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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팬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마블 유니버스에 신대륙을 더했다. <블랙팬서>에서 인물의 동기는 액션의 핑계를 넘어 실제 세계의 이슈와 직결된다. 와칸다인의 패션과 문화도 어슷비슷한 마블 히어로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에 익숙해진 관객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와칸다의 다섯 부족이 모여 티찰라(채드윅 보스먼)의 즉위를 결정하는 의식은 <블랙팬서>의 첫 정점이다. 얼핏 클리셰 같지만 의식은 합리적이고 의미심장하다. 후계자는 블랙팬서의 초능력을 빼고도 왕의 자격이 있는지 시험받고, 도전 기회는 모든 부족에 개방된다. 신성한 결투장의 경계를 짓는 것은 대자연, 폭포와 절벽이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성장한 부족 대표들은 특정인의 생사를 떠나, 장쾌한 노래와 춤으로 새 시대를 기념한다. <블랙팬서>는 “백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흑인이기에” 멋진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02/07
라울 펙 감독의 <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블랙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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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의 시선은 항상 소외된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장편 데뷔작 <세 친구>(1996)는 갓 20대가 된 청년들이 겪는 온갖 폭력을 그렸고, 청춘을 지나보낸 중년 남성의 안간힘을 담은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나 비인기 스포츠를 하는 중년 여성의 고충을 포착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은 말할 것도 없다. <날아라 펭귄>(2009)을 포함해 누구보다 국가인권위원회 제작 작품을 많이 연출했고, 2009년부터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도 역임하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 역시 여전히 고민 많은 이들을 보여준다. 수능시험을 치른 엄마(문소리)가 집을 나갔고, 애인만 시험에 붙고 자신은 임용고시에 떨어져 고향에 잠시 내려온 혜원(김태리)의 상황은 한없이 우울하게 풀어낼 수도 있다. 시골에서만 자란 은숙(진기주)이 회사에서 계약직으로서 겪는 고충이나 멀쩡히 다니던 대기업을 나와 시골로 내려온 재하(류준열)의 고민도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 자기에게 맞는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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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놓는 작품마다 파란을 불러일으킨다. 숀 베이커는 아마도 작가라는 명칭에 가장 어울리는 미국의 젊은 감독일 것이다. 천재, 혁신가로 불리며 오스카가 주목하는 그의 행보에 대해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1. 기발, 창의, 혁신
숀 베이커를 수식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지만 그를 향한 찬사는 이 세 마디 안에 녹아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테이크 아웃>으로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화제를 모은 후부터 숀 베이커의 행보는 곧 미국 독립영화의 현주소가 되었다. 영화광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자산을 영화에 녹여내는 대신 피해가는 방식을 선택한다. 흔히 말하는 인용이나 헌사 대신 여느 영화들의 색깔들을 조금씩 비껴가는 기발한 지점에서 영화를 출발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없던 걸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익숙하되 조금 다른, 요컨대 자기 식으로 소화한 문법들을 선보이는 쪽에 가깝다. 가령 할머니와 포르노 여배우의 우정을 다룬 <스타렛>의 전반은 비밀을 밝히
숀 베이커를 처음 만난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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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지개가 빛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른이 된 지금은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환상이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환상은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의 빛살을 받아 구성된 또 하나의 진실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미국 하층민들의 삶을 끌어안는다. 함부로 연민하거나 재단하는 일 없이 그저 일상의 자잘한 조작들을 끌어모으는 이 영화는 종국에는 가슴 한구석에 쉽게 지울 수 없는 인장을 새긴다. 누군가에겐 달콤하고 누군가에겐 씁쓸한 얼룩들. <탠저린>(2015)에 이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선보인 숀 베이커 감독은 이제 명실상부 미국의 차세대 작가로 주목할 만하다. 동시대 사회를 날카롭게 포착하여 아이들의 시선으로 다시금 접근한 이 영화는 실로 매혹적이고 생기가 넘친다. 물론 그 놀라운 성취와 숀 베이커 감독의 면면을 짧은 지면 안에 다 담을 순 없을 것이다.
