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서울 메가박스에서 제7회 서울유럽영화제가 열린다. 그동안 국내에선 접하기 어려운 유럽의 신작들을 소개해온 이 영화제는 올해도 풍성한 라인업을 준비했다. 7개 섹션으로 구성된 27편의 상영작은 거장의 신작부터 최근 유럽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까지 다채롭다. 영화제쪽은 “좀더 다양한 관객의 영화적 감성을 위해 지난해보다 많은 국가인 15개국의 작품들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우선 개막작으로는 <수면의 과학>이 상영된다. 이 작품은 독특한 감성의 멜로영화 <이터널 선샤인>으로 국내에도 마니아 팬을 거느린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만의 기발한 상상력을 애니메이션 기법을 차용해 독특하게 풀어낸다. <이투마마>의 미남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21그램>의 샬롯 갱스부르가 출연한다.
해외영화제 뉴스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작품들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거장들의 신작들을 모아 상영하는 ‘마스터스 초이스’ 부문에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같은 해 칸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황혼의 빛>과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웨딩 디렉터>,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됐던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코미디 오브 파워> 등이 올라 있다. <웨딩 디렉터>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좌파 감독 마르코 벨로키오의 2006년작으로, 결혼식을 촬영하는 영화감독의 내면을 통해 남자와 여자, 신념과 현실의 문제를 탐구한다. ‘특별전2’ 부문에서는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유럽 3대 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영화들을 모아 상영한다. 영국에서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파키스탄 청년 네명의 이야기를 그려 정치적인 논쟁일 불러일으킨 마이클 윈터보텀의 <관타나모로 가는 길>, 잦은 성기 노출과 노골적인 난교장면으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구설에 올랐던 존 카메론 미첼의 <숏버스>, 아직도 민감한 사안인 영국의 다이애나비 죽음을 소재로 영국 왕실을 그려낸 스티븐 프리어스의 <더 퀸> 등은 영화팬들의 구미를 당기는 작품들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황혼의 빛> <사랑해, 파리> <레퀴엠> 등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작품들은 미처 부산을 찾지 못한 관객을 위한 배려다. <사랑해, 파리>는 구스 반 산트, 코언 형제, 올리비에 아사야스, 알폰소 쿠아론, 알렉산더 페인, 워터 살레스, 스와 노부히로 등 이름만 들어도 기대가 되는 감독 20명의 작품를 묶은 옴니버스영화. 파리를 배경으로 이채로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레퀴엠>은 이미 국내에서 개봉한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와 동일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귀신 들린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여느 공포영화와 달리 <레퀴엠>은 선과 악, 인간의 본성과 신앙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2006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서울유럽영화제는 ‘라이징 디렉터스’ 섹션을 통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럽 신인 감독들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루마니아 코넬 리우 포롬부 감독의 <12시8분, 부카레스트>와 루마니아의 액션영화를 엿볼 수 있는 스티븐 펄드 버킨 감독의 <유로> 등이 있다. 또 유럽인과 유럽대륙에 대한 영화를 모은 ‘아이 온 유러피안’ 섹션에는 프랑스 청춘들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찰리가 말하길>과 이탈리아의 가족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는 <패밀리 프렌드> 등이 상영되며, ‘특별전1’에서는 최근 유럽 애니메이션의 경향을 볼 수 있는 성인애니메이션 <프리 지미>와 2006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대상 수상작 <르네상스>가 마련되어 있다. 예매는 영화제 홈페이지(www.meff.co.kr)와 메가박스 코엑스를 통해 가능하며, 편당 6천원이다.
