 하든 하지 않든 내게 들어온 역할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 작업은 계속될 것 같아요. 좋은 시나리오, 나쁜 시나리오를 판단하는 게 배우의 몫이기도 하지요.” 이경영에 관해서라면 적어도 거듭되는 출연에 대한 피로감을 드러내는 게 시기상조이지 싶다. 그는 아직도 보여준 것보다 개척해야 할 영역이 더 많은 배우다. 그 매번의 ‘초대’가 아직까지 늘 기대되고 설렌다.
기분 좋아서 마시고 미안해서 마시고
일산 안의 충무로 이경영의 단골집
“혹시 족발집 지분이 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아요. (웃음)” 이경영은 일산 집 근처 족발집에 혹시 투자를 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다고 했다. 그를 인터뷰하거나, 캐스팅을 하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번쯤 이곳을 거쳐야 하다 보니 일산의 족발집이 충무로 영화인들의 명소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예전 충무로 시절에 영화인들이 갈 데라곤 장충동 족발집밖에 더 있었나요. 그때 버릇이 남아서 그런지 이 집이 단골이 된 지 오래예요. 하도 많이 팔아줘서 연말에 족발집에서 한해 동안 감사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더라고요.” 그는 <미생>의 마지막 회도 지인들과 이곳에서 술 한잔하면서 봤고, <암살>팀과 영화를 촬영한 뒤에도 이곳에서 회식을 하기도 했다. 아날로그 현장을 거쳐온 그가 고수하는 옛날 방식의 활동이다. 덕분에 족발집의 칸막이 구실을 하는 벽면에는 이러저러한 일로 이경영을 만나러 온 충무로의 감독과 배우들의 사인이 한 가득이다.
대낮엔 주로 족발집 옆 커피숍에서 만나 캐스팅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성사가 되면 기분이 좋아서 족발집에서 2차를 하고, 거절을 할 경우엔 그게 미안해서 족발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는 수순이다. “스케줄상으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커피숍에서 힘들게 거절을 하고서 막상 족발집에 와서 술 한두잔 들어가고 나서는 달라지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어요. (웃음)” 한번은 실수 아닌 실수도 했다. 임순례 감독이 <제보자>로 캐스팅을 하러 왔을 때도 이곳이 약속장소였다. 임순례 감독이 채식주의자인 걸 몰랐던 탓에 막무가내의 약속이 돼버린 셈이다. 보통 어떤 이유에서건 이른 저녁에 시작된 술자리는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는데, 딱딱한 간이의자에 앉아서 나누는 대화의 소재는 주로 영화, 배우, 연기에 관한 지론과 철학이다. 이곳을 거쳐간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그렇게 말술을 마시는데도, 밤새도록 쉬지 않고 영화에 대해 떠들어서인지 수십병의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근엄함은 없었다
<세상 밖으로> <게임의 법칙> 등 90년대의 이경영
중후한 보스의 이미지로 배우 이경영을 보고 자란 세대라면 그의 연기 생활 전반부에 해당하는 90년대 출연작에 적잖이 놀랄지도 모른다. 멜로, 액션, 코믹 장르를 가리지 않았으며, 주•조연으로 역할의 분량도 다양했다. 그는 전천후 배우라는 찬사 한편으로 고정 이미지가 없다는 지적을 동시에 받았다. 그만큼 종잡을 수 없이 다른 모습들을 선보였다. 데뷔 초부터 연기해온 일련의 하이틴물의 이미지를 벗은 이경영의 선택지는 주로 누아르와 액션물에서 통용됐다. 앞서 말한 대로 근엄하고 멋스러운 이미지와 달리 그는 ‘나까스러운’ 가벼움을 수행하는 역할이 많았고, 오히려 이 가벼움이 극의 비장미를 더해주었다. 여균동 감독의 <세상 밖으로>에서 본의 아니게 탈주한 채 표류하는 좀도둑 ‘경영’은 과묵하고 남성적인 성근(문성근)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였다. 상대역인 혜진(심혜진)에게 “어린놈이 입에 욕을 달고 살아”라는 핀잔의 대사가 있을 정도로 입이 험하고, 뺀질거리는 데다 잔머리를 굴리는 캐릭터였다. <3인조>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려 색소폰을 전당포에 맡기고 자살하려는 악사 ‘안’으로 강도에 가담하는 파격적 캐릭터를 연기한다. 슈트에 코트 차림으로 종횡무진 일탈을 시도하는 그의 캐릭터는 영화의 독특함을 배가하는 요소다.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에서 포마드를 발라 한껏 머리를 넘기고 금테 안경을 낀 사기꾼 ‘만수’의 연기는 기억해둘 만한 지점이다. 조직의 처단으로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된 채 절뚝이면서도 살기 위해 비굴하게 용대(박중훈)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통해 그는 처연한 삶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할렐루야>(1997)에서 그는 요상한 파마 머리에 값싼 재질의 선글라스를 쓰고 컬러풀한 셔츠와 빨간 가죽 재킷 같은 현란한 복장으로 등장해 코믹 연기를 선보여 인상을 남긴다. 목사 행세로 신도들에게 사기를 치는 양덕건(박중훈) 옆에서 그에게 협조하는 오동팔 역이다. <테러리스트>(1995)에서는 신참 경찰로 부임한 동생 수현(최민수)을 돌보는 경찰 형 사현의 역할로 분한다. “오직 너만이 (너의) 잔을 채울 수 있다”는 따뜻하고 근엄한 충고를 하는 형의 이미지는 최근 이경영이 보여주는 역할을 통해 가끔 드러나기도 하는데, 사실상 함께 작업한 후배 영화인들에게 스스럼없이 ‘형님’으로 통하는 이경영 본인의 이미지와도 가장 가깝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