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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동 감독의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초보 순경의 야시시 내사랑 쟁탈전Director's Story90년대 중반 뉴욕대 영화·TV제작과에 들어갔을 때, 이건동(35) 감독의 머릿속에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경영 전공이 아니면 대학을 보내지 않겠다’는 부친의 눈을 피하기 위해 1991년 미국에 당도한 이래 한 학교에서 1년 이상 붙어 있지 않았던 그였기 때문이다. 플로리다, 인디애나, 필라델피아의 대학을 돌며 연극, 무용, 스페인어, 아동심리학 등 거듭 전공을 바꿔간 것은 끝없는 여정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과 관련이 깊다. 만약 그때 그가 뉴욕에서 곽경택 감독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더 많은 대학과 전공을 섭렵했을지도 모른다. 우연한 기회에 곽 감독의 <영창이야기>에서 붐마이크를 들게 된 그는 영화의 맛, 그리고 사람의 맛을 알게 됐다. “경택이 형처럼 인간적인 사람은 처음 만났다. 그리고 영화란 게 결국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이니
2003 화제의 뉴 프로젝트 11편 미리보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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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인, 도시와 영화에 관해 읊조리다빔 벤더스 걸작선 서울아트시네마에서 6월13일부터 19일까지 열려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빔 벤더스의 초기작 <도시의 앨리스>(1970)의 마지막 부분에는 주인공 필립이 “잃어버린 세상”이란 헤드라인이 붙은 존 포드의 부고 기사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은근슬쩍 암시하고 있듯 벤더스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그랬듯 존 포드를 흠모하고 존경한 영화감독이었다. 사실 그는 몇몇 평자들이 지적하듯이 과거에 존 포드가 영화를 통해 이뤘던 것을 그보다 이후의 영화로 재창조해낸 시네아스트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포드가 스크린 위에 그려놓은 것이 미국의 과거 세계의 풍경화였다면 벤더스가 자신의 캔버스 위에 펼쳐놓은 것은 현대사회의 씁쓸한 풍경화였다. 뿌리없고 외로운 사람들의 길 떠남을 카메라로 기록함으로써 창조된 황량하면서도 시적인 현대사회의 풍경화.주지하다시피 벤더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현대사회의 풍경화란 현
6월 13일부터 열리는 빔 벤더스 걸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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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예술가들, 신세기 할리우드 점령하다작가주의 블록버스터 시대 맞은 할리우드, 그 대변신 드라마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샘 레이미, 피터 잭슨, 브라이언 싱어, 리안, 워쇼스키… 이들이 누구인가. 신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영웅적 지휘자 아니던가. 그런데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들은 할리우드 변방의 예술파 혹은 컬트감독 아니었던가. 이건 정말 경악할, 아니 경이로운 일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이제 멍청하고 엉성하긴커녕 블록버스터 시대가 열린 1970년대 중반 이래 가장 심오하고 정교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 편집자1998년 10월, 유니버설픽처스는 재정난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개발 중이던 <헐크>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이미 2100만달러가 들어갔던 <헐크>는 <아마겟돈> <쥬만지>의 작가 조너선 헨슬리를 감독으로 정해두고 있었다. 그러나 2년 뒤 유니버설은 <헐크>의 봉인을 뜯었고, 리안을 불러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세대교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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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 감독<스파이더 맨>값비싼 실패작들이 휩쓸고 간 폐허 위에 <매트릭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리한 제작자 조엘 실버는 뭔가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안 가는 시나리오를 들고 온 워쇼스키 형제에게 <바운드>를 먼저 만들어보라고 했다. <바운드>는 4500만달러짜리 소박한 액션영화였지만, 동성간에 흐르는 애정과 적대감, 좁은 공간을 장악하는 스토리의 긴장이 살아 있는 영화였다. 실버는 감독으로서 그들의 능력을 평가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흐름을 바꾸는 커다란 굽이를 파냈다. 철학과 문학과 종교가 교접하고, 동양의 시선과 동선이 서양의 테크놀로지와 합창한 <매트릭스>는 성공한 한편의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라, 변두리에서 교류되던 동서양 관객의 취향과 문화가 한곳에서 만나 마침내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낸 기념비였고, 할리우드의 오래된 블록버스터 멘털리티를 한방에 날려보낸 혁명아였다. 그런 면에서 <매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세대교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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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영화제 최악의 해이해할 수 없는 <도그빌>과 <미스틱 리버> 수상 제외, 라인업도 부실황금종려상 <엘리펀트> 구스 반 산트(미국)심사위원 대상 <우작> 누리 빌게 세일란(터키)감독상 구스 반 산트 <엘리펀트> (미국)남우주연상 무자파 오즈데미르, 메메트 에민 토프락 <우작> (터키)여우주연상 마리 조세 코르제 <야만족의 침략>(캐나다)각본상 드니 아르캉 <야만족의 침략>(캐나다)심사위원상 <오후 5시> 사미라 마흐말바프(이란)황금촬영상 <리컨스트럭션> 크리스토퍼 보(덴마크)황금종려 단편상 <크래커 백> 글렌딘 이빈(호주)FIPRESCI상 <아버지와 아들> 알렉산더 소쿠로프(러시아)<아메리칸 스플렌더> 셰리 스프링어 버만(미국)<그날의 시간들> 제이미 로잘레스(스페인)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 <청춘의 베스트
