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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영화로 유명한 일본은 오랜 호러만화 강국이기도 하다. 일본 호러영화와 호러만화는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링> <주온> <착신아리> 등의 인기 높았던 일본 호러영화는 귀신의 존재를 현실화시켜 공포를 유발한다. 카메라 안에 잡힌 진짜 사람 옆에서 스멀스멀 다가오는 원령의 영상은 마치 실제인 듯 뇌리에 남는다. 각인된 영상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순간만이 아니라, 집에 가서 누웠을 때도 떠오르게 되어 있다. 영화 속 귀신이 남긴 공포는 시간이 지나도 서서히 되살아난다. 반면 <소용돌이> <드래곤 헤드> <학교 괴담> 등의 일본 호러만화에서 중요한 것은 귀신 자체가 아니다. 만화는 영화보다 모든 것이 빠르다. 스토리 전개도 그러하고, 읽는 이가 그림과 내용을 머리에 남기는 속도로 영화보다 빠르다. 속도가 빠르면 새겨지는 깊이도 얕고 잊혀지는 속도도 빠르다. 그리고 그림은 아무래도 영상만큼 현실감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일본 호러의 기수들 [1] -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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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탄생은 때로 한편의 영화, 한편의 드라마, 한장의 음반에서 이루어지지만, 최근에는 CF가 스타 탄생의 산실이 되고 있다. 극중 배역은 스타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제이고 보통 광고는 이런 스타의 이미지를 차용하지만, 역으로 광고가 스타의 이미지 형성에 기여하고 무명의 연기자를 일약 스타도 만들기도 한다.
욘사마의 미소, 코카콜라의 미소
일본 열도를 끓어오르게 한 욘사마 배용준의 낭만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오래전 광고에서 시작된 것이다. <겨울연가>를 제외하고 배용준이 부드러운 이미지를 보여준 드라마는 거의 없다. 이전 드라마에서의 배역은 대체로 반항적이거나 복수심에 불타거나 권위와 체계를 거부하는 인물이었다. 배용준의 부드러운 이미지는 1996년 그가 모델로 기용됐던 과일나라 CF와 LG그룹의 기업광고에서 만들어졌다. 워낙 광고는 행복하고 살 만한 세상을 보여
CF로 배우를 엿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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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을 불러일으키는 성공한 여자, 이영애
자이아파트 CF를 제작하는 실버불렛의 이진우 CD는 모델 이영애의 이미지를 ‘실체적 고급감’이라고 규정한다. 윤택한 표면적 이미지만 유통되는 모델과 달리 이영애의 이미지는 그녀가 배우로서 전문직 여성으로서 높은 성취를 이룬 인물이라는 ‘내용’의 뒷받침을 받으며 소비자들에게 호소한다는 뜻이다. 자이 광고에서 이영애는 “인생을 어느 정도 아는, 독립한 생활자인 독신 여성”으로 설정됐다. 이진우 CD는 <대장금> <친절한 금자씨> 등 극중에서 그녀가 분한 개별 캐릭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우로서 이영애가 쌓아올린 입지 자체라고 지적한다.
이영애가 소구층인 여성 소비자에게 심는 감정은 선망이다. 그리고 모델로서 소비자에게 발신하는 1차적 코드는 신뢰다. 전자, 아파트, 기업 PR 등 묵직한 품목의 광고 모델로서 이영애는, 남성으로 치면 한석규와 비슷한 좌표를 갖고 있다. 그녀가 모델로 활동해온 기능성 화장품 역시 미모
CF로 배우를 엿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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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초 필름을 지배하라
배우 8인을 중심으로 살펴본 CF 속 스타 이미지와 흡입력
CF와 배우의 관계에 대한 가장 파다한 소문은, CF가 배우의 사치스러운 부업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라는 질문에서 이 기사는 출발했다. CF는 물론 상업적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냉정하고 예민하다. 광고 대행사 컴온21의 이원흥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하 CD)는 “욕망의 이유를 따질 줄은 모르지만 욕망의 유형에는 민감하다”는 말로 광고의 습성을 요약한다. 다르게 말하면 TV CF는 스타와 장르를 고도로 증류해서 사용하는 15초 길이의 필름이다. 광고의 창작자들은 스타가 지닌 대중성의 핵심을 보존하면서 매번 새로운 타점(打點)을 모색하는 전위다. 따라서 배우를 모델로 기용한 CF는 지금 그가 대중적 감수성의 어떤 부위를 건드리는지 계산한 결과를 반영하는 배우 이미지의 최종 심급이기도 하다. CF와 배우에 관한 또 다른 소문은 CF가 연기력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
CF로 배우를 엿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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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두는 황 회장을 괴롭히던 현직 검사를 살해하고, 그 일로 황 회장의 신임을 얻는다. 황 회장의 재개발 사업을 돕게 되고, 또 민호를 통해 첫사랑 현주(이보영)와도 재회하는 등 병두의 삶에 볕이 드는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 현주는 병두의 극악함에 질리고, 재개발 사업 또한 독사파의 방해로 순탄치 않다. 결국 병두는 어머니와 두 동생들을 위협하기까지 하는 독사파에 린치를 당한다.
