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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을 응시하는 사회파 감독의 직설화법

도시의 병폐 들여다보는 ‘타운 3부작’ 만든 전규환 감독은 누구인가

지긋지긋한 도시의 악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돈에 굶주렸고 관계를 기피한다. 전규환 감독의 ‘타운 3부작’은 바로 그 참담하고 황량한 우리 ‘타운’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2008년 장편 데뷔작 <모차르트 타운>을 시작으로 오는 3월10일 개봉예정인 <애니멀 타운>(2009)을 지나 올해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에 진출한 <댄스 타운>(2010)에 이르기까지 전규환 감독은 놀랄 만한 작업속도로 3부작을 완성했다. 그 리듬 그대로 현재 그는 3부작 이후 전혀 다른 스타일의 네 번째 영화 <바라나시>의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 중이다. 그동안 고집스런 개인작업으로 현재에 이른, 국내보다는 오히려 해외영화제에서 먼저 반응을 얻어온 그를 만나 궁금증을 캐물었다.

<모차르트 타운> 이후 해마다 한편씩 장편영화를 만들고 있는 전규환 감독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작업속도만 보면 ‘이 사람도 김기덕 감독 연출부 출신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로 매해 거르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해외영화제에서의 반응이 국내보다 먼저 전해져왔다는 사실도 얼핏 유사하다. 여타 독립영화인들에게 그의 정체를 수소문해도 통 아는 이가 없고, 영화제 카탈로그에도 <모차르트 타운> 이전의 기록은 딱히 알려진 바가 없다. 국내 영화제에는 초청받지 못했던 데뷔작 <모차르트 타운>이 도쿄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고, 이후 아동 성범죄자를 소재로 한 <애니멀 타운>과 한 탈북자의 이야기를 그려낸 <댄스 타운>이 각각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그나마 조금씩 그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개봉할 <애니멀 타운> 외에는 아직 정식 국내 개봉을 한 작품이 없기에 지난 3, 4년 동안 무려 3편의 영화가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고 수상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미지의 감독이다.

<애니멀 타운>(2009)

나는 김기덕의 동생?

“늦은 나이에 얼떨결에 영화를 연출하게 됐다”고 말하는 전규환 감독은 흔한 연출부 경험도 없다. 애타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과도 거리가 멀었고 흔히 말하는 시네필의 삶과도 무관했다. “<모차르트 타운>을 만들기 전 10여년 동안 영화업계에 발을 들이고는 있었지만, 어딜 적극적으로 쫓아다닌 적도 없고 너무 게으른데다 그저 수다 떨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영화 제작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으니 문득 어느 날 ‘남들 괴롭히지 말고 내 돈 들여서 직접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름 정도 시나리오를 쓰고 스탭을 꾸려서 또 보름 정도의 촬영기간을 거쳐 완성한 영화가 바로 <모차르트 타운>이다. 하지만 작업을 다 끝내고도 창피한 마음에 스탭들끼리만 조촐하게 시사회를 가졌고, 완성된 영화는 감독 몰래 최미애 프로듀서가 국내외 영화제에 출품했다. 부산, 부천, 전주 등 국내 영화제의 외면을 받긴 했지만 다행히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할 기회를 얻게 됐다.

사실 어물쩍 10년이라고 말하는 시간 동안 그는 조재현, 설경구 등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를 운영했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대형 기획사들이 생겨나면서 그는 새로운 무대와 판을 구상해야 했고 그때 정말 뜻하지 않게 영화 연출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얼떨결’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의 ‘변신’은 산업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따지고 보면 그 역시 지난해 충무로의 주요한 화젯거리 중 하나이기도 했던 ‘김기덕의 아이들’이기도 하다. 조재현이 한국영화계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김기덕과 함께 데뷔작 <악어>(1996)를 시작으로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에 출연하던 당시 그 누구보다 현장에 붙어 있었던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이제 막 데뷔하려고 준비하던 김기덕 감독의 모든 우여곡절을 함께했고, 그 현장에서 작업방식도 눈여겨볼 수 있었다”며 “빠른 작업속도나 현장 진행 등 아무래도 연출자로서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김기덕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늘 ‘김기덕의 아이들’이라는 표현으로 묶이는 <피터팬의 공식>의 조창호,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의 장철수, <의형제>의 장훈, <엄마는 창녀다>의 이상우 감독보다 선배 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좀 있으니 ‘김기덕의 아이들’이라는 표현보다 ‘김기덕의 동생’이라는 표현이 어떨까” 하며 웃는다. 그리고 설경구가 주연을 맡은 <박하사탕>(1999)이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1999)를 통해 각각 이창동 감독과 전수일 감독의 작업방식도 엿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런 현장 경험은 그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물론 연출부나 여타 스탭의 자격으로 영화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학습 효과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의 이력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고, 그 스스로 느끼는 남다른 자부심이기도 하다.