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현실과 동화 사이에 숨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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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프랑스는 수많은 영화 특수효과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다. 특수효과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톱 20개의 학교 중 네곳이 프랑스에 있으며, 특수효과 전문 기업도 80여개에 달한다. 하지만 그동안 프랑스는 자국영화에 투입되는 특수효과마저 절반 이상을 외국 기업에 빼앗겨왔다. 이에 2017년부터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entre National de la Cinematographie, CNC)는 특수효과 촬영의 국내 재유치를 위해 대대적인 세금 감면과 보조금 지원을 시작했다. 이 사업 홍보의 일환으로 CNC는 문화부, 고등교육부와 공동으로 파리의 라빌레트 과학산업관에서 관객이 여러 가지 특수효과 기술을 인터랙티브 모드로 경험할 수 있는 <스크린을 뚫어라!> 전시회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전시회에는 영화의 마법사라 불리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갖가지 초기 트릭에서부터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엑스맨> &l
[파리] 영화 특수효과의 비밀을 공개하는 <스크린을 뚫어라!> 전시회, 큰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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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1979년 6월,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복합적 작업에 착수한다. 살해당한 세 친구들을 통해 미국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메드가 에버스, 마틴 루서 킹, 맬컴 엑스. 30페이지밖에 쓰지 못한 이 글의 제목은 <리멤버 디스 하우스>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복합적 작업’(complex endeavor)이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에는 볼드윈이 남긴 미완의 글에 대한 라울 펙 감독 자신의 해석과 평가가 담겨 있는데, 그것은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라는 영화에도 잘 어울리는 말이다. 라울 펙은 볼드윈의 글에서 어떤 복합성을 감지했다.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그 풍부한 뉘앙스를 한편의 영화에 온전하게 담아내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 영화는 제임스 볼드윈의 문학적 에세이(또는 글쓰기를 위한 노트)를 충실하게 번역한(또는 완성한) ‘에세이 필름’이고, 한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는 제임스 볼드윈에 대한 단순한 전기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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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검색해본 우리나라의 해외 유학생 숫자는 지난해 기준 26만여명. 또한 국내로 유학 오는 외국인 유학생은 14만2천여명에 달한다. 이민과 단기 거주자 등을 합한다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난다고 볼 수 있겠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숫자들을 늘어놓는가 하면 역시 이 프로그램 때문이다.
XtvN에서 매주 월요일 방송되고 있는, 이제 막 방송을 시작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자칭 ‘글로벌 미팅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길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제목에서, 부제에서 이미 프로그램의 지향점을 알 수 있다. 비록 번역이 어색해져버린 동명의 영화 타이틀을 빌려오긴 했지만 ‘Lost In Translation?’ 그 뜻이 명확히 전달되는 것은 일단 성공적이다. 2017년을 강타한 영화 <라라랜드>의 O.S.T <City of Stars>가 흘러나오면서 일본, 프랑스, 영국, 모로코 등에서 온 8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그리고 세번의 합숙과 두번
[TVIEW]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색다른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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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제작 폴룩스(주)바른손 / 감독 추창민 / 출연 류승룡, 장동건, 송새벽, 고경표 / 배급 CJ엔터테인먼트 / 개봉 3월 28일
정유정 작가의 원작 소설 <7년의 밤>을 처음 읽었을 때 이야기 속 공간이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의 줄거리는 소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현수(류승룡)는 인적이 드문 세령마을의 댐 관리팀장으로 부임을 앞두고 가족이 지낼 사택을 보러 간다. 안개가 짙게 깔린 마을 입구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든 여자아이를 치어 교통사고를 낸다. 갑작스러운 일에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아이를 호수에 버린다. 아이가 실종되면서 마을은 발칵 뒤집히고, 수색 작업이 시작된다. 마을 대지주이자 아이의 아버지인 오영제(장동건)는 아이의 주검을 보고 분노하고, 아이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고 판단해 직접 범인을 잡기 위해 증거를 모으기 시작한다. 전작 <광해, 왕이 된 남자
[Coming Soon] <7년의 밤>, 우발적 사고, 잘못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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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모궐> 羊の木
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 출연 니시키도료, 마쓰다 류헤이, 기무라 후미노
흉악범죄로 수감된 이들을 인구 감소 상태인 지방 마을에 정착시키려는 정부의 극비 프로젝트가 실행된다. 어촌 주민들 앞에 의문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마을에 불안이 감돈다. 인간성과 믿음에 대해 질문하는 묵직한 스릴러인 동시에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기이한 유머와 개성도 여전한 영화. ‘금구모궐’은 원작 만화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원제 ‘양의 나무’를 한국어 학명으로 바꾼 것이다.
