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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폭 코미디 해부] 이런 조폭, 라스베이거스에선 상상도 못해!
주성철 2009-02-05

2001년 <조폭마누라>부터 2009년 <유감스러운 도시>까지, 한국형 조폭코미디 계보학

이른바 한국형 조폭코미디 장르는 <조폭마누라3>(2006)와 <두사부일체3: 상사부일체>(이하 <상사부일체>, 2007)의 실패로 그 명맥이 끊겼다고 여겨졌다. 자학적인 개그와 구태의연한 동어반복, 그리고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서사는 점차 관객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설 대목을 맞아 여러모로 <두사부일체> 시리즈의 4편 격인 <유감스러운 도시>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유감스러운 도시>의 대학 나온 조폭 똘마니 이중대(정웅인)는 경찰로 잠입하라는 지시를 받고는 “차라리 학교로 보내달라”고 말한다. 알다시피 그것은 <두사부일체>(2001)와 <투사부일체>(2005)에서 ‘학교로 들어간 조폭’의 기억을 빗댄 것이다. 게다가 정웅인은 그 당시에도 대학 나온 조폭으로 어지간히 으스대던 인물이었다. 조폭 집안의 거실에 걸린 ‘가오만사성’이라는 가훈도 ‘두목과 스승과 부모는 하나’라는 ‘두사부일체’의 변형이라 할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설정이지만 이 영화는 ‘고정 팬’들을 의식한 듯 그냥 시침 뚝 떼고 밀어붙인다. 포스터에 정준호, 정웅인, 정운택의 얼굴을 박아넣은 것만으로 어차피 매체나 평론가의 평가와는 담쌓고 오직 박스오피스의 수치만을 믿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머리 맞기 세계 최다, 정운택

2001년은 김상진의 <신라의 달밤>이 여름에, 조진규의 <조폭마누라>가 추석 대목에 큰 성공을 거두며 조폭코미디 장르가 안착화하기 시작한 해다. 저 멀리 <넘버.3>(1997)의 코믹한 ‘불사파’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음과 동시에 같은 해 3월 <친구>의 대대적인 성공도 거기에 한몫했다. <친구>에서 준석(유오성)이 내린 벌로 조폭 2명이 승용차 트렁크에 귀엽게 앉아가고, 또 준석이 신입 조폭들에게 사시미 사용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두고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이라 표현하던 그 순간부터 이미 조폭코미디 장르는 시작됐다. <친구>의 정운택은 이후 <두사부일체> 시리즈의 ‘대가리’로 들어가 죽도록 맞고 또 맞았다. 그는 진지하게 펀치드렁크가 걱정될 정도로 아마 세계영화 사상 가장 머리를 많이 맞은 배우일 것이다.

<두사부일체>

<공공의 적>

또 <신라의 달밤>의 이성재는 이후 <공공의 적>(2002)을 지나 <상사부일체>로, 성지루는 <가문의 영광>(2002) 시리즈로 흡수됐다. 이원종과 유해진 역시 각각 <달마야 놀자>(2001)의 조폭 스님과 <공공의 적>의 칼잡이로 흘러들어가 코믹한 조연으로 활약했다. 물론 <넘버.3>도 계보를 잇자면 현역 배우들의 경연장이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며 일본 야쿠자들에게 재떨이를 날려 한국 조폭의 기개를 과시했던 박상면은 <달마야 놀자>를 거쳐 <상사부일체>에서는 정운택이 잠시 빠진 틈을 타 대가리 역할을 맡았다. 조필 역의 송강호 역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조폭 아버지의 고생담’ <우아한 세계>(2007)로 착지했다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추석 연휴 동안 가볍게 이전 <엽기적인 그녀>의 신기록 행진을 다시 한번 갈아치운 <조폭마누라>는 사실 이 장르의 첫 번째 성공작이라 하겠다. 액션 누아르 영화로서 조폭 세계의 액션 난이도는 물론, 성역할 뒤틀기에서 오는 코미디는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조폭마누라 은진(신은경)의 임신을 둘러싸고 ‘웃기다 울리는’ 한국 상업영화 공식의 뻔한 감동 코드 또한 반복됐다. 하지만 매체와 평론가의 적대적인 태도와 달리 영화는 승승장구했고 <엽기적인 그녀>와 더불어 홍콩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한류’의 초기 바람을 이끈 주인공이 됐다.

