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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주먹>의 드라마를 탄탄하게 해주는 구심점은 결국 액션이다. 철없던 고교 시절의 막싸움의 판타지와 성인이 된 전설의 싸움꾼들의 이종격투기의 긴박감을 모두 표현해야 했다. 시나리오책의 절반을 차지하던 액션장면을 현실화한 것은 정두홍(위 오른쪽) 무술감독과 그와 함께한 강영묵 무술감독의 몫이었다. 강영묵 감독이 촬영 전 액션스쿨에서부터 배우들을 단련시키고 합을 만들어냈다면, 정두홍 감독은 연출의 자리에서 이렇게 훈련된 배우들을 촬영이라는 실전에 적용시키고 화면에 담아내는 역할을 했다.
-액션 비중이 큰 만큼 더없이 욕심나는 작품이었겠다.
=정두홍_오히려 그 반대였다. 기존의 건달들이 나오는 작품은 더이상 안 하고 싶더라. 마침 다른 작품의 촬영과도 시기가 겹쳤었다. 그런데 한번은 술자리에서 한 배우가, 왜 배우들은 아프게 맞는데도 화면에선 그게 표현이 안되냐라는 말을 하더라. 그는 그냥 툭 던진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고통스럽더라. 그 말이 일종의 트라우마
아프냐,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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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옆에서 찍어줘.” 3월27일 언론시사 이후, 거의 매일 술과 문자 메시지의 나날을 보냈다는 강우석 감독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입 주위에 두드러기가 났다며 애써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강우석이 돌아왔다’, ‘강우석의 힘을 느꼈다’는 문자가 가득 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멈출 줄 몰랐다.
-원작 웹툰 <전설의 주먹>을 어떻게 바꾸고자 했나.
=케이블TV의 ‘전설대전’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설정을 두고 장민석 작가와 얘기를 나누길, 전면적으로 바꾸고자 했다. 원작은 전반적으로 표현이나 전개가 좋은데 너무 무겁고, 그들이 너무 ‘루저’처럼 묘사된다. 관객이 즐길 만한 대중영화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덕규가 일하는 곳도 소박한 동네 국숫집으로 하고, 과거 돈 많던 내 짝꿍이 이제는 중년의 재벌이 되어 있다는 설정도 현실감있게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어디서나 접할 법한 평범한 가장들의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다.
-153분이
강우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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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의 영화는 현실의 시공간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한다. 종종 일차원적이다, 단순과격하다는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영화 자체로 그렇다기보다 그의 언어나 문법이 그야말로 ‘직접적’이기 때문에 마치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시작부터 거추장한 수사를 달지 않는다. 그저 관망하는 것 같은 매끄러운 설정숏 하나 없이 경찰서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나이트클럽을 휘젓는 식이다. 그렇게 강우석의 영화는 ‘사건’과 ‘세태’를 다룰 때 투박하지만 절묘한 기승전결을 이룬다.
<전설의 주먹>은 그가 <이끼>(2010)와 <글러브>(2011) 등 그동안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왔음에도(예정대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전신인 <나는 조선의 왕이다>를 연출했다면 그 1년의 공백도 없었을) 그가 마치 굉장히 오랜만에 귀환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강우석이 돌아왔다!’는 문구가 굉장히 자연스레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뭘까. 말하자면
승부사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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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이 돌아왔다. 더 나이 먹고 철든 <공공의 적>의 ‘강철중’이 <실미도> 같은 링 위에 올라 ‘아버지의 이름으로’ 싸운다. <전설의 주먹>이 반가운 것은 그가 최근작 <이끼>와 <글러브>를 지나 다시 치열한 현실의 무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격투기나 액션 그 이상의 인간적 감정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강우석 감독과 함께, 영화에 거의 ‘제2감독’ 수준으로 참여한 서울액션스쿨(공동제공으로 참여했다)의 정두홍 무술감독을 만났다. 그리고 전설의 주먹들의 학창 시절을 연기한 어린 배우들인 박정민, 구원, 박두식, 이정혁을 만났다(그들이 성장한 황정민, 유준상, 윤제문 스토리는 조금만 더 기다리시라∼). 프로레슬링 선수 겸 UFC 격투기 해설자이기도 한 김남훈 칼럼니스트의 글도 싣는다. 궁금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왕년의 전설의 주먹은 과연 진짜 전설의 주먹이었을까?
