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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守成), 즉 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전쟁서사극이 자주 선택하는 상황이다. 가까운 기억을 들추면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무사> <황산벌> <트로이>가 공성과 수성의 구도로 웅장한 죽음의 무도를 펼쳤다. <묵공>의 특수성은, ‘수성’의 모티브가 줄거리인 동시에 영화의 테마이자 철학이기도 하다는 점에 있다.
모리 히데키의 원작 만화를 한국, 중국, 일본, 홍콩, 아시아 4개국 자본과 인력이 스크린에 재연한 <묵공>은 중국 대륙에 7웅이 할거한 기원전 370년 전국시대다. 강성한 조(趙)나라가 인접한 연(燕)나라를 치기 위해 대군을 파병하자 공격 길목에 자리잡은 인구 4천명의 초라한 양성은 불면 꺼질 듯한 운명에 처한다. 저항하면 도륙당할 것이요, 항복하면 노예가 될 터. 양성 군주 양계와 백성에게 유일한 의망이 있다면, 침략당한 약자를 무조건 지원하는 집단 묵가(墨家)의 구원이다. 겸애를 숭상한 묵자는, 개
우직한 서사극 <묵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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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프로듀서스> <드림걸즈>. 세편의 뮤지컬영화가 1월과 2월에 찾아온다. 뮤지컬영화의 부활을 알린 <시카고> 이후 할리우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하는 데 다시 재미를 붙였고, 이 세 작품은 2005년과 2006년에 나온 ‘브로드웨이산 할리우드 뮤지컬영화’의 대표 주자다. 지난 한해 일어난 국내 뮤지컬 붐을 타고 뒤늦게나마 찾아오게 된 셈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영화로 옮겨진 과정이,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들의 모양새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가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지금 한국 공연예술계는 뮤지컬이 대세다. 지난 한해 115편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400만명의 관객이 보고 갔다. 전체 공연 매출의 절반, 관객 3분의 1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그 기세를 몰아 2007년 역시 크고 작은 라이선스 작품과 창작물 등 150여편의 뮤지컬이 대기 중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겐 <렌트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어떻게 할리우드를 매료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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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공>은 중국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전쟁사극이다. 와이어와 CG로 도배한 무협액션이 주류인 요즘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한눈에 보기에도 꽤 고전적이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름다운 화면이 아니라 흙탕물에 범벅이 된 사실적인 액션장면이 나오고 CG 캐릭터 대신 진짜 엑스트라들이 수천명 등장한다. <와호장룡> 이후 <영웅> <연인> <무극>이 향했던 탐미적 무협액션의 길에서 멀리 벗어난 드문 예이다. 차라리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영향을 받았던 김성수 감독의 <무사>가 어떤 영감을 줬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탐미적 액션이냐, 사실적인 액션이냐는 주제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묵공>이 하려는 이야기는 묵직하고 현실적인 것이어서 이런 사실적 액션에 잘 어울린다. 김혜리 편집위원(이번주부터 기자에서 편집위원으로 직책이 바뀌었다)의 표현을 빌리면 “<묵공>의 깃발은 장이모의 <영웅
[편집장이 독자에게] <묵공>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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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술술 받아들여지는 게 이준익 영화의 매력이다. 흥하는 자와 망하는 자, 권력을 쥔 자와 가져본 적 없는 자 사이에 기원을 둔 긴장이 오롯하건만 어지러운 투쟁의 노선을 취하지 않는 그의 영화는 까칠하거나 뻣뻣하지 않다. 그의 영화의 대중적 힘은 바로 거기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방송국의 상하구조, 스타의 과거와 현재, 거대 도시와 낙후된 지방도시는 스타와 매니저라는 두 주인공만큼이나 선명한 정치 구도 위에 놓이며, 그 간극을 건드리는 민감한 단어가 난무한다. 그러나 버릴 수 없는 인간애와 틈을 메우는 호흡과 매끄러운 흐름이란 옷을 입었기에 <라디오 스타>는 거부하기 힘든 감동을 안겨준다. 다만 감독의 전작들이 거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라디오 스타>가 얻지 못한 게 화려한 외양과 일회성 볼거리만 찾는 관객 탓은 아닐지 걱정될 뿐이다. DVD 음성해설은 두 가지다. 친분을 느낄 수 있는 감독과 배우
