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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 스캔들>의 지동희는 수학 일타 강사 최치열(정경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조하는 최치열 연구소 메인 실장이다. 실제 일타 강사의 조교로부터 “조교의 역할은 강사 옆에 그림자처럼 함께하는 것”이라는 자문을 얻은 신재하는, 그림자가 사물에 양감을 부여하듯 연기와 기지로 드라마에 입체감을 더했다. 지동희가 강의실의 온도와 습도를 맞추며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디테일과 분필의 색별 구비 여부를 확인하는 액션은 신재하의 취재로부터 나온 아이디어다. 촬영 현장에서도 신재하는 지동희처럼 존재했다. 드라마 속 최치열과 지 실장의 관계처럼, 정경호의 재치를 적절한 극의 재미로 녹아들게 하는 것도 신재하의 몫이었다. “화제가 된 절대음감 장면도 평소 노래를 흥얼거리는 내 습관에서 비롯한 애드리브다. 경호 형이 신나게 애드리브를 하면 나는 지 실장처럼 ‘그거 아니에요’라며 형의 애드리브를 그냥 넘기거나 모른 척했다. 사실 형의 애드리브에 동참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신재
[WHO ARE YOU] '일타 스캔들' '모범택시2' 신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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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얼굴을 한 25살의 나웅남(박성웅)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그가 마늘과 쑥을 100일간 먹고 사람이 된 반달곰이라는 사실이다. ‘곰’ 웅남을 연구하던 과학자 나복천(오달수)과 아내 경숙(염혜란)에게 거둬진 그는 고된 사회화를 거쳐 어엿한 경찰이 되지만, 자신이 곧 죽는다는 얘기에 충격을 받아 근무 태만으로 해직된다. 백수가 되어 동네 친구 말봉(이이경)과 도박장에 갔다가 선배 경찰 오일곤(윤제문)에게 체포되지만 전화위복의 기회를 얻는다. 생물 테러를 계획하는 국제 범죄 조직의 이인자 이정학(박성웅)과 똑같이 생긴 덕분에 공조를 제안받은 것. 엄마 소원인 복직까지 가능해지자 웅남은 오일곤이 이끄는 도플갱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단군신화를 모티브로 한 <웅남이>는 사람이 된 곰의 초월적 능력을 활용해 소소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영화다. 발달된 후각과 청각으로 누가 무엇을 먹었는지 정확히 알아맞히거나 멀리서 발생한 사고 소리를 듣고 괴력을 발휘해 현장을 해결하는 웅
[리뷰] ‘웅남이’, 사람이 된 곰의 흐릿한 웃음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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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시카고에 사는 에밋(제일린 홀)은 미국 남부 미시시피에 사는 사촌들을 만나러 갈 생각에 들떠 있다. 엄마 메이미(대니엘 데드와일러)는 하나뿐인 아들이 걱정이다. 엄마는 아들에게 백인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미시시피에 도착한 에밋은 목화밭에서 사촌들의 일을 돕고 이후에 한 식료품점에 들른다. 에밋은 계산할 때 가게 주인인 캐롤린(헤일리 베넷)에게 말을 건넨다. 악의 없는 그의 언사에 분노한 캐롤린은 황급히 총을 찾으러 나서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친다. 며칠 뒤 캐롤린의 남편 일당이 에밋이 묵고 있는 고모네로 쳐들어와 에밋을 납치해간다.
<틸>은 1955년 백인 남성 2명이 14살 흑인 소년을 린치해 살해한 ‘에밋 틸 피살 사건’을 기반으로 한 실화 영화다. 68년 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여전히 미국 내의 인종차별 문제를 상기시켜며 큰 울림을 준다. 영화는 실화를 충실히 옮기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또한 개인의 죽음이 어떻게 공론화되고 사회적 문제
[리뷰] ‘틸’, 엄마의 손으로만 오직 가능한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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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일본에서는 고교무상화제도가 시행되었다. 공립고등학교는 수업료가 무료이고, 사립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한달에 1인당 1만엔가량의 취학지원금이 지급되는 제도다. 하지만 2012년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한 이후 10곳의 조선고급학교들은 무상화 정책에서 배제되었는데,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에 지급될 취학지원금이 어떻게 유용될지 알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조선학교와 조총련의 관계를 의식한 이 차별적 법령에 반발하여 2012년 12월부터 일본 각지의 5개 조선학교와 그 학생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영화는 2017년 7월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의 1심 판결일로부터 2년여의 시간을 스케치한다. 이곳에서의 한번의 승소 외에 나머지 모든 재판에서 패소하는 동안 학생들은 정당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찾기 위한 집회를 이어가고 이 투쟁을 지지하는 재일조선인,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들의 연대는 계속된다. 영화의 카메라 역시 연대의 표지처럼 각각의 현장, 집회뿐만 아니라 조선학교 문제와 관련된
[리뷰] ‘차별’, 영화 때문이 아니어도 지지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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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의 한 병실에서 구속복을 입은 모나(전종서)는 갑자기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이내 간호사가 들어오고 모나의 발톱을 정리해준다. 무시하는 말투로 모나를 대하던 간호사는 몸이 굳고 들고 있던 가위로 자신의 허벅지를 찌른다. 이것은 그녀의 의지가 아닌 모나의 초능력으로 벌어진 일이다. 그렇게 모나는 병원에서 탈출해 뉴올리언스로 향한다. 경찰 해롤드(크레이그 로빈슨)는 지명수배된 모나를 뒤쫓기 시작한다. 해롤드도 별수 없이 모나의 초능력에 상해를 입고 병원에 실려간다. 모나는 도망치는 와중에 싸움에 휘말린 댄서 보니(케이트 허드슨)를 도와주고 그녀와 함께 스트립 클럽으로 향한다.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은 배우 전종서의 할리우드 데뷔작으로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올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붉은 달이 뜬 화려한 도시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영화는 모나의 탈출기를 그린다. 그 과정에서 모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랑, 우정 그리고 배신을 경험한다. 영화는
