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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이 작은 행성 지구는 일종의 유배지와도 같다. 반경 몇 십 광년인지 몇 백 광년인지 아무튼 근처에 서로 외로움을 달래줄 다른 지적 생명체 하나 찾을 수 없는 이 외로운 별은 인간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어쩐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광경이긴 해도 으슬한 고독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주아주 오래된 우주미아의 후손. 외로움은 태곳적부터 유전되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공포에 가까운 외로움이 엄습하고, 여럿이 있으면 군중 속의 고독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고독의 뿔을 세운다. 누군가는 털어도 털어도 날아드는 먼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열렬하던 꿈과 희망과 사랑과 욕망이 모두 다 무감해지는 나이가 되어도 외로움은 더욱 깊어진다. 우주의 탄생이 빅뱅으로 시작되어 점차 식어가면서 별과 별들이 서로 멀어져가는 거대한 이별의 과정에 있듯이, 한 인간의 탄생도 뜨거운 결합에서 시작되어 점차 반복되는 결별들을 겪으며 점점 더 외로운 존재로 쪼
외로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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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노빠’다. 노무현 빠돌이? 설마. 말 많은 오빠는 딱 질색이다. 나는 노회찬 빠돌이다. 요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바짝 뜬 민주노동당 총선 선거대책본부장 노회찬 오빠 말이다. 이럴 수가. 유구한 내 빠돌이 인생에서 머리 빠진 오빠는 처음이다. 심지어 말도 많다. 그런데 입놀림 하나하나에 뻑간다. 용필 오빠 빠돌이를 하던 소녀 시절에도, 젝스키스 못잡아먹어 안달이던 HOT 빠순이 시절에도 오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렇게 자지러진 적은 없었다. 심지어 눈물까지 찔끔거리기는 궁상도 떤다.고백하건대 텔레비전 토론회 보는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절대 그런 지루한 인간들하고는 연애 안 할 거다, 다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당연히 안 할 거니까. <한밤의 TV연예> 할 시간에 을 보다니. 말이 되는가. 그랬던 내가, 토요일 저녁 채널을 돌리다 오빠에게 필이 꽂혀버렸다.그 운명의 순간은 이랬다. 4월3일 KBS <생방송 심야토론>에 나온 한나라당 의원이 정동영 의장
어느 ‘노빠’의 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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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어째서 신기한 물건인고 하면,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인 척하는 이미지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카메라니 영사기니 하는 특정한 기계 장치가 발명된 덕분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붙잡아서 놀아보려는 인간의 유희적 소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살았던 조선의 화가들은 그림 안에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긍재 김득신은 마루에서 담배를 태우던 남자가 말썽꾸러기 고양이를 뒤쫓느라 탕건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맨발로 우당탕탕 마루를 내려서는 순간을 포착했다. 단원 김홍도는 음률에 맞추어 춤추는 무동의 옷자락 속에, 혹은 기와를 얹느라 하늘로 던져올린 물체의 하강 속에 순간성을 기록했다. 혜원 신윤복의 경우 유곽 앞에서 힘자랑하는 왈패들의 싸움 뒤끝이나, 밤길에 남몰래 만난 연인들의 밀회장면, 악공의 연주에 맞추어 칼춤 추는 무희 등 육체의 움직임과 감정의 한순간을 특히 많이 그렸다.같은 시기의 다산
춤,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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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버전의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가 개발되면, 지금 쓰는 컴퓨터와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초현실적인, 컬러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의 안무를 보며, 당신은 현실적으로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장롱 속에는 한때 핸드폰이라 불리던, 그러나 이제 무전기라 여겨지는 모종의 통신장비가 누워 있다. 통화는 가능해도, 들고 다닐 순 없다. 뭐랄까, 초현실적인 인물 취급을 당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안 바꾸셨나요? 당신 참, 독종이군요.올해의 경향이란 것도 있다. 물론 <올해의 경향> 하고 나오는 게 아니고, 주로 웨이브나 트렌드, 패션, 모드, 코드, 코어, 스타일, 컨설팅, 붐, 줌, 업그레이드, 리뉴얼, 컬렉션, 템프테이션(하, 항복입니다!) 등의 조합으로 여성지의 면면을 장식한다. 새로운 패션을 지난해의 패션에 겹쳐 입을 순 없다. 컴퓨터를 버리듯, 즉 벗고, 새로 걸쳐야 한다. 지난해의 유행이 복고란 이름으로 다시 유행하기까지는, 대략 25년 정도가 소요된다. 살아 있으면, 다행이
