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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편집의 마술이라고도 불린다. 많은 감독들이 편집실에 배우가 들어오는 것을 통제한다. 그곳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최첨단 편집: 영화편집의 마술>이 그 비밀을 공개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편집의 역사에서부터 편집자들의 발전 과정, 그들과의 인터뷰 영상 등으로 구성된다. 100여분의 시간이 지나면, 편집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영화가 영화다워짐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영화 역사에 빛나는 편집이 잘된 영화들의 자료화면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영화편집실 습격사건, <최첨단 편집: 영화편집의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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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커플의 이별 이야기를 담은 <새드무비>. 영화의 내용보다는 많은 스타급 젊은 배우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더 기억에 남는 영화다.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DVD 타이틀은 한정판으로 발매되며, 권종관 감독을 비롯해 이들 배우들이(정우성은 빠졌다) 함께 참여하는 음성해설이 가장 눈길을 끈다. 그 밖에 ‘이별 이야기’란 이름의 프리 프로덕션, 제작 과정, 배우들과의 인터뷰, 감독 음성해설과 함께하는 삭제 장면 모음, 각종 홍보용 영상을 수록했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도 필요해, <새드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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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상 가장 눈부신 만남.’ <에로스>의 한국 개봉에 맞춰 준비된 홍보문구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만남은 이미 오래전에 여러 번 시도된 바 있으며, 예술영화가 대중에게 사랑받은 1960년대엔 수많은 작가들이 옴니버스영화에 다투어 참여하면서 옴니버스영화가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근래 몇년 동안 옴니버스영화가 여러 번 만들어지기도 했거니와 <에로스>에 이어 에르마노 올미, 켄 로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티켓>까지 등장한 상황은 잠시나마 과거의 화려한 시절이 재현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중 제목 그대로 ‘에로스’에 관한 영화인 <에로스>는 호모 에로티쿠스에 대한 경직되고 정밀한 탐구라기보다 시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에 가까운 소품이다. 무릇 에로스란 육체적이고 치명적이며 파괴적인 것이어서 아찔한 경험에 더 어울리는 것이고 보면, 그간 스타일리스트로 일가를 이룬 왕가위, 스티븐 소더버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에로스의 세
거장 3인의 세 가지 사랑 맛, <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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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지난해 <메이저 던디>의 개봉 40주년을 맞아 확장판이 공개됐다. 그 반향은 1990년대에 재발견된 <와일드 번치>의 그것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스튜디오에 의해 훼손됐던 영화가 본모습에 근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했다. 당시 페킨파의 작품에 대한 권한이 적었던 데다 주연을 맡은 찰턴 헤스턴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 현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험악했다고 전해지는데, 헤스턴이 캐릭터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면서 주인공의 성격이 모호해진 점은 오히려 <메이저 던디>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아파치족에 납치된 세 아이를 찾아 던디 소령이 일군의 병사를 이끌고 나선다는 이야기는 미국의 이상을 다룬 종래의 서부영화에 적합한 소재(실제로 존 포드의 <리오 그란데>는 동일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일진대 <메이저 던디>의 지향점은 그리 단순, 명쾌하지 않다.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 국경을 넘는 던
폭력의 피카소 샘 페킨파와의 조우, <메이저 던디 확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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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뉴욕>을 읽으니 추억 속 뉴욕이 말을 걸었다. 첫 방문이었음에도 모든 게 낯익었던 도시 뉴욕. 시선을 들어 어딜 보아도, 영화 속에서 본 건물, 뒷골목, 사람들을 둘러싼 공기가 나를 사로잡았던. ‘영화와 함께한 뉴욕에서의 408일’이라는 부제가 달린 <안녕 뉴욕>은 저자가 뉴욕에서 생활인으로 살면서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풀어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영화들을 통해 수십, 수백번 보았던 메트로폴리탄의 사람살이를 오랜 친구의 수다처럼 들려준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골목골목이, 뉴욕에서만 누릴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체험이 살갑게 다가온다.