[리뷰]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 유난히 붉은 달, 기묘한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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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마주한 인생 최초의 영화. 부모와 나란히 앉아 관람한 <지상 최대의 쇼>는 새미(가브리엘 라벨)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그는 영화의 기차 추돌 신을 보며 받은 충격을 반복적으로 상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재현하기에 이른다. 기차 모형 장난감이 충돌하도록 배치해 촬영하는 식으로 말이다. 새미가 완성한 영상을 보고 어머니 미치(미셸 윌리엄스)는 “자기 식대로 세상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어린 아들의 의도를 헤아린다. 부모의 지지하에 동생들, 친구들과 영화 작업을 거듭하며 새미는 독자적으로 본인의 작법을 완성해간다. 직접 연출한 서부영화, 전쟁영화를 선보인 작은 상영회도 성공리에 마무리 짓는다.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 익숙해진 새미는 아버지의 절친 베니(세스 로건)가 합류한 가족 여행을 카메라에 담는다. 여행에서 돌아와 촬영본을 편집하던 중, 그는 필름에 기록된 가족의 비밀을 목도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파벨만스>를 자신의 “기억
[리뷰] ‘파벨만스’, ‘우리’의 상흔마저 포용하는 영화라는 소명, 영화라는 영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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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보듬어주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큰 공동체로 갈수록 부모는 ‘고졸’ , ‘자영업’, ‘특이사항: 청각장애인’으로 분류되며 점점 멀어졌다는 고백.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란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감독이자 작가 이길보라의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공간도 있다. 농인의 천국이라 불리는 갤로뎃대학교는 미국 수어를 공용어로 쓴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농인 앞에서 음성통화를 하면 정보 소외가 일어나기 때문에 음성전화가 오면 숨어서 받거나 영상통화 혹은 문자메시지로 바꾸어 소통해야 한다. 이렇게 농문화가 존중받는 공간에서는 같은 농인이라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고 때로는 갈등과 어둠이 존재한다고 머뭇거림 없이 드러낼 수 있다.
이길보라 감독은 영화를 상영하고 글을 쓰면서, 코다를 비롯하여 단선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정체성을 지닌 여러 존재를 마주한다. 다큐멘터리영화 <반짝이는
씨네21 추천도서 -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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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소박하다. 20년 전, 타이베이의 가장 큰 상가 중화상창이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실종되었다. 자전거는 우리 가족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때 여섯 아이를 다 먹여살릴 수 없어 다섯째 누나를 다른 데로 보내려던 아버지를 붙잡으려고 어머니는 자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기차역으로 내달렸다.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 나를 살리려고 아버지는 자전거에 나와 어머니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도합 130킬로그램을 실은 자전거가 무사히 움직인 덕분에 나는 살아났다. 그랬던 아버지가 사라졌고, 나는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행복표 자전거를 찾기 시작했다. 고물장수 친구 덕분에 마침내 아버지의 행복표 자전거 모델 넘버가 찍혀 있는 자전거를 찾아내지만, 정작 자전거 주인은 그 자전거를 팔 생각이 없다.
대만 최초로 맨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된 작가 우밍이의 <도둑맞은 자전거>는 자전거 바퀴와 딱 붙어 시간을 달려온 아시아의 현대사를 이야기한다. 책을 펼치면 바닷가 포격을
씨네21 추천도서 - <도둑맞은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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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른이 되었는지, 돌이켜보면 부모를 제3자처럼 바라보기 시작한 때 같다. 엄마라는 여자, 아빠라는 남자의 성격을 남에게 묘사할 때야 비로소 분리가 된 것 같았다. 특히나 어머니의 삶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희생, 인고로 해석됐다. 아버지가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다면 희생하는 어머니의 골짜기는 더 깊어진다. <아버지가 되어주오>의 딸은 아버지의 과거를 조목조목 따져 물으며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사과하”라고 비난한다. 아버지는 가해자였고 한쪽(어머니와 자식들)은 피해자 집단이라고 생각해서다. 행적을 보면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엄마를 대변해 따진 것을 기특해할 줄 알았으나 엄마는 딸에게 되묻는다. “넌 네 엄마 인생이, 그렇게 정리되면 좋겠니?”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엄마는 덧붙인다. “네 말대로라면 내 인생 참… 슬프지 않겠니?”
