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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연인>의 박용우 & 최강희
사진 이혜정이영진 정재혁 2006-03-31

아쉽다, 박용우최강희. 이들은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외모가 이상하다거나, 연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마스크로, 주연보다 빛나는 연기를 보여줬다. 다만, 이들이 재능을 펼치기엔 TV가, 스크린이 좁았을 뿐이다. 지난 10여년의 세월이 억울하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영화계의 현실이다. 그래서 스타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고 하지 않나. 그리고 2006년 4월, 드디어 이들이 전면에 나섰다. 제목만 들어도 수상해 보이는 로맨스, <달콤, 살벌한 연인>은 30살이 넘도록 연애를 한번도 못해본 남자 황대우(박용우)와 몬드리안도 모르는 미술 전공 학생 김미나(최강희)의 사랑 이야기다. 박용우는 <올가미> 이후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고, 최강희는 <여고괴담>과 <와니와 준하>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을 찾았다. <혈의 누>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박용우는 이번 영화에서 다시 유약한 이미지로 돌아왔고, 그동안 청순발랄하기만 했던 최강희는 묘한 미스터리를 품은 여성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지난 10년간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누구도 바라봐주지 않던 그 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달콤, 살벌한 로맨스를 택했는지까지. 10년이나 늦게 청한 인터뷰지만, 그들의 대답은 매우 유익했다. 박용우는 한 작품 한 작품 자신의 경력을 채워가고 있었으며, 최강희는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여유로운 자세로 연기를 즐기고 있었다. 너무나 다른 태도를 지닌 두 배우를 바라보며, <달콤, 살벌한 연인> 속 그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 여자, 최강희

때로는 강아지처럼 때로는 고양이처럼

최강희는 강아지다. 1995년 데뷔작인 드라마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그녀는 귀여운 강아지 같았다. 밝고, 명랑하고, 활기찼으며, 언제든 다가와서 꼬리를 흔들어줄 것 같았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녀를 울릴 순 없었다. 드라마 <학교>에선 짝사랑에, <광끼>에선 가난에 힘겨워했지만, 그녀는 씩씩하고 밝았다. 항상 웃고 있는 강아지처럼.

하지만 브라운관 혹은 스크린 뒤로 살짝 고개를 돌려보면 그녀는 고양이다. 밤이 되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어두운 방 한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다. “고양이를 닮고 싶어요. 혼자서도 잘사는 법, 무슨 일이 있어도 섭섭해하지 않는 법, 자립심? 도둑고양이들 보면 위태위태하면서도 잘살잖아요. 그런 모습을 닮고 싶어요.” 그녀에게 외로움은 슬픔이 아니다. 그녀는 고독을 즐기고, 그 시간 속에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녀의 미니홈피의 ‘던져본다’라는 게시판에는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예전엔 외로움이라는 게 싫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저를 구성하는 볼트나 나사, 뭐 그런 요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생각을 해요. ‘오늘은 집에 가서 (미니홈피에) 또 뭘 쓸까’ 하고.”

그래서 그녀는 미나가 되기로 결심한 걸까.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나는 최강희와 닮았다. 큰일에는 대범하고 작은 일에 집착한다. “차 사고가 나면 저는 그냥 웃어요. 그런데 볼펜을 잃어버리면 찾으려고 애를 쓰죠. 그런 면이 미나와 비슷해요. 극중에서 미나도 큰일(?)은 대범하게 처리하면서 사랑에는 가슴 아파하거든요.” 최강희는 이번 시나리오를 보고 바로 하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꼈다. 촬영장에서도 그녀는 현장에서의 느낌 그대로에 충실했다. “시나리오를 외우기보다는 현장에서의 느낌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미나가 굉장히 복잡하게 꼬여 있는 인물 같지만, 사실 단순하게 보면 매우 간단하거든요. 그녀의 상황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어요.” 어쩌면 이는 그녀가 그동안 감춰왔던 이면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망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녀가 단번에 엄청난 변신을 할 리는 없다. “그냥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괜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가 그분들이 실망하신다면, 그건 싫어요.” <여고괴담> 이후 10여년 만의 영화 주연작이지만, 그녀의 소감은 담담하다. “저는 제 위치에 만족해요.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물론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좋죠.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떠밀려서 하느니 차라리 쉬고 싶어요. 지금의 제 위치요? 점수로 환산하자면 한 70점?” 최강희는 오히려 주위의 기대를 무색하게 한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계기로 그녀가 배우로 새로운 자리로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그녀는 배부른 행복도, 욕심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때로는 강아지처럼 때로는 고양이처럼 서 있고 싶을 뿐이다.

그 남자, 박용우

유약한 카리스마 뒤의 꾸준한 고집

쨍하고 볕들 날이 그에게도 온 것인가. 박용우는 <혈의 누>(2005) 이후 정신없다. <달콤, 살벌한 연인>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연달아 찍었다. <무사>에서 역관 역으로 출연했지만 대거 가위질을 당했고 2년 넘게 공들인 <스턴트 맨>은 중도에 엎어지는 불운을 당했던 그다. 한동안 스크린에서 잊혀졌던 그였으니, 숨 고를 새 없는 요즘이야말로 행복의 나날이다. “이런 경우 처음이죠. 그런데 사람이란 게 더 높은 곳을 보게 되잖아요. 또 다른 욕심이 생기고. 그래서 두려움도 있어요.” 지방에서 <조용한 세상> 밤샘 촬영을 끝내고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인터뷰 장소로 온 터라 얼굴이 까칠하고 눈빛도 퀭한데, 황대우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내 쾌활한 웃음을 연거푸 터트린다.

