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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일본 작가 중 하나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1997년작 단편집. 주인공인 ‘나’는 스물다섯살로, 초등학교에서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파견되는 학교마다 괴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여교사가 학교체육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고, 자살을 시도하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초임 교사가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까지 일어난다. 그리고 사건을 풀어나가던 그는 뜻밖의 진실을 알게 된다.
[도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1997년작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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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전국 사찰에서 그랬듯이, 이제 일본의 나라에 가면 이 책을 든 한국 관광객을 만나게 될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 출간되었다. 이전 책들이 유홍준의 ‘홈그라운드’인 한국의 명승지, 사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넘치는 이야기를 쳐내느라 고민이었겠다 싶을 정도로 정보와 통찰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빽빽했다면, 이번 일본편은 아무래도 낯설 수 있는 타지를 관광객으로서 바라보는 내용이 된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자연과 고건축, 역사를 통해 반추한다. 당연히, 지금껏 일본을 다룬 그 어떤 가이드북이나 여행 에세이보다도 특이한 장소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벚꽃놀이를 즐기는 일본에 대해 말하기 위해 여타 책들이 간사이 지역에서 교토의 마루야마 공원을 언급할 때, 이 책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즐겼다는 요시노의 사쿠라를 말한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좁은 산길을 비집고 산턱까지 온통 연분홍빛이라 사진으로
[도서] 일본, 알아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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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목욕탕 설계사 루시우스가 경험하는 현대 일본으로의 코믹 시간여행. <테르마이 로마이>의 황당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전적으로 아베 히로시의 몫이다. 189cm의 큰 키, 이국적인 마스크의 아베 히로시는 ‘평안족’(얼굴이 평평하다 하여)이라 불리는 일본인들 사이에 뚝 떨어진, 고대로마인 ‘루시우스’ 역을 감쪽같이 연기해낸다. 로마인 복장과 말투를 구사하는 루시우스는 저 혼자 더없이 진지하고 그래서 코믹하다. 이런 시도는 연기자가 된 뒤 초창기 모델의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해온 아베 히로시에게는 낯선 선택이 아니다. <걸어도 걸어도>나 <고잉 마이 홈> 속에서 싱거운 가장을 연기하는 기술과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크게 과장하지 않는 대신 그는 놓인 상황 안에서 최대한 그럴 법한 이미지를 연출해낼 줄 아는 배우다. <테르마이 로마이>는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벌써 속편 촬영을 마친 상태다. 아
[flash on] 진지해서 더 웃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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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하는 분들께 건네는 내 식의 감사인사다.” 김려령 작가는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다. 동화부터 청소년 소설까지 어린 독자들을 위한 소설을 주로 써온 김려령 작가가 성인을 위한 소설 <너를 봤어>를 펴내고 <씨네21>의 인터뷰를 받아들인 이유는 그랬다. “<완득이>라는 콘텐츠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골목골목까지 파고들게 한 흡수력을 책이 갖기 위해서는 200만부는 넘게 팔려야 했을 텐데…. 영화인들에게 일종의 빚을 졌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녀가 쓴 또 한권의 청소년 소설 <우아한 거짓말>도 곧 이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다. <너를 봤어>를 계기로 전체 관람가 영화뿐 아니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김려령표 영화를 머지않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처음 ‘성인을 위한’ 책(<너를 봤어>)을 썼다고 새삼 주목하는 분위기가 불편한 면도 있을 것 같다. 작가로서는 일관된 작업일 텐데.
=청소년 작가라는 틀에 대해 어
[trans x cross] 소설은 생(生)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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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세계지도부터 펼쳐봐야 할 것 같다. 부산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7월30일부터 8월25일까지 열리는 ‘서머 스페셜 2013-영화, 세상을 유목하다’는 그 부제에 걸맞게 세계 각 지역의 다채로운 풍경을 스크린 속에 펼쳐낸다.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에릭 로메르의 <녹색 광선>, 자크 타티의 <윌로씨의 휴가> 등 여름 휴가지의 공기를 임계점까지 압축한 영화들에서부터 <아이 엠 러브> <미드나잇 인 파리> 등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최근 개봉작들까지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다.
4개 섹션 중 지중해의 경관을 담은 ‘지중해의 기억’ 섹션이나 <퐁네프의 연인>이 속해 있는 ‘도시의 연가’ 섹션, 허우샤오시엔의 <동동의 여름방학>을 만날 수 있는 ‘휴가의 추억’ 섹션도 기대되지만 가장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건 바로 ‘세상 끝에서’ 섹션이다. 다른 상영작들이 비교적 우
[영화제] ‘세상의 끝’으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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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롱 워크 투 프리덤> Mandela: Long Walk to Freedom
감독 저스틴 채드윅 / 출연 이드리스 엘바, 나오미 해리스, 로버트 홉스
남아공의 위대한 지도자 넬슨 만델라의 일대기를 그린 <만델라: 롱 워크 투 프리덤>의 예고편이 공개됐다. 남아공의 민주화운동을 이끈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 각본은 <레미제라블>의 윌리엄 니콜슨이, 연출은 <천일의 스캔들>의 저스틴 채드윅이 맡았다.
