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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영화제] ‘안성기, 나의 영화인생’ 포럼
2003-08-25

'편안한 미소의 대명사', '한국영화계의 영원한 보석', '영화배우들의 맏형'…

배우 안성기(53)를 표현하는 수많은 수식어 중 '국민배우'라는 말처럼 어울리는 호칭은 없을 듯하다. 1980년대 이후 영화사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명작들에는 항상 그의 이름이 걸려 있었고 그만큼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22일 개막한 제3회 광주국제영화제는 영화배우 안성기 특별전을 마련한다. 국내 배우가, 그것도 한참 활동하는 현역 연기자의 특별전이 영화제에 마련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 <바람 불어 좋은 날>, <깊고 푸른 밤>, <개그맨>, <칠수와 만수>, <하얀 전쟁>, <영원한 제국> 등 여섯 편이 영화제를 찾은 팬들을 만난다.

특별전 프로그램 상영에 앞선 23일 안성기는 광주시 동구 대인동 광주은행 본점 회의실에서 '안성기, 나의 영화인생'라는 제목의 시네포럼을 갖고 영화인생, 연기관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제작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1957년 일곱 살 나이에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그는 이후 10여년 동안 아역배우로 활동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77년 <병사와 아가씨들>로 연기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출연한 영화들이 약 70편. 거의 한해도 거르지 않고 영화에 출연했으며 현재도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에 출연하고 있다.

이현승 감독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은 패널로 참석한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임재철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60여 명의 영화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분위기에서 열렸다.

다음은 사회자와 패널의 질문에 대해 그가 밝힌 내용의 요약.

-배우로서 국내에서 첫 특별전을 갖는 소감은?

=10년 전 프랑스의 한 영화제에서 특별전을 연 뒤 두 번째 갖는 경험이다. 57년에 데뷔해 46년이 지났으니 끔찍할 만큼의 긴 시간이다. 앞으로도 여러 원로들이나 나보다 젊은 배우들의 영화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아역시절 기억을 들려달라.

=언제나 동시에 3~4작품에는 출연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그날 그날 무슨 영화를 촬영하는지도 몰랐을 정도다. 항상 졸렸고 낮잠 자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바빴다.

-성인이 된 후 다시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당시 막 공산화한 베트남어를 전공을 한 덕에 취직이 되지 않았다. 그때 취직이 됐으면 지금은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연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이었나.

=70년대를 거치면서 영화나 영화배우, 감독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다. 따라서 70년대 10여년간 만들어지지 못했던 영화들에는 되도록 출연하려고 했다. 영화적인 영화보다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고, 결과적으로 문제작이나 사회성 있는 영화를 선택하게 된 것 같다. 소시민적이고 어리숙한 모습이 당시 모든 것들을 바로 들이밀지 못하는 사회의 분위기에서 잘 통했던 것 같다.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하고있는 비결은?

=가정생활은 그냥 쉽게 잘 살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가정은 모든 힘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생활은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배우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아픔을 대변해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직업이다. 뭐로 남을 지에 대한 생각은 특별히 없다. 다 지나면 그만이고 현재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주는 배우 정도면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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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