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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른 문화, 다른 사고방식, 다른 삶에 관하여’, <플라워 킬링 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임수연 2023-10-19

마틴 스코세이지의 최근 필모그래피는 그가 평생 만들어온 백인 남자 중심의 영화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에 가깝다. <좋은 친구들> <카지노>의 갱스터들은 어느덧 노년이 되어 <아이리시맨>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고, 그들이 저질렀던 과오는 젊은 세대에 용서받지 못한다. 동명의 논픽션을 기반으로 한 <플라워 킬링 문>은 1920년대 오클라호마에서 벌어진 원주민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다. 인디언들의 마을에 유전이 터지면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원주민들과 이들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백인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플라워 킬링 문>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로버트 드니로 등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가 사랑했던 두 백인 남자배우가 조우하는 첫 영화로서도 의미 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명백히 오클라호마의 원주민 몰리 카일리를 연기한 릴리 글래드스턴이며 예상을 뒤엎는 전복이 중요한 작품이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몰리 카일리와 사랑에 빠지는 어니스트 버크하트를, 로버트 드니로는 인디언들의 부를 노리는 어니스트의 삼촌 윌리엄 헤일을 연기했다. 전세계 매체 기자들을 만나는 온라인 라운드테이블 현장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이번 프로젝트를 완성하며 거쳤던 고민을 소상히 들었다.

- 데이비드 그랜의 동명의 논픽션은 언제 처음 알게 됐나. 이 이야기를 연출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리시맨>을 할 때 매니저인 릭 숀이 원작 논픽션을 건네줬다. 처음 주목한 것은 이야기의 배경이 서부라는 점이다. 나는 언제나 미국 서부극을 사랑해왔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전통 서부영화는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를 기점으로 끝났고, 위대한 감독들이 만들었던 웨스턴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통해 내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서부극의 계보에 감히 내가 어떤 작품을 보탠다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다가 <플라워 킬링 문>의 스토리에 주목하면서 이 장르에 도전하게 됐다. <아이리시맨>을 찍던 당시 에릭 로그와 함께 <플라워 킬링 문>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FBI 수사관 톰 화이트가 연쇄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오클라호마에 들어온 것처럼, 우리 역시 외부자로서 원주민의 세계에 진입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밝히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끔찍한 비극은 그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담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다.

- 인디언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배경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 장 르누아르가 인도에서 만든 아름다운 영화, <더 리버>를 봤다. 그리고 뉴욕에 살 때 TV에서 인도의 거장 사티야지트 레이의 <길의 노래>를 영어로 더빙한 버전을 보았다. 내가 이 영화에서 접한 사람들은 다른 영화에서 주로 배경에 존재한 이들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른 문화, 다른 사고방식, 다른 삶에 대해 알게 됐다. 이후 영화는 나에게 다양한 세상을 열어줬다. 때문에 나는 늘 다른 문화권과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었다. 인간의 보편성은 다른 문화의 프리즘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플라워 킬링 문>은 거의 모든 원주민을 대표할 수 있는 오세이지족이 다른 문명과 충돌하는 이야기다. 토착민으로 보이는 이들은 어느 정도 식민지화됐고, 심지어 더 나쁜 경우에는 완전히 밀려난 채로 제거당한다. 오세이지족의 눈을 통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생존과 그들의 문화를 다루면 인간 본연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다.

사랑의 본질을 들여다볼 때

- 원작 논픽션이 FBI의 태동을 다룬다면, 영화는 몰리 카일리와 어니스트 버크하트의 러브 스토리에 집중한다.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플라워 킬링 문>의 많은 부분은 당시 오클라호마의 시스템과 관련이 깊고 지금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 당시 원주민들은 석유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계급적 우위에 서 있는 백인들로부터 통제당하고 자본을 착취당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비즈니스를 이해한다. 이들이 옳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정말 흥미를 느낀 부분은, 백인 남자들이 석유 때문에 원주민 여성과 결혼하고, 만약 아내가 죽으면 그들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리시맨>을 마무리할 때쯤 코로나19 팬데믹이 도래했고 모든 프로덕션이 중단됐다. 그때 디캐프리오와 나는 <플라워 킬링 문>의 캐릭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가 이 이야기의 심장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플라워 킬링 문>의 핵심은 몰리와 어니스트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에 오클라호마를 여러 번 방문해 오세이지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가는 시간을 가졌고, 몰리와 어니스트의 관계는 사실 러브 스토리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재판 내내 함께했고 심지어 조사국에서도 “아직도 그 남자와 함께 있느냐”며 놀랄 정도였다.

