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월드시네마에서 주목해야 할 몇가지 지정학적 특징. 새로운 미학적 실험을 보고 싶다면 프랑스를 다시 주목하라. 이탈리아 영화들은 새로운 르네상스에 돌입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영화들은 의외의 놀라움을 안겨준다. 아래의 추천작 리스트에서 거장의 이름들은 최대한 숙청했다. 다르덴의 영화? 굳이 권하지 않아도 모두가 보러갈게 틀림없지 않은가. 올해 베니스 출품작들은 같은 호 베니스 결산 기획을 참조하시길.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기막힌 혼합
신의 사무실 God’s Office 클레르 시몽 | 프랑스, 벨기에 | 2008년 | 122분 | 월드시네마
더 클래스 The Class 로랑 캉테 | 프랑스 | 2008년 | 120분 | 오픈시네마
지금 유럽 예술영화의 새로운 실험을 확인하고 싶다면 두편의 프랑스영화, 클레르 시몽의 <신의 사무실>과 로랑 캉테의 <더 클래스>를 보는 것이 좋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사회적인 문제를 스크린에서 탐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기법을 뒤섞어버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두 영화 모두 두 장르의 혼합이라는 골치아픈 서커스를 기가 막히게 해냈다는 사실이다. 클레르 시몽의 <신의 사무실>은 여러 가지 문제(특히 피임과 낙태)에 봉착한 여성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는 여성센터 ‘신의 사무실’을 무대로 한다. 이곳을 찾아오는 여성들은 크건 작건 자신만의 은밀한 비밀이 있다. 한 소녀는 섹스를 시작할 나이가 되자 피임약을 복용하려 하고, 한 소녀는 콘돔을 챙겨주면서도 자신을 창녀라고 부르는 엄마 때문에 화가 난 상태며, 또 다른 소녀는 보수적인 무슬림 엄마에게 들킬까봐 피임약을 바깥에 숨겨놓고 다닌다. 어떤 여자는 아이를 간직하고 싶어하고 어떤 여자는 하루빨리 낙태를 하고 싶어한다. 베아트리체 달, 내털리 베이(<포르노그래픽 어페어>), 이자벨 카레(<마음>), 안느 알바로(<타인의 취향>) 같은 프랑스 여배우들이 카운셀러를 연기(혹은 경험)하며 실제 여성이나 가상의 캐릭터들과 대면하고, 다큐멘터리 작가 출신인 클레르 시몽은 그 자연스러운 순간들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아낸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로랑 캉테의 <더 클래스>는 이민자 노동계급 자녀들이 다니는 파리 교외 학급 내부의 사회·문화적 충돌을 그려내고 있다. 로랑 캉테는 원작 수기의 저자인 실제 교사와 학생들을 교실에 밀어넣은 뒤 그들이 만들어내는 즉흥적인 연기를 세대의 카메라에 담아냈다, 덕분에 <더 클래스>는 완전한 극영화가 성취하기 힘든 극적 진정성에 도달한다. <신의 사무실>과 <더 클래스>는 지금 프랑스 작가영화 혹은 유럽 예술영화의 현재다. 두 영화는 영화라는 매체가 여전히 진화하는 매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가서 보라.
보비 샌즈의 육체적 항거
헝거 Hunger 스티브 매퀸 | 영국 | 2008년 | 96분 | 플래시 포워드
보비 샌즈의 이름은 북아일랜드 투쟁의 상징이다.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에 대한 대처 전 정부의 강경정책에 항거하며 옥중 단식을 시작한 그는 결국 1981년 66일간 모든 음식을 거부하다가 죽었다. 보비 샌즈의 죽음은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거대한 항거를 불러일으키고 결국 대처 정부의 강경정책을 누그러뜨렸다(물론 역사는 계속됐고 IRA의 테러도 계속됐으며 북아일랜드는 이제 독립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보비 샌즈의 투쟁은 몇번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국내 개봉했던 테리 조지의 <어느 어머니의 아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스티브 매퀸의 데뷔작 <헝거>는 다소 감상적인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영화들과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보비 샌즈의 투쟁에 접근한다. 중요한 것은 육체다. 매퀸의 카메라는 투쟁하는 보비 샌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대신 똥과 오줌을 버리지 않는 배설물 투쟁을 시작한 뒤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죽어가는 죄수들의 싸고 맞고 떨고 굶는 육체적 항거에만 오로지 집중한다. 정치적인 투쟁을 다루는 대다수 영화들의 우둔한 감상주의를 배제한 <헝거>는 바로 그 덕분에 진실로 감동적인 결말에 이른다. <헝거>는 거론의 여지없이 ‘올해의 데뷔작’이다.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장자
기묘한 피크닉 Hooked 아드리안 시타루 | 루마니아 | 2008년 | 80분 | 루마니아 뉴웨이브
크리스티앙 문주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코르넬리우 포럼보이우의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크리스티 푸이우의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은 지금 루마니아가 가장 혁신적인 영화적 재능의 보고라는 걸 확실하게 증명했다. 이들의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다큐멘타리에 가까운 리얼리즘과 혁신적인 카메라와 미장센이다. 루마니아 뉴웨이브의 특징이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는 건 아드리안 시타루의 데뷔작 <기묘한 피크닉>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어느 빛 좋은 오후 미하이와 스위티는 교외로 피크닉을 떠난다. 두 사람은 자동차 여행 내내 티격태격하다가 십대 매춘부인 아나를 차로 친다. 그들이 시체를 처리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아나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어나 피크닉에 동참해도 좋은지 물어본다. 물론 예상치 않았던 손님이 끼어버린 피크닉은 괴이한 분위기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기묘한 피크닉>은 인간 관계의 얄팍함과 신뢰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다. 아드리안 시타루는 주제를 스크린에 구현하기 위해 대담한 미학적 실험을 단행한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며, 관객은 다양한 인물들의 주관적인 시점을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때론 잔재주처럼 느껴지지만 확실히 흥미롭다.
