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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재견 | 南國再見, 南國, 1996년, 117분현대를 파악해야 할 절박감을 느껴 만들었다는 <남국재견>은 허우샤오시엔 스스로가 재출발을 다짐하며 만들어낸 영화다. 영화는 중년의 건달인 가오와 그 일행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가오는 사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임에도 여전히 깡패짓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인물이다. 그에겐 잉이라는 애인이 있다. 잉은 가오에게 위험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고 정착할 것을 권하지만 가오는 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의 꿈은 상하이에 가서 커다란 레스토랑을 여는 것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남국재견>은 마치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를 연상케 하듯 난폭한 리듬 안에 폭력적인 삶을 담고 있다. 여기서 허우샤오시엔은 현대 대만인들의 정신적 황폐함을 들여다보면서 움직임과 정체(停滯), 근대화와 전통, 희망과 니힐리즘이 매혹적으로 뒤섞인 비가를 만들어낸다.해상화 | 海上花, 1998년, 130분19세기 말 상하이의 한 유곽을 무대로 펼쳐지는 실내극
4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허우샤오시엔 특별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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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와 격정을 선계(仙界)에 묻었노니<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마지막 촬영현장에서 김기덕 감독을 다시보다김기덕 감독이 연못에 절을 짓고 동자승과 노승의 삶을 사계의 변화와 함께 담고있다. “순수 속에 잔인함과 욕망 속에, 살의 속에, 번뇌 속에 해탈을…. 기가 육체를 만들고 육체가 단풍처럼 변하고 썩어 이슬로 땅에 스며드는 사람이,사계절의 반복과 무엇이 다른가?” ‘김기덕’과 ‘해탈’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궁합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기덕은 무심한 얼굴로 새로운 영토에 들어섰다. 남동철 기자가 경북 청송 주왕산국립공원 내 <봄 여름…> 촬영지인 주산지 암자세트를 찾았다. - 편집자“이거 장난 아니에요. 완전 <타이타닉>이에요.” 물 위에 세트를 지은 <섬>의 촬영지, 경기도 안성의 고삼저수지에서 김기덕 감독은 농담삼아 이런 인사말을 건넸다. 취재진을 태우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장을 향하던 버스가 주왕산 입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를 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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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감독으로의 고백 혹은 도전그는 보도자료에서 <봄 여름…>을 만드는 작가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의 삶을, 사계절에 비유되는 희로애락을 깊은 산속 주산지 연못 위에 단아하게 떠 있는 사찰에 살고 있는 스님과 그 주변의 자연을 통해 그려본다. 동자승, 소년승, 수도승, 노승, 도승, 이렇게 다섯개의 이야기를, 각 계절의 시작과 끝의 이미지를,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속에 내재하고 변해가는 속성과 숙성의 의미를 새겨보고 그렇게 순환되고 생성되는 우리의 삶을…. 순수 속에 잔인함과 욕망 속에, 살의 속에, 번뇌 속에 해탈을…. 기가 육체를 만들고 육체가 단풍처럼 변하고 썩어 이슬로 땅에 스며드는 사람이, 사계절의 반복과 무엇이 다른가?” 감독의 말이나 여러 가지 자료에서 이번 영화가 전작들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기는 어렵지 않다. 일단 <해안선>에서 보여준 공격성과 광기의 세계와 달리 관조적인 느낌이 드는 영화인데다 ‘김기덕’과 ‘해탈’은 어딘지 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를 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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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인터뷰"불교를 신앙이 아닌 전통문화로 접근"어떻게 주산지를 촬영장소로 택하게 됐나.→ <섬>을 찍기 위해 헌팅을 하던 98년 여름에 이곳에 와봤다. 그때는 물을 빼서 바닥이 드러난 상태였는데 마음에 들었다. 국립공원 안에 있어서 당장 촬영허가를 받는 것은 문제가 있어 <섬>을 찍을 때는 이곳을 포기하고 고삼저수지를 택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처음에 산속에 있는 암자에서 찍을 생각이었다. 