우리는 FBI에 집중했던 기존 시나리오를 엎고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그들의 사랑에 집중한다면, <플라워 킬링 문>은 오클라호마의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디캐프리오가 원래 논의했던 톰 화이트가 아닌 어니스트 역을 맡게 된 이유다. 그리고 어니스트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가, 혹은 그의 삼촌 윌리엄 헤일이 몰리의 죽음을 꾸민다는 망상에 빠져 있는가 질문했다. 몰리는 어니스트를 사랑했고, 어니스트 역시 몰리를 사랑했지만 어쩌면 어니스트도 몰리를 살해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인간성의 측면에서 이 이야기의 진정한 핵심이다.

-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로버트 드니로는 아마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일 것이다. 당신의 영화에서 두 배우가 함께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처음 로버트 드니로를 소개해줬다. 당시만 해도 서로가 감독이고 배우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후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를 함께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심리와 감정, 갈등과 같은 주제에 끌린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신뢰를 쌓게 됐다. <분노의 주먹>처럼 처음엔 의견이 충돌하더라도 상대를 설득해가는 과정도 경험했다. 그는 나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두려움과 허영심이 없고, 조명과 분장으로 아름답게 보이려 하지 않는 배우다. 드니로와 <택시 드라이버>를 찍을 당시 스튜디오가 영화의 방향을 결정했고 내겐 최종 편집권이 없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배우들도 스튜디오를 따랐을 것이다. 드니로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감독의 편에 서려고 했다. 내게 디캐프리오라는 배우를 처음 알려준 사람 역시 드니로였다. 두 사람이 영화 <디스 보이스 라이프>를 했을 때 디캐프리오가 정말 좋은 배우이기 때문에 나 역시 언젠가 함께 작업을 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디캐프리오와 인연이 잘 닿지 않다가 <갱스 오브 뉴욕>에서 처음 만났다. <에비에이터>를 하면서 비록 30여살의 나이 차가 있지만 우리는 두려움 없이 무엇이든 도전하고 탐험하고 한계를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이 서부극 장르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영화 속 윌리엄 헤일과 어니스트 버크하트의 관계는 실제 디캐프라오와 드니로의 그것과도 닮았다. 드니로는 디캐프리오에게 거의 멘토 같은 존재다.

- 이 영화에는 집이 폭발하고, 머리에 총을 맞고, 시체가 부패하는 묘사가 등장한다. 스크린에서 폭력을 보여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나.

폭력은 영화가 재현하지 않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비디오로, TV로, 아이폰으로 이 세상의 폭력을 목격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을 보면 모든 사건은 무대 밖에서 벌어지지만 무대 위에서는 다른 양식으로 재현되지 않나. 다른 시대 및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폭력을 행하거나 옆에서 구경하는 것을 즐길 때도 있지만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 본성의 일부이기도 하다. 폭력을 부인하기만 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우리는 폭력의 재현을 즐기지 말고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시네마라는 새로운 시도

- 지난 몇년간 영화를 만들면서 얻은 교훈이 있나. 이번 작품을 통해 시네마에 대해 새롭게 배운 것이 있다면.

배우기 위해서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무빙 이미지에 대한 열정과 카메라의 움직임, 컷, 고정된 롱테이크 같은 것들을 통해 영화의 모든 면을 탐구하는 것과 관련된다. 아무리 자료 조사를 하고 미리 계획을 세워도 영화라는 유기체가 어떤 성격을 지니게 될지 우리는 예상할 수 없다. 우리가 이야기를 어떻게 느끼는지,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시각적이고 구술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편집을 하거나 혹은 하지 않거나, 컷을 자르거나 혹은 자르지 않거나, 카메라를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보여준 카메라워크는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어떻게 찍고 편집할지 미리 정하고 예전에 했던 것을 반복하기보다는 스토리와 실제 로케이션, 캐릭터가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느끼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테면 <좋은 친구들>에서 코파카바나가 레스토랑에 입장할 때 보여준 롱테이크를 이후 다른 작품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다. <분노의 주먹>을 만들던 당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초심으로 돌아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코미디의 왕>을 찍었다.