다시 한판 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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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2일 금요일 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20여명 남짓한 스탭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일산서구 소재 어느 조각가의 작업실 겸 거처에도 스산한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정적 속에 영화감독 동원(최덕문)이 크리스마스 선물 겸 신혼 집들이 선물을 사들고 미술감독 정수(박혁권)네를 찾았다. 두 남자는 곧 정수가 수일 밤을 지새우며 만든 여중생 시체(류혜린) 앞에 쪼그려 앉았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좀처럼 교차하는 법이 없었다.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이라도 된 듯 초조한 정수, 백열전구 아래 묘한 화색을 발하는 시체, 진짜 같은 시체에 흠칫하는 동원, 순둥이 남편의 뒤통수를 답답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선 정수의 아내 영선(신동미)까지. “오늘 오후에 처음 모였고 리허설도 처음 했다”는 네 배우 사이에는 벌써 끈끈한 호의가 감돌았다. 그들끼리 ‘살아 있는 시체의 밤’이라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기미를 감지한 박진성 감독은 모니터 뒤에서 “뭔가 함께 비밀 제의를 치르는 사람
시체에게도 담요를 덮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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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모텔일 거라 생각하고 갔는데 ‘매직하우스’라는 이름의 세트장이었다. 아뿔싸! 베드신을 공개한다는 제작진의 전갈을 제멋대로 오해한 것이다. 3월23일 경기도 남양주시 근처의 한 세트장에서 진행된 이상우 감독의 <비상구> 촬영현장. 색색의 조명이 칙칙한 모텔방 세트를 요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침대 위의 남자 우현(한주완)은 여자(조윤희)의 배꼽 아래 새겨진 화살표 모양의 문신을 핥고 있었다. 촌스러운 여관 조명 때문인지 그들의 벗은 몸은 유독 앙상해 보였고 앙상한 두 육체가 뒤섞이는 풍경은 그래서 더욱 쓸쓸해 보였다. 혹여 배우가 불편해할까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던 중, 이상우 감독이 “컷!”을 외친 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촬영 장소가 모텔일 거라 생각했다”는 어색한 농을 인사 대신 건넸다. 그는 웃으며 “섭외 가능한 모텔이 하나도 없었다. 세트를 짓는 바람에 제작비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들어갔다”고 아쉬움부터 털어놓았다.
<엄마는
벌거벗은 청춘들이 향하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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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숏!숏!’은 디지털 삼인삼색과 함께 전주국제영화제의 간판 메뉴. 매년 여러 명의 감독이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올해는 ‘소설, 영화와 만나다!’라는 주제로 이상우, 박진성, 박진석, 이진우 감독 등 총 세팀이 소설가 김영하의 단편소설 <비상구> <마지막 손님> <피뢰침>을 각각 단편영화로 찍는다. <씨네21>은 이중 이상우 감독의 <비상구>와 박진성, 박진석 형제 감독의 <THE BODY>의 촬영현장을 찾았다. <비상구>와 <THE BODY>(원작은 <마지막 손님>), 그리고 이진우 감독의 <번개와 춤을>(원작은 <피뢰침>) 세편은 4월25일부터 5월3일까지 열리는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다.
텍스트에서 태어난 이미지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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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권의 책은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목록이다. 그렇다고 매일 탐독하는 책들은 아니다. 들뢰즈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들은 의미를 찾는 것과는 무관한 하나의 기계에 가깝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 책들이 내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말하는 것일 터이다. 말하자면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던 책들이다.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영화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세르주 다네가 신문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듯, 할 수 있는 말은 아직까지 이런 식이다. “내일은 영화에 대한 생각이 보다 정리되는 날들이 올 것이다.” 영화에 대한 일종의 기후학적 사유가 있다. 미셸 세르의 <헤르메스>의 첫 구절이 그렇게 내게 다가왔는데 그건 구름을 말하는 것이었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폭풍우를 만난 것 같은 야단법석과 아우성들. 이른바 세계의 체계 바깥에서 커다란 무질서가 화려하게 다가왔다. 언제나 저기, 별이 총총한 바람층에 흩어진 구름
문장들로 이루어진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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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들을 욕먹을 걱정 없이 맘껏 훔쳐볼 때면 여자로 태어난 게 참 다행이다 싶다. 여성을 향한 시선 뒤에 숨은 욕망의 음험함에 대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관대한 해석을 내려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속편한 훔쳐보기는 스크린 앞이 최고다. 육체적 미학에 있어 이 시대의 정예부대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진열되어 있는 데다 영화란 본질적으로 훔쳐보기를 위한 매체가 아니던가? 어두운 곳에서 나를 노출시키지 않고 대상을 맘껏 응시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니. 하지만 여성 관객으로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아분열을 야기한다. 나도 그녀들을 즐겨 보지만 그녀들이 즐겨 보여지도록만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대중에 노출된 여성의 육체는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한편으로는 전복적이다. 신현규의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는 ‘근대’와 함께 도래한 조선의 대중사회에서 공공의 여성으로 소비되었던 ‘기생’들의 면면이 흥미롭게 기록되어 있다. 소리,
여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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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글이 어렵다. 그래서 멋있다. 책을 펴보자. 엄청난 용어들이 다발로 튀어나온다. 분자, 역능(puissance), 욕망하는 기계, 횡단, 분열, 유목민, 무엇보다 소수. 이 단어들은 소위 후기 구조주의라 일컬어지는 라캉, 푸코, 알튀세르, 베냐민, 라이히(그렇다. 성적 에너지가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미친 정신분석학자!)의 개념들을 확장해서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긴 개념이라고 한다. 그 어려운 책 <천개의 고원>으로 유명한 들뢰즈도 비슷한 단어들을 나열한다. 가타리는 그 책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어려워서 멋있는 것도 있지만, 단어들만 모아놓고 자세히 살펴보면 혁명적으로 보인다. 전체가 아니라 부분, 인간이 아니라 기계(유물론적 관점에서), 정주행이 아니라 횡단,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민, 다수가 아니라 소수. 뭔가 삐딱하다. 그렇다. 가타리가 들뢰즈와 함께 (혹은 따로) 주장하고 싶은 것은 미시정치학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거대한 전체로 사유하
오직 분열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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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늘도 심각한 영화 몇편을 보았으며, 그에 부응하듯 심각한 고민을 몇번 했으며, 그에 근거해 언젠가 배운 몹시도 현학적인 개념 몇개를 떠올려보았으며, 그를 인용할 수 있는, 남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생각할 수 없는, 최소한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생각 좀 해볼 수 있는, 전대미문의 시나리오와 이미지를 생각해냈다. 그래, 이게 성장이다… 흡사 단세포생물에서 고등생물로, 그 뇌의 주름이 더욱 촘촘해지고 신경계가 더 복잡해지듯이, 난 오늘 하루 성장한 것이다.