<모차르트 타운>(2008)

1년에 한편씩 만든 이유?

워낙 ‘업계’에서 단련된 사람이었지만 막상 감독의 길을 걷는 것은 막막했다. ‘내가 쓴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모차르트 타운>의 시나리오를 쓰고 스탭을 구성하는 작업에 들어갔지만 막말로 ‘답’이 안 나왔다. “영화과 출신 학생들이나 기존 스탭들을 만났는데 ‘다들 이 금액 가지고는 안돼요’라는 얘기만 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나를 너무 아마추어 대하듯 해서 스탭을 꾸리기가 힘들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말하자면 기존 스탭들이 보기에 전규환 감독은 그저 ‘뒤늦게 한번쯤 영화 찍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물어물어 한 단편영화 현장에 막무가내로 뛰어들었다. ‘나중에 내가 영화 만들 때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는 조건으로 나이와 무관하게 제작부 막내로 들어간 것. 흑석동 산꼭대기까지 한참 어린 스탭들과 장비를 나르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있는 힘을 다해 참여했다. 하지만 영화를 완성하고 난 다음 정작 <모차르트 타운>에 들어갈 때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없었다. 너무나 순진하게 사람들을 믿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은 그가 진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딱히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지금도 화가 나기보다 ‘암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필름 메이커스’ 게시판에 글을 올려 스탭들을 구했다. 아무런 현장 경험이 없어도 무관했다. 정말 자기처럼 진지한 열정만 가지고 있으면 됐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친구도 있고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나 울산에서 온 친구도 있었다. 어차피 기존 스탭들로 팀을 꾸릴 수 없는 처지라면 ‘열정’ 외에는 달리 볼 것이 없었다. 이에 대해 그는 “나도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그들을 평가할 수 있겠나. 직접 얘기를 나눠보고 진짜 참여할 생각과 열정이 있으면 스탭으로 받아들였다. 3부작을 만들면서 늘 그런 방식으로 스탭들을 모았다. ‘검증된 능력’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후 작업 스케줄은 본의 아니게 1년 단위로 굳어지게 됐다. 왜냐하면 겨울에 촬영하게 된 <모차르트 타운>을 만들고 해외영화제를 돌면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스탭들을 구성하고 촬영에 들어가게 되면 다시 겨울이 되었기 때문이다. “<타운> 3부작을 황량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겨울을 배경으로 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얘기다. 그러다보니 제작비 문제도 만만찮았다. 특별한 수익이 나지 않는 상태에서 매해 영화를 만들다보니 당연한 일이다. <모차르트 타운>을 만들며 카드 대출부터 갖고 있던 자동차까지 다 팔아서 제작비를 마련했다. 이후 작품을 만들 때도 가족 중에 넉넉한 사람이 차를 사줬는데 그 역시 한달을 가지 못했다. 사준 사람에게는 너무나 미안하지만 차를 판 돈은 매번 든든한 프리 프로덕션 비용으로 유용하게 쓰였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약속은 늘 ‘현장으로 찾아오라’는 주문으로 대신했다. 그러다보니 스탭들과의 회식은 자연스레 그렇게 겹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얘기를 듣고 있으면 전규환 감독은 영화제작비 마련에 있어 ‘돌려막기’의 달인이다. 그의 신조는 단 하나다. “머리는 영화 만드는 데 써야 하니 그런 일들로 고생시키지 말고, 몸을 힘들게 해서 무조건 행동을 하라”는 것. 이리저리 부딪히다 보면 솟아날 구멍이 생기니 일단 뭐든 시작해보라는 충고다.

<댄스 타운>(2010)

애초에 계획한 3부작이냐고?