옛 향수가 느껴지는 음악을 들어볼까, <라디오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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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부모의 이혼과 아이들의 정신적 혼란. <오징어와 고래>가 굳이 1986년이란 시간으로 돌아간 건 영화가 1980년대 영화에 어울릴 법한 주제를 다뤄서라기보다 그 즈음 유명 작가·영화평론가인 부모의 이혼을 겪은 노아 바움바크의 개인적 기억과 관련되어서다. 아이는 물론 부모도 역시 이혼 뒤 새로운 인생수업을 시작한다. 큰아이는 학예회에서 사기극을 벌인 뒤 첫사랑에 실패하고, 작은아이는 정자를 학교 여기저기 묻히며 다니고, 엄마는 아이들의 테니스 강사와 사랑에 빠지고, 아빠는 어린 여학생과 성관계를 시도한다. 이 모든 사실이 모두에게 노출됐을 때, 부모보다 더욱 민감한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믿음과 그들을 지탱해주던 세계가 뒤집히는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영화는 어릴 적 공포를 안겨줬던 자연사박물관의 조각물을 다시 찾은 소년이 오징어와 고래의 싸움을 응시하며 끝난다. 부모의 이혼을 딛고 문제적 감독으로 성장한 바움바크처럼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소년은 그렇게 자기만의 인
적나라한 진실을 마주한 소년의 성장통, <오징어와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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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 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와 <킬 빌>의 애니메이션 시퀀스를 연출한 감독의 영화제목에서 오즈 야스지로가 연상된다면 이상한 일이다. 역시 이시이 가쓰히토답게 영화는 소년의 머리에서 열차가 쑥 나오며 시작하고, 음차 없이는 못 사는 할아버지부터 커다란 분신으로 괴로워하는 손녀까지 모두 조금씩 괴상한 하루노가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녹차의 맛>은 어울리지 않은 제목 같았다. 그러나 신기한 캐릭터와 재기 넘치는 이야기를 지나 사람과 그들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결말에 이르러 <녹차의 맛>은 성숙한 영화가 된다. 물을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 비유한다면 녹차의 맛을 만드는 건 평범함을 살짝 벗어난, 바로 하루노가 사람들의 어이없는 행위다. 그런데 떨떠름한 맛을 풍기는 그들의 생활을 쭉 따라가다 보면 녹차는 어느새 담백한 물과 같아지고 제자리로 돌아온 그들의 삶 또한 우리의 평범한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게다
평범함을 살짝 벗어난 일상의 맛, <녹차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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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쌍끌이 흥행은 고고!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미녀는 괴로워>가 개봉작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흥행 질주를 계속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지난 주말 서울 12만 240명, 전국 44만 3940명을 동원하며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3주 연속 수위는 2005년 여름 개봉했던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이후 외화로는 무려 1년 6개월 만에 수립된 기록.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흥행은 미국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수입·배급사 폭스 측은 “벤 스틸러의 코미디영화보다는 액션판타지와 어드벤처라는 점을 강조한 마케팅이 주효했다. 관객층도 20대 관객으로 시작했지만 가족관객이 급속도로 확산된 상황”이라고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미국에서도 3주 연속 흥행 1위를 기록한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서울 979,390명 전국 3,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녀는 괴로워> 쌍끌이 흥행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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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스웽크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The Hollywood Walk of Fame)에 이름을 새겼다. 2000년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2005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번 수상한 업적을 인정받은 것. 십대 소녀일 때 전 재산 75달러를 가지고 할리우드를 찾아 온 후 16년 만의 쾌거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는 할리우드 블리바드를 중심으로 약 5㎞ 구간의 양쪽 보행자 도로를 지칭하는 말로, 분홍색 별 모양의 테라조타일에 스타와 그 스타가 속한 분야를 구리로 만들어 넣은 보도블록이 깔려있다. 영화산업 뿐만 아니라 텔레비젼, 라디오, 연극, 음반 등을 통틀어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있다. 힐러리 스웽크의 이름은 명예의 거리에 2325번째로 등록됐다.