상영작 소개
코미디 오브 파워 Comedy of Power 클로드 샤브롤 | 프랑스 | 2006년 | 110분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신작 <코미디 오브 파워>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권력에 대한 조롱과 풍자다. 판사인 잔느(이자벨 위페르)는 회사 자금을 횡령한 CEO 위모(프랑수아 베르랑)를 수사하게 된다. 알레르기성 질환을 갖고 있는 이 남자는 수사가 강압적이라며 불만을 표하는데, 잔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수사를 계속한다. 모든 것은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은 수사를 하면 할수록 더 깊은 구렁 속으로 빠져든다. 좀더 많은 사람, 좀더 많은 권력이 사건과 연계되어 있는 것. 수사에 따른 협박도 뒤따른다. 수상한 자동차가 잔느의 차를 추격해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잔느는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은 권력과 개인의 문제를 좀더 심오한 관계 속에서 바라본다. 인간의 행위가 타인의 권력뿐 아니라 자신의 권력 안에서도 제어될 수 있다는 것. 잔느는 어느 순간 합법으로 포장된 자신의 권력 안에서도 불안을 느낀다. 이자벨 위페르의 한치도 모자람없는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숏버스 Shortbus 존 카메론 미첼 | 미국 | 2006년 | 102분
숏버스는 미국에서 일반 버스를 타지 못하는, 어딘가 장애를 가진 이들을 가리키는 은어다. 영화 속에서의 숏버스는 일종의 ‘성적 살롱’인데 이곳에 모인 이들은 자신의 삶에 정착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는 섹스 테라피스트 소피아(이숙인), 동거 관계에 이상징후가 온 게이 커플(폴 도슨, 피 제이 디보이),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레즈비언 등 이들에게 섹스는 쾌락과 동시에 허무다. 이성과 동성, 게이와 레즈비언이 뒤섞인 그룹섹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고, 음악과 예술,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얘기들이 난교의 장을 형성한다. <헤드윅>을 통해 신체상의 결여를 전복의 메시지로 매듭지었던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그 결함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리듬으로 풀어간다. “이 영화는 포르노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발기가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감독의 멘트처럼 <숏버스>는 쾌락의 한편에 자리잡은 빈 공간을 응시하고 노래할 줄 안다.
퀸즈 Queens 마뉴엘 고메즈 페레이라 | 스페인 | 2005년 | 107분
영화의 배경은 스페인 최초의 게이 합동결혼식. 하지만 주인공은 게이가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다. 깐깐한 성격의 판사, 기차 객실 화장실에서의 섹스도 주저하지 않는 여자, 화려한 영화배우 등 이들의 만남은 곧 충돌이 된다. 신부가 없는 결혼식에서 최대의 잡음은 그들의 입에서 나온다. 영화는 어머니로 대변되는 가족의 이념을 게이들의 결혼식 앞에 장애물로 놓는데, 그 방식이 신선하다. 생활방식과 가치관, 빈부와 사회적 능력 차가 상투적인 틀 밖에서 제시된다. 페레이라 감독은 결혼을 하나의 가치체계로 수렴되는 지향점으로 보지 않는다. 시끌벅적한 소동과 조합 자체가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 결혼을 앞둔 새롭고 다양한 충돌이 좀더 넓은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자리잡는다. 카르멘 마우라, 마리사 파레드, 메르세데즈 샘피에트로, 베티아나 블룸 등 스페인의 유명 여배우 5명이 개성 강한 어머니로 출연했다. 섹슈얼리티와 가족에 대한 편견을 한바탕 수다로 날려버리는 영화.
택시더미아 Taxidermia 지오르지 팔피 | 헝가리 | 2006년 | 91분
엉뚱하고 엽기적이며 황당한 영화. <택시더미아>는 기묘한 계기와 우연으로 엮어진 3대의 ‘가족역사극’이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 벤델은 상사인 중위의 부인과 사랑을 나누다 상사에게 살해당한다. 여기서 태어난 아들은 칼만. 먹는 데 소질을 타고난 그는 음식을 계기로 가정을 꾸린다. 먹기대회에서 만난 ‘초콜릿 와퍼 먹기’의 최고 기록 보유자 지젤라와 결혼을 하게 된 것.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라요스는 먹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는 몸무게가 500g도 채 되지 않는 미숙아다. 라요스는 박제사가 되어 자신의 결함을 보상받으려 하고, 점점 더 큰 일을 꾸민다. 감각적인 영상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다소 극단적인 가족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되돌아본다. 하지만 그 시선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영화는 발랄하고 코믹한 리듬 속에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2006년 트란실바니아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