2003 칸 영화제 결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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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칸에니콜 키드먼부터 키아누 리브스까지, 칸 레드카펫을 빛낸 스타들칸은 밤에 피어난다. 좀처럼 해가 기울지 않는 남프랑스의 바닷가에 슬그머니 어둠이 내리면, 빨간 주단 위로 별이 하나둘, 그리고 어느새 촘촘히 박히기 시작한다. 열이틀 동안 칸을 밝힌 그 스타들을, 여기 한자리에 불러모아본다.♣ 꼭 보고 말 거야. 이른 저녁부터 레드카펫 위의 스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뤼미에르 극장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룬다.(사진 왼쪽)♣ 눈이 부신 니콜 키드먼. “여우주연상은 내 차지라구”라고 말하는 듯 보무도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 그러나 그녀를 유난히 사랑한 칸영화제도, 그 사랑을 상으로 증명해 보이진 않았다.(사진 오른쪽)♣ “나, 집에 갈래.” 억지로 끌려나온 듯 심드렁한 모습의 키아누 리브스. 전용 이발사가 같이 못 온 모양이다. 레드카펫 입장 시간에도 지각해 <매트릭스2 리로디드> 팀의 애를 태웠다.(사진 왼쪽)♣ 아놀드 슈워제네거/ “나, 돌아왔어요!" 환갑
2003 칸 영화제 결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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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평단에서 좋아해? 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군”클린트 이스트우드부터 구로사와 기요시까지, 칸을 달군 감독 12人 어록영화보다는 사람이 남은 영화제. 칸을 다녀간 스타감독들이 그들의 작품에 대해, 영화제에 대해, 연출관과 세계관에 대해 솔직하고 대담하게 발언했다. 취재수첩을 뒤져 찾아낸 그들의 주옥같은 말, 말, 말들.클린트 이스트우드 (워너브러더스를 제작 파트너로 만나게 된 경위에 대해) 수많은 스튜디오가 이 프로젝트를 거절했다. 심지어 내가 잘 아는 스튜디오 관계자들로부터도 거절을 당했다. “우린 이거랑은 좀 다른 타입의 영화를 찾고 있네. 그리고 타이츠(긴축 재정을 의미하는 듯)는 자네하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 이건 요즘 기준으로는 저렴한 영화다. <미스틱 리버 리로디드>가 아니지 않은가. 결국 이 영화는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됐다. 워너브러더스와 빌리지 로드쇼에서 부분 투자를 했는데, 이렇게 해외영화제에 온 것이 그들에게 얼마간 기쁨과 보람이 됐으면 좋겠다
2003 칸 영화제 결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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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원인을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황금종려상과 감독상 휩쓴 <엘리펀트> 감독 구스 반 산트를 만나다꼭 1년 전 칸영화제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을 초청했었다. 미국사회에 전방위적 공격을 가하는 <볼링 포 콜럼바인>은 감독의 선언과 주장과 쇼맨십으로 가득한, 그렇게 떠들썩한 센세이션을 기도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소재를 정반대 스타일로 다룬 극영화 <엘리펀트>가 ‘애프터서비스’ 내지 ‘비교체험’을 권장하기라도 하듯이 올해 칸을 찾아왔다. 주관과 분석이 이상하리만치 배제돼 있는 ‘영상시’ <엘리펀트>는 욕구불만의 영화제 내방객은 물론, 잊혀져가는 어린 망자들의 넋을,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심사위원단은 영화제 규정(특정 작품에 상을 몰아주면 안 된다는)을 어기면서까지 <엘리펀트>와 구스 반 산트에게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안기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렸고,
2003 칸 영화제 결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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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와 체호프가 나의 스승”심사위원 대상받은 <우작> 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을 만나다터키 출신의 누리 빌게 세일란이 <작은 마을> 에 이은 세 번째 장편 <우작>을 들고 칸에 나타났을 때 “심상치 않을 것이다”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미지에 강하고 가족과 고향을 즐겨 이야기한다는 이 감독은 제작과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는 만능 영화인이라고도 알려져 있었다. 누리 빌게 세일란의 <우작>은 그래서 화제작이 드물었던 영화제 초반에 관심의 초점이 됐던 작품.<우작>은 두 남자의 이야기다. 또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이야기다. 공장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시골 총각은 이스탄불에 사는 사촌형 집에 머무른다. 청년이 찾는 이상적인 직업은 마음껏 세상을 돌아다니며, 미국달러도 벌 수 있는 외항 선원. 그러나 선원이 될 길은 요원해 보인다. 한편 사진작가인 사촌형은 이혼한 뒤 줄곧 혼자 살고 있고, 대화를 시도하는 사촌동생을 번번이 내친다
