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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시장 규모 25조원, 플랫폼 누적가입자수 6천만명 시대(2021년 기준). 누군가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돈을 입금하고 주소를 알려주고 심지어 집에 발을 들일 수 있게 한다는 특성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가능성도 높아졌다. <타겟>은 망가진 물건을 보내고 잠수를 타는, 가장 흔한 형태의 중고거래 사기에서 시작해 이를 연쇄살인사건 스릴러로 확장한다. 신형 아이맥 24인치 중고거래를 위해 별 생각 없이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인 남자가 살해당하고, 범인은 그의 집을 아지트 삼아 중고거래를 이용한 대규모 사기 행각을 벌인다. 인테리어 회사 팀장 수현(신혜선)은 현장 인부들과 직접 부딪치는 일도, 회사 상사의 추파에도 씩씩하고 칼같이 대처하지만, 그런 그도 중고거래 범죄를 피해갈 순 없었다. 이제 막 이사한 집에 저렴한 가격으로 살림살이를 마련하려다 고장난 세탁기를 잘못 구입하게 된 그는 자신에게 밀려오는 스트레스의 싹을 잘라내고자 직접 범인을 잡기로 마음먹는다. 중고거
[리뷰] ‘타겟’, 디지털 시대 새로운 종류의 공포를 소재 삼은 영화들이 오히려 신선함을 잃는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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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3번 버스를 좋아했다. 그 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좀 떨어진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시간도 많고 체력도 충분했다. 일단 타기만 하면 종로까지 한번에 갈 수 있으니 감수할 만했다. 서점과 음반 가게, 영화관 등 중학생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게 있는 종로. 버스가 서울역을 지나 남대문을 끼고 돌 때면 앞 유리창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쭉 뻗은 길을 보면 마음이 트였다. 일요일의 도심을, 눅눅한 집과 서늘한 학교를 잊고 쏘다녔다. 영화관 입장권은커녕 메모지 묶음 하나 살 돈도 없을 때가 실은 더 많았지만, 새것을 실컷 보는 나들이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갈 때면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떨어졌다. 남대문시장쯤으로 걸어와 57번이나 58번 버스를 탔다. 집에서 가까운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탈 수 있는, 타야 하는 버스도 늘어갔다. 나는 ‘빠르고 정확한’ 지하철보다 ‘확실하지 않은’ 버스를 더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버스를 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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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 시련을 안기면 드라마가 되고 집단에 재앙을 내리면 재난영화가 된다. 영화의 내러티브가 인물에게 위기를 주어 그들의 선택을 지켜보게 하는 동안에 어떤 카메라는 그 얼굴을 주시한다. 두편의 한국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보호자>를 연이어 보고 하나의 글에서 다루기로 한 이유는 많은 점이 상이한 두 영화에서 도드라진 공통점으로 얼굴의 클로즈업을 보았기 때문이다. 분절된 신체 이미지에서 시작된 얼굴의 클로즈업은 현대 상업영화에서는 또 다른 영화적 장소로서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기보다는 얼굴의 향연에 가깝게 전시되는 듯하다. 상업영화에 스타의 얼굴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얼굴의 클로즈업이 그저 영화의 부품처럼 장면의 최소 단위 기능만 수행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은 아쉬운 현실이다. 반대 지점에서 접근한다면 근접한 얼굴숏은 어떤 기능만큼은 충실하게 이행한다는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호자>에서는 무엇과의 사이를 벌
[비평] 카메라 너머의 얼굴들, ‘보호자’와 ‘콘크리트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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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정치가 없다. 그래서 정치적이다. 영화의 마지막, 명화(박보영)가 묻는다. “여기 살아도 돼요?” 이 공간에서 거주해도 되냐,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어도 괜찮냐는 이중의 의미를 실은 질문에 누군가 답한다. “살아 있으면 그냥 사는 거지. 뭘 물어.” 명화는 사는 데 필요한 건 자격과 조건이 아니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흰 쌀밥을 꼭 움켜쥔다. 마치 종교화처럼 쉽고 간명한 상징과 우화의 이미지. 중세 암흑시대 교회 프레스코화에 가까운 강력한 프로파간다의 메시지. 정정해야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정치가 없는 게 아니라 메시지 전달에 실패한다. 이어 그 실패의 자리에 어떤 호소보다 강력한 동일시가 이뤄진다. 다름 아닌 영탁(이병헌)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통해서 말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굴리는 시뮬레이션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에서 또 다른 유토피아로 이동하는 이야기다.