근사한 누벨바그식 사랑 이야기
또 다른 남자 Another Man 리오넬 바이에르 | 스위스 | 2008년 | 89분 | 월드시네마
프랑수아는 프랑스어권 스위스의 산골에서 여자친구에게 얹혀사는 남자다. 저널리스트(라고 해봐야 마을 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1주일에 한번 마을의 유일한 극장에 걸리는 영화의 리뷰를 정기적으로 쓰게 된다. 문제는 프랑수아가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나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거다. 그래서 어떡하냐고? 그는 파리의 유명한 영화잡지에 실린 비평을 그대로 베껴서 신문에 연재한다. 그러나 프랑수아의 나태한 표절 인생은 기사시사회에서 만난 영화평론가 로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흔들린다. 프랑수아가 영화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간파한 로자는 그를 슬그머니 자신의 괴상한 섹스라이프에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스위스 로잔에서 영화교수로 재직 중인 리오넬 바이에르 감독은 영화에 관한 일종의 메타 비평으로서 <또 다른 남자>를 만든 듯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헛된 욕망에 대한 근사한 누벨바그식 사랑 이야기다. 끝없이 등장하고 스쳐지나는 수많은 영화적 인용들을 알아보는 비평가들, 영화기자들, 개인 블로그에 영화평을 올리며 자위하는 수많은 자칭타칭 평론가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다. 누구는 가슴이 팍팍 찔릴 테고 말이다.
지적으로 위대한 아르노 데스플레생
크리스마스 이야기 A Christmas Tale 아르노 데스플레생 | 프랑스 | 2008년 | 143분 | 월드시네마
추석날 고향집에서 전 좀 부쳤던 독자라면 뼈저리게 다시 깨달았을 것이다. 가족이란 정말이지 골치 아픈 존재라는 걸. 아르노 데스플레생이 생각하는 가족도 마찬가지다. 주농과 아벨 부부는 골수이식이 필요한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이를 낳았지만 결국 치료에 실패한다. 그리고 세월은 수십년이 흘렀다. 가족은 엉망이다. 심지어 딸 엘리자베스는 집안의 난동꾼 앙리의 행각을 견디다 못해 그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조건으로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린 참이다. 그러나 엄마인 주농이 암에 걸려 가족의 일원으로부터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는 탓에 그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아르노 데스플레생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처럼 말과 말, 관계와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적 고양이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카트린 드뇌브, 에마뉘엘 브루디외, 마티외 아말릭, 키아라 마스트로이안니 등 능구렁이 같은 프랑스 배우들이 가족으로 출연해 서로를 잡아먹을 듯 할퀴다가 때로는 화해하고 결국에는 울부짖는다. 누벨바그 작가들이 늙어버리거나 죽어버린 지금 프랑스의 사적, 작가주의영화 전통을 가장 아름답게 발현하는 것은 확실히 아르노 데스플레생이다. 지적으로 위대하다.
호러 영화광들에게 권함
먼고 호수 Lake Mungo 조엘 앤더슨 | 오스트레일리아 | 2008년 | 87분 | 월드시네마
올해 미드나잇 패션 부문에는 지난해 <인사이드>처럼 호러 영화광들의 오금을 저리게 할 영화가 드물다. 그게 아쉬운 관객이라면 월드시네마의 <먼고 호수>를 주목하는 게 좋다. 오스트레일리아 시골의 10대 소녀 앨리스가 익사체로 발견된다. 경찰이 사고사로 결론내리자 가족은 앨리스의 빈자리를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사진을 공부하는 동생이 찍은 뒷마당 사진에 앨리스의 유령이 등장하고, 우연히 찍은 홈비디오에도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가족은 심령술가와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유령의 존재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먼고 호수>는 <블레어 윗치>와 <클로버필드>의 페이크다큐멘터리 장르를 유령 이야기와 결합한 작품으로 인터뷰와 심령사진, 아마추어 동영상을 통해 유령의 현존을 파헤친다. 그러나 디스커버리 채널의 흔한 심령 프로그램을 연상해서는 안 된다. 이미지의 조작이 얼마나 쉬운지를 보여주며 일종의 미디어 비평으로 나아가던 <먼고 호수>는 휴대폰 동영상을 이용한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관객에게 던지며 자신의 장르가 ‘호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심령 사진이나 유령 동영상에 쉽게 겁을 먹는 관객이라면 조금 주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온몸에 소름이 쫘악 끼치는 순간들이 몇번 있다.