<조폭마누라>

홍콩의 영화비평가 샘 호가 <조폭마누라>의 성공을 두고 “이제는 끝나버린 <예스마담> 시리즈의 속편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 성공의 이면에는 텍스트 바깥의 맥락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거기에는 <넘버.3>의 박상면이 은진의 어수룩한 남편으로 다시 모습을 비췄고, 이전 <런어웨이> <테러리스트>의 장세진이 ‘백상어’로 출연해 ‘한국형 액션누아르’라는 좀더 큰 계보 안에 놓이기도 했으며, 안재모는 다음해 TV시리즈 <야인시대>의 김두한이 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들 조폭코미디의 주된 언어가 전라도 사투리임을 감안할 때 과거 박노식이 ‘전라도 용팔이’로 출연한 일련의 다찌마와리 영화의 전통과도 연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라도 사투리는 조폭코미디의 언어였다. 더불어 조폭코미디 장르의 활황은 이른바 기자, 평론가 집단과 관객의 적대적인 구도가 고착화되던 시점이기도 하다. TV나 인터넷의 말초적인 개그, 볼거리로서의 액션이 내러티브의 중심축을 이룬 이들 영화에서 평론과 박스오피스는 점차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장르 불문하고 조폭 등장 신 늘어

2001년 한국영화계를 산업적으로 구획지은 유일무이한 키워드가 조폭코미디였다면 <달마야 놀자>와 <두사부일체> 또한 빠지지 않는다. <달마야 놀자>를 두고 불교적 구도 영화를 떠올릴 리 만무하지만 그것은 기존 조폭영화들과 달리 서로 이질적인 조폭과 스님 집단의 대승적인 화해를 그리는 ‘착한’ 휴먼드라마였다. 코미디의 핵심은 현실에서 조폭들이 절 하나쯤 휘어잡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조폭들이 스님들에게 (심지어 주먹으로) 깔끔하게 제압당한다는 의외성이었다. <조폭마누라>가 조폭의 성별파괴를 보여줬다면 <두사부일체>는 조폭의 학력파괴를 보여줬다. 그리고 <달마야 놀자>의 조폭들이 절에 들어갔다면 <두사부일체>의 영동파 보스 계두식(정준호)은 고교 졸업장을 따기 위해 학교로 들어갔다. <두사부일체> 역시 코미디의 핵심은 ‘조폭 액션’ 자체라기보다 조폭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특정 공간에 방치함으로써 빚어지는 현실적 유머에 바탕하고 있다. 다만 <달마야 놀자>가 속세와 단절된 산사에서의 해프닝과 주지 스님의 존재감을 바탕으로 한 비현실적 유머에 기대고 있다면, <두사부일체>는 ‘사학 비리’라는 현실의 문제를 상기시키려 애쓴다.

이듬해 개봉한 <가문의 영광>(2002)은 이런 조폭코미디 시리즈의 최종편이자 완결편과 같다. 대표적인 호남주먹 집안의 고명딸(김정은)을 ‘가방끈 긴’ 남자 박대서(정준호)에게 시집 보내려는 조폭 가문의 우스꽝스러운 아우성은 사실상 한국사회 보편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흥행도 그러했다. 심지어 <공공의 적>의 300만, <집으로…>의 400만 관객까지 넘어 500만 관객을 돌파했으니 이른바 평론가 집단과 관객 집단 사이의 이질화가 극대화한 지점이었다. 더불어 <가문의 영광>의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는 이후 그 이질화의 선두에 선 영화사가 됐다. 그것은 심지어 조폭코미디 장르가 아닌 영화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에서 김두한과 유지광을 들먹이는 아버지 캐릭터(백일섭)는 물론이고 느닷없이 등장하는 조폭들의 액션, 그리고 <귀여워>(2004)의 버림받은 조폭(정재영)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그 이미지는 액션과 캐릭터로 나뉘어져 한국영화 속으로 깊이 흡수됐다. 그 과정에서 ‘제2의 태원’을 꿈꿨던 기존 혹은 신생 영화사들의 흥망성쇠는 조폭코미디 장르의 활황이 충무로에 끼친 시스템적 폐해 중 하나다.

발빠르게 인터넷 개그를 흡수하다

이들 조폭코미디영화들을 살펴보면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통된 코드이자 법칙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조폭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이웃임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혹은 우리 안의 조폭성? 아마도 그것은 홍콩 삼합회 장르, 일본 야쿠자 장르 혹은 할리우드 갱스터 장르와 비교해도 눈에 띄는 한국형 조폭코미디 장르만의 기이한 특징이다. <두사부일체>의 상두 얘기를 빌리자면 이건 정말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영화들이라고나 할까. <달마야 놀자>에서 흥미로운 점은 스님들에게 유별난 과거가 있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는 사실인데, 현각 스님(이원종)의 경우 과거 영락없이 조폭이었을 것이다.

<두사부일체>는 조폭을 우리의 동급생으로 만든다. 게다가 우리의 이웃임을 넘어 각각 속한 조폭 집단과 학교가 결국엔 같은 곳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아니, <두사부일체>의 학교는 조폭마저 열 받게 만드는 비리의 온상이다. <가문의 영광>은 또 어떤가. 음지에서만 조용히 살아가는 것 같은 조폭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명문대라는 양지의 타이틀을 탐내면서 벌어지는 코미디다. 그러한 조폭코미디의 경계 지우기는 ‘조직에 잠입한 경찰 이야기’ <목포는 항구다>(2004)를 거쳐 <강철중: 공공의 적1-1>(2008)에서 거의 한몸처럼 뒤엉키는 형사(설경구)와 조폭(정재영)의 모습으로 나아간다. 물론 그것은 이미 <넘버.3>에서 검사(최민식)와 조폭(한석규)의 놀이터 싸움을 통해 경험했던 것이기도 하다.

