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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사람] 빛을 조율하는 남자
김성훈 2012-10-06

마크 리 촬영감독

때로는 감독이나 배우의 코멘트보다 그들의 조력자가 궁금할 때가 있다. 내게는 허우샤오시엔 감독만큼이나 그의 오랜 파트너인 마크 리 촬영감독이 그랬다. <동년왕사>(1985)를 시작으로 <비정성시> <남국재견>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 <카페 뤼미에르> 등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을 촬영한 그다. 38개의 숏으로 130여분의 러닝타임을 채운 <해상화>를 보면서 인물 대부분이 등장하는 영화의 첫 시퀀스가 어떤방식으로 촬영됐는지, <밀레니엄 맘보>의 오프닝시퀀스를 보면서 밤 터널을 부유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현장에서는 어떠했는지 등 그의 촬영에 대해 묻고 싶은 건 한도 끝도 없었다. 그의 코멘터리가 포함된 DVD가 출시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테니까. 운좋게도 부산에서 실제로 만나본 그는 호방한 체구, 산적 같은 외모와 달리 무척 섬세한 사나이였다. 촬영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언제나 조명에 관한 대답을 꺼냈다. “빛은 세상의 모든 이미지를 존재하게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하는 일도 공간을 관찰하고, 빛을 찾는 것이다. 이야기를 결정하는 건 공간이다. 어떤 순서로 찍을 건지, 술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 건지 같은 문제는 이후에 생각하면 된다. 공간을 예민하게 관찰하다보니 마술같은 순간들도 많이 겪었다고. <카페 뤼미에르> 때 주인공 요코의 작은 방이 기억나는가. 원래 바람이 들어오는 방이 아닌데, 마크 리 촬영감독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자 바람이 불어왔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그때 찍은 장면만 바람이 분다”고. 그를 만난 뒤로 가끔씩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를 볼 때면 프레임 밖의 그가 어떤 위치에서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보고 있는지 상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