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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 함께 나눠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김현정 2006-01-18

감독, 배우, 관객이 뽑은 12편의 영화와 함께, 1월19일부터 26일까지

좋은 영화를 혼자만 숨겨두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낯선 영화를 함께 보며 친구는 더욱 가까워지고, 같은 영화를 보았던 낯선 이는 어느덧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그런 기쁨을 주는 자리일 것이다. 1월18일에서 26일까지 열리는 이 영화제는 서울아트시네마 후원행사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간직해온 보물을 끄집어내 공유하며, 그 추억을 키워가는 행사이기도 하다. 영화를 선정한 아홉명의 친구들은 영화감독 김홍준과 박찬욱, 김지운, 오승욱, 류승완, 영화배우 문소리와 황정민, 영화평론가 정성일과 김영진. 여기에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은 관객이 투표를 해서 영화 두편을 보탰다.

소개상영작

<바람 불어 좋은 날> 이장호/1980/113분/한국

주최측에서 나한테 한국영화 한편을 선정해달라고 했다. 시네마테크와 한국영화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아닌가. 특히 내가 어렸을 때 본 한국영화는 조악한 불량식품 같은 것이 많았다. 한국영화 사상 최악의 불황기인 1970년대 후반에 빡빡머리로 몰래 동시상영 극장에 드나들며 본 그 당시의 조악한 한국영화 가운데 <바람 불어 좋은 날>은 드문 예외였다. 유지인의 스커트가 바람에 날려가는 것을 포착한 포스터가 신문광고에 실린 걸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기대와 달리 야하진 않았지만 이 영화는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는 서울에서 박박 기는 시골 출신 청년 처녀들의 처절한 분투기를 통해 뭔가 가슴에 불끈 맺히도록 하는 게 있었다. 특히 에필로그, 권투도장에서 스파링을 하며 실컷 얻어터진 안성기의 “이렇게 맞다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라는 내레이션이 충격이었다. 그리곤 “사나이 깊은 뜻을 누가 알랴…”로 시작되는 주제가가 깔린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다른 영화’의 출현을 알리는 한국영화의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 물론 그때는 그걸 몰랐다. 그후로도 여러 차례 비디오로 다시 본 이 영화의 감흥이 죽지 않는다는 건 거칠고 투박한 이 영화의 꼴에 비춰볼 때 불가사의하다. 그 감흥을 스크린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벌집의 정령> The Spirit of the Beehive/빅토르 에리세/1973/97분/스페인

<벌집의 정령>을 만든 빅토르 에리세 감독은 우리에게 제목만큼이나 낯선 이름이다. 1973년 첫 장편영화 <벌집의 정령>을 만들고 그 뒤 10년 만에 두 번째 영화 <남쪽>(1982)을 만들어 그 두편만으로도 그는 스페인의 중요한 감독이자 동시에 우리에게는 미지의 신비한 거장이 되었다.

1940년 스페인 카스티야의 작은 마을. 마을회관에서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을 보는 두 어린 자매(동생 아나 역의 아나 토렌트, 언니 이사벨 역의 이사벨 테예리아)가 있었다.

영화에 빠져들었던 아나는 집에 돌아와 침대에서 극중 프랑켄슈타인이 어린 소녀를 물에 던져 죽이는 장면에 대해 “왜 괴물이 소녀를 죽이는지” 묻는다. 언니는 “그것은 영화일 뿐이고 괴물도 소녀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마을에서 괴물을 보았다”고 말한다. 어린 안나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카스티야의 넓은 평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괴물을 찾는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들으면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행복한 분위기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이 영화는 강렬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주는 정치적 알레고리와 삶과 죽음에 대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베르메르나 벨라스케스, 카르바지오의 그림들을 보는 듯한 화면과 무엇보다도 성장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알아버린, 어딘지 슬퍼 보이는 아나 토렌트의 껌뻑거리는 까만 눈동자와 종종걸음으로 괴물을 찾아다니는 아이의 뒷모습만으로도 도저히 화면 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된다.

소문만 듣던 이 영화를 나는 지난해 거의 텅 비다시피 한 모로코의 작은 극장에서 보았고 자막이 오르고 불이 켜진 뒤에도 뭔가 알 수 없는 막연하고 스산한 슬픔이 몰려와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아마 <장화, 홍련>을 만들 때 이런 영화를 만들려고 했나보다 하는 생각과 이 영화를 먼저 봤다면 <장화, 홍련>이 좀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름답고 처연한 시를 읽고 난 뒤 영혼이 정갈해지는 느낌이랄까. 깊어가는 겨울, 마음이 스산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 <벌집의 정령>을 한국의 시네필들에게 소개하게 된 것을 올해 초 가장 의미있는 일로 삼고 싶다. 김지운/ 영화감독

