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와 애니메이션 팬들을 위한 축제, 제11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SICAF 2007)이 오는 5월23일(수)부터 27일(일)까지 5일간 열린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SICAF 2007 역시 영화제와 전시장을 나눠 진행하게 되는데, 전시는 SETEC(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애니메이션영화제는 CGV 용산과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열린다.
SICAF 2007은 <별의 목소리>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지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초속 5cm>를 개막작으로 시작해 SF계의 거장 뫼비우스(장 지로)가 직접 감독을 맡은 <아르작 랩소디>, 지난해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의 화제작과 르네 랄루 감독의 <타임 마스터>, 최첨단 CG의 현황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시그라프 2006 베스트 3D 섹션 등 여느 때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게다가 뫼비우스와 박찬욱 감독의 대담,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크리닝 토크 등 한국을 찾은 감독들과의 만남도 이벤트로 준비되어 관객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만화 관련 기획 전시와 각종 이벤트들도 눈에 띈다. 종이를 벗어나 웹과 모바일 등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새로운 만화문법을 창조해가는 만화의 세계를 조명한 디지털 라운드 투, 만화와 영화, 애니메이션을 넘나들며 SF세계를 구축해온 뫼비우스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달콤한 SF: 뫼비우스 특별전 등은 이번 SICAF 2007에서 빠뜨릴 수 없는 전시! 전시와 영화제 모두 매력적인 작품들이 가득한 만큼 SICAF 2007의 전시장과 영화제 장소 사이의 공간적 이질감은 되레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고 싶은 작가나 감독을 만나기 위해서 용산과 남산으로 갔다가, 같은 작가의 작품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다시 학여울로 이동해야 하는 관객의 불편함이 있다.
놓치면 안 될 작품들
<시간을 달리는 소녀> 감독 호소다 마모루
엄청난 배급망을 자랑하는 지브리의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에 밀려 단출한 개봉관으로 시작했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한 화제작. <에반게리온>의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캐릭터 디자인을, 일본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오쿠테라 사토코가 각본을, 그리고 <극장판 원피스: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 <극장판 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게임> 등을 감독한 호소다 마모루가 감독을 맡았다.
이 작품의 원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쓰쓰이 요시타카, 1965)는 요시야마 카즈코라는 여학생이 시간을 뛰어넘는 타임 리프라는 능력을 가진 뒤 생기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그린 소설이다. 1965년 발표된 이래 지금까지 몇 차례나 드라마, 영화 등으로 제작된 바 있는데다, 주인공 요시야마 카즈코 역은 당대의 일본 아이돌 스타들이 맡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반면 호소다 마모루가 감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이런 원작의 세계관을 차용하되, 원작의 주인공 요시야마 카즈코와 나이도 성격도 전혀 다른 콘도 마코토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린다.
미소녀가 나오는 아이돌 작품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요즘의 평범한 10대들처럼 자기 주장이 분명한 소녀가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말처럼 지금까지 만들어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남성의 입장에서 예쁘장한 아이돌 소녀의 시간 여행을 보는 작품들이었다면,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은 보이시한 여학생이 자신의 운명에 맞서 시간 여행을 하는 작품이다. 캐릭터, 작화, 각본, 연출 등 모든 부분이 잘 어우러진 수작으로 2006년 일본 극장가의 최대 수확이라고 할 만한 작품. 기대해도 좋다!
<초속 5cm> 감독 신카이 마코토
<그와 그녀의 고양이>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지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07년 최신작. 이번 SICAF 2007의 개막작인 이 작품은 <벛꽃 이야기> <코스모나우토> <초속 5cm>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로 떨어지게 된 토노 타카키와 시노하라 아카리의 성장을 그린 <초속 5cm>는 아직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두 남녀가 성장해 성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 두 사람의 감정선의 변화를 전체 3부의 이야기 속에 잘 녹여냈다.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조용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하는 독백,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충실하게 재현된 배경과 색감. 그를 살려내는 광원 효과. 그리고 이미지 내의 카메라 워크 등 지금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보여준 특징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파프리카> 감독 곤 사토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 쓰쓰이 요시타카의 또 다른 작품 <파프리카>가 이번에는 <도쿄 대부> <퍼펙트 블루>의 곤 사토시 감독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됐다.
사람들의 꿈속으로 들어가 직접 활동하며 치료를 할 수 있는 시대. 이런 일들은 꿈의 세계를 비주얼로 영상화하는 장치인 DC-mini가 개발되면서 가능해졌다. 그런데 DC-mini가 도난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DC-mini라는 녀석이 단순히 꿈을 영상으로 만들기만 하는 장치가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은 더욱 커지고 만다.
그동안 <천년 여우>나 <퍼펙트 블루> 등을 통해 여배우가 되고 싶은 꿈, 이성과 아이돌을 향한 욕망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멋들어지게 표현해온 사토시 감독이 이번 <파프리카>에서는 좀더 다양한 인간의 감정들의 표현에 도전했다. 인간의 꿈과 욕망, 이상과 현실, 그리고 현실과 가상세계의 허물어지는 경계까지 담아내고자 한 사토시 감독.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고자 한 걸까? 꿈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방황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관객에게도 혼란을 주는 듯하다.
<아기코끼리: 칸 쿠웨이> 감독 콤핀 켐군니르드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선보인 타이의 CG애니메이션으로 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가 결국 엄마 코리리와도 헤어진 아기 코끼리 칸 쿠웨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칸 쿠웨이가 무럭무럭 성장해 아버지를 죽인 원수 코끼리 누앙 댕을 물리친다는 심플한 플롯, 게다가 촐싹거리는 미국식의 전형적인 조연 캐릭터들까지 가세해 너무나 익숙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타이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칸타나가 5년에 걸쳐 제작할 만큼 코키리를 비롯해 다양하게 변형된 갖가지 동물 캐릭터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귀여운 디자인과 따스한 색감, 그리고 타이 전통 문화 요소가 섞여 인상적인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특히 후반부 전투장면이 선사하는 박력은 압권.
<천년여우 여우비> 감독 이성강
외계인과 함께 서울 야산에서 100년째 살고 있는 구미호 여우비. <천년여우 여우비>는 구미호라지만 아직 꼬리가 5개밖에 나지 않은 사춘기(?) 구미호 여우비와 개그맨을 꿈꾸는 내성적인 소년 금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리이야기>로 제26회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성강 감독의 장편으로, <십이국기> <엠마> 등을 통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친숙한 음악가 양방언이 음악을 맡았고, 손예진, 공형진, 류덕환 등 국내 인기배우들의 성우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조밀하지만 편안함을 함께 주는 배경과 구미호, 영혼가게 주인 삼바바, 외계인 요요 등 갖가지 상상력이 버무른 캐릭터들이 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캐릭터만큼 다양한 사이드 스토리들을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친절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르네상스> 감독 크리스티앙 볼크만
2054년의 파리를 배경으로 흑과 백으로만 표현한 하드보일드 SF. 이 한줄의 설명만으로는 얼핏 <씬시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모션 캡처에 강렬한 흑백의 텍스처를 입힌 <르네상스>의 영상은 <씬시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적 맛을 창조해내고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이 감시당하는 미래의 파리. 갑작스레 사라진 젊은 과학자 일로나를 찾아내는 경찰 카라스의 앞에 거대기업 아발론이 막아선다. 터프하고 와일드한 매력의 카라스의 목소리는 <007 카지노로얄>의 대니얼 크레이그가 맡아 흥미를 더한다. 지난 제30회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