“내 영화의 액션은 스타일리시한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다. 날것이 주는 쾌감은 있을지 몰라도 근사한 합으로 액션이 이뤄져 있지 않다.” 유하 감독은 액션보다 드라마를 중요시한다. 액션은 부차적이고 기능적인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어 <비열한 거리> 또한 ‘돋보이는’ 액션보다 ‘묻어나는’ 액션에 중점을 둔 영화다. 최선중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유하 감독의 액션 연출은 박노식, 장동휘 등이 출연한 1960, 70년대 ‘짠짠바라’(액션 스타들이 대결을 앞두고 맞서면 어김없이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액션노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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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분류할 순 없다. 액션, 그 자체의 쾌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 또한 촬영 중에 “이 영화 속 모든 액션은 드라마에 복무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부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그러했듯이, <비열한 거리>에서도 유하 감독은 액션보다 감정의 흐름을 우선했다고 한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온 최선중 프로듀서는 “평소 좋아하는 무협영화를 만든다면 또 모르겠지만”이라면서, “그의 영화에는 액션을 위한 수사가 없다. 그가 취하는 액션은 철저하게 드라마에 복속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배우들에게 멋있는 발차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개각도 촬영은 물론이고 심지어 흔한 고속촬영도 좀처럼 안 한다. 촬영 때 합이 맞지 않아서 ‘삑사리’가 나더라도 그게 진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한다. <비열한 거리>를 액션영화라고 부를 순 없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액션노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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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 충동의 예술관 보여주는 김기덕의 작품세계
김기덕 감독에 관한 오해가 있다. 그는 아마 최근 몇년간 상을 많이 받은 감독 중 한명일 것이다. 그런데 수상 경력은 관객의 머릿속에서 작품을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으면서 일종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김기덕 감독의 어떤 작품도 본성상 완결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의 영화 전편은 손에 손을 맞잡고 추는 길들여지지 않은 춤의 하나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이를테면 각각의 작품은 솟구쳐 오르면서, 그 속에서 다른 작품들을 이끄는 손에 손을 잡고 맞물려 있다.
동일한 주제와 장면이 맞물려 연결되는 작품들
주제들을 열거하고, 똑같은 장면들을 재현하고, 삭제하고, 지우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예를 들어 <해안선>은 여러 면에서 <수취인불명>의 연결선상에 있다. 이 작품들은 6·25 전쟁과 군대의 토대에 관한 반자전적인 닮음꼴 2부작을 구성한다. 무언가에 쫓기고, 미쳐버린 미
김기덕과 <시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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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진 틈새 위에 존재하는 김기덕의 작품세계
“김기덕 시스템”은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김기덕은 이렇게 대답한다. “시스템 같은 것은 없다. 나는 물이다… 나는 단지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김기덕 영화의 힘은 특유의 내러티브와 그것을 이미지화하는 회화적 “물방울”에 있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이름과 얼굴은 바뀌지만,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다. ‘김기덕 워터 시스템’(김기덕이 “나는 물”이라고 말한 것에 빗대어 “물방울”과 “water system”이라는 표현을 썼다)은 테마적인, 그리고 시각적인 두개의 층으로 짜여진 조직이다. 첫 번째 층은 김기덕 영화의 이야기와 인물을 형상화하는 혼돈스러운 배경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몇개의 강력한 핵심들은 언제나 변증법적이고 상호 대립하는 두 요소들간의 관계로 쪼개어진다. 그의 영화세계는 많은 방들- 수많은 프레임들이 영화를 채우듯 각각 수많은 그림들로 가득 찬-로 구성된 하나의 회화적 집합체이다.
