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엄마와 친구같이 지내는 여고생 민아(임수정)는 태어나서부터 오랜 병원 생활을 해야 했을 만큼 병약하지만 엄마 몰래 담배도 피우고 록음악을 즐겨듣는 당돌한 아이. 아랫집에 이사 온 사진 전공 대학생 영재(김래원)에게 라이터를 빌려준 계기로 친해지기 시작했던 것이 넉살좋은 영재가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치자 당황하면서도 싫지는 않다.
■ Review사랑영화의 세부 장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어쩌면 나이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10대와 20대 초·중반에 해당하는 연령대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영화산업의 관점에서 볼 때, 의외로 어려운 감이 있다. 그것은 오늘도 눈부신 청춘 스타들의 과잉 공급을 인프라로 질과 양, 형식과 소재 모든 면에서 혁명적인 실험과 진화를 거듭하는 TV드라마의 존재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는 TV가 닿을 수 없는 영역을 노리는 일종의 틈새 전략을 구사한다. 지난해부터 등장한 섹스코미디와 로맨틱코미디의 이종교배 양상은 그 결과물들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결과물들의 소득이 신통치 않았던 것은 사실 연기력이나 플롯에 구멍이 나서도, 감정조작을 노리는 억지스런 설정과 무리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 모든 영화적 반칙과 편법을 용인하고서라도 반드시 보여줘야 할 그 무엇, ‘사랑’을 정작 이 영화들이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10대와 20대의 연애담을 기축으로 한 영화가 더욱 힘든 것은, 이 세대의 사적 욕망과 감수성이 기본적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진행 중인(…ing) 이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와 설득력있는 사랑법(화학반응)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진행 중인(…ing) 사랑의 ‘동시대성’을 성찰해야 하는 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영화가 인터넷 소설이라는 젊은 피를 수혈하려고 애쓰고 <…ing>의 스탭 라인업이 기껏해야 스물아홉을 넘지 않는 이들로 채워진 것도 결코 아마 그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ing>는 그러나 그 제목과 달리 이러한 세대적 사랑의 ‘동시대성’에 주목하는 ‘현재진행형’ 스토리라기보다는 차라리 ‘현재완료진행’이거나 ‘과거완료진행’에 가까운 소품이다. 그것은 여주인공 민아에게 시한부 삶이라는 설정을 부여할 때부터 필연적인 것이다. 영화 속 연인인 민아와 영재는 이제 잊을 수 없는 ‘생애 가장 행복한 날들’을 기억 속에 담아두고 이야기의 자체 종료 타이머이자 카메라 셔터인 민아의 죽음과 함께 그 기억의 조각들을 ‘영원한 사랑’으로 인화하여 액자 속에 봉인할 참이다. 물론 사진 속 상황은 틀림없는 진행형(…ing)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쓰고 보면, 병약하고 여린 청순가련형 여주인공의 시한부 인생을 볼모로 ‘사랑’을 관객에게 설득하려 드는 신파 멜로의 억지가 떠오르겠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각색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28살의 신예 이언희 감독이 그리는 민아의 캐릭터는 압도적인 사전 설정이 결정하는 바가 많기는 해도 그렇게 평면적이지는 않다. 그것은 딸의 죽음을 지켜보는 엄마도 마찬가지라서 모녀는 “한번 크게 울고” 씩씩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남은 순간을 사랑하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드라마가 튀지 않게 각별히 공을 들인 절제의 미덕은 엄마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르는 딸과 엄마의 관계를 납득시키고 민아가 영재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도 유원지적 장치가 아닌 민아의 상처와 고립감을 대표하는 왼손을 매개로 차분히 풀어간다. <옥탑방 고양이>나 <장화, 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통해 각기 최고의 한해를 보낸 세 배우의 이미지가 좀처럼 가시지 않아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던 초반이 지나고 나면, 곧 작은 소품들에 온기를 불어넣고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사랑에 빠진 이의 시선을 체험케 하는 수법에 설득당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설득력 있는 화학반응도, ‘상처를 감싸 안는다’는 사랑의 정의도 챙겼으니 <…ing>는 세대에 대한 성찰이 아닌 드라마의 힘으로 우회하여 일단 ‘사랑’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영화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는 편이다. 저속촬영으로 눈부시게 빨리 움직이는 또래들 곁으로 가만히 앉은 민아가 있는 교실장면에서처럼, 영화 주인공에게 긴장을 집중시키기 위한 이 영화의 선택은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너무 과단성 있게 발라낸다.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우리와 같은 이들이라는 공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영재 친구들의 비중을 너무 축소한 나머지 좀더 현실적일 수도 있었던 영재의 캐릭터가 그저 넉살좋은 매력남이 돼버린 대목에서는 영화가 그저 세 사람만 존재하는, 지나치게 미니멀한 소품이 된 감마저 있다. 단조로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끌고 나가는 솜씨는 인정할 만하지만 드라마의 무게추를 옮길 수도 있었던 후반부 반전이 그냥 묻혀버린 부분은 사실 아쉽다기보다 너무 안전하게 가려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영화음악
기타프레이즈에 실린 20대 감성 코드여고생과 대학생의 사랑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영화 <…ing>가 여러모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적 감수성 코드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 인터넷을 무대로 ‘나는 너를 알고 있다’는 사랑의 고백, 그 정의를 보여준 영화 <후아유>가 연상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후아유>와 <…ing>의 공통분모라고 할 만한 것은? 찰랑거리면서 가볍게 반복되는 몽환적인 기타프레이즈에 실린 모던록풍의 스코어다.
이 두 영화의 영화음악을 담당한 사람은 영화음악 공동체 ‘복숭아’의 방준석이다. 방준석은 <후아유> 외에도 <YMCA야구단>과 <공동경비구역 JSA> <텔미썸딩> <꽃을 든 남자>의 영화음악을 담당하기도 했었는데, 유앤미블루라는 밴드에 있다가 96년 밴드의 두 번째 앨범 <Cry….our wanna be nation>에서 <그대 영혼에>라는 곡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삽입되면서 처음으로 영화음악과 연을 맺는다.
유앤미블루는 전반적으로 U2의 음악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재미동포 출신 두명의 모던록 듀오밴드였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고국으로 무작정 건너와 당시만 해도 척박한 인디신에서 무명으로 활동했던 이 동포 밴드의 고생스토리가 당시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시대>에 나왔었다는 것. 하지만 2집 앨범을 내고 결국 밴드는 해체하고 만다. 영화 <해안선> 음악에 참여하고 최근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의 <비상>을 불러 관심을 모은 바 있는 유앤미블루의 다른 멤버 이승렬이 <…ing>에서도 삽입곡 <기다림>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