베니스에서의 죽음 Death in Venice/루키노 비스콘티/ 1971년/ 130분/ 이탈리아, 프랑스

‘비스콘티 회고전’은 시네마테크의 숙원의 프로젝트였다. 그의 영화가 예술가와 그의 미학적 야심, 삶, 그리고 역사간의 매혹적인 충돌과 분리불가능성을 보여주기에 그렇다. 그는 예술, 삶, 죽음의 테마에 골몰했고 육십이 넘어서야 이 문제를 영화에서 다룬다. 하지만 그 순간 비스콘티는 고립감과 고독, 외로움에 시달린다. 프루스트, 말러, 만의 예술적, 음악적, 문학적 세계의 아들이었던 그는 여기서 자신이 속한 세계가 퇴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세기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근심, 죽어가는 세계의 꿈, 퇴락에 대한 탐구가 영상의 거대한 힘, 아니 세 번째 주인공이 되어버린 음악을 통해 감각적인 체험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영화! 영화는 원래 그런 것이다. 그 체험을 극장의 어둠 속에서 관객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석양의 갱들> A Fistful of Dynamite/세르지오 레오네/1971/157분/이탈리아

“혁명은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우아한 일이 아니다. 한 계급이 또 다른 계급을 전복시키려는 폭력적인 행동이다”라는 모택동의 어록으로 시작하는 <석양의 갱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오로지 돈과 배신, 죽음만을 생각하는 타락한 서부의 사나이들이 멕시코 혁명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그 속에서 인간의 가치를 묻는 레오네의 가장 낭만적인 ‘붉은 영화’이다. 30년 전 흑백 화면으로 주말의 명화에서 보았던 이 영화를 이탈리아 개봉 완전판으로 극장에서 친구들과 낄낄거리고,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영화음악을 흥얼흥얼 따라부르며 보고 싶었다. 오승욱/ 영화감독

<오프닝 나이트> Opening Night/존 카사베츠/1977/144분/미국

이창동 감독이 존 카사베츠의 영화 DVD를 몇개 줘서 봤는데, 자막없이 본 <얼굴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유분방하고 거칠며 유머가 있었다. 감독과 배우와 스탭 사이에 대단한 신뢰가 없었다면 그렇게 즉흥적이면서도 힘이 넘치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듯한 영화를 찍지 못했을 거다. <얼굴들>은 배우로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다. 그의 또다른 영화인 <오프닝 나이트>는 내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보고 싶어서 추천했다. 연극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 여배우의 이야기라고 들었는데, 연극 <슬픈 연극>을 연습 중인 내게는 유독 흥미로운 영화이기도 했다. 그리고 주연인 지나 롤랜즈는 언제나 인상적인 배우다. 게다가 그녀는 존 카사베츠의 아내였다고 한다. 다음엔 무슨 영화를 할지 고민하지 않고 카사베츠 영화에만 출연하면 되니 얼마나 마음이 편했을까? 그는 영화도 잘 만들고, 재미있게 만들기까지 하니 말이다. 문소리/ 영화배우·구술정리 김현정

<올 댓 재즈> All That Jazz/밥 포시/1979/123분/미국

뮤지컬 감독이자 안무가인 밥 포시의 대표작. 과로와 음주 등으로 몸을 망친 안무가 조 기디언은 약물에 기대어 살면서도 열정적으로 공연을 준비한다. 그러나 기획자는 보상금을 노려 공연을 무산시키려 하고….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사이, 조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돼간다. <올 댓 재즈>는 아마도 밥 포시의 자전적 이야기일 것이고, 화려한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과정과 추악한 거래를 들여다보는 영화일 것이다. 그럼에도 <올 댓 재즈>는 신음보다 탄성에 가까운 영화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듯한 카메라, 그 리듬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편집, 정교한 안무. 침대에 누운 조의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 속의 공연은 춤과 노래로 살다간 밥 포시의 작별인사로 손색이 없다. 황정민/ 영화배우·글 김현정

춘몽 유현목/ 1965년/ 70분/ 한국

치과를 찾은 남자는 대기실에 앉아 있던 한 여인에게 눈길을 준다. 진료실에서 그 여자는 갑자기 기절하고, 남자는 마취약에 취해 그녀와 의사와 자신이 등장하는 사도마조히즘적인 환상에 빠져든다. 일본 포르노그래피 <백일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춘몽>은 1960년대 한국영화라고 믿기 힘든 실험적인 영화다. 드라마는 거의 없고 상징이 이어지며 앨리스의 미로처럼 낯선 세계가 펼쳐진다. 삭제된 누드 장면 때문에 유현목 감독이 음화제조법으로 기소됐던 영화. 200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사운드 필름이 사라진 마지막 15분가량을 복원해 <춘몽>을 상영했다. 복원작업을 담은 김홍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나의 한국영화 에피소드6>가 함께 상영된다. 김홍준/ 영화감독·글 김현정