[비평] ‘콘크리트 유토피아’, 우리는 영탁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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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에 세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먼저 맥주를 시켰다. 친구, 친구 애인과 인터뷰차 만나는 자리였다. 지금 쓰고 있는 글에서 새롭게 들어온 공간과 직업은 평소에 도통 관심이 없던 쪽이라 해당 분야 종사자와의 인터뷰가 필요했다. 이번 자리에서 내가 듣고 싶은 부분은 실무적인 것도 물론이지만 특히 해당 업계에서의 터무니없고 황당하고 유치한 사건들에 관한 것이라 카페가 아닌 호프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렇게 장소를 잡았다. 물론 내가 시원한 맥주를 너무나도 마시고 싶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퇴근 시간대가 되자 가게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주변을 더 찾아보고 조용한 곳으로 갈걸’ 후회하며 다이어리를 펼쳤다. 맥주를 마시며 미리 작성해놨던 질문 리스트를 다시 살펴보는데 계속 딴생각이 들었다. 계속 남원랜드 아저씨 생각이 났다.
2016년 여름, 2주 정도 할머니 간호를 위해 지리산 구례에서 지냈다. 무료하게 병원과 집을 오가다 하루는 점심
[김세인의 데구루루] 어쩐지 슬프고 화가 나면 생각나는 남원랜드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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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현정의 스크린 데뷔작인 <해변의 여인> 현장 사진을 찾아보았다. 나에게 있어 고현정(오른쪽)은 환상의 여인이었다. 어릴 적 귀가 시계라 불리던 드라마 <모래시계>를 인상 깊게 봐서 정말 만나보고 싶은 배우였다. <씨네21>에서 일하면서도 만나는 게 참 쉽지 않았던 그녀. 짧은 만남이지만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ARCHIVE] 환상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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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는 드라마 <굿와이프>, 영화 <자백>에 이어 또 한번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만났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원작에 갇히는 느낌이 들어서 웬만하면 원작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나나가 연기한 ‘김모미B’는 동명의 원작 웹툰 연재 당시에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파트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인터넷 방송 BJ로 활약했던 김모미는 살인을 저지른 후 성형수술을 받고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평범한 직장인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후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살아간다는 극단적인 상황을 자기답게, 설득력 있게 연기한 나나의 신중한 태도는 단기간에 완성된 행운이 아니다. 원작의 모사가 아닌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만의 ‘김모미B’를 연기하기까지, 나나가 배우로서 부단히 훈련해온 과정을 함께 들었다.
- 3인1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현정, 이한별 배우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을 것 같다.
= 대본 리딩 때 한번 뵀고, 촬영장에서
[인터뷰] 내 안의 나를 꺼내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마스크걸’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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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뷔작이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이었듯, 첫 OTT 시리즈물 작업에 있어서도 고현정은 의외의 선택을 보여준다. <마스크걸>의 세 번째 김모미, 일명 모미C인 그는 폭주기관차 같은 작품의 종착지에 묘령의 얼굴로 유유히 서 있다. 한국 여자배우 중 여왕(<선덕여왕>)과 대통령(<대물>)을 모두 연기한 유일한 인물인 그에겐 “혼자 이끌고 가야 하는 역할도 있었다면, 좋은 배우들 사이의 일부로 놓여 즐겁게 촬영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들어 새롭고 반가웠던” 작품이 <마스크걸>이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에서 에르메스 백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순간마저 아이코닉해 충격을 준 이 배우는, “평소 자연스럽게 짓게 되는 표정과 근육을 최대한 쓰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스타성을 탈색시키면서 지금의 김모미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렇게 몸의 움직임까지 최소화해 만들어낸 고현정의 김모미는 무망한 삶에 간신히 적응한 비련의 여자이기보
[인터뷰] 모른다는 주문을 외우며, ‘마스크걸’ 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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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걸>에서는 세명의 배우가 한 사람을 연기한다. 배우의 변화는, 인물의 성형 여부와 세월을 말해주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주효하게는 세개의 다른 자아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흡인력을 갖는다. 동일인물을 연기함에도 결코 동일해지지 않는 배우들로부터 김모미는 비로소 고유해진다. 여기, 한 여자를 연기하는 두명의 여자를 소개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비상하는 순간과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순간을 모두 책임지는 배우들이다. 디바가 되고 싶었던 소녀, 인터넷 방송의 스타, 누군가의 연인이자 엄마, 교도소의 미친 여자, 그 누구도 아닌 초연한 존재에 도달하기까지 김모미는 고현정과 나나의 현신을 빌려 비로소 웹툰 밖으로 걸어나온다. 배우 고현정과 나나는 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유사성에 집중하기보다 총 7회 분량의 드라마에서 단 2회씩 등장함에도 강력한 존재감과 개성을 남기는 각자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파트너십을 완성했다.
*이어지는
[커버] 같지만 다른 존재들, ‘마스크걸’ 고현정 x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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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전형으로 입학했나.