스물두살에 아이를 낳고, 아홉살 많은 남자에게 발목 잡혀 평생을 참고 산 어머니, 딸이 써내려간 엄마의 인생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인생을 어
씨네21 추천도서 - <반에 반의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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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언가 하나씩 결여된 인간들이다. 특수한 재능이 있되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거나, 우주 원리와 칼 세이건에 대해서는 줄줄 외면서도 자기 감정에 대해서는 한줄도 설명하지 못하는 식이다. 그 어려운 물리 현상이나 공식은 빠삭하게 알지만 가장 친밀한 관계에 대해선 이해하지 못해서 줄곧 “널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되뇌기도 한다. 전부 일인칭 시점 소설들이기에 독자는 화자가 설명하고 바라보는 대로 소설 속 세상을 따라가고 이내 주인공이 나사가 하나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읽는 사람은 인물의 결핍을 간파하지만 주인공만은 끝까지 퀘스트를 달성하지 못하고 “GAME OVER” 문구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일인칭 소설이며 단문인 소설의 특성상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음에도 독자는 화자보다 전지적 위치에 존재한다. 이는 작가가 매우 유기적으로 논리적 구조를 쌓아올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잔혹한 현실 세계에서 승자가 되기에는 모자란 인물들. 소설 속에서 그들
씨네21 추천도서 - <외계 문학 걸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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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 소음에 특히 예민한 석원은 꼭대기층에 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래 14층에 살게 된다. 어느 날 위층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 온 후 밤마다 콩콩대는 소리가 들린다. 오후까지는 아무 소리도 나질 않다가 잠을 청하려 눕기만 하면 귀신같이 들려오는 불쾌한 소음. 참다못해 항의하러 위층에 올라가지만 그 집 문에는 이러한 경고문이 쓰여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지 말 것. 절대.’ 초인종을 누르기라도 했다가는 무슨 사달이 생길지, 이후로 어떤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지 흥미진진하지만. ‘어길 시 법적 조치’ 운운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문 앞에서 석원은 돌아선다. 관리소에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도 희한하다. “어쩝니까. 절대로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데. 연락하면 큰일 난다고 하는데요.”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위층과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시작될 것 같지만, 예민하고 소심한 우리의 주인공 덕분에 더욱 황당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순간을 믿
씨네21 추천도서 - <순간을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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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믿어요_이석원 지음
외계 문학 걸작선_이갑수 지음
반에 반의 반_천운영 지음
도둑맞은 자전거_우밍이 지음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_이길보라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3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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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영화 <바빌론>
해가 떨어지기 직전, 기적과도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그 ‘찰나의 순간’은 내가 이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와인과 맥주 사이
집 한쪽에 늘어나는 와인병 개수에 ‘집에 있는 거나 먹고 새로 사든가’라는 아내의 잔소리 또한 늘어난다. 하지만 “셀러를 채우는 와인들은 당신 옷장 안의 옷과 같이 늘 부족하고 아쉽다. 새로운 애들이 필요해”라는 말에 아내가 나를 깊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와인으로 시작해 마무리로 캔맥 하나, 행복한 날을 완성한다.
음악 <캔디> vs <캔디>
우리 집은 리메이크곡으로 분쟁 중이다. 나는 H.O.T.의 <캔디>를, 딸은 NCT DREAM의 <캔디>를 지지한다. 두 노래의 가
[LIST] 김성훈 감독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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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극장가의 3월은 3년 만에 진정한 봄을 맞이하는 분위기다. 관객은 커다란 스크린에서 마음껏 영화를 즐기는 날만을 기다려왔다. 지난 1월 춘절 연휴 동안 총 11편의 영화가 개봉했고, 역대 2번째로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은 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남겼다. 좋은 기운을 발판으로 2월에는 춘절 시즌보다 더 많은 31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3월 들어서며 극장가의 봄기운은 더 완연해지는 추세다. 바로 지난 3년 동안 개봉을 저울질하며 미뤄온 기대작들이 속속 개봉을 알리고 있기 때문인데 자그마치 33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관객으로선 행복한 고민이지만 거의 하루에 한편꼴로 개봉해야 하는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입장에선 마냥 좋아할 순 없는 노릇이다.
3월의 첫문을 여는 영화는 곽부성, 임달화 주연의 사이버 금융 범죄를 다룬 액션영화 <단망>이다. 대니 황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사이버 범죄라는 소재 때문에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은
[베이징] 중국 극장가의 봄, 영화로 꽃피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