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바람 앞에 흔들리는 두 형제의 사랑과 선택
운명의 바람 앞에 흔들리는두 형제의 사랑과 선택!
1920년 아일랜드, 젊은 의사 데이미언은 런던의 병원에 일자리를 얻지만, 영국군의 횡포에 친구 미하일이 목숨을 잃는 사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결국 데이미언은 자신의 꿈인 의사를 포기하고, 형 테디가 이끄는 IRA (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공화군)에 가담,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다. 영국군의 무기를 빼앗는데 성공한 그들은 어느날 내부의 밀고로 잡히게 되고, 형 테디는 호된 고문을 받는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일랜드계의 보초병이 이들을 풀어주면서 그들은 한번의 위험을 넘긴다. 그리고 자신들을 밀고한 자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막내 동생 같은 크리스임을 알게 된 데이미언은 밀고자를 처형하라는 명령에 따라 크리스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다고 생각한 데이미언은 연인 시네이드와 함께 더욱 투쟁에 몰입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염원하던 영국과의 평화조약이 체결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그 조약이 아일랜드의 반쪽만 자치를 허용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아일랜드의 독립운동단체들은 혼란에 휩싸인다. 우선 조약을 받아들이고,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자고 주장하는 형 테디와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다시 투쟁을 시작하자고 하는 데이미언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에 이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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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의 특별함이 돋보이는 그만의 촬영법more
켄 로치는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배우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그 날 찍을 분량의 대본만을 주는 독특한 촬영법으로 유명하다. 또한 보통의 감독이 시나리오 순서와는 상관없이 같은 장소에서 여러 장면을 연속으로 찍는 것에 반해 켄 로치 감독은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장면 순서대로, 즉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이 겪게 되는 사건들을 시간 경과에 따라 찍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방식은 배우들이 영화 속 인물과 자신을 일치시키도록 만들어 캐릭터 자체가 영화 속에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켄 로치만의 비법이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인물을 창조해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켄 로치 감독의 특성 때문에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평소와는 다른 촬영 방식으로 긴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곧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져 더욱 실감나는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서 나오는 연기가 아니라 반응으로 나오는 연기이기 때문에 훨씬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게 되고, 더 큰 감정의 심도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 켄 로치 감독의 촬영법이 지닌 장점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경우에도 이러한 방식은 유지되었고, 그에 대해 배우들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킬리언 머피는 “켄 로치 감독의 촬영 방식이 가지는 장점은 당신이 그 인물에 대해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바로 그것을 역할 자체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 인물 자체로서 같은 과정을 겪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 역할에 대해서 완벽하게 동의하게 된다.”고 말했고, 리암 커닝햄은 “켄 로치와의 촬영은 색달랐다. 보통은 대본을 보고, 인물에 대해 고민하게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는 듣는 일이 제일 중요했다. 우리는 언제 촬영에 돌입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촬영이 진행될수록 인물에 대한 나의 생각은 더욱 명확해졌다”라고 긴장감 있는 그의 촬영에 대해 말했으며, 올라 피츠제럴드는 “켄 로치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그렇지만 나는 이 촬영법이 굉장히 즐거웠다. 내가 맡은 역할의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계속 집중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이러한 긴장 상태는 나를 연기에 몰입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라고 말했다.
배우들의 이야기처럼, 켄 로치 감독의 특별한 촬영법은 영화가 아닌, 영화 속 현장을 온전히 그려내는 듯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래서 배우뿐만 아니라 다른 스탭들까지도 역사 현장 속에서 살아나가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켄 로치 감독이 지금껏 고수해 온 켄 로치 스타일의 하나이다.
아일랜드, 그 슬픈 역사의 땅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4월 부활절 기간 동안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난다. IRB(Irish Republican Brotherhood)와 IV(Irish Volunteers), ICA(Irish Citizen Army)가 주축이 되어 일어난 이 사건은 곧 영국에 진압당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주도했던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널리(James Connolly)가 처형당했다.
1918년 11월 총선거에서 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하는 보수당이 우세한 북동지역을 제외하고 신페인(‘우리 자신’이라는 뜻)당이 다수의 의석을 얻었다. 그리고 신페인당은 아일랜드 의회를 설립, 아일랜드가 독립국임을 세계에 선언했다. 그러나 세계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영국은 그들을 더욱 가혹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IV는 IRA(Irish Republican Army)로 명칭을 바꾸고, 대대적인 투쟁에 들어간다. IRA는 주로 18세에서 30세의 젊은 청년들로 구성되었는데, 공장 노동자나 농부, 상점 직원 출신이 많았다. 몇몇은 1차대전에 참가했던 베테랑들로, 그들의 군사 기술은 IRA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여자들은 Cumann na mBann를 조직, IRA간의 연결을 담당하고, 아일랜드 의회를 운영하는 역할을 맡았다.
1920년, 아일랜드 남부 지역에서 게릴라 투쟁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아일랜드의 거센 항쟁에 영국은 아일랜드와 휴전 협정을 맺고, 그들의 자치를 허용한다. 그러나 북아일랜드 지역을 제외한다는 내용에 IRA는 반발하고, 결국 조약에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로 분열하고 만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922년 12월 아일랜드 자유국이 탄생한다.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은 1920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특수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과거를 넘어 현재까지 이어지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은 역사는 언제나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테마라고 말하며, 이 영화가 현재의 이라크전과 같은 사건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