오버, 더 레인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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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집요한 마조히즘에 주목하다“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 중학교 때 보던 ‘빨간 영어’ 1장에 나오는 아포리즘이다. 70년대 중학생 영어 참고서 시장을 제패한 기본영어는 매 장을 서양의 격언으로 시작했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등 주로 합리적이고 청교도 윤리에 충실한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운동 열심히 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였다. 나는 뭔가 이상했다. 이 정도 말이 왜 격언이 돼야 하지? 아는 것이 힘이라니! 초등학교 선생님이 무수히 하던 말 아닌가! 폼이 나려면 적어도 “모르는 게 약이다” 정도는 돼야 하지 않는가!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한참이나 한 뒤에야 나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이 장수하는 것은 그 말 때문이 아니라 말한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말의 힘은 ‘어떤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말’에 달려 있다는 것
‘피’ 한번 징하고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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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슈렉과 피오나는 많은 친구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난 <슈렉>.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다. 디즈니로 대표되는 왕자-공주 동화의 전형적인 공식들을 유쾌하게 뒤집었던 녹색 괴물의 동화는 후속편도 기발하게 이어진다. 일명 ‘아주 꽤나 먼곳(Far Far Away)’ 왕국을 다스리고 있는 피오나 공주의 부모님 해롤드 왕과 릴리안 왕비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딸 내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그런데 웬걸. 가녀리고 곱던 딸이 몸은 몇배로 불고 피부는 시퍼레져 있다. 사위랍시고 나타난 인물은 몸무게 700파운드에 위생관념 전혀 없고 수다쟁이 당나귀를 ‘베스트 프렌드’로 동반한 녹색 괴물이다. 이를 그대로 보고 있을 순 없다. 난데없는 녹색 부부의 출현으로 발칵 뒤집힌 ‘아주 꽤나 먼곳’ 왕국은 피오나와 슈렉을 떼놓기 위해 비상작전에 돌입한다.<슈렉2>는 속편이 으레 그렇듯 전편보다 캐릭터를 늘리고
슈렉, 신혼여행을 떠나다, 해외신작 <슈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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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석 감독의 <청풍명월>이 다음달 12일 개막하는 제57회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에 초청됐다. 최민수ㆍ조재현 주연의 영화 <청풍명월>(영어제목 Sword in the moon)은 조선시대 인조반정 시기 엘리트 무관 양성기관인 '청풍명월'을 배경으로 두 검객의 엇갈린 운명과 우정을 그린 영화.주목할 만한 시선은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부문으로 한국 영화로는 <물레야 물레야>(이두용),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배용균), <유리>(양윤호), <내 안에 우는 바람>(전수일), <강원도의 힘>, <오! 수정>(이상 홍상수)이 이 부문에서 상영된 바 있다.한편, 한국 단편 <날개>는 시네파운데이션(Cinefondation)에 진출했다. 이상의 소설 <날개>를 각색한 이 영화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중인 서해영
<청풍명월> 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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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의 심정으로 개봉을 기다려요"
굳이 주연과 조연배우를 따지기는 뭐하지만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조연의 몫이 큰 경우가 많다. <파이란>에서 양아치 경수가 없었다면 처절하게 무시당하는 주인공 강재가 없었을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부대원들에 웃음을 주던 병사 영만이 없었다면 영화는 건조한 전쟁영화가 됐을지 모른다.
23일 개봉하는 <라이어>를 본 관객들의 머리 속에는 배우 공형진(35)의 대표작이 하나가 더 추가가 될 듯하다. 무심코 던진 작은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은 주인공 만철(주진모)이 벌이는 거짓말의 성찬(盛饌)에 한몫 단단히 하는 단짝 친구 상구.
