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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풍요롭고 자유분방한 리얼리티, 장 르누아르 회고전

1월25일부터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국내 미상영작 5편 등 총 22편 상영

<이 땅은 나의 땅>

시네마테크 부산이 1월25일(금)부터 2월21일(목)까지 여는 ‘장 르누아르 회고전’은 르누아르의 무성영화에서 시작해 1930년대 중·후반의 인민전선 시절과 1940년대 할리우드 망명 시절, 프랑스로 복귀한 이후의 영화까지 르누아르 영화의 ‘다양함’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총 22편이 상영되는 이번 르누아르 회고전에서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면, 국내에서 아직 상영된 적 없는 5편의 작품, <지하세계>(1936), <시골에서의 하루>(1936), <이 땅은 나의 땅>(1943), <하녀의 일기>(1946), <해변의 여인>(1947)이다. 특히 르누아르의 인생을 영화로 이끈 채플린에 대한 애정이 한껏 묻어나는 <지하세계>와 봄날의 설렘이 나비의 날갯짓에 담긴 감각적인 영화 <시골에서의 하루>, 자크 리베트가 르누아르의 걸작 3편 중 첫 작품이라 칭송한 <해변의 여인>은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또 이미 소개된 작품으로도 인민전선 시절의 걸작인 <토니> <거대한 환상> <게임의 규칙>, 미국 망명 시절 최고의 걸작으로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으로 서정성을 드러내는 <강>, 후기 르누아르의 대표적 영화로 아버지 오귀스트 르누아르에 대한 오마주인 <풀밭 위의 오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아쉽게도 <랑주씨의 범죄>는 상영되지 않는다).

르누아르의 열렬한 팬인 앙드레 바쟁은 그의 탁월함은 <암캐>에서 <황금마차>까지, <랑주씨의 범죄>에서 <강>까지, <거대한 환상>에서 <남부인>까지, <하녀의 일기>에서 <엘레나와 남자들>까지, 작품의 질뿐만 아니라 그 다양성으로도 확증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은 자유분방하게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도 넘쳐흐른다. 이러한 까닭에 르누아르의 영화를 리얼리즘의 틀, 즉 바쟁의 리얼리즘 논의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롱 테이크와 딥 포커스라는 공식에 가둬버리는 일은 몹시 가혹한 처사다. 물론 그의 영화를 리얼리즘과 관련짓는 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러한 단순한 도식은 르누아르 영화의 풍요로움을 외면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트뤼포가 “희극과 비극의 통상적 구분을 르누아르의 영화에는 적용할 수 없으며, 그의 영화는 모두 희비극이다”라고 단언하듯, 르누아르 영화에는 리얼리즘과 비리얼리즘,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멜로드라마와 사회적 리얼리즘, 실제 삶과 영화적 삶, 아폴론적 질서와 디오니소스적 무질서, 비관과 낙관이 혼재한다. 영화와 연극, 그리고 실제의 삶이 보로매우스의 매듭처럼 묶인 <황금마차>를 두고 그의 모든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열려라 참깨’라고 에릭 로메르가 말한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만약 르누아르 영화의 리얼리티를 말하고자 한다면, 그의 영화가 실제 현실을 정확하게 모사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관습적 관계, 적대, 충돌, 변화 등을 재인식하도록 유도하는가 하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즉 르누아르의 리얼리즘은 지각과 인식의 현실적 문지방 너머에서 출현하는 ‘숭고의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르누아르의 영화를 보며 산만함을 느꼈다면 나는 오히려 그것이 정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게임의 법칙>에서 잘 드러나듯, 대체로 자유분방하고 말 많은 인물들을 선호했던 르누아르 영화의 산만함은 영화의 프레임 외부뿐만 아니라 가시적 현실 외부의 풍요로움까지도 담으려 한 ‘원심력의 미학’에서 비롯한 것이니까 말이다.

바쟁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르누아르의 <랑주씨의 범죄>를 ‘위한’ 비평글을 썼다. 죽음이 다가왔음을 깨달은 바쟁은 평생의 과업이라 여겼던 르누아르 연구에 자신의 마지막 밤을 바친 것이다. 바쟁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장 위대한 프랑스 영화감독’인 르누아르가 아니면 또 누가 바쟁의 마지막 밤을 선물받을 자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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