최근 개봉한 <프리덤 라이터>의 감독인 리처드 라그라베니즈와 제작자 조엘 실버를 대동하고 시상식에 참석한 힐러리 스웽크는 "공중전화로 매니지먼트사에 전화
힐러리 스웽크,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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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손해보지 않으리란 자신감이 있다
나직한 음색과 차분한 말투는 듣는 이를 안심시키는 자신의 음악과 비슷했다. 허진호, 김태용, 박흥식, 류장하…. 동료로서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서로를 ‘호수형’이라 부른다는 감독들의 영화를 위한 맞춤음악을 만들어온 음악감독 조성우. 그러나 그가 걸어온 길은, 잔잔한 호수보다는 거센 풍랑이 계속되는 망망대해에 가깝다. 그는 영화에서 사용하는 음악, 엄밀히 말하면 삽입곡의 저작권에 대한 의식이 전무하던 시기부터 창작음악을 고집했다. 작곡가로서의 영화음악가의 입지가 전무하던 시기부터 개인이 아닌 회사 차원의 작업을 도모하여 후배양성에 힘쓰기도 했다. 편집본을 던져준 뒤 터무니없는 기간 안에 음악작업을 마칠 것을 요구하는 풍토에서 감독과의 지속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한 것은 물론이다. 음악인이 아니라 영화인으로서 영화음악을 만들겠다는 신념은 돌아보면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받아들여졌던 건 아니었다. 조성우 음악감독과 그가 이끌고 있는 영화음악
영화 7편 투자·제작하는 음악감독 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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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화> 전 2권 로저 에버트 지음/ 윤철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4년 전 번역 출간된 로저 에버트의 영화평론집 <위대한 영화>의 2권이 나왔다. “위대한 영화 베스트 100”이 아니라 “위대한 영화 중 100편”에 관한 글이라는, 머리말의 세심한 일러두기를 독자가 유념한다면 저자는 더욱 기뻐할 것이다. 엄지손가락과 별점의 ‘대마왕’처럼 간주되는 평론가지만 에버트는 랭킹과 리스트 작성을 “멍청한 짓”이라고 일축한다. 그럼 왜 하냐고? 글쎄. 어물전 주인이 비늘 다듬기 싫다고 안 할 수야 있나, 정도가 에버트의 입장이다. 이 책에 실린 100편의 영화 중 99편은 이른바 ‘데렉 말콤 테스트’를 거쳤다. 데렉 말콤은 <가디언>에 오랫동안 기고한 평론가인데 “이 영화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상상을 견딜 수 있을까, 없을까?”를 자문하며 영화를 분류했다고 한다. 테스트를 통과 못하고도 수록된 영화는 20세기 초 미국의 인종주의가 반점처럼 박혀
저널리즘 영화비평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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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1월13일(토) KBS2 밤 12시25분
보물 찾기 모험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영웅과 미녀다.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에 둥지를 튼 <사하라>도 마찬가지. 구릿빛 근육을 과시하는 영웅은 매튜 매커너헤이, 화첩을 완성하는 미녀는 페넬로페 크루즈다. 하지만 사막만큼이나 이글대는 그들 사이에서 열기를 식혀주는 생수 같은 존재가 있으니, 그는 매튜 매커너헤이의 동료 ‘알’을 연기한 스티브 잔. 적당히 수다스럽고 어수룩한 연기로 웃음을 선사하는 잔은 미네소타 출신의 쾌활한 배우다. 연극 무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93년 연극 <소피스트리>로 에단 호크와 호흡을 맞추며 주목받았다. 벤 스틸러의 제안으로 <청춘 스케치>에 에단 호크와 함께 출연한 잔은 성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워하는 게이로 변신했고, 이윽고 <댓 씽 유두>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분해 능숙한 기타 연주와 노래 솜씨를 보여주었다. <유브 갓 메일> &l
[앗! 당신] 감초가 빠지면 약이 너무 쓰잖아, 스티브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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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1월13일(토) 밤 11시