[WHAT'S UP] <만델라: 롱 워크 투 프리덤> Mandela: Long Walk to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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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은 7월과 8월, 열린 하늘 아래에서 영화를 본다. 개봉관들은 서서히 문을 닫고 휴가 갈 준비로 분주할 때, 다른 한편에서는 광장에 영사기와 스크린을 설치하느라 바쁘다. 7월1일부터 9월1일까지 로마 시내의 천사의 성(Arena di Castel Sant’Angelo), 베드로 성(Arena del Chiostro di San Pietro in Vincoli), 가르바텔라(Arena di Garbatella), 이솔라 티베리나(Arena d’isola Tiberina), 시네무닉스(Arena Cinemunix), 몬테베르데(Arena di Monteverde) 등 11곳에서 야외극장이 열린다.
판아스협회(l’associazione Pan Ars)가 1991년부터 문화 이벤트의 하나로 이끌어가고 있는 로마의 여름 야외상영관은 로마의 여름을 상징하는 이벤트로 자리잡고 있다. 개봉관의 영화티켓 가격이 7.5유로인 데 반해 야외극장은 5유로에 티켓을 판매한다. 관객에게 경제적 부
[로마] 한여름의 시네마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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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Jobs
감독 조슈아 마이클 스턴 / 출연 애시튼 커처, 조시 게드, 더모트 멀로니, 매튜 모딘 / 수입 (주)누리픽쳐스 / 배급 NEW / 개봉 8월29일
2011년 10월5일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떴다.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를 추모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할리우드는 스티브 잡스의 전기영화를 만들었다. <잡스>는 ‘청년’ 잡스를 스크린으로 불러낸다. 대학을 자퇴하고, 스티브 워즈니악과 자신의 집 차고에서 애플을 설립하고,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세상에 내놓고, CEO로 승승장구하고,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내쫓겨 좌절을 맛보고, 11년 뒤 애플의 구원투수로 컴백하기까지의 과정을 영화는 차근차근 담아낸다. 사실 <잡스>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건 널리 알려진 잡스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우리가 몰랐던 잡스의 내면 혹은 이면을 영화가 어떻게 포착해낼지가 중요해 보인다. 잡스로 변신한 애시튼 커처도 영화에 대한 기대
[Coming Soon] 스티브 잡스의 내면 혹은 이면 <잡스> Jo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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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도둑 윌(니콜라스 케이지)은 그를 주시하고 있던 경찰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동료들과 함께 은행을 턴다. 1천만달러를 가지고 나오던 윌과 빈센트(조시 루카스)는 청소부와 마주치고 빈센트는 청소부가 그들의 얼굴을 봤다며 그를 죽이려 하지만 윌은 살인은 안된다며 그를 말린다. 그러던 도중에 빈센트는 자신의 다리를 총으로 쏘게 되고 경찰에 쫓기던 동료들은 윌만 남겨놓고 도주한다. 윌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 1천만달러를 불태우고 혼자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8년 뒤 윌은 출감하지만 FBI는 1천만달러의 행방을 의심하며 여전히 윌을 주시한다. 윌은 딸 엘리슨(사미 게일)을 제일 먼저 찾아가지만 엘리슨은 그를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다리를 자르고 윌을 원망하며 살던 빈센트는 윌이 1천만달러를 감추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엘리슨을 납치한다. 윌은 죽은 줄만 알았던 빈센트의 전화를 받고, 빈센트는 윌에게 12시간 안에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한다. 윌은 다시 은행을 털 계획을 세
도둑의 주도면밀함과 아버지의 부성애 <스톨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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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살 독신 남성 마르탱 카진스키(카드 므라드)는 어느 날 벼락스타가 됐다. 이유없이 유명해진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인 <슈퍼스타>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사진과 동영상이 신문과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는 “내가 왜?”라는 의문에 휩싸인 채 당혹스러운 현실과 맞닥뜨린다.