- 최근 당신이 만든 영화들은 러닝타임 3시간30분을 훌쩍 넘기고 있다. 대중성을 위해 2시간짜리 영화를 다시 만들 생각은 없나.

러닝타임은 스토리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리시맨>이나 <플라워 킬링 문>은 무척 복잡한 이야기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개 방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러닝타임은 필요했다. 만약 2시간에 걸맞은 스토리를 고안해낸다면 그 길이에 맞춘 영화를 만들 것이고, 90분짜리 영화나 4시간짜리 영화도 찍을 수 있다. 집에서 5시간씩 TV시리즈를 보고, 3시간30분이 넘는 연극을 보기도 하는 시대다. 성숙한 관객들은 연극이 아무리 길어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왜 사람들이 극장에서 3시간30분짜리 영화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긴 영화도 계속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영화가 주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이런 종류의 영화야말로 극장에서 봐야 한다.

- 당신은 여전히 꾸준히 작품을 만들며 시네마와 호흡하는 감독이다. 창작자로서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호기심이 많고, 다양한 분야를 궁금해하며 살아왔다. 나는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과학을 좋아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젊은 작가와 나이 든 작가들을 새로이 발견하고, 고전영화든 새로운 영화든 내가 발견한 것을 젊은이들과 공유하며 그들을 흥분시키고 무언가를 얻어가게 하고 싶다. 언젠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영화 제작자라기보다는 선생에 가깝다.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엔 영화도 책도 그림도 음악도 춤도 건축도 있고, 우리는 기꺼이 매료될 수 있다. 내가 나이를 먹고 지쳐갈 때조차 5~6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다. <플라워 킬링 문>을 만들면서 <데이비드 요한슨:퍼스널리티 크라이시스>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사실 데이비드 요한슨이 소개해준 많은 곡들이 <플라워 킬링 문>에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음악의 핵심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로비 로버트슨이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캐나다의 모호크족 출신이기에 그 자신에게도 <플라워 킬링 문>은 무척 특별한 프로젝트였다. <플라워 킬링 문>을 만들면서 다른 토착민들의 음악과 이름, 움직임에 대해 배우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나는 이 영화의 모든 측면들, 이를테면 오세이지족의 이름, 문화, 장례식, 결혼식 등 모든 것을 재현하고 싶었다. 우리는 다른 문화를 배움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 수 있다.

- 극장영화의 위기를 논하는 시대다. 올해 <오펜하이머>가 슈퍼히어로영화보다 더 큰 수익을 올렸다. 이러한 현상이 할리우드 산업에 무엇을 시사한다고 생각하나.

나는 뉴욕에서 살고 있고 주류 할리우드와 멀어진 지 오래됐다. LA에 가면 몇몇 친구들 외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진다. 아직 두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바비>와 <오펜하이머>가 연달아 흥행한 것은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다고, ‘퍼펙트 스톰’이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요소가 적시에 모여들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다시 극장에 가게끔 만들었다. 한편 최근 독립영화는 지난 20년간 나온 작품들과 또 다른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독립영화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작은 스크린에서만 상영된다는 점 때문에 늘 화가 난다. <플라워 킬링 문>은 큰 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인데, 그냥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뿐 블록버스터를 만들겠다며 제작하지 않았다. 다만 이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큰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TV 앞에 앉아 5시간 동안 볼 수 있는 시리즈가 있고, 3시간30분 동안 상영되는 연극을 보러 가는 사람도 있지 않나. 연극을 존중하는 것처럼 영화도 존중해줬으면 한다. 극장에서 <플라워 킬링 문>을 보면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네?”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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