<모차르트 타운>은 서울에 교환교수로 잠시 들른 피아니스트 ‘사라’의 눈에 비친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선율에 겹쳐지는 서울의 풍경은 불법취업 노동자가 악덕 기업주에게 착취당하고 경찰이 유흥업소로부터 보호비를 뜯어가는 황량하고 칙칙한 세상이다. 그런 가운데 한 룸살롱을 보호해주며 여기저기서 사채를 수금하는 조폭 일환(오성태)과 아버지 대신 관광버스 운전을 하는 덕상(박승배)이 정류소 매점을 운영하는 한 여자 지원(주유랑)과 묘한 삼각관계로 엮인다. <모차르트 타운>이 여러 주인공의 사연이 중첩된 구조라면 이후 만든 <애니멀 타운>과 <댄스 타운>은 좀더 명확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애니멀 타운>은 얼핏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을 연상시킨다. 철거예정지인 낡은 아파트에 사는 오성철(이준혁)은 아동 성추행 전과자다. 그에게 아이를 잃었던 김형도(오성태)는 택시 운전을 시작한 그를 보고 복수심으로 그 뒤를 밟는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모차르트 타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도심으로 뛰어든 ‘애니멀’ 멧돼지는 그 풍경을 더욱 가혹하게 보이게끔 만든다.

<댄스 타운>은 우연히 접하게 된 한 탈북 여성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동네 다방에서 우연히 차를 한잔 마시게 됐는데 탈북 동기가 특이했다. 남한 에로비디오를 어떻게 구해서 보게 됐다가 주변의 밀고로 걸려 처벌을 받게 되자 탈북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3, 4년 전 얘기인데 그때도 손전화(휴대폰)는 물론 DVD도 다 보고 있었더라. 그런 관심에서 탈북자를 소재로 해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님에도 ‘타운’이라는 단어로 3부작을 만들게 됐다. 그것은 매번 해외영화제를 통해서건 어디서건 늘 받는 질문이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말하는 ‘타운’은 한국사회의 서울을 말하는 게 아니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했다면 탈북자가 아니라 난민이 주인공이었을 테고 내 영화가 말하는 사회문제는 파리나 런던은 물론, 서울이나 평양 그 어디에서도 안고 있는 것이다. 소아성애자 문제는 오히려 우리보다 더 심한 나라가 많을 것이고. 도시 혹은 자본은 그 어떤 이념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뜻하지 않게 데뷔작의 제목으로 들어간 ‘타운’은 이처럼 도시사회의 병폐를 들여다보는 3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가 됐다. 그러면서 사회적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애초의 생각은 좀더 구체화됐다. 본의 아니게 주어진 어떤 조건이 큰 도움과 영감을 준 경우다. 그런 그가 최근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 중인 <바라나시>는 “3부작 이후 장르 실험을 해보고 싶었고 그 첫 번째로 멜로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변화의 욕구에서 시작됐다. 인도 현지 로케이션으로 영화 전체의 20~30%가 촬영된 <바라나시>는 우연한 사고로 이슬람 청년과 사랑에 빠진 한국 여자의 이야기다. 언제나 함께하던 배우들과 작업했던 그에게 전작 <댄스 타운>은 라미란이 출연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진 면이 있는데, <바라나시>에는 윤동환이 색다른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무사히 작업을 끝내고 국내 여러 영화제들을 통해 국내 관객과 조우하고 싶다는 것이 전규환 감독의 바람이다.

멧돼지 섭외는 어떻게?

<애니멀 타운>(2009)

<애니멀 타운>에서 강남 테헤란로에 출몰한 멧돼지의 이미지는 인상적이다. 하지만 <애니멀 타운>에서 철거를 앞둔 아파트를 구하는 것과 더불어 멧돼지 섭외(?)는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사서 죽이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니 박제 멧돼지를 쓰자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박제 멧돼지는 대여료가 비쌌고 무엇보다 다리가 꼿꼿하게 경직돼 뻗어 있으니 아무래도 코믹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웰컴 투 동막골>이 멧돼지를 섭외한 양평의 한 농장을 찾아가 식용 멧돼지 중 팔려간 멧돼지를 힘겹고 저렴하게 섭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서울시의 허가를 받고 테헤란로에서 2개 차로를 막고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힘이 되었다. 극중 주인공이 모는 택시 또한 전규환 감독이 수원 중고차시장에서 가격과 색깔 등을 고려해 직접 구입한 자동차다. “헌팅이든 소품 준비 등 뭐든 직접 가서 해야 안심이 되고 또한 그런 과정이 행복하다”는 게 그의 얘기다. 물론 그 역시 김기덕 감독에게서 보고 배운 것. 언젠가는 꼭 그보다 더 나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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