부석사, 청량사 등 경치좋은 고찰을 여러 군데 찾아다녔는데 그런 큰 절의 부속 암자들이 막상 촬영하기엔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대웅전이 지나치게 크거나 시멘트 공사를 해서 보기 흉하거나 절 안에 불상 근처를 철골로 보호해놓고 있어서 절을 임대해서 찍는다 해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양수리 세트장에 작은 암자를 하나 지을까 생각하던 차에 물 위에 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섬> 때 못 찍었던 주산지가 떠올랐고 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를 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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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떻게, 인간, 그 아름답지 않은 종족이 되는가욕망의 생태학, 그 유머적인 정신상태에 대한 사생(寫生)의 힘- <질투는 나의 힘>論지난해 우리는 이상한 영화 한편을 접했다. 박찬옥 감독이 만든 <질투는 나의 힘>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에로 버전으로 패러디한 것이냐고 우스갯소리를 하던 입들은, 부산영화제와 로테르담영화제를 거치는 동안 몰려오는 소문 앞에서 무염해졌다. 가장 뛰어난 데뷔작 가운데 하나이고 감독의 연출력이 빚어낸 결정체라는 평판을 받는 이 영화가 조만간 관객을 찾는다. 모호한 듯 단호한 시선, 조용한 듯 격렬한 심리, 미미한 듯 뚜렷한 행동, 간절한 듯 허무한 사랑. 박찬옥이라는 신예 여성감독은 이런 인간의 조건을 괴력에 가까운 집요함과 정묘함으로 펼쳐놓는다. <질투는 나의 힘>이 제안하는 슬프고도 즐거운 담소에 동참해보기로 한다. - 편집자어딘지 모르게 슬슬 가려운 곳을 콕 집어서 손톱 끝으로 꼭꼭
욕망의 생태학 <질투는 나의 힘> 論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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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은 또한 시간과 변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관계 속으로 들어온 인물들은 서서히 삼투하면서 서로를 변화시킨다. 원상이 윤식의 오르간 앞에 서서 하나의 멜로디를 나란히 연주하는 장면은 예언적인 숏이다. 이들의 관계를 완성시키는 것은 정서적인 친밀감이다. 공감은 공동체의 기초다.관계가 변화하자 이번에는 다시 캐릭터가 변화한다. 윤식과 친해진 원상은 혜옥이라는 거치적거리는 꼬리를 잘라버리고, 성연이라는 섬으로부터 빠져나온다. 그의 시선은 드디어 윤식의 딸 미림에게 꽂힌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순환이 완성된다. 원상이 윤식의 세계에 완벽하게 포섭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의 공동체가 재생산되는 방식을 드러내준다.영화는 후반부에 들어서서 점차 남성들의 영화로 변모한다. 여성들의 실종은 이 영화의 구조적 결함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혹은 남성적 사회화의 타락상을 여성의 눈으로 비판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 그런데 지나치게 성별화된 해석을 제어하는
욕망의 생태학 <질투는 나의 힘> 論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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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고 있으면 모든 사람은 이상하다”감독 박찬옥, 배우 문성근과 <질투는 나의 힘>을 말하다누가 뭐래도 문성근은 배우다. 그것도 귀한 배우다. <질투는 나의 힘>을 보고, 그걸 인정하지 않기란 힘들다. <오! 수정> 때도 그랬다. 배우 외의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싶다가도 막상 그의 연기를 보면, 손들게 된다. <질투는 나의 힘>에서 그는 술 취한 여자 후배를 꼬셔서 동침하는 게 전공인 잡지 편집장이다. 조연이지만, 이상한 온기와 위압감이 때로 주연을 압도한다. 올해의 한국영화 리스트에 오를 <질투의 나의 힘>을 말하기 위해 박찬옥 감독과 문성근 편집장 역을 초대했고, 실제 편집장이 동석했다. 약속장소로 가는 길에 문성근 노사모 탈퇴가 뉴스로 떴다.허문영 ‘노사모’는 왜 탈퇴했나.문성근 언론에 알려진 대로 진로논쟁부터 수익사업 논의까지 이견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었으냐 어떤 과정이었느냐 이런 문제