2003 칸 영화제 결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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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짐승처럼 영화를 탐식하다우아하고 감상적인 정성일의 칸영화제 오디세이, 그 마지막 장칸=정성일/영화평론가…(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이미 수상결과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나는 수상결과에 관심이 없다. 그건 파트리스 셰로와 11명의 심사위원들의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칸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따라서 칸에 관한 나의 이야기는 수상결과와 상관없는 것이다(상을 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그 영화가 좋아질 리 없으며 수상하지 못했다고 해서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결과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는 없다.우선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이 완전히 버림받은 것은 잘못이다. 만일 그가 <어둠 속의 댄서>에서 빈손으로 돌아갔다면, <도그빌>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스 폰 트리에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미’ 인터뷰에서 “모든 결과로부터 홀가분하다!”고 대답했다. 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스틱 리버>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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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예는 상하이의 시간에 씨줄과 날줄을 그리는 중이다. 1928년 만주에서 연인 사이인 일본인 이타미와 중국 처녀 딩후이(장쯔이)가 헤어진다. 그리고 1930년 상하이. 이타미는 중국 독립군들을 소탕하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고, 딩후이는 독립군을 위해 일하는 중이다. 물론 로우예답게 이 영화의 제목인 ‘자줏빛 나비’는 맥거핀이다. 나비 무늬의 옷 장식은 역에서 사람을 오인하게 만들고, 이제 그들 사이에서 추적활극이 벌어진다. 매우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야기가 너무 유치하고 로우예는 이 영화가 지하전영이 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갑자기 이야기는 중국 독립군의 활약상을 다룬 프로파간다가 된다.어쩌면 로우예는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정성을 들이는 것은 30년대 상하이 분위기를 재현하고, 그 안에서 30년대 상하이 통속문학의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리 이 영화에 적대적인 이들조차도 탄식하게 만드는 마지막 장면과 마주해야 한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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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쇼헤이가 뱀장어에서 인간성의 ‘보편적’ 회복을 본다면(<우나기>), 구로사와 기요시는 해파리에게서 무리를 지어다니는 ‘동시대 도쿄’ 젊은이들의 연대를 본다. 전공투세대가 뱀장어에서 왕성한 생식과 집요한 고향 회귀의 본능을 본다면, 버블경제 세대는 해파리에게서 즉물적인 생존본능과 무조건적인 행진만을 희망한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사인만이 있을 뿐이다. 가거나, 기다리거나! 계속 기다리라고 말했던 마모루는 죽어가면서 유지에게 둘만이 약속한 사인을 보낸다. “가라!”이제 유지의 행진이 시작된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는 없다. 한 마리의 해파리는 유지의 모이를 먹고 수백 마리가 되어서 도쿄 시내를 가로지른다. 그걸 환희에 차서 바라보는 유지의 얼굴 다음 숏은 체 게바라의 얼굴을 담은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 직장도 없고 목표도 없는 젊은이들, 그들이 좀비처럼 도쿄 시내를 활보하는 롱테이크이다. 그러면 (그렇게 기다려도 알 수 없던, 그래서 거의 지쳐버린 다음에) 이제야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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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단순하게 정리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소쿠로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오이디푸스적인 문제로 풀어나가는 것을 거절한다. 차라리 그 둘 사이는 이상하게도 동성애적인 끈으로 칭칭 감겨 있다. <어머니와 아들>에서는 풍경이 중요하다면 <아버지와 아들>에서는 육체, 그 살과 뼈가 만들어내는 힘의 형상이 중요해진다. 종종 그 이미지들은 둘 사이에서 뒤엉키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감정적 긴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육체가 서로 분리될 때, 그 상실의 긴장을 소쿠로프는 아버지와 아들의 방과, 그들의 창문 사이로 이어지는 지붕과, 그리고 지상의 땅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종종 이미지들은 여전히 마음대로 휘어지고, 그 굴곡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내면의 풍경화가 그려진다.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사유는 이미지의 지도에 있다. 소쿠로프는 페테르부르크와 이스탄불, 그리고 리스본을 한 장소로 가정하고 연출한다. 그래서 유럽을 가로지르는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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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단과 편견으로 뽑은 ‘칸에서 본’ 2003년 10편의 영화이 순위는 내가 마음대로 정한 것이며, 이것은 영화제 수상결과와 아무 상관이 없다(나는 혹시나 영향받을 것을 두려워해서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뽑았다). 이 명단에서 복원판 상영과 회고전은 모두 제외시켰다. 그러니 아쉽지만 펠리니와 파졸리니, <불타버린 시간의 연대기>, 리처드 브룩스, 사뮈엘 풀러를 모두 제외시켜야 한다. 한 가지 더. 나는 2003년 칸에서 모든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 명단은 내가 본 61편의 목록에서 선정한 것이다.01. <오고, 가며>(호아오 세자르 몬테이로) 비경쟁 공식초대작영화 괴인(怪人)의 레퀴엠. 죽어가는 육체를 이끌고 몬테이로는 다시 한번 우리를 음란한 상상과 피곤한 육신 사이의 논쟁으로 끌고 들어온다. 삶의 마지막을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멈추어선 카메라의 무한정한 시간, 그 안에서 원을 그리면서 마을버스를 타고 거듭 집으로 돌아오는 기상천
2003 칸 영화제 결산 - 정성일[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