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깜박 눈을 떴을 때친구보다, 연인보다, 더 편안한 그가
내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 순간을 사랑합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여자
한가롭고도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 거미줄처럼 얽힌 전철이 지나다니는 동경..
대만 여행에서 막 돌아온 프리랜서 작가 요코는 타카자키의 부모님댁에 찾아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리고 며칠을 한가로이 보내다 동경으로 돌아온다. 아이의 아버지인 대만인 남자친구와는 결혼할 생각이 없고 그냥 미혼모가 되겠다는 요코에게 부모는 당황하고 몹시 염려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색하기만 하다.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남자
2대째 이어 고서점을 운영하는 하지메는 자료를 찾으러 서점을 자주 찾던 요코와 지금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지낸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갖가지 전철 주변의 소음을 녹음하는 취미를 지닌 철도 매니아 하지메를 위해 요코는 대만에서 사온 옛날 철도운전사의 회중시계를 선물한다. 그들은 이제 대만 출신의 일본 음악가 ‘장웬예’ 에 대해 함께 조사하고 그가 자주 찾던 동경의 옛 장소를 찾아다닌다. 취재 중 현기증을 느낀 요코는 하지메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고 요코를 좋아하던 하지메는 약간 동요하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옆에서 요코를 지켜볼 뿐이다.
새로운 생명의 잉태, 부모님의 걱정 속에 불안한 요코는 하지메의 조용하고 사려깊은 배려에 따뜻함을 느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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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s Commentmore
<카페 뤼미에르>를 만든다는 것이 제 자신이 커다란 장애를 짊어지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년 가까운 세월을 일본과 대만을 왕래하면서 일본인이 아닌 저의 눈을 통해서, 현재를 사는 일본인의 일상의 단편을 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진정으로 스타일리쉬하고 주도 면밀한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즈 와 저의 촬영 스타일은 전혀 다릅니다. 단, 오즈 감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그리면서 그 속에 사람들의 인정(人情)을 반영시키고 있는데 현재 살고 있는 장소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저의 작품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즈의 작품은 섬세한 디테일을 확대해서 보여줍니다.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미묘한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해 갑니다. 오즈는 옛날 좋은 시절을 그리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분으로 전쟁후의 일본의 가치관의 변화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대부분의 장면을 2번 정도 다시 찍었습니다만, 촬영을 위해 선택한 장소의 리듬이 시간과 함께 변화하고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저의 연출 스타일에 출연자 여러분이 다 맞춰 주셔서 여러분의 표정이나 동작에 집중할 수 있었던 점도 저한테는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으로 현실에 존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찍고 내면에 숨어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표면으로 끌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Hot Issue
오즈의 우주와 조우한 아시아 최고의 시네아스트, 허우 샤오시엔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거장들의 만남은 언제나 영화계의 커다란 이슈로 주목을 받는다. 이제까지 여러 작품 속에서 거장들의 흥미로운 만남은 자주 있었고 그 중 대부분은 동일한 주제 혹은 소재나 키워드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반면 한 거장이 또 다른 거장에게 영화를 만들어 선사한다는 것은 흔치 않을 것이다. 특히 자신이 영화적 스승으로 생각하는 이에게, 그리고 그 스승이 온 세계가 칭송하는 거장 오즈 야스지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즈의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독이라면, 오즈의 탄생 100주년에 기념하는 영화를 만드는 영광을 물리치기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탐나지만 쉽게 시도하기 힘든 작업을 한 이는 바로 현존하는 아시아 최고의 시네아스트 허우 샤오시엔이다.
