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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선으로 감상하기에 <러브 스토리>(감독 아서 힐러, 1970)는 신파적인 측면이 다분할 것이다. 경제적 배경이 다른 두 집안의 남녀가 가정을 꾸린 뒤 궁핍한 상황을 함께 이겨나가는 가운데, 돌파구를 찾아갈 무렵 아내에게 찾아온 병환과 그로 인한 쓸쓸한 결말. 이와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들을 꼽는다면 아마 짧은 순간에도 몇몇 영화와 드라마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보면 관객의 입장에서 이만큼이나 피로도가 높은 소재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감상은 영화 속 이야기나 분위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어떤 환경에서 관람했는지에 따라서도 달리 만들어지는 듯싶다. <러브 스토리>가 국내에서 개봉됐던 70년대 초반은 국내 영화보다 외화가 대세인 시기였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체감하기에 국내 영화와 외화는 서로 사뭇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외화의 인기가 월등히 높아 <벤허> <대부>와 같은 영
[내 인생의 영화] 첫 기억 - 류재림의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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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나 자신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부조리한 죽음의 상황은 무엇일까? 그 상황의 이유와 결과에 정말이지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어 허무하고 허탈하고 허깨비 같은 죽음. 멀쩡히 가게에서 파는 제품을 구입하여 쓴 결과로 사람이 죽고 성별이 살인의 이유가 되는, 이미 상상 따위 필요 없는 현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와 시인 자크 드뉘망이 말했듯 자연사란 없고 그래서 모든 죽음은 자연사이지만. 그래도 부득부득 더욱 부조리한 상황을 찾는다면 나는 결국 전쟁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 땅이 아직도 공식적으론 휴전 상태임을 고민하며 살지 않는다. 북의 사회주의 지옥과 남의 자본주의 지옥, 양쪽 모두 세습의 나라에서 각자의 입장으로 지옥을 버티느라 애써 전쟁까지 상상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 왜 하필 전쟁인가? 어쩌면 나는 그 상황을 피하지 못할 나 자신의 부조리함이 더 두려운 것인지 모른다. 동원령에 따라 정해진 집결지에 순순히 모일 나와 우리의 모습. 거절할 용기보다 더 큰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전쟁의 부조리함을 그린 영화들 <지옥의 영웅들> <고성을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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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덜덜, 캐리어 바퀴 구르는 소리가 익숙하다. 새삼스럽지만, 또 여행이다. 케이블과 종편이 지상파보다 유연한 편성을 이용해 출연 멤버를 바꾼 시즌제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간판 예능으로 삼은 지도 꽤 됐다. 하지만 여행의 고생담을 뽑아내기 위한 주요 설정이 지상파 국내여행 프로그램 시절에 머물러 있던 탓에 여기가 아닌 곳의 고생은 저기까지 가서 대체 왜? 라는 짜증을 낳기도 한다. 무리하게 경비를 제한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자고 해당 장소에서 제한되는 행동이 무시될 때도 있다. ‘할배’들이 취사가 금지된 호텔 객실에서 찌개를 끓여먹고, ‘청춘’들은 여럿이 앉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만 시켜 마시거나 공용 수영장에서 알몸 수영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 단둘만 있기엔 어색할 부자간 해외여행기. 별 기대 없이 시청한 tvN <아버지와 나>의 첫회는 쾌적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른바 민폐라고 부를 행동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초반이라 일곱 팀의 부자가 다 출연하진
[유선주의 TVIEW] <아버지와 나> 평범한 척하지 않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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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지구>의 마지막 장면. 머리에 심한 충격을 입고 코피를 줄줄 흘리는 유덕화가 우체통으로 웨딩숍 유리를 박살내고는, 오천련과 함께 각각 턱시도와 드레스를 맞춰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성 마거릿 성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만의 결혼식. 하지만 달콤한 순간도 잠시, 유덕화는 오천련을 이곳에 남겨두고는 복수를 위해 역시 오토바이를 타고 센트럴의 가스등 계단으로 떠난다. 지갑도 챙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유덕화를 따라나왔을 그녀를 심야에 택시도 잘 다니지 않는 곳에 남겨두고 떠났다는(-_-;)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애절하게 원봉영의 <천약유정>이 흘러나오는 그 장면은 <나의 소녀시대>에도 오토바이를 탄 왕대륙의 모습으로 패러디될 만큼 홍콩영화의 추억의 명장면이다.