<충격의 복도> Shock Corridor/새뮤얼 풀러/1963/101분/미국

새뮤얼 풀러의 <빅 레드 원> 복원판 DVD의 서플에서 <충격의 복도> 클립을 봤다. 풀러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클립이었는데, 정말 쇼킹했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같은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찬욱 감독은 “<벤허> 열편을 줘도 <충격의 복도> 한편하고 안 바꾼다”고 말하곤 했다. <벤허>는 우리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였는데. 그래서 이번 기회에 꼭 필름으로 보고 싶었다. <충격의 복도>는 풀러의 저예산영화 중 하나여서 <짝패>를 찍고 있는 지금 내 상황과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짝패>는 한정된 예산을 돌파해야 하는 영화다. 빡빡한 일정 안에서 걸작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솜씨가 어떤 건지도 궁금했다. 나는 가끔 건방져질 때면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디아볼릭>이나 험프리 보가트의 영화들 같은 옛날 영화를 보곤 한다. 그런 영화를 보면 제자리를 찾게 되고 나 자신을 에너지로 충전할 수 있다. 류승완/ 영화감독·구술정리 김현정

<킬러> The Killers/돈 시겔/1964/92분/미국

<킬러>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일곱 페이지짜리 단편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원작이 너무 짧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주 창조적으로 각색해야 했고, 원작과는 정말 다른 영화가 되었다. 미국 최초의 TV용 장편영화인 <킬러>는 매우 폭력적이고 그 폭력이 날것이어서 방영 당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이 영화는 뛰어난 감독의 영화인 동시에 걸출한 배우들의 영화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한명인 리 마빈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킬러>는 그의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이고, 당대의 섹스심벌이었던 앤지 디킨슨도 매우 매력적으로 나온다. 특이한 배우는 로널드 레이건이다. 보통 착한 사람을 연기했던 레이건은 <킬러>에선 악당이지만, 너무 매력이 없어 공무원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건조한 관료 이미지가 본의 아니게 사악해 보이는 것이다. 리 마빈의 파트너인 클루 굴라거는 나도 처음 본 배우지만 <킬러>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박찬욱/ 영화감독·구술정리 김현정

<흩어진 꽃잎> Broken Blossoms/D.W. 그리피스/1919/90분/미국

나는 지난해 겨울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시네마데끄에서 백지수표를 받았다. ‘영화의 친구들’이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당신을 친구로 선정하니 거기에 당신의 추천작을 아무(!) 영화나 한편 써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거의 일백편이 넘는 영화 제목을 종이 위에 썼다. 그러나 슬프게도 시네마데끄는 나에게 단 세편만을 써서 보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영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시아영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그리고 내가 영화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마음속의 연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 세편을 써넣었다. 지금 결정된 영화 <흩어진 꽃잎>은 그 세 번째 영화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 영화를 연출한 그리피스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릴리안 기시에게 보내는 내 사랑의 마음이다. 나에게 첫 번째 ‘엽기적인 그녀’가 루이스 브룩스라면 나의 첫 번째 청순가련한 그녀는 릴리안 기시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스무살 그 여름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미소를 짓는 장면이 있는 영화, 너무나 슬퍼서 보고 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리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드는 영화,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 영화를 울지 않고 볼 자신이 있을까? 말하자면 이 영화는 내 방식의 ‘여친소’이다. 그러니 당신이 나를 믿으신다면, 그래서 가슴 저미는 저 마지막 30분을 견딜 자신이 있으면 시네마데끄에서 우리 함께 봅시다. 정성일/ 영화평론가

관객추천상영작

<남국재견> Good bye South, Good bye/허우샤오시엔/ 1996년/ 124분/ 대만

아시아 영화감독들의 정신적 스승이며, 서구 영화감독들의 경외의 대상인 허우샤오시엔이 <비정성시> <희몽인생> <호남호녀> 등 대만 근대사에 대한 성찰을 일단락짓고 시도한 새로운 실험. 그러나 허우샤오시엔의 대표작으로 손꼽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 원거리에서 혹은 과거에서 역사를 바라보던 정적인 태도를 버리고 당대 테크노의 맥박과 양아치가 탄 오토바이의 리듬 하나로도 대만 현대의 불안정한 공기를 잡아낸다. 중년을 넘긴 카오, 카오의 덜떨어진 동생 아비, 아비의 철없는 애인 마화가 기차를 타고 한 마을에 들어가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사업에 성공해 식구들을 데리고 상하이로 가겠다는 꿈에 젖어 있는 카오, 그러나 일은 점점 더 꼬이고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움직임에 관한, 삶에 관한, 허우샤오시엔식 에세이.

<제너럴> The General/버스터 키튼/ 1926년/ 84분/ 미국

결코 웃지 않았던 배우, 그러나 모두를 웃겼던 배우, 그래서 ‘위대한 무표정’이라 불렸던 20세기 초 희극배우이자 감독 버스터 키튼의 대표작. 배경은 남북전쟁. 기관사인 주인공 조니(역시 버스터 키튼이 맡고 있는)는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군대에 입대하려 하지만, 불합격하고 실의에 빠진다. 그때 북군이 ‘제너럴’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탈취하고, 조니의 애인까지 납치한다. 버스터 키튼식 ‘액션영화’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빼앗긴 열차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조니의 몸 하나로 버스터 키튼은 영화 한편을 지탱한다. 버스터 키튼은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펼친다. 컴퓨터그래픽 없이, 와이어 없이, 몸을 기계 삼아 위대한 리듬의 개그를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