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다른 이름장 르느와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894-09-15
- 사망1979-02-12
- 성별남
소개
“그는 가장 위대한 감독이다. 그는 영화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장 르누아르에 대한 데이비드 톰슨의 말이다. 영화사에 대한 기여도나 영화 기술의 확장에서, 그리고 삶에 접근하는 그 주제와 방식까지 르누아르는 영화의 존재를 위대하게 만들어준 영화작가 중 한사람이다. 그는 오슨 웰스의 유명한 딥포커스 방식 이전에 ‘깊이있는 무대’(Staging in depth)를 통해 진실과 정직의 영화미학에 접근해갔다. 르누아르의 ‘깊이있는 무대’란 인물들이 전경쪽으로 이동하거나, 배경이나 중경의 인물들을 강조하는 미장센을 통해 깊이감을 착각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주로 배경에 초점을 맞춰 이런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냈다. 르누아르는 또한 사회의 특정집단(노동계급이나 중류계급)이 처해 있는 사회적, 경제적 환경들에 대한 묘사를 소홀히하지 않는 사회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의식있는 작가였다. 르누아르는 1894년 파리에서 인상주의 화가인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로방스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1920년대에 감독생활에 접어든다. 르누아르의 초기 작품 <물의 소녀 La Fille de l’eau>(1925) <나나 Nana>(1926) <카트린 Catherine> (1927)엔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되는 카트린 에슬링이 주연을 했고, 영화 재정은 아버지의 작품을 판 것으로 해결했다.에밀 졸라의 소설을 각색한 <나나>는 그의 무성영화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르누아르는 다음 작품의 제작비를 벌기 위해 상업적 영화 <마르키타 Marquitta>(1927)에 착수한다. 1931년에 그는 처음으로 유성영화, <아기에게 하제를 복용시켰다 On purge B 를 시도하고 그런 다음 위대한 영화 <암캐 La Chienne>(1931)를 만든다. 미셸 시몽이 살인자가 되는 소심한 출납계원으로 나왔는데 실제 몽마르트 거리에서 촬영하고 녹음했다. 르누아르는 1930년대 동안 자연광, 카메라 이동, 피사계 심도, 실제 로케이션 촬영, 실내와 외부의 조합 등으로 영화모험을 시작한다. <마담 보봐리 Madame Bovary>(1934)에서는 야외촬영을, <토니 Toni>(1935)에서는 비전문배우를 사용했다. <랑주씨의 범죄 The Crime of Monsieur Lange>(1936)와 <프랑스 사람 The People of France>(1936)은 노동계층에 대한 연구와 정치성이 강화됐다. <위대한 환상 La Grande Illusion>(1937)은 3명의 프랑스 전쟁포로의 탈출에 관한 영화인데 귀족장교의 희생으로 캠프를 탈출하는 두 병사를 통해 인종과 계급과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휴머니즘의 희망을 담고 있는 뛰어난 반전영화다. 1939년 그는 가장 위대한 영화 리스트에 반복적으로 오르게 되는 <게임의 규칙 La R le du jeu>(1939)을 만든다. 한 전원주택에서 벌어지는 파티를 통해 사회의 부패와 계급의 허상을 해부했고, 신중한 장면화와 깊이있는 공간, 인물 배열을 새롭게 창조한 걸작이다. 르누아르는 인물들을 배경 속에 담고,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로 묘사하기를 즐겼다. 르누아르의 실험정신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이후에 르누아르는 미국에 가서 20세기폭스를 위해 <물에 잠기다 Swamp Water>(1941) <내 소유의 땅 This Land Is Mine>(1943) <어떤 하녀의 일기 Diary of a Chamber-maid>(1946) <해변의 여인 The Woman on the Beach>(1947) 같은 평범한 영화들을 만든다. 생활난과 싸우는 소작인의 이야기를 다룬 <남부사람 The Southerner>(1945)에서만 그의 프랑스 시절 작품의 위대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르누아르는 인도에 가서 루머고든의 소설 각색인 <강 The River>(1951)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가 미국에서 보낸 세월을 표현한 것으로 아직 무뎌지지 않은 서정시 같은 시각을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황금마차 The Golden Coach>(1953)를 만든 다음, 마침내 프랑스로 돌아가 <프렌치 캉캉 French Cancan> (1955)을 만들어 성공한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장 르누아르의 소극장 The Little Theatre of Jean Renoir>(1971)이다.
[씨네21 영화감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