<달콤…>의 황대우를 골라 집은 건 전적으로 박용우의 고집이었다. <혈의 누>를 끝내고 주위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유약한 이미지를 떨칠 수 있는 기회라며 “무조건 더 센 걸 해야 한다”고 했지만 박용우는 고개를 저었다. “스릴러나 코미디에 관심이 많은데, 왜 대개 시나리오 보면 패턴이 비슷비슷하잖아요. 근데 이건 독특하더라고요. <조용한 가족>이나 <반칙왕>처럼 공식을 재밌게 비틀기도 하고. 제 입장에선 황대우라는 인물이 과거에 했던 역할들과 그리 다르지 않지만, 그 안에서 차별화된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꼭 최민수의 카리스마이거나 배용준의 카리스마일 필요는 없잖아요. 유약한 역할을 맡았다고 하더라도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어야죠. 배우라면.”

연애에 목말라하다 서른 넘어서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미나를 만나 봉변(?)당하는 황대우를 알기 위해 그는 손재곤 감독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저랑은 닮은 데가 없는 놈이에요. (최)강희는 목 늘어난 티 입고 다니는 나랑 똑같다고 하지만. 전 스트레스 쌓이면 허리가 아프지도 않고, 이성을 사귄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본인은 부인하는데, 황대우는 감독님이에요.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도 닮았고.” 촬영에 들어가기 한달 전부터 손 감독을 만나 친분을 다졌던 것도 단지 워밍업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우는 성인이지만 아직 마음은 아이인데, 감독님이 꼭 그래요. 그래서 말투도 눈여겨보고, 손짓도 따라해보고. 벤치마킹했죠. 단, 어눌한 인물보다 똑 부러지고 배울 만큼 배웠고 빈틈은 없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인물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꼭꼭 씹어서 말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어버버’ 하면 더 웃기는 것처럼.”

박용우에게 <달콤…>은 연기하는 재미를 알게 해준 영화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충분한 리허설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걸 다 펼쳐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했어요. 전에는 리허설할 때 다들 연기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눈빛이었거든요.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그게 아니었어요. 감독님도 배우들이 준비해온 것을 보고서는 ‘아우, 잘 봤습니다. 그런데 이건 좀 바꿔서 가면 어떨까요?’ 하는 식이었고. 촬영하다보면 감독과 배우 사이에 전쟁이 많잖아요. 서로 설득하려들고. 근데 감독님이 많이 저한테 져주셨어요. 배우라는 게 예민한 동물이라서 상황에 따라 심리적인 낙폭이 큰데, 스탭들도 다들 이해해준 것도 고맙고.”

“배우가 되기 위해 서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치면, 이제 반 정도 올랐나 싶다”는 그의 겸손에는 적잖은 부담이 딸려 있다. 하긴 올 한해 관객의 시험대에 오를 일이 한두번이 아니니, 더욱 그럴 것이다. “이제는 멍석 안 깔아준다고 불만을 털어놓을 수도 없고. 결국 주어진 상황에서 얼마나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로 남느냐가 중요한 거죠. 역할은 앞으로도 안 볼 거예요. 개연성없는 주인공을 욕심내기보다 존재 이유가 확실한 조연을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작품에 좀더 많이 관심을 두고 선택을 해야 할 테고.” 이제 남은 계단을 쉬지 않고 오르는 일만 남았다는 그에게 갑자기 ‘성실한 배우 상’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최강희: 좋은 남자, 못 만나도 상관없어요

“새롭게 사람을 만나는 건 싫어요. 자신없어요. 물론 대충 넓고 얕게 알고 지낼 수는 있지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건 하기 싫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할래요. 이상형이요? 자주 변해요. 현재는 없고요. 얼굴은 못생겨도 좋아요. 잘날 필요도 없고요. 왜, 사람들이 정말 좋은 남자가 있기는 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그런 사람을 못 만나도 상관없어요. 굳이 만나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괜히 마음 아파하고, 거짓말 같은 약속하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정말 만나기가 싫어요. 물론, 만난다면 아주 열심히 할 거지만요.”

박용우: 가격도 싸고, 잘 안 풀린다고?

“상처도 많아요. 쉴 때마다 감독님이 대우는 조승우한테 맡겼어야 했다고 그랬거든요. 그때마다 나도 그럼 자기는 무슨 스필버그야, 라고 이죽거리긴 했는데. 왜 박용우를 캐스팅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가격도 싸고 잘 안 풀리는 배우라고 하질 않나. 농담이었지만, 촬영하느라 이틀 밤샌 상황에서 그런 말 들으면 돌죠. (웃음) 그래서 하루 동안 말도 안 하고 째려보기만 했어요. 그랬더니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들 고집은 알아줘야 해요. 꼭 빨간 손수건을 들고 있어야 한다라든지, 소품용 책이 꽂혀 있는 각도가 맘에 안 든다든지 하는 식으로 테이크를 한번 더 갈 때도 있고. 얼마 전에 <가을로> 현장에 놀러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김대승 감독님이 <혈의 누> 할 때와는 너무 달랐거든요. 앵글이나 연기나 좀처럼 타협을 안 하시는 분인데, 이번엔 그게 아닌 거예요.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스타일을 바꾸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배우도 그렇지만 감독도 알 수 없는 존재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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