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김우형, 황기석, 최영환- 차세대 촬영감독 트로이카의 충무로 변혁기
2002-08-16

카메라가 진화한다,충무로가 따라간다

시대가 변한다는 건 결국 사람들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한국영화의 키가 부쩍 자란 것도 젊고 새로운 감독과 프로듀서들이 대거 충무로에 진입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친 데 힘입은 것이다. 어디 감독과 프로듀서뿐이랴. 이들과 뜻을 같이하는 각 분야 스탭들의 면면 또한 어느새 푸르르고 싱싱해졌다. 그중에서도 촬영쪽의 변화는 실로 놀랍다. ‘혁명적’이라는 과격한 수사를 써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우선 팍팍하기 짝이 없던 도제시스템이 무너졌다. 제3조수, 흔히 쓰는 말로 ‘써드’에서 ‘쎄칸’까지 3∼4년, ‘쎄칸’에서 ‘훠스트’까지 또 그만큼, 그리고 촬영감독으로 데뷔하기까지 다시 몇년이 걸렸던 이 시스템이 허물어지면서 조수 기간은 짧아졌고, 아예 조수생활 없이 곧바로 카메라를 잡는 촬영감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새로운 촬영감독들은 ‘오야지’들에게서만 촬영을 배운 게 아니라, 정규교육기관과 유학 생활을 통해, 그리고 단편영화와 CF, 뮤직비디오 작업을 통해, 그리고 스스로의 부단한 실험과 꼼꼼한 정리를 통해 촬영의 지평을 넓혀왔다. 촬영감독의 나이는 젊어졌고, 숫자도 급속히 늘어났다. 이처럼 새로운 세대의 촬영감독이 순식간에 충무로 일선을 채우게 된 데는 새로운 감성을 가진 감독이 급작스레 출현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는 해보지 않았던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감독들의 영상을 소화하기에는 아무래도 정석을 강조하는, 따라서 때론 보수적이기도 한 기존 촬영감독보다는 의욕이 과잉에 가까운 젊은 촬영감독이 걸맞았다는 얘기다. 실제 삶과 같은 영화를 자유분방하게 찍기 원했던 장 뤽 고다르가 포토 저널리스트 출신의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를 만난 것이나 이미지와 영상이 강한 긴장감을 갖기 원했던 빔 벤더스가 빛을 조절하는 데 탁월한 식견을 가졌던 로비 뮐러와 결합했던 것과 비슷한 경우다. 여기에 감독들의 세계를 뒷받침하길 마다지 않았던 프로듀서들의 인식전환도 한몫했다. 예전 같으면 신인 감독에게는 노장 촬영감독을 붙여주곤 했지만, 이젠 감독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다면 신인급 촬영감독이라도 과감히 기용하게 됐다. 젊은 촬영감독, 젊은 영상의 등장 이들의 출현은 한국영화의 기술적, 예술적 한계치를 끌어올리려는 의욕과 용기가 담긴 영상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물론 그러한 의욕과 용기를 가진 연출자와 프로듀서가 그들 옆에 있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젊은 촬영감독들 스스로 자신감과 구체적 실행방도를 갖지 않았던들 이같은 영상이 현실화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이들 대부분 DP시스템(촬영감독이 카메라의 움직임과 위치, 렌즈 선택과 프레이밍뿐 아니라 노출과 조명, 색상까지 책임지는 서구적 촬영 개념)에 대한 소신이 있다보니, 조명과의 팀워크도 원활해져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최근 한국영화의 업그레이드를 논의할 때 기술, 그중에서도 시각적인 측면에서의 진보 중 상당수는 새로운 촬영감독들에 힘입은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이 시기에 기존 충무로 전통과 ‘인식론적 단절’을 이뤄낸 선구자격 촬영감독으로는 김형구, 홍경표, 김성복, 박현철, 김영철 감독 등을 꼽을 수 있다. 미국 AFI에서 수학한 뒤 <비트>에서 저속촬영과 스탭 프린팅을, <태양은 없다>에서 초고속촬영 등 고도의 테크닉을 보여줬던 김형구 감독은 <아름다운 시절>이나 <봄날은 간다>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서정적 영상에서도 달인임을 입증해왔다. 홍경표 감독은 <유령>에서 심해의 음험한 빛과 색을, <반칙왕>에서 극단적인 앵글과 조명 등을 선보이는 등 빛과 색의 마술을 선보였다. 또 <접속> <텔미썸딩> <공동경비구역 JSA> 등의 김성복 감독, <퇴마록> <후아유> 등의 박현철 감독, <강원도의 힘> <정사> <파이란> 등의 김영철 감독 등도 각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촬영감독들.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는 “이들의 출현 이후 충무로는 많이 바뀌었다. 이전까지 감에 의존하던 작업을 데이터화해 과학적으로 처리하니 자연 퀄리티가 좋아졌고, 스스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며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많이 해 표현 가능한 영역이 넓어졌다”고 말한다.이들이 닦아놓은 탄탄한 길은 후배들이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오! 수정> <오아시스>의 최영택, <플란다스의 개> <미술관 옆 동물원>의 조용규, <눈물> <정글쥬스>의 이두만, <로드무비>의 김재호, <버스, 정류장>의 박기웅, <거짓말> <해피엔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김우형, <고양이를 부탁해> <피도 눈물도 없이>의 최영환, <억수탕> <친구> <와니와 준하>의 황기석, <꽃섬>의 김명준, <질투는 나의 힘>의 박용수, <집으로…>의 윤홍식,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김영호 감독 등은 차세대 촬영감독으로 손꼽히는 인물들. 두려움 없는 실험이 발전을 낳는다 충무로가 이들 차세대 촬영감독들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하다. 나비픽처스의 조민환 대표는 “아직 실험성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신인급이라도 기본기가 탄탄해진 것은 사실이다. 조명이라든가 이런 데 대한 이해도 뛰어난 편이다”라고 평가한다. 김형구 촬영감독도 “예전에는 자기가 안 해본 작업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두려움이 있는 편이다. 차세대들은 기본적으로 이론적인 바탕이 있고 충분한 테스트 촬영을 거쳐서 그런지 자신감이 훨씬 있는 것 같다”며 “이들이 좀더 실험이나 장난을 많이 쳐 시각적인 측면에서 더 큰 발전이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이들 푸르고 젊은 촬영감독 중 김우형, 최영환, 황기석, 이 세 젊은 감독을 소개하는 의미는 이들이 일궈낸 성과를 ‘품평’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 유영길 촬영감독은 60살이 넘은 나이에야 “이제야 빛이 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니, 경력 5년 남짓한 이들 신예 촬영감독들이 자신들이 이룬 것을 대단치 않다할 때, 그건 과공이 아니다. 이 신예 감독 3인방은 아직 자신의 촬영세계를 확립하는 머나먼 여행길의 초입에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활동에서 이들이 보여준 작지만 또렷한 성취는, 다른 젊은 촬영감독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더 큰 성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들의 영화세계를 조명하는 일은 한국영화의 앞길을 어슴푸레하게나마 예시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각각 출발점과 지향점, 스타일과 장단점이 모두 다른 이들을 비교해보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으리라. 문석 ssoony@hani.co.kr<<< 이전 페이지기사처음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