현대 이탈리아의 지옥도
고모라 Gomorra 마테오 가로네 | 이탈리아 | 2008년 | 135분 | 오픈시네마
나폴리를 보고 죽자고? 누가 오래된 이탈리아의 격언을 믿으랴. 나폴리를 보다가 죽을 판이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폴리는 쓰레기가 들끓는 소매치기의 도시인 동시에 악명 높은 마피아 카모라 가문이 전제군주처럼 통치하는 폭력의 항구다. 마테오 가로네는 카모라 가문이 나폴리를 장악해간 과정을 다룬 로베트로 사비아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고모라>를 만들었다(물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나 상업적인 마피아 영화들이 흔히 보여주는 극적인 폭력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마테오 가로네는 카모라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소년, 독립적인 갱단을 꿈꾸는 멍청한 청년들, 조직을 위한 의상실을 운영하는 중년 남자 등 다양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다섯 가지 이야기를 퀼트처럼 직조하며 나폴리의 지하세계를 들여다본다. 폭력은 가난과 함께 대물림되고 어른과 아이는 서로를 죽이지만 누구도 끔찍한 현대판 고모라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현대 이탈리아의 지옥을 건조한 리얼리즘의 렌즈로 파헤친 <고모라>와 묶어서 감상할 영화는 전후 이탈리아 정계를 마피아 조직처럼 이끈 실존 정치인 줄리오 안드레오티의 삶을 다룬 파울로 소렌티노의 <일 디보>(월드시네마 부문)다.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는 두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스릴러가 보고 싶다면
착한 소녀 Be Good 줄리엣 가르시아 | 프랑스, 덴마크 | 2008년 | 90분 | 월드시네마
10대 소녀 나탈리는 프랑스 시골 마을의 빵집에 취직한다. 극도로 말이 없는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마을에 사는 중년 피아니스트의 저택에 이상할 정도로 집착한다. 게다가 중년 피아니스트는 나탈리가 등장하자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기 시작한다. 그녀는 왜 그를 쫓아다니는 것일까. 그는 왜 그녀를 겁내는 것일까. <착한 소녀>는 조용한 스릴러다. 줄리엣 가르시아 감독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까지 나탈리와 피아니스트의 관계를 절대 자세하게 누설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나탈리의 뒤를 조용조용 따라가는 관객에게 조금씩 정보를 흘려준다. 이를테면 왜 나탈리는 마을의 다른 중년 남자들에게 알 듯 말 듯 섹슈얼한 교태를 부리는 것일까. 왜 그녀는 살아 있는 달팽이로 가득한 끈적끈적한 통 속에 손을 휘저으며 묘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사실 마지막 반전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착한 소녀>는 소녀의 텅 빈 표정과 프랑스 시골 마을의 히스테릭하도록 나른한 배경을 이용해 스멀스멀 관객의 목을 조이는 스릴러다. 장르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고, 프랑스 장르적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스웨덴 거장이 빚은 페미니즘 혹은 서정적 시대극
영원한 순간 Everlasting Moments 얀 트로엘 |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 2008년 | 125분 | 월드시네마
지독한 PIFF 마니아라면 스웨덴 거장 얀 트로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게다. 특히 2003년 제8회 PIFF의 남포동 핸드 프린팅 행사에 참여한 관객이라면 말이다. 그래도 설명이 필요하다면 얀 트로엘이 흔히 ‘스웨덴의 3대 거장’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되새겨보자(나머지 두명은 물론 잉마르 베리만과 보 비더버그다). 트로엘의 신작 <영원한 순간>은 사회주의 사상이 동쪽으로부터 전해지고 서쪽 자본주의 시장이 침범하며 사회적인 변혁을 겪던 20세기 초 스웨덴이 무대다. 알코올중독자 남편에게 시달리면서도 세 아이를 열심히 기르는 주부 마리아는 가계를 돕기 위해 오래된 카메라를 팔려한다. 하지만 마리아를 사모하는 사진관 주인 페르데센의 도움으로 그녀는 카메라 사용법을 배운 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얀 트로엘 감독은 큰딸의 내레이션을 통해 어머니의 의무와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며 늙어갔던 마리아의 생애를 조용히 회고한다. 페미니즘영화로 읽어도 좋고 서정적인 시대극으로 봐도 좋다. 특히 어머니와 함께 PIFF를 찾을 관객이라면 이 우아하고 서정적인 스웨덴 시대극을 예매 리스트에 꼭 올려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