<유령신부> 개봉을 앞두고 ‘팀 버튼과의 만남’ 행사에 참여한 일화나 클레어 데인즈, 에단 호크 같은 배우를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일상을 읽으면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짐을 싸 뉴욕으로 떠나고 싶어져 곤란할 지경이다. 만일 뉴욕행을 앞둔 당신이 <인 굿 컴퍼니>에 나온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려면 지하
영화광을 위한 뉴욕 가이드, <안녕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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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길거리에 자그마하게 자리잡고 있던 단골식당 그곳에서 건네받은 그림엽서… (중략) 이거 봐 앤디 내가 술과 약이라는 여자들을 만나며 거리와 붓질해가며 사랑을 나눌 때 아마 넌 니 그림을 사람을 시켜 찍어 부자들의 파티를 빌려 니 걸 마구 쉽게 팔아버렸어… (중략) 그래 뭐 더 할 말 있어? 난 치밀한 장사꾼 이 시장을 꿰뚫어보며 그림을 조립한 사기꾼 그래서 이름을 붙이게 됐지 바로 워홀공장… (후략).’(<Jean & Andy> 중에서)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 대한 울분과 비판만을 토해내던 힙합 시절은 갔다. 요즘은 ‘오빠 어디야?’, ‘응, 미안, 일이 생겨서 일찍 못 간다, 아무개랑 밥먹고 있어라’, ’(시무룩해져서) 알았어’도 가사가 되는 시절이다. 얘들아 난 지금까지 이렇게 굴러먹고 살아왔어, 종류의 신세한탄은 인기 소재다. 그렇더라도 낯설긴 하다. 국내 언더그라운드 힙합신의 MC 각나그네가 최근 내놓은 싱글 앨범 <쟝과 앤디>의 동명
여백과 무드를 아는 힙합, 각나그네 <쟝과 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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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기억이란 무엇일까? <블레이드 러너>나 <공각기동대> 같은 사이버펑크물에서는, 기억이 인간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과거의 기억에 대한 태도나 감흥 같은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기억이란, 그 자신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이란 또한, 능동적인 존재다. 기억이란 것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도 않는다. <토탈 리콜>의 퀘이드는, 자신의 정체가 악인 하우저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하우저로 돌아가지 않고, 이식된 기억을 따라 영웅 퀘이드로 사는 것을 택한다. 그가 기억하는 것이, 그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가짜 기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한다. 인간은 많은 과거를 잊어버린다. 때로는 거짓된, 변형된 기억이 그를 사로잡는다.
인간에게 기억이란 절대적인 것일까?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은, 클레멘타인과의 깨어진 사랑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 기억을 지워버리려 한다. 기억은 모두 지워진다. 하지만 기억이 지
[B딱하게 보기] 사랑은 기억을 지배한다, <이터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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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메신저다. 코 속에 혹이 자랐다. 심한 기침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병들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합창을 했다(<마이티 아프로디테>). “이봐, 직장 다니며 영화를 만드는 건 네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라구.”
3차까지 간 경선이 끝나고 연출을 하기로 결정된 순간 몸의 기는 ‘엥꼬’가 났는데, 새벽 5시까지 마시곤 8시에 일어나 시나리오까지 고치는 주접을 떨다보니 내 몸이 달라져 있었다. 에너자이저인 줄 알았는데, 얼마 없는 상처를 후벼파고 남의 상상력을 훔쳐서 간신히 먹고사는 월급쟁이였다.
그런데 쉴 수가 없었다. 막연한 시나리오를 촬영 가능한 시나리오로 바꿔야 했다. 스탭들이 지적한 문제점들도 풀어야 했다. 설 연휴 내내 시나리오를 고치고, 촬영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쌓아놓은 DVD들을 보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불면증까지 슬그머니 내방했다. 미제 수면제를 먹으며 촬영한다는 어느 감독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쉴새없이 식은땀이 흘러
[오픈칼럼]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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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워낙 보편화됐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도 없지만 10년 전만 해도 ‘중국제’는 싸구려의 대명사 같은 거였다. 십대 시절 가슴 뿌듯하게도 ‘소니’라고 새겨진 미니카세트를 사고는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가 모서리에 조그맣게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적혀 있는 걸 발견했을 때의 배신감이라니. 젠장! ‘메이드 인 파키스탄’이나 ‘메이드 인 베네수엘라’는 참을 수 있어도 ‘메이드 인 차이나’만은 참을 수 없다고. 지금은 공산품에서 농수산물까지 중국제 아닌 것을 찾기가 더 힘든 세상이 왔으니 이제 중국제는 싸구려라기보다 대중상품 정도로 그 신분이 ‘격상’됐다.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무극>을 보면서 나는 10년 동안 잊고 살았던 그 말의 느낌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건, 이건… 중국제잖아.” 뉘앙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정통 ‘중국제’인 <영웅>을 봤을 때 그 맹신적 중화주의에 비위가 상하는 건 있었지만 대륙풍의 호방한 구랏발이 나름의 재미
[투덜군 투덜양] 메이드 인 차이나, <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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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이 고비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힘겹게 숨을 이어가고 있는 주인공의 연인이나 가족을 향해
의사가 뻑∼하면 하는 말이다.
그렇게 의사가 뻑∼하면 하는 말을 내가 듣게 될 줄이야!
의사는 내게 이번 주가 고비라고 했다.
그런 말은 참 잔인하다.
그렇다고 당장 뛰쳐나가 남산 어귀를 미친 듯 헤매며 산삼을 캐낼 수도 없는데.
어차피 처방과 치료는 자기네들이 할 거면서 괜히 겁주는 말이나 하고… 못됐다!