성적 행위와 폭력으로
김기덕과 <시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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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열세 번째 영화 <시간>의 최초 시사회가 지난 5월25일 <씨네21>과 KT&G 공동 주최로 열렸다. <시간>의 개봉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영화를 개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씨네21>은 개봉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시간>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미리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김기덕 영화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해외 필자들의 소중한 글을 같이 실었다. 한국영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피력하고 있는 프랑스 영화잡지 <포지티프> 기자인 아드리앙 공보의 글과 이탈리아의 영화평론가 안드레아 벨라비타의 글이 그것이다. 두 필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각각 자국어로 김기덕 감독에 관한 책을 낸 저자들이다(유럽에서 한 한국감독에 관한 책이 두 권씩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검은 화면에 두번 연거푸 쓰인 <시간>이라는 제목이 뜬다. 마치 찌그러진 데칼코마니인 양 양편으
김기덕과 <시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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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가 끝난 것을 알았던 것일까.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두번 받았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80)이, 지난 5월30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다. 이번 칸영화제에서는 켄 로치 감독이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거장의 건재함을 알렸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죽음은 일본영화의 한 시대가 막이 내렸음을 알린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 일본영화의 거장을 꼽는다면 가장 먼저 오시마 나기사와 이마무라 쇼헤이가 떠오른다. 오시마 나기사는 성과 정치의 최전선에서 투쟁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인간의 생명력 그 자체를 탐구하며, 일본영화의 거친 60년대를 대표했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와 오시마 나기사는 각자 일본이라고 하는 사회 혹은 세계의 근원을 치열하게 파고들었던 문제적 감독이었다. 두 감독은 9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놓았지만, 오시마 나기사는 1999년 <고하토>를 연출한 뒤 건강문제로 활동중단 상태였다. 21세기
추모, 이마무라 쇼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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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
혁명은 부족하나 너무 화사한
5월24일에 있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상영은 야유와 박수소리의 불협화음으로 요란했다. 한편 5월26일자 <필름 프랑세>와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는 그때까지 상영된 그 어떤 영화들에 주어진 것보다(게다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의 영화에 쏟아진 것보다) 많은 최고점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쏟아졌다. 평점은 최고가 아니었지만 최고점을 준 사람은 가장 많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닥난 국고, 무의미한 해외에서의 전쟁, 극심한 가난 등으로 성난 군중에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한국에는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로 알려진 바로 그 말)를 했다는 일화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사치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이었던 민중 봉기의 합당한 대의명분하에서 참수형을 당한 프랑스의 왕비였다. 영화는 프랑스 역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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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요정이 함께하는 슬픈 연민의 영화
아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부모가 살해당하고 집이 무너지고 친구가 사라지는데도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그저 살아남아야만 한다. 옛날이야기로 시작되는 <판의 미로>는 잔인하고 거대한 세상의 한복판에 던져진 그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을 견디었는지 기억해주는 영화다. 겁먹지 않고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린아이. 2001년 <악마의 등뼈>에서 죄없이 죽은 소년과 보호받지 못하는 고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영화의 “거울 이미지이자 쌍동이 같은” <판의 미로>에서도 차가운 돌바닥에 누운 소녀를 위해 서글픈 자장가를 불러준다.
<판의 미로>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이 배경이었던 <악마의 등뼈>와 비슷한 시대의 이야기다. 1944년 스페인, 몇몇 게릴라들은 내전이 끝났는데도 산속에 숨어 독재자 프랑코 정권에 저항하고 있다. 오펠리아는 어머니와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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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회 칸영화제가 5월28일 막을 내렸다. 개막작 <다빈치 코드>로 불길하게 시작했던 칸영화제는 유럽의 거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켄 로치, 아키 카우리스마키, 난니 모레티의 영화를 중반 이전에 공개하고도 약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고른 호평을 받았던 켄 로치의 <보리를 흔드는 바람>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많은 이들이 그럴 바엔 켄 로치의 이전 영화들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걸작이 없는 가운데 최대한 공감을 얻으려 애쓴 것처럼 보이는 칸영화제를 되돌아보고,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칸영화제의 취향을 넓혀주었다고 할 만한 수작 세편을 소개한다. 어둡고 아름다운 지하 미궁을 창조한 판타지영화 <판의 미로>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떼어놓고 탐구하여 찬반 격론에 휩싸인 <마리 앙투아네트>, 정치영화의 선동성과 탈옥영화의 긴장감을 함께 지닌 <부에노스아이레스 1977>이 그것이다. 축제는
제59회 칸영화제 총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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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은 일을 하려면 철저히 한다는 주의다. 다른 존재로 둔갑할라치면 아예 성문, 지문, 망막까지 복사하고 무술, 총검술, 컴퓨터 정보처리 기술도 완벽하다. 요컨대 007보다 유능하고 본드걸보다 섹시하니 인간 스파이들이 비공개 팬카페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돌 만도 하다. 그러나 누구의 모습을 훔치더라도 미스틱은 미스틱이다. 미스틱은 타인의 외모는 그대로 베껴내지만 능력은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미스틱을 정의하는 것은 오직 변신 능력 자체다. 미스틱도 매그니토처럼 오래전 인간들에게 혹독한 짓을 당한 모양이지만 과거에 대해 입을 여는 법이 없다. 과거를 꽤나 찾아해매는 울버린을 상당히 비웃는 눈치다. (※비록 냉소의 형식으로라도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 그녀로서는 특기할 만하다.)
솔직히 미스틱은 내 도움이 필요없다. 그녀만큼 자아정체감이 확실한 돌연변이는 본 적이 없으니까. 오래전,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나이트크롤러가 미스틱에게 “누구든지 다른 사람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왜
<엑스맨> 카운슬러의 임상 노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