“철없는 시절 꿈을 좇길 사랑했고, 단지 앞을 향해 날아가고 싶어 했지”라고 노래했던, 역시 유덕화의 노래 <망정수>(忘情水)는 또 어떤가. <영웅본색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나의 소년시대,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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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문구들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어 있는 ‘살려 달라’는 포스트잇. 그 하나하나가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생명에 위협을 느낀 그 많은 아찔한 순간들을 돌아보았고, 그게 나만의 경험이 아니었다는 확인에 절망적인 시간이었다. 지난 몇주간, 여성들은 맞았고(부산 동래구 폭행사건), 공식 행사를 중단당했으며(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 주최 ‘마이리틀여혐-여혐러에게 고하는 사이다 토크쇼’ 제지 사건), 집단 성폭행(브라질의 16살 소녀 성폭행 사건)을 당했다. 현실의 여자들이 크고 작은 고초를 당하는 동안, 영화 속 여자들은 성녀로 추앙되었다가 (배신감이라 여기는 감정을 못 이긴 남자들에 의해) 창녀가 되는 나락에 빠졌다. 돌아보면 상당수의 영화에서 아름다운 여성은 남성의 성장에 등장해 혼란을 가중시키는 어떤 이물질로 취급당하기 일쑤였고, 사춘기 소년들은 그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성장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강남역 살인’이라
[이화정의 다른 나라에서] 살기 위하여, 여행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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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여름이 왔다. 아직 안 왔나? 아무튼 왔다고 치자. 난 벌써 에어컨을 틀고 있다. 온도는 20도로 맞춰놨다. 여름이 오면 듣는 음악도 달라진다. 플레이리스트가 바뀐다. 요즘 가장 많이 재생하는 노래는 바로 토이의 <여름날>이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찾아보니 노래가 벌써 8년이나 되었다. 2008년에 난 뭐하고 있었지? 확실한 건 그때도 여자들의 엉덩이를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일단 이 노래는 노래 자체로도 훌륭하다.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든 기타 팝이다. 유희열과 신재평의 조합이 기대만큼의, 아니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내가 이 노래를 듣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노래에는 슬픈 사연이 있어… 는 아니고, 이 노래에는 모티브가 있다. 바로 만화 <H2>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노래라는 게 신의 한수인 것. <H2>는 고교야구만화를 가장한 청춘만화다. ‘여름’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테마이기도 하다. <H2>
[마감인간의 music] 청춘 링거 - 토이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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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뉴스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김종필씨를 만나고 안동 하회마을을 가는 등 대선행보를 시작했다는 기사가 즐비하다. 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 우간다를 방문하고 있다. 왜 하필 독재자가 수십년째 집권 중인 우간다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수교를 맺었고, 우간다가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 이해 정도가 아니라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든다. 4대악 근절에 1970년대에나 어울릴 ‘불량식품 근절’이 포함된 것을 본 이후로는 여간해서 놀라지 않는다. 모두 ‘애도의 정치’일 뿐이다.
다른 능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주어와 술어의 일치에 자주 어려움을 겪는 정치인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의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그것은 알다시피 아버지의 유산 덕분이며, 정확히 말하면 ‘갑자기 불명예스럽게 살해된 지도자를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사람들의 애틋한 감정’ 때문이다. 그 인간적인 감정은 수백만명의 표로 응고되어 정치적 자원이 되었다.
[조광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애도의 정치,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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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 배우(<수색역>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국화꽃 향기>(2008)를 처음 본 건 3~4년 전이었던 것 같다. 부상으로 오랫동안 해온 운동을 포기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던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의 권유로 다니게 된 모델 학원에서 연기 수업을 듣던 중 영화 <국화꽃 향기>를 만났다.
영화는 지하철 장면에서 시작한다. 몇번을 봐도, 볼 때마다 설레는 장면이다. 희재(장진영)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려 할 때 동전이 굴러가 인하(박해일)의 신발에 딱 걸리고, 인하가 그 동전을 줍고 동전의 주인인 희재가 동전을 돌려받고 지나가는 모습.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던 그 잔잔한 장면이 정말 좋았다. 그 장면에서 풋풋한 대학생을 연기한 박해일과 꾸밈없는 장진영에게 반하면서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됐다.
박해일이 연기했던 인하는 지고지순하고 순정적인 사랑을 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희재가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리고 희재가
[내 인생의 영화] <국화꽃 향기> 박해일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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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는 1992년 일본의 신건축 공모전 주제로 “스타일 없는 집”(House With No Style)을 제안했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주제의 이 공모전에서 요스케 후지키는 100개의 평면 카탈로그를 제안해 당선한다. 100개의 평면들 모두는 각각 지붕이나 화장실, 창문이 없는 등 어떤 ‘결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결여는 우리가 집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기본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생겨난 것들이다. 요스케 후지키는 지붕이 없는 것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만이 우리의 관습적인 생활방식을 흔들어서 스타일의 작은 차이가 아닌, 건축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삶의 형식이 만들어내는 억압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 <더 랍스터>(2015)를 보고 나는 루이스 브뉘엘의 <절멸의 천사>(1962)를 떠올렸다. 두 영화는 모두, 삶의 어떤 일반 원칙을 제거함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 <절멸의 천사&g
[윤웅원의 영화와 건축] <더 랍스터>를 통해 이 낯선 세계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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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7일부터 TV캐스트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72초 드라마 <오구실> 시즌2. 드라마라기보다는 만화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세를 탄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가 생각난다. 일본에서는 직업여성을 통칭하는 말로 묶여버린 O.L.(오피스 레이디의 약어)들의 이야기. 그녀의 책 제목 그대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20, 30대 미혼 여성들의 감정을 담담한 그림과 필체로 그려내는, 문고본 판형이 어울리는 만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고단한 몸을 전철과 버스에 기대며 직장과 집을 통근하는 수많은 O.L.들이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내레이션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드라마지만, 인디 뮤지션 커피소년의 내레이션은 발음이 부정확하고 어미 처리의 떨림도 거슬린다. 하지만 오구실의 상황에 맞는 사랑스러운 어설픔과 왠지 우리 옆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자그마한 따뜻함이 묘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킨다.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세심함, 현실 회사와 상황은 같지만
[김호상의 TVIEW] <오구실> 시즌2 7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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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분노하거나 궁지에 몰리면 괴력을 발휘한다고들 한다. 나는 3X년 살면서 그런 경우를 딱 한번 보았고, 딱 한번 들었다.
