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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타고 뭉개고 떼쓰고 김빼고 우기고 시간끌고 잠수타고…. 흡사 얼음땡과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을 맥락없이 섞어놓은 듯한 ‘국조 놀이’를 해오던 새누리당이 급기야 생억지 덮어씌우기를 한다. 민주당의 장외투쟁 선언에 대해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원 국정조사를 대선 불복 정치공세의 장으로 만들려다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판을 뒤엎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끙. 무거운 몸을 이끌고 촛불집회에라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새 애도 많이 자라 쇠고기 촛불집회 때와는 달리 일몰 이후 외출도 가능하거든.
이런 생떼는 야당이 아니라 국민을 모욕하는 것이다. 댓글공작 등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의 실체를 밝힌다고 대선 결과가 취소되리라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여론에 밀려 국정조사 시늉만 하고 싶은 마음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그 방법이 치졸해도 너무 치졸하다. ‘셀프감금’을 했던 국정원 직원 문제를 끌어대(경찰이 밖에서 문 열라는데 스스로 문을 걸어잠근 게 어떻게 감금이며 인권유린일까) 그 현장
[김소희의 오마이 이슈] 새누리당의 국조 까꿍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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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감독으로서 자기 영화의 배우들을 향해 ‘환상의 조합’이라 부르는 건 너무 당연한 인사치레 같지만, 지금도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의 배우들을 ‘꿈의 캐스팅’이라 느낀다. 한정된 세트에서 거의 100% 촬영하다보니 그의 이전 영화들에 비해 로케이션의 다채로운 재미가 대폭 줄었지만, 매 순간 자신의 개인기를 유감없이 펼치고 사라지는 크고 작은 배우들의 매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만큼 그에게 <설국열차>는 ‘배우의 맛’으로 버틸 수 있었던 영화다.
먼저 봉준호 감독의 헤어스타일을 두고 장난스럽게 “그레이트 헤어!”라 명명한 크리스 에반스는, <살인의 추억>(2003)과 <마더>(2009)를 챙겨보고 분석하며 <설국열차> 오디션에 적극적으로 응한 배우다. 사실 봉준호 감독에게 그의 첫인상은 ‘몸 좋은 미국 고등학생’이었지만 만남을 거듭할수록 반전의 매력을 느꼈다.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봉준호] 엔진을 움켜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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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봉준호는 영화적 동지이자 존경하는 감독이고, 사적으로는 친한 후배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송강호의 가슴 뭉클한 정의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에 이어 <설국열차>에 탑승한 그는 빙하기만큼이나 길었던 4년의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쭉 지켜본 파트너다. “<살인의 추억> 때부터 그랬는데, 봉준호 감독과 나는 말을 그렇게 많이 안 한다. 왜 내가 여기 나와야 하고, 왜 나는 다른 배우들처럼 영어가 아닌 한국어를 써야 하고, 이런 데 대해서 서로 말이 없다. 물어보기도 귀찮고, 봉준호도 ‘뭐 그런 걸 물어봐, 알아서 하지’ 이런 시스템으로 서로 일해왔다. 봉준호는 내가 어떻게 하나 볼 뿐이고, 나는 또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웃음)” <설국열차>에 따라붙는 거창한 수식보다 그는 봉준호 감독과의 세 번째 작업에 의미를 더 부여한다.
<설국열차>에서 송강호는 키플레이어다. 바로 영
[송강호] 긴장과 이완으로 무장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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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에서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 꼬리칸, 그곳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긴 세월 준비해온 폭동을 일으킨다.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장악하고 절대권력자 윌포드를 굴복시켜 마침내 기차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열차칸의 문을 하나하나 열 때마다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그를 기다린다. 플래시백도 없이 오직 직진만 거듭하는 이 게임과도 같은 영화에서 크리스 에반스는 뒤돌아보지 않는 불굴의 주인공이다. 이에 대해 그는 ‘모두가 자기 하나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숙명’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력에 대한 욕구와 모두를 돌보고자 하는 자애로운 마음, 그리고 과거로부터 비롯된 죄책감과 수치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복합적인 인물이지만 약한 모습을 절대 내비칠 수 없는 고단한 리더의 운명”이 바로 그가 얘기하는 커티스의 핵심이다.