<가문의 영광>

<목포는 항구다>

그러한 조폭코미디의 현실 친화성, 우리 안의 조폭성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역시 정준호라는 배우 그 자체다. 사실상 이 장르의 제왕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정준호는 여느 나라의 조폭 갱스터 장르의 주인공들과 비교해도 가장 밋밋하고 말끔한 얼굴의 주인공이다. 그처럼 이런 장르와는 멀어 보이게끔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이 장르 안에서 보스(<두사부일체> <공공의 적2>)이자, 공부 잘하는 샌님(<가문의 영광>)이면서, 그냥 동네 깡패(<역전의 명수>)이거나, 심지어는 경찰(<유감스러운 도시>)로 자유로이 변신하며 등장한 예는 무척 특별하다. 한국영화계에서 주연의 위치로 특정 장르 내에서 이처럼 헌신한 배우를 찾아보긴 힘들다. 조폭코미디 장르의 생명력이랄까 혹은 식상한 매너리즘 모두를 끌어안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다.

더불어 조폭코미디 장르가 지금껏 대중성을 담보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가장 발빠르게 TV 개그, 인터넷 개그를 흡수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종종 <두사부일체>의 바바리맨(고명환), <상사부일체>의 블랑카(정철규)와 옹박(조지훈)과 죄민수(조원석), <유감스러운 도시>의 김대희 등 실제 개그맨들을 캐스팅하거나 당대의 트렌드를 전혀 모르는 조폭들의 무식함으로 드러났다. “메일 할 줄 아냐?”는 질문에 “당연히 매일 (섹스)하죠”라고 답하거나(<두사부일체>), “저도 형님따라 미국에 가서 에펠탑도 보고 박지성 경기도 보고 그러고 싶습니다”는 아우의 말에 “야 임마, 너 왜 그렇게 미국에 대해 잘 알아!”라며 감동하는 보스의 모습(<상사부일체>) 등 일일이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밤샐 정도로 과장된 무식함은 이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화법이기도 하다. 그처럼 재빠르게 TV, 인터넷 개그를 흡수해야 한다는 강박은 매너리즘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똑같은 개그와 개그맨을 어쨌건 가장 먼저 선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근 몇년간 제살 깎아먹기나 다름없는 조폭코미디 장르의 속도전 양상은 분명 곱씹어볼 만하다.

부끄럽고 재밌는 마조히즘적 쾌감

바꿔 말해 이들 조폭코미디는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무시하고 천시하는 것들의 총체다. 그런 이유로 이들 영화는 누군가의 미움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기도 한다. 여기서 대학을 나왔느냐와 안 나왔느냐, 사투리를 쓰느냐 안 쓰느냐, 윗사람 말을 잘 듣느냐 안 듣느냐, 하는 말초적인 것들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 안의 열등감과 이중성과 폭력성의 응축된 형태가 바로 조폭코미디인 것. 그래서 우리가 낄낄대고 무시하며 보는 이들 조폭코미디의 인기는 액션영화인 한편으로 바보코미디의 또 다른 변형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관람 체험은 분명 부끄러운 우리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지만 그것이 묘한 마조히즘적 쾌감을 주기도 한다. 뻔히 알면서도 손이 가는 불량식품의 맛이랄까. 그런데 장진의 <거룩한 계보>(2006)의 예에서 보듯 코미디의 성격을 바꾼다고 해서 이 장르 내에서의 혁신은 아직은 좀체 쉽지 않다. <유감스러운 도시> 역시 캐릭터들의 호흡 그 이상의 구조적 변주를 보여주기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다. 한국 조폭코미디의 시대는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무술인력들은 “고맙습니다~”

한국 조폭코미디 장르의 긍정적 양상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액션지도에 있다. 최근 몇년간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나아가는 한국 영화무술의 시행착오가 고스란히 담긴 장르가 바로 조폭코미디이다. 이들 무술인력이 부지런히 생계를 유지하게 된 것도 바로 TV사극과 조폭코미디 장르 때문이었다. 먼저 <조폭마누라>는 홍콩에서도 활동한 원진 무술감독의 공이다. 실제로 호리호리한 체격의 그는 극중 신은경의 대역을 직접 하기도 했다. <조폭마누라>가 홍콩에서도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비중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이후 <조폭마누라2: 돌아온 전설> <조폭마누라3>는 물론 <4발가락> <보스상륙작전> <어깨동무>의 무술도 맡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Duelist> 등 이명세의 단짝 무술감독으로 유명한 전문식은 <가문의 영광> 시리즈 세 작품과 <역전의 명수>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등의 무술을 지도했으며, <두사부일체> <투사부일체> <상사부일체>의 무술을 맡고 우정출연까지 했던 임세호 무술감독은 <낭만자객> <나두야 간다>의 무술을 맡았으며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에도 참여했다. 그렇다면 정두홍과 신재명은? 명쾌하게 조폭코미디라 할 수 없겠지만 정두홍은 <공공의 적> 시리즈 전체, 그리고 신재명은 <달마야 놀자> <목포는 항구다> <잠복근무>의 무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