욕망의 생태학 <질투는 나의 힘> 論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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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여기 오기 전에 김혜리 기자한테 박찬옥 감독에게 궁금한 점이 있는가 물어봤다. 그랬더니, 왠지 그 감독은 영화적 신념과 열정으로 충만한 쪽이라기보다 자기 영화를 자기가 보고 신기해할 사람 같다, 이런 사람은 영화를 만드는 이유도 좀 특별할 것 같다, 고 그러더라. 박 감독님 얘기를 들으니 딱 들어맞는 말이어서 신기하다. 영화를 시작한 동기가 궁금하다.박찬옥 정말 우연히 시작했다. 20대 후반에 뭔가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걸 전공하려고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결국 학사 편입시험을 봤는데, 재밌을 법한 과 중에 영화과가 있었고, 공부하면서 계속 재미있었다. 컷과 컷이 붙는 것도 신기하고, 그런 게 모여 이야기가 되는 것도 신기하고…. 지금도 여전히 신기하다. 뭐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시작했다.허문영 자기 재미를 위해서 남의 돈 20억원씩 쓰고 그래도 되나. (웃음)박찬옥 사실, 혼자서도 이 영화가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했는데, 아무리 해도 답이
욕망의 생태학 <질투는 나의 힘> 論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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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홍상수? 아니, 인간을 보는 눈이 달라허문영 이 영화를 보면, 다른 인물들은 어떤 영화, 어느 소설에서라도 한번은 만났을법한 사람들이지만, 주인공인 원상은 정말 속을 알기 힘들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음에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게 될지 거의 스릴러적인 긴장을 안긴다. 이런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냈는가 궁금하다.박찬옥 나는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상상해나가는 버릇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다 미스터리어스하게 느껴진다. 심지어는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모든 사람은 이상하다. 나부터 그런 편이고. 이상하게 엇나가고 돌출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꾸며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허문영 엇나감이나 돌출을 드러낸다 해도 어떤 기준이 작용한다. 원상의 설명하기 힘든 말과 행동은 어쨌든 감독에 의해 선택된 것들이다. 취사선택의 기준이 무언가. 홍상수 감독에게 그런 걸 물었을 때, 귀엽다, 아니
욕망의 생태학 <질투는 나의 힘> 論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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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을 꿈꾸는 영원한 가위손김현이 1991년 <베를린 리포트> 후반작업으로 파리에 갔을 때, 한 프랑스 평론가가 그에게 물었다. “한국에는 왜 편집인이 김현밖에 없냐?”김현을 말하는 건 새삼스럽다. 배창호, 곽지균, 박철수, 정지영, 박광수, 장선우, 강우석을 거쳐 최근의 이창동까지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주목할 만한 감독들은 모두 김현과 작업했다. 예외가 있다면, 친형제처럼 아끼는 박순덕 기사와 편집을 해온 임권택 감독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종상 등 그가 받은 각종 영화제 편집상이 15개이고, 어떤 해에는 영화진흥공사가 추천한 좋은 영화 12편 가운데 11편이 ‘편집 김현’이라는 크레딧을 달고 있었다. 전문편집인 1세대임과 동시에 아직도 정상을 지키고 있는 한국 영화편집의 대명사이다.그러나 김현과 영화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김현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좀처럼 남에게 말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랑에는 필시
국가대표 편집기사 김현의 영화인생 7막8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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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새벽의 남산야외음악당. 통금해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기상나팔처럼 들려온다.음악당 무대 한구석에서 신문지 덮고 자던 김현은 부스스 몸을 떨며 일어났다. 자기 어깨와 팔을 쓰다듬으며 남산에서 내려와 남대문 시장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시장골목에서 상인들이 나무를 때다가 불씨가 남은 드럼통을 찾았다. 그 옆에 누워 못다 한 잠을 청한다.60년대 후반, 그때만 해도 시장이 많았다. 닥치는 대로 시장 바닥에서 리어카 끌고, 아무 데서나 자고, 하루에 한끼 먹으면 다행이었다. 끼니 해결이 안 돼 며칠씩 굶게 될 때면, 저녁 무렵에 무교동에 나갔다. 식당 손님들의 구두를 닦아주면, 식당에서 손님들이 먹다 남은 밥을 준다. 식당엔 들어가지 못하고, 식당 밖에서 비오는 날이면 빗물에 밥말았다손 치고 먹던 그 밥이 이후에도 김현의 기억 속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으로 남았다. 그 무렵, 첫 주간지인 <주간한국>이 나왔다. 그걸 팔러 명동으로, 시청 앞으로 나다녔다.서울 온