이쯤에서 그가 연기한 수많은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스쳐 지나간다. 먼저 <설국열차>에서 ‘불’이
[크리스 에반스] 나는 직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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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제작진을 취재하러 모인 수많은 매체를 수용하기 위해 제작사가 한층을 통째로 인터뷰 룸으로 세내다시피한 호텔 복도를 성큼성큼 가로지르다가 틸다 스윈튼이 킥 웃었다. “꼭 공항 보딩 게이트 같지 않아요? 저 문으로 들어가면 부산, 이 문으로 가면 서울로 날아가는 거예요.” 인터뷰 전날 입국한 틸다 스윈튼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설국열차>의 최종 편집본부터 시사했다. “크리스의 손에서도 커티스는 이미 흥미로운 인물이었지만 완성본을 보고나서야 <설국열차>가 리더십이라는 주제에 대해 얼마나 깊고 현대적이며 정치적인 탐구인지 알았어요.”
질서가 곧 생존이라고 또박또박 역설하는 <설국열차>의 메이슨 총리를 객석에서 바라보며, 나는 진보적 예술가로서 견해를 숨긴 적 없는 현실의 틸다 스윈튼이 메이슨의 논지를 말끝마다 반박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실없이 웃었다. 당신과 정반대인 여자를 연기하는 재미가 무엇이었냐고 묻자 그녀는 “누가 여자래요?
[틸다 스윈튼] 누가 여자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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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의 탑승자들이 다시 모였다. 영화 속 절대권력자 윌포드(에드 해리스) 위의 진짜 권력자 봉준호 감독까지, 17년째 끝없이 같은 궤도를 달리던 설국열차에서 내려온 그들이 편한 표정으로 만났다. 꼬리칸의 리더이자 봉기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 에반스는 수염을 깎고 모자를 벗어 마치 청춘영화의 주인공처럼 카메라 앞에 섰고, 굵은 뿔테 안경과 무채색의 코트를 벗어던진 틸다 스윈튼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창백한 매력을 뽐냈으며, 송강호 역시 오랜 파트너 봉준호 감독과 함께 그들을 안내했다. 봉 감독을 향한 그들의 애정은 변함없었다. “배우를 다루는 데는 타고난 감독”이라는 게 그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봉 감독 또한 그들의 장점을 하나둘 열거하며 맞받아쳤다. 특별한 사전 협의 없이 공교롭게도 서로 비슷한 의상 컨셉으로 모이게 되자, “우리는 <맨 인 블랙>!”이라는 틸다 스윈튼의 얘기처럼 내내 화기애애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설국열차] TEAM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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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직으로 물러난 방송계의 유명 앵커 윤영화(하정우)가 테러범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생방송의 이슈로 삼아 자신의 위상을 복구하려다가 도리어 그 테러사건의 중심으로 휩쓸리고 만다. 주인공은 정해진 장소를 벗어날 수 없으며 영화 속 시간은 거의 실시간에 맞춰 앞으로 달려간다. <더 테러 라이브>의 내용과 형식이다. 생전 처음 보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 장점이 있다면, 그건 적당한 기획 아이디어만으로는 돌파되지 않았을 지점들을 돌파해내는 창작자의 특별한 뚝심과 고집에 있다. 게다가 그걸 해낸 이가 이제 막 상업영화에 발을 뗀 경우라면, 그 사람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테러 라이브>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병우 감독을 만난 이유다.
-뉴스 속보들을 보면서 <더 테러 라이브>를 떠올렸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디어 구축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그 일화는 사실 일부분이라고 말해야 할 거다. 크게 본다면, 이 영화를 어떻게 만
[김병우] 끝까지 속도감 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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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감독 데이비드 O. 러셀 / 출연 제니퍼 로렌스, 브래들리 쿠퍼(왼쪽)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감독 제임스 L. 브룩스 / 출연 잭 니콜슨, 헬렌 헌트(오른쪽)
쩨쩨한 남자들이 판을 친다. 다른 곳도 아니고 로맨틱코미디에서 말이다. <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나 <노팅힐>의 휴 그랜트 같은 신사적이고 감미로운 남자주인공들은 애초에 멸종됐다. 그들을 보내고 얻은 남자라고 해봤자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패트릭(브래들리 쿠퍼)같은 ‘정신 나간 놈’뿐이니 확실히 이건 남는 장사가 아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패트릭은 분노조절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같은 동네 사는 여자 티파니(제니퍼 로렌스)가 패트릭의 영혼에 구세주로 다가온다. 남편 죽고 닥치는 대로 딴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다는 티파니도 미친 강도로 따지면 패트릭과 맞먹는 지경이지만, 적어도 패트릭보다는 이성적이다. 따지고 보면 지친 영혼을