전자제품 재활용 공장에서 일하는 마르탱은 인생의 목표를 거창한 데서 찾지 않는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인을 부탁하고 사진을 찍어댄다. 단순히 길을 걷는 모습부터 어린 시절 사진까지 그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뉴스가 되자 점점 그의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어디를 가도 몰려드는 인파와 방송 기자들 때문에 직장생활도 할 수 없게 되고 심지어 자기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이 모든 일이 그에게는 악몽이지만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어떻게 끝낼 수 있는지 해답을 구할 길이 없다. 방송국 PD 플뢰
하루아침에 벼락스타가 된 평범한 남자 <슈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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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학자 아빠와 함께 러시아 습지에서 학을 관찰하던 이고르(이타이 슈체르베크)는 갓 태어난 새끼 학에게 ‘칼’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고르에겐 평생 한짝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다정한 학의 모습이 부모가 이혼한 자신의 가족 모습과 대조되어 보인다. 이고르는 학과 함께 이동하는 아빠와 좀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섭섭하다. 아빠는 이스라엘을 경유해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철새들을 취재해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리고, 이고르는 이를 통해 칼의 이동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엄마와 함께 낯선 이스라엘로 이민가게 된 이고르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인터넷도 잘 안되는 곳에서 적응의 문제를 겪는다. 외롭고 쓸쓸할 때 상상 속에서 이고르를 위로해주는 것은 저 먼 곳으로 꿋꿋이 날아가는 새떼들의 자유로운 비행이다.
러시아 습지에서 여름을 보내다 흑해를 건너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 학은 무리를 지어 머나먼 길을 여행한다. 폭풍으로 부모를 잃고 약한 몸으로 10여 시간에 달하는 비행을 통
새들의 자유로운 비행 <이고르와 학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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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오토바이 곡예를 하는 루크(라이언 고슬링)에겐 삶의 목적도 전망도 없다. 1년 만에 찾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는 자신에게 아이가 생겼음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자신을 세상에 연루시키는 유일한 접속점을 찾은 듯, 그는 마을에 정착하기로 하고는 아이 부양을 위해 은행강도를 시작한다. 한편 신참 경찰관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는 마침 은행을 턴 뒤 운 나쁘게 걸려 도주하던 루크와 총격전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전혀 무관하던 이들의 삶은 시간을 경유하여 자식들에게 이어지며, 경찰 에이버리는 15년 뒤 검찰총장 선거에 나가게 될 만큼 크게 성공하게 된다.
영화는 “나처럼 쓸모없는 놈이 사랑받지 않는 것은 당연해”라며 황량하고 쓸쓸하게 살아가던 루크의 뒷모습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순수한 줄 알았지만 주어진 위기와 상황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을 만큼 명민한 에이버리의 야심을 따라간다. 대단히 느리게 흐르던 시간은 15년을 건너뛰어 이들의 아들들인 제임스와 A.J.의 이야
반복되는 비극적 운명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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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점의 지점장인 산드라(앤 도드)는 전날 직원이 냉장고 문을 닫지 않아 큰 손해를 보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금요일의 매장은 정신없이 분주하다. 이때 경찰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경찰은 금발 머리의 여직원이 손님의 돈을 훔쳤다고 얘기한다. 산드라는 배키(드리마 월커)를 불러 추궁하지만 배키는 절대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산드라는 배키가 그럴 직원이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경찰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 산드라는 어쩔 수 없이 배키의 가방과 옷, 그리고 알몸까지 수사한다. 알몸으로 앞치마만 겨우 두른 배키, 감시를 원하는 경찰의 요구에 일손이 부족한 산드라는 자신의 약혼자 밴을 불러 배키를 감시하게 한다.
영화는 경찰과 법, 권위와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맹목적으로 그것에 복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배키는 피해자이고 산드라와 밴은 가해자인가? 영화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는다. 검찰의 취조에 산드라는 배키가 동의했다고 얘기한다. 배키는 시키니까 그냥 했다
우리 사회의 풍경 <컴플라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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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빙하기 도래 뒤 17년째, 한대의 기차가 지상에 남은 모든 인간 생존자를 싣고 거대한 순환선 위를 한정없이 달리고 있다. 이 좁고 긴 ‘노아의 방주’는 인간사회의 축소판이자 <메트로폴리스>부터 <매트릭스>까지 이어져온 파시즘적 가상세계의 신판본이다. <설국열차> 버전의 네오는 꼬리칸의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폭동을 이끄는 그의 최종 목표는 계급간 갈등을 유지, 조절하여 설국열차의 영속을 꾀하는 윌포드(에드 해리스)로부터 엔진을 뺏는 것이다. 그는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와 요나(고아성) 부녀의 도움을 받아 한칸 한칸 전진한다.
봉준호는 이 영화에 “기차라는 영화적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 무시무시함은 의외로 액션보다 밀폐감에서 기인한다. 윌포드는 설국열차가 하나의 “폐쇄된 생태계”임을 강조하는데, 그 표현은 영화 밖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기차의 수많은 창문은 밖을 내다보기 위해서가
하나의 “폐쇄된 생태계” <설국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