…라고 페이크. 성장은 신화였을지도 모른다는 공허감이 갑자기 밀려온다. 어려운 길로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좀더 복잡한 그림으로 이미지가 진화해나갈 때, 그리고 그와 함께 공허가 밀려오는… 이러한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마침 난 몇권의 만화책을 비치해두었다, 주도면밀한 복화술 같으니라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모두 다 빛을 발한다. 길창덕, 오원석, 박수동. 그래, 이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내가 돌아가봐야 할, 내 최초의 ‘영화’는 박
국딩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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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1786년 37살 때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떠났다기보다는 도피했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당시 괴테는 삶의 첫 번째 절정에 도달해 있었다. 바이마르공국의 존경받는 공직자이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유명 작가, 그리고 여성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던 사교계의 유명 남성이었다. 24시간도 모자랄 일정이 그의 하루를 다 채웠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당분간 놓고 싶었다. 시간의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간 곳이 바로 이탈리아이다.
지금도 유럽인들은 알프스만 넘어가면, 곧 이탈리아에 도착하면, 공기부터 다르다고 말한다. 자유롭다는 뜻이다. 과거에도 물론 그랬다. 괴테는 이탈리아의 북부 베로나에 도착한 뒤, 가르다 호수 주변 풍광의 장관에 넋을 잃었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밖에 나와 앉아 있는 태평한 사람들의 태도에 매혹됐다. ‘모범생’ 괴테는 도착하는 도시마다 미술관과 유적지들을 방문하여, 걸작들의 품위를 <이탈리아 기행>에
여행, 망각하고 탈주하고 회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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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작정하기로는 ‘문자가 중개해준 이미지와의 잊지 못할 첫 경험’이라는 면에서 나와 동세대의 유년 시절에 말 못할 실존적 고민과 죄의식을 함께 드리웠던 당대의 유명 도색 서적 한권을 추억하려 했지만 현재 구할 수 없는 책은 제외라는 조건이 붙어 그러지 못하게 되자 이상하게도 거의 정반대의 성격처럼 보이는 이 책이 문득 떠올랐다. 도색과 고독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은 <거대한 고독>이고 지은이는 프랑스 작가 프레데릭 파작이며 일종의 그림책이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지은이는 <고독의 발명가, 마틴 루터> <사랑의 슬픔, 아폴리네르> <유머, 제임스 조이스> 등도 펴냈다고 한다. 크고 깊은 추상적 문제를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의 세계를 면밀히 탐색하여 통찰해나가는 타입인가 보다.
<거대한 고독>에서는 두명의 작가 니체와 파베세와 이탈리아의 도시 토리노를 하나의 몸으로 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니체에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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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책이라. 이것은 사실 오답이 없는 질문이다. 스크린은 네모난 저수지라서, 웬만한 지류는 그리로 흘러 들어간다. 차라리 영화 보기에 일생 도움이 안되는 책을 묻는 편이 쉽다. 원작 없는 흥행영화를 급히 소설로 개작한 ‘시네마 문학’이 즉각 떠오른다. 이 책들은 대개 해당 영화를 보기 전에 읽으면 스포일러고,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읽으면 “원래 영화라서 다행이야”라고 한숨을 내쉴 확률이 70%를 웃돈다.
우선 연표와 지도책은 항상 긴요한 영화 참고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역시 지구라는 행성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분명 나를 극장으로 밀어가는 힘은 어린 시절 질릴 줄도 모르고 지구본을 하염없이 돌려보던 호기심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대학 진학 무렵 나는 역사를 전공으로 택했는데, 2, 3년이 흐른 뒤 내가 상상했던 역사학의 재미는 영화의 그것에 가깝다고 멋대로 결론짓고 영화 잡지에 이력서를 냈다. 그런데 최근 영화와 화법이 비슷한 역사서와 마주
시네마로 가는 백만 시점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