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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용 식탁>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4]

1998년 이후 공포영화 흥행성적

2000년

가위 | 안병기 | 33만4364

해변으로 가다 | 김인수 | 8만4227

찍히면 죽는다 | 김기훈 | 3만130

하피 | 라호범 | 2만6591

공포택시 | 허승준 | 1만4651

2001년

소름 | 윤종찬 | 8만700

세이 예스 | 김성홍 | 5만5200

대학로에…있다 | 남기웅 | 2043

2002년

폰 | 안병기 | 76만5천

쓰리 | 김지운 외 | 7만3750

하얀방 | 임창재 | 7만2천

2003년

장화, 홍련 | 김지운 | 101만6983

<여고괴담> - 현실을 끌어들이다

공포영화를 테크닉의 산물로 이해하는 이런 경향은 할리우드의 예로 보면 당연해 보인다.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 아래 발전한 공포영화는 시점전환, 몽타주, 격렬한 사운드 등 다양한 영화적 트릭을 선보인 장르였고 이 장르의 대가들은 당대의 테크니션들이었다. <싸이코>와 <새>의 앨프리드 히치콕은 물론이거니와 스티븐 스필버그도 <죠스>를 비롯한 초기 영화에는 공포물이 많았다. 따라서 90년대 말 국내에서 장르영화에 관심을 가진 신인감독들이 등장하면서 공포물이 부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이전 세대가 갖추지 못한 테크닉을 강점으로 내세웠고 동시대 미국영화를 따라잡고자 노력했다. 묘하게도 이는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 성장하려면 블록버스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시기와 겹친다. 1998년 <퇴마록>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걸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공포영화의 하위장르인 오컬트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스펙터클과 공포를 결합시킨 이 시도는 ‘기술적 혁신과 드라마의 빈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구분됐던 상당수 영화가 비슷한 비판을 받았는데 상당수 공포물에서도 이런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2000년의 공포영화 5편은 기술적 혁신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여하튼 한국영화에서 공포물은 블록버스터와 마찬가지로 산업적, 기술적 진보와 연관된 장르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외화에 등장한 새로운 기법을 재빨리 수입해야 할 필요는 여기서 발생한다. <스크림>이 유행하면 슬래셔를, <링>이 나오면 사다코를 불러내는 즉각적 조치가 뒤따랐다. 그러나 2000년 슬래셔영화의 유행이 입증하듯 이는 완벽한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슬래셔영화는 부모세대의 청교도적 윤리와 10대 문화의 분방함이 충돌하는 장르였고 찰스 맨슨을 비롯한 엽기적 연쇄살인범이 스타가 되는 시대가 잉태한 자식이었다. 그런 문화적 맥락은 남겨두고 칼만 휘둘러댄다고 공포가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피를 흘리는 데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1998년의 흥행작 <여고괴담>은 이런 점에서 한국 공포영화가 개척할 또 다른 길을 보여줬다. 순제작비 6억5천만원을 들인 저예산영화로 기획된 <여고괴담>은 공포의 소재가 외화에 있는 게 아니라 현실에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일본에도 학교를 무대삼은 비슷한 괴담영화들이 있었지만 <여고괴담>이 일으킨 파장은 영화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검토하겠다는 해프닝을 벌일 만큼 <여고괴담>은 직접적으로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고괴담>의 사회비판적 성격은 1960년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연상시킨다. <하녀>는 생계를 위해 도시로 올라온 젊은 여자들이 부잣집의 하녀로 일하면서 불러오는 가정의 위기감에 주목한 작품이다. 김기영 감독은 <하녀>가 상영 중인 극장에서 “저년 죽여라”라고 외치는 아줌마 관객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를 실제적인 위협과 공포로 받아들인 탓인데 이 점은 한국 공포영화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보여준다. 국내에서 공포물은 구전된 귀신 이야기이건 외화에서 따온 것이건 장르의 유희에 탐닉해서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60년대 공포물이 대부분 치정과 질투의 드라마를 깔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귀신의 분장술이 아무리 바뀌어도 원귀는 원귀다. 구천을 떠도는 사연에는 반드시 이승에서 맺힌 한(恨)이 있다.