= 수시 2차로 들어왔다. 사운드 쪽으로 진로를 결정한 상태에서 면접 비율이 높은 대학을 찾다가 학생부와 면접고사가 50%씩 반영되는 정화예술대학교에 지원했다. 면접에서 과제에 대한 분석이 아닌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나에 관해 물어본 학교는 정화예술대학교가 유일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호감이 갔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대답을 잘했다. 포트폴리오가 평범했는데도 합격한 걸 보면 면접을 잘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 면접을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길 바란다. 소위 말하는 영상 관련 입시생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만 보고, 그 작품에 대한 남들의 모범적 해석을 줄줄이 외우는 건 면접에서도 입학해서도 별 도움이 안된다. 내 식대로 사고했을 때 창의적인 답변이 나올 수 있다. 자기 방식을 찾는 데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 현재 영화 촬영 현장의 동시녹음팀에 재직 중이다. 일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 강의
[인터뷰] ‘스펙트럼이 넓다는 강점’, 정한구 정화예술대학교 영상미디어학부(현 융합예술학부 영상제작전공) 19학번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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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연기전공 입시를 치렀다. 어떻게 준비했나.
= 실기를 100% 반영하는 정시로 입학했다. 무대연기에 특히 관심이 있었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연극을 많이 보러 다니면서 입시학원과 연습실을 오갔다. 자유연기만 본 실기고사에는 수시 때부터 연습한 연극 <올모스트 메인>의 한 대목을 준비해갔다.
- 실기 관련해서 수험생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 어렵겠지만 되도록 편안한 마음으로 실기고사에 임하길 바란다. 다른 실기 때와 달리 그냥 한번 해보고 나오자는 마음으로 나를 충분히 진정시킨 뒤 시험장에 들어섰던 게 합격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 연기전공을 포함해 융합예술학부 학생들은 2학기부터 대학로캠퍼스에서 공부한다.
= 대학로가 연극의 중심지인 만큼 연기전공자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수업 끝나고 바로 공연을 보러 가기도 쉽고 새 건물이라 시설도 좋을 것 같다. 융합예술학부를 육성하고자 대학로캠퍼스로의 이전을 결정한 게 아닐까 하
[인터뷰] ‘학생에게 기회를 만들어준다’, 김수아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 연기전공 23학번 재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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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신설된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가 내부 정비를 마치고 대학로캠퍼스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기존의 영상미디어학부와 공연예술학부를 통합하면서 5개 전공(영상제작, 디지털미디어디자인, 연기, 뮤지컬, 실용댄스)으로 출발했으나 2024학년부터는 4개 전공으로 개편된다. 영상제작, 시각디자인, 연기, 실용댄스로 압축해 전공별 전문성을 한껏 높인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먼저 시각디자인전공은 광고·브랜드 디자인, 웹툰드로잉 등을 전문 교과로 배우며 디지털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각영상분야 전문 인력 양성에 주력한다. 실용댄스전공은 스트릿댄스, 코레오그래피, 재즈 댄스와 순수무용 등 공연예술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춤의 기본기와 지식을 쌓는 데 초점을 맞춘다. 무용지도법과 댄스콘텐츠 기획 및 홍보까지 아울러 교육자, 문화예술 행정가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어 연기전공은 무대에서 뉴미디어까지 어떤 환경에서든 역량을 발휘할 수 있
[정화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부] 어떤 분야로든 진출 가능한 융합 인재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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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RunwayML
텍스트 투 비디오(Text-to-Video) AI인 RunwayML은 내가 무엇을 기획하고 있는지 가장 먼저 아는 아이디어 파트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머릿속 단상을 짧은 영상으로 직접 만들어보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나간다.
<최강야구>와 <뭉쳐야 찬다>
아이들과 같이 시청하는 유일한 방송. 상상으로는 창조할 수 없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멋진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최고들의 이면을 살펴보는 재미가 무궁하고 팀을 이끄는 감독들의 리더십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패션 잡지들
<마리 끌레르> <보그> <엘르> <코스모폴리탄> <얼루어> <데이즈드>…. 이 잡지들 모두가 나에겐 영감의 원천이다. 몰랐던 스
[LIST] 변승민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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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연인>의 때는 병자호란. 가혹한 시절을 한발 물러서 조망할 셈이던 사내 장현(남궁민)은 부채를 칼로 바꿔 쥐었고, 포근한 이불을 뒤채며 잠꼬대를 하던 능군리 사족 처녀 길채(안은진)는 빨간 실타래를 따라 낭군님을 찾던 그 꿈을 피난길 한뎃잠을 자며 꾼다. 장현과 길채는 어긋나길 반복하면서도 구하고 지키며 살고자 하는 길이 자꾸 맞닿는 연인이다.
서로 옆모습을 좇는 시선이 비애가 되지 않도록 길채의 동무 은애(이다인)는 “겁나고 무서운 일이 있을 땐 가장 의지되는 사람을 찾”는다며 전쟁 소식에 길채가 누굴 보았는지 장현에게 알려주었다. 저도 모르게 가닿는 시선만큼 절박할 때 떠올리는 회상 신 역시 중요하다. 은애를 겁탈하려던 오랑캐를 길채가 칼로 찌르고 함께 사체를 처리한 은애가 떠올린 것은 마을 어른의 가르침이었다. “여인이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경우 죽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잠시 적과 얼굴을 마주했다 해도 살 수가 있겠느냐”는 말, 줄곧 배우고 의지했던 가치가
[유선주의 드라마톡]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