199X년 XX대학 인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입시 끝나고 3년 만에 처음으로 온갖 ‘경우의 수’를 조합하며 계산 결과를 도출하던(3년 내내 과외 대신 서빙만 했다, 강남 어머님 상대하느니 주정뱅이를♡) 나는 고민에 빠졌다. 참가비를 올리면 욕을 먹고 참가비를 내리면 적자를 면치 못할진대 전대 학생회로부터 물려받은 빚이 300하고도 몇 십만원, 그렇다면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스물두살 어린 나이에 거대한 가난 보따리를 짊어지고 산에 올라 숙소 사장을 만난 나는 사들고 온 치킨과 함께 마지막 카드를 제시했다, 방 네개만 빼주세요, 60명은 행사 끝나고 나서 강당에서 잘게요. 딜 성사, 플러스 마이너스 0원, 나 경영대 갈걸 그랬나봐, 아, 성적이 안 됐지. 하지만 인생의 본질은 배신이다.
잔금을 치르던 아침, 사장은 말했다, 27만원 더 내. 뭐라고요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초능력자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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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박찬욱 감독의 단편 <심판>(1999)을 다시 보았다.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굳이 지금의 박찬욱을 설명할 수 있는 진정한 출발이라고 부른다면, 직전에 만든 <심판>에서 지금의 박찬욱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엿보여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그는 <아가씨>에 대해 신년호인 1036호(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류승완, 나홍진 표지 촬영 및 좌담)와 창간 21주년 기념 1051호(박찬욱, 김상범, 류성희, 정서경, 오달수, 류승완 좌담)를 통해 거듭 ‘믿음’에 관한 영화라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심판> 또한 그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특히 <심판>의 배우 기주봉, 고인배는 죽은 여자의 시신에 얼굴까지 나란히 맞대어 제각각 자신의 딸이라고 주장하며 대립하는데, 그들은 <공동경비구역 JSA>에 각각 대립하는 남한군과 북한군으로 나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믿거나 말거나, 아가씨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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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스크린 도어가 열리자 백색 마스크 군단이 쏟아져나온다. 행여나 서로의 몸이 닿을세라 미묘하게 움찔거리면서. 누군가 밭은기침을 내면 그 주변인들의 미간에 주름살이 간다. 주의와 경계를 넘어선 어떤 적개. 옆칸에 탈 걸, 다음 기차를 기다릴 걸, 괜스레 집을 나와 이 난리를…. 수많은 가정형의 후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책한다. 그리고 두렵다. 어느새 자책은 화가 돼 분출된다. 불특정한 다수의 타인이 잠정적인 적이 돼버리는 건 순식간이다. 지하철, 공원, 식당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적개의 감정이 일상의 감정이 된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지 지난해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메르스가 몰고 온 일시적인 상황 속 감정만은 아니었을 거다. 부정확한 정보와 불확실한 조치는 불신과 불안으로 이어진다. 급기야 무작위적인 불행의 전의에 끝모를 적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02
그때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를 읽게 된 건 우연치고는
[정지혜의 숨은그림찾기] ‘인간적인’ 가능성은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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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접했을 때 미셸 공드리라는 감독이 누구인지 몰랐다. 어떻게 보게 되었나 기억나지 않지만, 짐 캐리가 그저 표정으로 웃기는 코미디 배우가 아니란 건 <트루먼 쇼>(1998)로 알고 있었다. 영화는 2004년에 개봉했고, 한국 개봉이 1년 정도 늦었으니 내가 본 건 2005년이었다. 당시 일기를 뒤적이니 ‘그해 본 최고의 영화 중 세 손가락에 든다’고 적혀 있었다. 지금보다 문화생활에 활발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이터널 선샤인>을 본 젊은이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이후 미셸 공드리의 팬이 되었다. 후속작 <수면의 과학>(2006)도 극장에서 무척 재미있게 봤는데, 이 영화 이후 미셸 공드리 자체에 주위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기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이 원고를 쓰기 전, 다른 글을 하나 정리하다가 그야말로 문득 《이터널 선샤인》 사운드트랙이 생각났다.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가 부른 O.S.T 두 번째 곡 &
[마감인간의 music] 이런 영화도 있구나 -《이터널 선샤인》 사운드트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