<장화, 홍련>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이처럼 현실에서 공포의 원천을 발견하는 전통은 외화에서 테크닉을 수입하는 유행과 거리가 있다. 공포물을 만든 감독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당신은 두 가지 다른 답을 들을 수 있다. 어떤 영화에서 어떤 장면이라고 말하는 쪽과 내가 겪은 어떤 상황이라고 말하는 쪽. 당연히 전자는 테크닉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역설적으로 두루 호평을 받았던 공포영화 두편, 1999년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와 2001년 <소름>의 감독들은 공포영화를 만든다는 자의식이 별로 없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10대의 성장영화이자 안타까운 로맨스를 담은 영화였고 <소름>은 무시무시한 운명에 빠져드는 비극이었다. 당연히 관객을 얼마나 무섭게 만드느냐는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즉각적인 공포를 연출하는 테크닉에 무감한 탓에 흥행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두 영화는 공포물이라는 장르가 작가의 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예다. 곧 개봉할 역시 이런 계보에 놓여 있다.

- 공포, 작가의 편에 서다

아마도 테크닉에 대한 집착과 작가적 비전, 영화에 대한 영화와 현실비판적 영화를 별개로 여기는 듯한 이런 구분이 무리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98년 이후 양산된 공포영화들이 이런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이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스펙터클이냐 드라마냐를 놓고 갈팡질팡했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펙터클과 드라마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블록버스터를 기대하듯 공포영화에서도 테크닉과 작가적 비전이 별개는 아니다. <장화,홍련>의 시도가 절반의 성공에 그쳤지만 의미있는 지점도 그것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나 나카다 히데오 같은 작가의 탄생을 기대할 만하다. 분명 공포물은 메이저 장르가 아니며 속성상 값싸게 찍어서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일차적 목표에 충실한 장르다. 공포소설이 잘 안 팔리고 잘 쓰여지지 않는 데서 알 수 있듯 국내의 문화적 저변도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이 가능성을 뜻하기도 한다. 코미디와 멜로드라마로 양분된 한국영화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미학을 선보이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5편의 공포영화를 맞이한 2003년은 그 갈림길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남동철 namdong@hani.co.kr

60년대의 한국 공포영화근대성과 전근대성의 다툼

한국영화의 황금기였던 60년대, 공포영화도 전성기를 맞았다. 영상원 교수 김소영씨는 <근대성의 유령들>이라는 책에서 “국가 근대성이 대낮을 밝히고 있는 와중에, 근대화 정책이 ‘현실’에서 혹독하게 말살해버린 여귀, 야수, 괴물, 영매, 무당으로 가득 찬 어두운 공포영화들이 극장을 밝혔다”며 불도저로 밀어내듯 없애버린 전근대의 흔적이 영화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말한다. 김기영의 <하녀>, 신상옥의 <천년호>, 이용민의 <살인마>, 이유섭의 <원녀> 등을 주요한 텍스트로 인용한 이 책은 60년대 한국 공포영화를 근대성과 전근대성의 다툼으로 특징짓는다. <하녀>의 공포가 근대화의 과정에서 위험에 처한 가부장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충분히 수긍할 만한 해석이다.

물론 원귀는 이때부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귀신은 관객을 놀라게 했고 여인의 한은 무덤에 묻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주로 주부 관객을 타깃으로 삼았던 당시 영화들은 치정과 질투가 얽힌 드라마를 배경으로 삼았다. <살인마>는 시어머니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원혼의 복수극이었고 <마의 계단>은 출세를 위해 애인을 버린 남자를 벌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월하의 공동묘지> 역시 첩의 음모에 희생된 정실부인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는 이야기. 반면 <원녀>나 <천년호>는 여성의 성적 욕망 자체를 무시무시한 것으로 그렸다. 이들 영화들은 유교적 질서를 회복하는 것으로 관객의 안도감을 자아냈지만 드라큘라의 심장에 못이 박히는 것을 확인하더라도 성애의 매혹을 잊지 못하게 되듯 당시로서 금기였던 여성의 성적 매력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녀> <충녀> <화녀> 등 김기영의 영화에서도 여자는 중산층 가정을 위협하는 괴물로 등장한다. 김소영 교수는 <이어도>를 예로 들며 김기영의 영화가 전근대와 근대, 수동적 여성성과 전복적인 여성성 사이에서 어느 한편을 들지 않으면서 “전근대에 대한 노스탤지어 혹은 근대에 대한 맹신에 빠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김기영이라는 작가를 평가하는 또 하나의 준거점을 제공하는 해석이다. 아무튼 이처럼 번성했던 60년대 공포영화는 한국영화가 몰락하던 70년대부터 차츰 사라졌고 90년대 중반을 지나서야 부활하게 됐다.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1]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2]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3]

▶ 그리고 한국 공포영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