[digital cable VOD] 쩨쩨한 로맨스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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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일기>를 쓴 아르투로 파올리는 이탈리아의 신부다. 세계대전 동안 동료 사제들과 800명이 넘는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그는 1954년 아르헨티나행 배를 탄 뒤 알제리의 사막에서 수련하고 해방신학의 선두주자로서 라틴아메리카에서 45년을 보냈다. 종교인이 쓴 책이지만 힐링이라는 당의정을 상처에 바르고 핥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도시에서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과도 완전히 다른 사막에서의 시간. 당연한 말이겠지만 <사막일기>는 사막이라는 장소에서 신을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파올리가 사막에서 지내게 된 이유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를 만나 수련을 받기 위해서였다. 사하라 사막에서 홀로 죽은 샤를 드 푸코의 뒤를 이어 엄격한 봉쇄 기도 생활, 성체 조배와 노동을 하며 지내던 ‘예수의 작은 형제회’의 수도사들은 전쟁에 참전하면서 사회와 교회로부터 소회되는 가난한 이웃들을 돕게 된다. 처음부터 원대한 뜻을 품고 사막으로 향한 것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사하라에서 신을, 시베리아에서 인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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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가장 큰 공포는 인간이 100살까지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직장생활로는 반평생 실직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알렉스>를 쓴 프랑스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는 57살의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대기업의 채용에 응시하기 위해 가상 인질극을 벌여야 하는 알랭 들랑브르는 합격자가 내정돼 있다는 말을 듣고 극단적인 수단을 쓰기로 한다. 르메트르의 아버지가 50대 중반에 실직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도서] 반평생 실직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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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필로우 토크~침대를 향한 기대~>의 원작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다나베 세이코가 쓴 또 한편의 연애소설이다. 남자가 ‘갈까’라고 말하면 당연히 러브호텔에 가자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나이와 경험의 여자주인공에게 사랑은 어떻게 다가올까. <아주 사적인 시간>을 비롯해 다나베 세이코표 연애소설 특유의 시니컬하고 때로 잔인한 현실감각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도서] 다나베 세이코표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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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등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 강신주가 무슨 질문에든 다 답해준다. 1권은 사랑, 몸, 고독에 대해, 2권은 일, 정치, 쫄지마라는 주제에 대해 상담 사연을 받고 그에 대해 답한다. 무난하고 착하게 사는 게 목표일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언제나 절대 착하게 살지 말 것, 부모 말만 듣지 말고 적당한 때 집을 나올 것을 권하는 그의 조언은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지만 효과는 뛰어나다.
[도서] 착하게 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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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에서는 나이듦을 이렇게 말한다. “세상 모든 일이 반복인 것처럼, 두 번째, 세 번째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지는, 그런 시기.”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의 나이듦은 조금 복잡하다. 엄밀히 따지고 들자면 칠순의 나이가 문제라기보다는 병, 그러니까 알츠하이머가 문제라서다.
아버지를 죽인 일을 시작으로 30년간 꾸준히 사람을 죽여오다 25년 전부터는 그 일을 그만두고 살아가는 연쇄살인범 김병수에게는 모든 일이 전에 없던 것처럼 느껴져서 문제다. 그에게 모든 사건은 낡고 닳고 뻔한 게 아니라 매번 새롭고 위태롭고 이상한 것이 된다. 매번 글로 기록하고 목소리를 녹음해서 어떻게든 기억해보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다. 개는 있다 없다 하는데 그가 키우는 개인지 남의 집 개인지 매번 헷갈린다. 수상한 사람이 보인다. 그래도 상관없었을지 모른다. 그의 딸이 위기에 처한 게 아니라면. 아, 딸 은희 얘기를 빼먹었나. 그 옛날 그의 손에 죽은 부부의
[도서] 한 살인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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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후앙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은 통각상실증 환자들을 영화의 도구로 사용해 인간 내면의 잔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과감한 교차편집으로 과거와 현재의 서사를 잇는다. 스페인 내전 발발 직전의 한 마을, 베르카노(토마스 레마르퀴스)를 비롯해 통각상실증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은 외딴 병원에 실험체로 수감된다. 병원에 갇힌 채로 자란 베르카노는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해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으로 성장한다. 한편, 현재 시점에서 외과의사 다비드(알렉스 브렌데뮬)는 희귀병에 걸려 부모의 골수를 기증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진짜 부모를 찾아나서고,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끔찍한 과거와 만나게 된다.
-내전에 관한 일종의 죄의식이 영화 곳곳에서 엿보인다.
=스페인의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는 스페인 사회의 한 단면을 카인과 아벨에 빗댄 적이 있다. 영화에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사실은 피를 정화하기 위해서였다”는 대사를 넣은 것
[flash on] “편집의 아이디어는 <대부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