일본의 시선, 일본인의 마음을 담아내는 미장센을 창조하였다고 격찬받는 오즈 야스지로에게 당당히 자신의 시선으로 오마주를 바친 아름다운 작업 <카페 뤼미에르>는 오즈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03년도에 성사되어 2004년 베니스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이슈를 몰고 왔으며 권위 있는 영화지‘빌리지 보이스’는 그 해 미국 내 개봉되지 않은 영화들 중 최고의 작품으로 이 영화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About Movie
허우 샤오시엔의 시선으로 새롭게 그린
21세기 <동경 이야기>
오즈 탄생 100주년에 기념한 오마주 영화라는 기획 문구에 따라 <카페 뤼미에르>를 본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흔히 오마주(homage) 라고 하면 주요 대사나 장면을 그대로 본떠 표현하는 것을 연상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허우 샤오시엔의 솜씨로 오즈의 스타일을 그대로 기막히게 빚어낸 오마주로서 <카페 뤼미에르>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왜냐하면 허우 샤오시엔이 오즈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나타내는 방법은 그 자신의 시선으로 오즈의 도시 동경을 바라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즈의 시대에서 몇 십년을 넘어 살아왔어도 여전히 동경에 사는 젊은이들은 새로운 삶을 꿈꾸고 조심스레 도전하며 부딪히고, 그리고 그의 부모들은 장성한 자식들을 함부로 휘젓지는 못하고 언제나 근심하고 지켜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21세기 동경의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즈의 것이 아닌 온전히 허우 샤오시엔의 것이다.
그는 오즈라는 영광스런 과거를 반드시 그대로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저 기념하기 위해 모사하는 것만이 허락된 액자 속 명화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고 윤색이 가능한,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가는 것이 예술가 허우 샤오시엔이 자신의 예술적 스승 오즈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헌사임을 <카페 뤼미에르>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커피 한잔 음미하는 시간만큼, 차 향기가 남기고 간 여운만큼,
소중히 기억하고픈 일상의 순간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인 Cafe Lumiere는 차분하게 가족과 친구, 연인 사이를 관계를 부드럽게 비춰주는 햇살과도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전하고 있다. 영화를 처음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의 이름을 연상하게 하는 것에서 허우 샤오시엔이 자신의 영화적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스승 오즈에게 바치는 헌사의 의미를 담음과 동시에 ‘빛’과 ‘투영’을 근본으로 하는 ‘영화’라는 매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하는 허우 샤오시엔의 자세가 담겨있다. 또한 그는 과거 오즈의 천사들이 살아온 공간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을 자신의 카메라로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珈琲時光 (가배시광)이라는 중국어 제목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재정비해서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기 위한 평온한 한 때’ 라는 뜻이다. 남들이 선뜻 가지 않으려는 미혼모라는 미지의 인생으로 새로운 걸음을 내디디려는 요코, 그런 딸이 걱정스럽기만 한 부모, 좋아하는 사람을 지켜볼 뿐인 하지메. 영화는 그들의 소중한 여름의 한 때를 정성스럽게 그리고 그들 모두가 그렇듯 조심조심 비춰나간다. 어느 시대나 변하지 않는 가족의 정이나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머뭇머뭇하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따뜻함으로 충만하게 한다. 그리고 제목이 시사하듯 이 영화를 보는 순간은 또 하나의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Casting Note
담백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히토토 요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매력, 아사노 타다노부
여주인공 요코는 데뷔곡 모라이 나키「もらい泣き」(남이 울면 나도 괜히 따라서 운다)로 인기를 얻어 작년의 신인음악상을 휩쓸었던 히토토 요가 맡았다. 캐스팅 때문에 일본에 온 허우 샤오시엔이 한눈에 보고 맘에 들어 발탁한 경우인데 영화에 처음 출연한 것이지만 그녀는 흔들리는 여성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담담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흔히 일본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다소 지나치게 상냥한 고음을 지닌 젊은 여성과 달리 더함도 덜함도 없는 담백한 음성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요코와 각별한 친구 사이이며 때론 연인처럼 돌봐주는 고서점 주인으로는 <자토이치>와 최근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로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활동무대를 넓혀가고 있고 국내에서 열성적인 팬 층을 확보한 아사노 타다노부가 등장한다. 그는 영화배우 외에도 뮤지션으로도 활동하며 음반을 출시했을 뿐 아니라 그림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전철이라는 자궁에 들어앉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아사노 자신이 직접 그린 것으로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각본을 정하지 않고 현장에서의 상상력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때로는 즉흥적인 연기가 요구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출연자들은 연기를 한다기보다 평소의 생활대로의 자연스런 연기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내었는데 배우 개인의 매력과 어우러진 연기는 실제 지금 이 순간 동경 어딘가를 걷고 숨쉬며 살아가는 인물들을 만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생생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