어쨌건 나는 얌전히 누워 밥 잘 먹고 약 잘 먹고 주사 잘 맞고 화장실에서
몰래몰래 피우는 담배를 하루 10개비에서 3개비로 줄여 그 위험한 고비를 잘 넘겼다.
하지만 진정한 고난은 그 뒤에 찾아왔다.
바로 불면증! 아∼ 첨엔 살짝 기쁘기도 했다.
살아 있는 지성! 깨어 있는 영혼들에게나 찾아온다는 왠지 모르게
살짝 고급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불면증!
작가라는 직업과 참 잘 어울리는 질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딱 3일 밤낮을 뜬눈으로 보내고 나니 병원 앞마당에 우물이라도
[이창] 눈물도 때로는 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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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전반이 피카소의 시대, 후반이 앤디 워홀의 시대이고, 전반과 후반을 꿰뚫는 것이 마르셀 뒤샹이라면, 21세기는 백남준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 이미 그는 20세기가 낳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지만, 내 생각에 그의 작업이 갖는 의미는 아직도 충분히 평가가 되지 않았다. 21세기에 백남준은 아마도 20세기에 위대했던 것보다 더 위대해질 것이다.
지난호 <씨네21>에 실린 ‘바이 바이 미스터 백’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누군가 백남준을 가리켜 “한국이 세계에 준 선물”이라고 했단다. 실제로 현대 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적힐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덕분이다. 이로써 그는… 물론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밝히는 ‘애국자’가 된 셈이다.
진짜 애국자들은 원래 애국 같은 거 잘 안 한다. 그저 제 잘난 맛에 살다가 나중에 국제적 명성을 얻어 본의 아니게 애국자가 될 뿐이다. 그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백남준과 황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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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영화인의 시위를 보다가 궁금해졌다. 지금의 영화계를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당신은 어느 편에 서겠냐고 다그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이번호에 실린 다섯 필자의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들은 대체로 중간파에 가깝다. 쿼터 사수 투쟁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스크린쿼터만 지키면 된다고 주장하는 입장은 아닌 것이다. 쿼터 사수의 전선을 흩트리는 시도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최근 사태를 보면 이번 투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쿼터 문제에 관해 그저 혼란스러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얽히고 설킨 문제를 정리하는 논쟁의 2라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프랑스 평론가 아드리앙 공보는 이번 쿼터 축소 조치가 프랑스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한 이유가 쿼터제도가 산업을 보호하는 것인지, 예술을 보호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상원 교수 김소영은 마이너영화
[편집장이 독자에게] 쿼터 논쟁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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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 마을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옆에 살던 무슈 아무개는 소음 때문에 늦잠을 잘 수 없었다. 궁리 끝에 자기집 그릇 몇개를 부수어 밤에 몰래 공사장에 파묻었다. 다음날 문화재 관리국에 신고했다. “어디 공사장에서 고대 토기가 발견된 것 같다”고. 출동한 관계자들이 땅을 파니 진짜로 토기 조각들이 나왔다. 공사는 즉각 중단됐다. 발굴단이 오네 검사를 하네 부산 떠는 며칠간 그는 꿀맛 같은 아침잠을 즐겼다. 한데 아뿔싸.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인 조각이 발견돼버렸다. 유물이 아니라 동네 할인매장에서 파는 싸구려 그릇 조각들인 게 밝혀지면서 공사는 재개됐고, 무슈 아무개는 벽에 머리를 찧었다. 그 조각만 빼놨어도 공사장이 유적지가 아니라는 걸 ‘입증’할 때까지 계속 늦잠을 잘 수 있었을 텐데….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북한에 “슈퍼노트(100달러짜리 위폐)를 제조할수 있는 동판과 장비를 폐기했다는 확실하고 실제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북-미 접촉이 아니
[이슈] 증거를 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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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오스카상을 받고 싶어하는 걸까. 경제적 효용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스카 수상이 몸값 상승과 박스오피스 영향력 증가로 직결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니까. 하지만 트로피 자체가 쏠쏠한 돈벌이가 된다는 것은 미처 몰랐던 일이다. 암시장과 경매 사이트에서 거래되고 있는 오스카 트로피는 ‘일반적인 것들’만 해도 5만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유명 영화·감독·배우의 것이라면 부르는 게 값이다. 마이클 잭슨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작품상을 154만달러를 주고 샀다.
트로피 매매에 대한 아카데미의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다. 아카데미쪽은 수상자들에게 받은 ‘이익을 위해 트로피를 팔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내세워 거래시장을 공격적으로 감시하는 중이다. 가장 뜨거운 감자는 1950년 이전의 트로피들이다. 경매가가 엄청난 데다 당시엔 아카데미가 각서를 받지도 않은 터라 이들을 둘러싼 소송이 도처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일례로 촬영감독 게리 그레버는 오슨 웰스 생전에 우
[What's Up] 금딱지 붙은 오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