국가대표 편집기사 김현의 영화인생 7막8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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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서울 시내 호텔의 커피숍. 신상옥과 김현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김현은 싫다고 했다. 78년, 신필림이 허가취소된 지 1년 남짓하던 때였다. 영화사 허가를 다시 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신 감독의 시도가 다 좌절되자, 신 감독은 자신이 아끼던 편집의 김현을 포함해 촬영, 조명기사를 데리고 홍콩에 가서 영화를 찍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체로 여권을 준비하던 와중에, 신 감독이 김현과 둘이 먼저 홍콩에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김현은 영어도, 중국말도 못 하는데 홍콩에 먼저 가서 뭘 할 수 있겠냐며 거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 신 감독이 납북됐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이전에도 신필림은 부도가 나서 1년가량 쉰 적이 있지만 신 감독의 수완으로 극복해왔다. 이제 신필림이 재기할 길은 완전히 사라졌다. 김현은 실업자가 됐다. 한편으로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로 해방됐다 싶기도 했다. 그는 “내 꿈은 연출”이라고 줄곧 말해왔지만, 신 감독이 “편집을 알면 연출도 잘된다, 좀더 해라”고 해서
국가대표 편집기사 김현의 영화인생 7막8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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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을 품었던 아름다운 사람 장국영을 묻다, 우리의 청춘과 함께
2003년 4월1일, 기자가 다른 일로 머물렀던 홍콩은 미래도시같았다. 사람들은 금속으로 테를 덴 둥근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괴질의 주요 진원지로 지목된 아파트 아모이 가든은 통째로 격리돼 식량을 배급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먼 미래에나 일어날 줄 알았던 사건이, 장국영의 죽음이 있었다. 80년대 후반 거짓말처럼 맑고 어린 유생으로, 곧은 마음을 혈육의 정 앞에서 꺾은 경찰로, 우리 마음을 울렸던 그는 이제 세상에 없다. 무척 질나쁜 농담. 만우절을 다시 웃을 수 없는 날로 만들어버린 장국영은 그 자신의 목숨과 함께 우리 젊은 날도 거두어갔다. - 편집자
“죽을 때는 뭐가 보이는지 항상 궁금했어. 나는 눈을 뜨고 죽을 거야” - <아비정전>
오래간만에 <아비정전>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먼지를 털어냈다. 잊고 있던 동안 턱없이 낡아버려 비닐이 너덜거리는 케이스에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우
장국영(張國榮) 세대에게 바친다 (1956.9.12∼2003.4.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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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은 열두살 때 이미 한번 홍콩을 떠난 적이 있었다. 열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윌리엄 홀든과 앨프리드 히치콕을 위해 옷을 만들었던 재단사 아버지 덕분에 부족함 없는 중산층 아이로 자라났다. 다복한 가정의 귀염둥이였을 것 같지만, 장국영은 부모 형제와 떨어져 외할머니 손에서 키워졌다. 가장 나이 어린 형제와도 여덟살이나 차이가 났던 그는 일찍 죽은, 그와 생일이 같았던 아홉 번째 형의 분신처럼 여겨졌고, 그런 죽음의 그림자가 없었더라도 충분히 외로웠다. 그의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을 향한 감정과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장국영이 어렸을 때 이혼한 뒤에도 끝장난 결혼에 연연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던 연약한 여자였지만, 학교에 적응 못하는 막내아들을 유학보내자고 주장할 정도의 목소리는 가지고 있었다. “형들이 여자애들과 데이트를 하는 동안 난 구석에 처박혀 군인인형과 바비인형을 갖고 놀았다. 집엔 말다툼과 싸움뿐이었다. 그게 그들이 말하는 결혼이란 것이었다.”
장국영(張國榮) 세대에게 바친다 (1969.9.12∼2003.4.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