(이란에서) 여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 세명의 여자가 있다. 첫 번째 여자. 아홉살 생일이다. ‘결국’ 여자가 되는 날이다. 소녀 하바에게는 이제 정오까지 약 한 시간, 마지막 자유가 남았다. 모래 위의 그림자가 짧아진다. 남자친구 하산은 하바의 부르카를 배의 돛으로 만들어 바다에 떠내려보낸다. 그러나 막대기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세상이 온통 빛으로 뒤덮이는 그 순간, 하바의 삶은 검은 부르카 속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 여자.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쉴새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여인들의 무리 속에 아후가 있다. 남편과 마을의 남자들이 말을 타고 아후를 쫓아온다. “내려와!” 아후는 달리고 또 달리지만, 그녀의 페달은 전근대적 아버지들의 말발굽을 이기지 못한다. 세 번째 여자. 마침내 홀로 자유의 몸이 된 여자는, 그러나 너무 늙었다. 후라는 휠체어를 타고 일생 동안 억압했던 욕망을 뒤늦게 풀어헤친다. 화려한 가구와 물건들을 사
그 땅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내가 여자가 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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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택의 욕실일까. 모델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인테리어에 호화로운 월풀 욕조가 입을 벌리고 있다. 문가에서 발소리가 울리나 싶더니 한 소녀가 부리나케 뛰어든다. “나 못 참아!!! 화장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꾀죄죄 때가 묻어나는 소녀가 빙글빙글 돌며 비명을 지르자 문간에서 그을린듯 시커먼 얼굴의 노인이 나타난다. 강남의 한 호텔에 자리한 <방울토마토> 촬영현장. 부티나는 욕실에 등장한 빈티나는 두 불청객은 신구와 김향기다. “급해! 급해!” 김향기가 엉덩이를 손으로 꼭 틀어막은 채 깡총깡총 뛰어오르기 시작하자 스탭들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써 입을 다문다.
<방울토마토>는 칠순 노인 박구(신구)와 6살배기 손녀 다성(김향기)의 고단한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집이 철거당하면서 길가로 내몰린 두 사람은 우연히 개발업자 갑수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비밀스러운 셋방살이를 시작한다. 이날 촬영분은 부서진 리어카를 보상받기 위해 갑수 집을 찾은 박구
철거민 할아버지와 손녀의 빈 집 놀이, <방울토마토>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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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먼저 죽이는 자, 100만달러를 얻게 되리라. 비밀 마약수사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나크>의 존 카나한 감독이 이번엔 타호 호수를 배경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킬러들의 숨막히는 ‘레이스’를 담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술사로 일하는 이스라엘(제레미 피번)은 한때 미국 최대의 범죄조직 일원.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전제로 FBI쪽에 조직에 대한 정보를 흘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직의 보스 프리모 스파라차(조셉 러스킨)는 이스라엘의 목에 100만달러의 상금을 걸고 7명의 킬러들을 불러모은다. 이스라엘의 목숨을 지키는 두명의 FBI 요원과 이스라엘의 목숨을 노리는 7명의 킬러들. 이스라엘은 과연 100만달러 앞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다양한 캐릭터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부분이 폴 해기스의 영화 <크래쉬>를 닮았다.” <오스카이글루>의 클레이튼 데이비스가 평한 것처럼 <스모킹 에이스>에서 딱 한 사람의 주인공을 꼽기란 어렵다.
먼저 죽여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스모킹 에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