상구 역은 감독의 말을 빌리면 영화사 직원 모두가 만장일치로 공형진을 생각했을 정도로 그에게는 몸에 딱 맞는 옷처럼 보인다. 연기 '좀' 하는 배우인 것은 이미 짐작했다 하더라고 영화 속에서 공형진이 상구의 직업
[인터뷰] <라이어>의 공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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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컬러 95분감독 이만희 출연 김진규, 백일섭, 문숙제14회 대종상 우수작품상, 감독상, 촬영상음악상, 편집상, 신인상(문숙), 남우조연상(김진규)제25회 베를린영화제 출품이만희 감독의 유작 <삼포 가는 길>은 황석영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마흔넷이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만희는 이 영화 <삼포 가는 길>의 촬영을 끝낸 1975년, 녹음작업 도중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더더욱 애착이 간다.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 마지막 장면이 잘린 채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순서도 뒤바뀐 채로 대중에게 보여졌다. 다시 TV로 방영하기 위해 원판필름을 순서대로 맞추고, 잘린 마지막 장면도 복원했다. 비디오판의 아쉬움을 TV판을 통해 복원하시기 바란다.갈 곳 없이 공사판을 떠도는 죄수 출신 영달(백일섭)과 10년 만에 고향 삼포를 찾아가는 중년의 정씨(김진규), 그리고 술집 작부로 일하다 도망친 백화(문숙). 이 세명의 밑바닥 인생
한국 로드무비의 정수, <삼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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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l M for Murder 1954년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출연 그레이스 켈리EBS 4월25일(일) 오후 2시영화사상 유명한 살인장면들이 있다. <싸이코>에서의 욕실 살인은 이후 많은 다른 영화들에 인용되기도 했다. <다이얼 M을 돌려라>의 장면 역시 긴박감이 남다르다. 아내를 없애려는 한 남편이 있다. 그는 타인의 손을 빌려 아내의 살인극을 꾸민다. 문제는 아내를 살해하는 타이밍을 정하는 것. 남편이 집 밖에서 전화를 걸어 아내의 움직임을 끌어내면 청부살인자는 전화받는 그녀의 목을 뒤에서 졸라 죽인다. 완전범죄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상황은 꼬인다. 손에 쥔 가위로 아내가 청부살인자를 오히려 저승으로 보내고 만 것. 남편은 이 상황을 전화선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듣는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영화 줄거리를 알기도 전에 머릿속으로 영화 전체를 그려내는 히치콕의 방식은 나를 매혹시킨다. 그는 줄거리 자체의 구성보다는 세트, 분위기, 그리고 배경을 잘 활용할 줄
의외의 거실 살인극, <다이얼 M을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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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의 공중파 TV 영화 프로 4월 넷째주 (4.23.-4.25)4월23일(금)KBS1SBS밤 12시55분 새벽 1시5분<독립영화관><이도공간>4월24일(토)KBS2EBSMBC밤 10시40분밤 11시 밤 11시10분<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넬리와 아르노><황비홍>4월25일(일)EBSEBSKBS1SBSMBC오후 2시 밤 11시 10분밤 11시 20분밤 11시 45분밤 12시 10분<다이얼 M을 돌려라>한국영화특선 <삼포 가는 길><디트로이트 록시티><지 아이 제인><넬리와 아르노> Nelly Et Monsieur Arnaud 1995년감독 클로드 소테 출연 에마뉘엘 베아르EBS 4월24일(토) 밤 11시<금지된 사랑>을 만든 클로드 소테 감독작. 만남과 이별의 과정을
[주말TV] 장국영의 마지막 모습, <이도공간>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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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지난 4월5일 파리에서 열린 IFTC (International Council for Cinema,Television and Audiovisual Communication 국제 영화 TV 시청각커뮤니케이션회의) 총회에서 NETPAC(아시아영화 진행기구, 현 부집행위원장) 대표 자격으로 집행위원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IFTC는 유네스코와 공식적인 제휴관계에 있는(formal associate relations) NGO(비정부조직기구)로서, FIPRESCI(국제영화평론가협회)와 CF(프랑스 시네마테크)등 47개의 조직을 산하에 두고있으며, 금년 총회에서는 김 위원장을 포함 총1 5명의 집행위원이 선출되었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2005년까지 집행위원으로서 활동할 계획이다.
한편,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지난 19일 부산 영도에서 촬영된 프랑스 여류감독 클레어 드니의 신작인 <인트루더 The intruder>에 한국의 조선소 사장으로 출연했
김동호 위원장 IFTC 집행위원으로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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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경남 함양의 용추계곡에서 김하늘의 계곡 입수 씬을 마지막으로 <령>이 촬영을 마쳤다. 이날 촬영은 자신들의 장난으로 물에 빠진 지원(김하늘)을 신이, 전혜빈(가수 빈), 전희주가 각자 캐릭터에 맞게 표현하는 장면.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대생 지원(김하늘 분)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연이어 친구들의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 역시 죽음의 위협을 경험한다는 2004년 첫번째 공포 영화 <령>은 용추계곡을 마지막으로 지난 4개월간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을 거쳐 오는 6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령> 크랭크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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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온몸을 떨었고, 육신은 여기저기 찢겼으며, 혀는 말라 붙었는데,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린 피가 그나마 바싹 마른 입술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독일의 신비주의 작가이자 수녀였던 앤 캐서린 에머리히(1774-1824)가 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수난」은 예수가 죽음을 맞기 직전부터 부활 후까지의 모습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책이다.영화배우 겸 감독 멜 깁슨의 최근 개봉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신약의 네 복음서와 함께 이 책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멜 깁슨은 "에머리히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영화의 배경으로 활용"해 네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수난의 메시지를 영상으로 구현했다고 밝혔다.작가 에머리히는 자신이 환영을 통해서 목격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생애를 책에 그대로 옮겼다고 전한다. "성찬을 베푸신 다락방에서 열한 명의 제자와 함께 나오셨을 때 예수는 마음이 울적하였다. 그는 열한 제자를 이끌고
책으로 보는 예수의 수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