[해외 박스오피스] 일본 2018.2.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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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파스빈더가 <쿵 퓨리> 속편에 출연한다.
<쿵 퓨리>는 2015년 데이비드 샌드버그가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독립영화로 올여름 속편 제작에 들어간다. 데이비드 핫셀호프,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출연한다.
-레아 세이두가 일디코 에네디 감독의 신작 <더 스토리 오브 마이 와이프>에 캐스팅됐다.
<더 스토리 오브 마이 와이프>는 헝가리 작가 밀런 푸스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일디코 에네디 감독이 직접 각색을 맡았다.
-중국영화가 단일 박스오피스 흥행 수익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중국 춘절 2월 16일 하루 동안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는 약 13억1700만위안(약 2240억원)을 돌파하며 기존의 최고 기록인 1억3700만달러(약 1470억 원, 2015년 12월 북 미박스오피스)를 뛰어넘었다.
레아 세이두, 일디코 에네디 감독 신작 <더 스토리 오브 마이 와이프> 캐스팅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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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흥부> 흥이 많은 흥부와 놀기 좋아하는 놀부
[정훈이 만화] <흥부> 흥이 많은 흥부와 놀기 좋아하는 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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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지를 남김없이 파낸 엄마가 누나의 귓속에 입술을 집어 넣고 속삭입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아이들은, 벌을 받게 된단다. 누나는 다리도 간지럽고 등도 간지럽지만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뾰족한 귀이개가 눈앞에서 어른거립니다.” (단편 <비밀동화>) 처연한 이야기를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들려주는 최은미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귀는 가렵고 손에는 땀이 나지만 그것이 어떤 감정 때문인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든 상태. 최은미 작가가 그려내는 지옥도에는 엄마에서 딸로, 그 딸에서 딸로 이어지는 대물림되는 고통이 있고, 각종 질병과 강박증에 지배당하다 패배하고 마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있다. 2008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단편 <울고 간다>가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한 최은미 작가는 두 권의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에서 이처럼 예정된 비극을 향해 걸어가는 인
[소설가⑥] <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작가, “내가 가장 공포를 느끼는 것들을 소설에 끌어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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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은 경계에 서 있는 작가다. 민음사, 문학동네에서 편집자로 일을 하다가 장르문학을 쓰게 됐고, 한때는 ‘오타쿠들의 여왕’이라 불리더니 “문학상이 필요해서 상을 받기 위해 쓴” <이만큼 가까이>는 판타지를 싹 뺀 성장물이었다. 첫 단행본 <덧니가 보고 싶어>는 원래 영화 시나리오 형태로 썼고, 결과적으로 엎어졌지만 지난해 지상파 드라마 대본을 쓰기도 했다. “나에게 맞는 형식은 단행본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아하지만, 꼭 소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난 소설가라기보다는 그냥 이야기 작가인 것 같다.” <피프티 피플>은 정세랑 작가의 독특한 경력과 유연함, 다양한 결이 반영된 작품이다. 주인공이 무려 50명인 독특한 구성으로, 각양각색의 인물이 고유의 에피소드를 가진다. 편집자 출신이라 “현 시대 내가 속한 공동체에 의미 있는 이야기인지를 따지게 된다”는 그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층간 소음 등 최근의 사회문제 또한 적극적으로 녹여
[소설가⑤] <피프티 피플> 정세랑 작가, “젊은 사람들 편을 들어주는 할머니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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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 사진 보여드릴까요?” 이종산 작가는 인터뷰 사진 이야기를 하다 말고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어 드랙 분장을 하고 퀴어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신중하지만 단호하게, 원하는 방향을 분명히 알고 향하는 <커스터머> 속 수니와 안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커스터머>는 SF이자 판타지이며 퀴어소설인 동시에 연애 이야기인데, 두 사람 사이에서 첫 감정이 솟고 압도하는 대목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인 소설이다. 소설 속 ‘커스터머’는 유전공학 기술로 신체를 ‘커스텀’해 바꾼 사람들을 말하지만,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내면을 커스텀하는 방식 중에는 사랑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나’를 알아가는 일에 더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빠지는 일. 한달음에 읽히는 10대 주인공의 감정을, 이종산 작가는 어떻게 써냈는지 알고 싶었다.
-<커스터머>도 그렇고, 전작들인 <코끼리는 안녕,> &
[소설가④] <커스터머> 이종산 작가, "퀴어문학임을 분명히 밝힌 작품이 더 늘어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