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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아직도 협객의 피가 흐른다‘홍콩영화의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쇼 브러더스 회고전을 준비한 부천영화제는 그 전설의 아름다운 핵심 정패패를 초대했다. 정패패는 회고전 중 두편 <대취협>과 <금연자>에서 모두 금연자를 연기한 배우. 그녀는 대조적인 스타일을 확립한 호금전과 장철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영감은 초월적이거나 뜨거운 무협의 기운으로 다시 바다 건너 소년들의 심금을 울렸다. 전설을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긴장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떨리는 마음으로 도착한 서울 외곽 메이필드호텔. 옛 영화처럼 수목이 무성한 정원을 앞에 두고 걸어나온 정패패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와 자신이 함께한 감독의 기억을 들려주었다. - 편집자정패패는 1960년대 ‘무협영화의 여왕’(武俠影后)이라고 불렸던 배우다. 끝부분이 제비 날개처럼 날카로운 비수 두 자루를 휘두르는 여검객 금연자(金燕子)로 기억을 남긴 정패패는, 홍콩 무협영화의 양대 산맥이었던 호금전과 장철 두 감독 모두
부천영화제에서 무협영후 정패패(鄭佩佩)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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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7월20일 23시30분.
그날, 그 시각, 그는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진정한 용이 되었다. 5년 뒤 미리 찍어둔 격투장면을 활용한 <사망유희>가 나왔고, 미망인 린다 리가 쓴 <Bruce Lee, the man only I knew>를 기초로 전기영화 <드래곤>(감독 롭 코언, 출연 제이슨 스콧 리)이 만들어졌다. 기묘한 괴조음을 내던 이소룡의 모습이 그대로 뇌리 속에 남아 있는 동안, 30년이 흘렀다. 이제 할리우드에서는 성룡과 이연걸이 활약하고 있고, 액션영화는 홍콩 출신 무술감독들이 만들어낸 마셜 아트가 휩쓸고 있다. 과거 이소룡이 염원했던, 첫발을 내디뎠지만 돌연한 죽음으로 무너졌던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 무술의 위대한 계승자, 가장 위대한 중국인
이소룡이 영화와 무술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이소룡은 기준을 세워놓았다. 이소룡이 마셜 아트에 끼친 공헌은 로큰롤에서 엘비스, 농구에서 마이클
사망 30주년, 이소룡 다시 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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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권도에는 동양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절권도가 단지 실용적인 무술만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절권도가 특공 무술과 다른 것은, 그 안에 동양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에게 쿵후를 가르치던 이소룡은 자신의 무술이 동양 문화의 일부이며, 정신적인 고양을 꾀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것은 민족적 자긍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소룡 이전까지 중국인, 동양인의 캐릭터는 요리사나 철도노동자에 불과했다.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표식이 곳곳에 걸려 있을 정도였다. 이소룡은 인종차별의 중심지에서, 자신의 육체를 이용하여 동양인의 스테레오 타입을 깨부쉈다.
배우가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 ‘나는 첫째로 무도가이고 싶고, 둘째로 배우이고 싶다’라고 말한 이소룡은 할리우드 진출을 꾀했다. 무술 시범을 통하여 할리우드 인사들과 가까워진 이소룡은 <배트맨>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윌리엄 도저를 만나게 되고, <그린 호네트>에 출연한다. 카
사망 30주년, 이소룡 다시 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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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삶에 매혹된 유려한 시네아스트의 세계일본의 3대 감독이자 롱테이크의 대가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 14편이 부산을 찾는다. 7월19일부터 8월3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리는 ‘미조구치 회고전’은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 유려한 미장센과 감성적인 미조구치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문의: 051-742-5377, www.piff.org/cinema). - 편집자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kr미조구치 겐지라는 일본의 영화감독에 대한 관념을 그려볼 때, 우리는 그가 그와 함께 일본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다른 두 감독, 즉 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즈 야스지로라는 스펙트럼의 양 극단 가운데의 어떤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볼 수가 있다. 서구적-일본적(미학과 가치관), 역동적-관조적(스타일) 등의 레이블을 붙일 수 있는 구로사와-오즈의 스펙트럼에서 미조구치를 그 중간자적인 존재로 간주할 측면이 확실히 있긴 하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미지의 거장 미조구치 겐지를 만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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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엘레지 | 浪花悲歌, 1936년, 71분, 흑백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젊은 여성 아야코는 회사 돈을 횡령해 위험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회사 사장의 정부가 된다. 이후에 그녀는 학비를 보내달라는 오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사장의 친구와도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 그렇게 자신을 내버린 아야코에게 가족은 싸늘한 냉대의 시선을 보낼 뿐이다. 이 냉정한 세상에서 착취당하기만 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오사카 엘레지>는 미조구치의 작가적 성숙을 알렸다는 점에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미조구치 스스로도 이 영화에 와서야 일본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오사카 엘레지><기온의 자매>기온의 자매 | 祇園の姉妹, 1936년, 69분, 흑백<오사카 엘레지>와 같은 해에 만들어진 <기온의 자매>는 그것과 함께 일종의 자매 관계를 이루는 듯한 영화다. 두 영화 모두 동시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억압
미지의 거장 미조구치 겐지를 만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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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25명에게 듣는다.내 영화인생 최고의 순간들(The Best Moment‥)“마음 같아선 계속 찍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는 끝이 있어야 했고 결국 칸영화제에 맞춰 촬영을 끝냈다.” <화양연화>의 DVD에 들어 있는 인터뷰에서 왕가위는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그가 <화양연화>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몰랐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왕가위는 “영화를 찍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덧붙인다.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는 사라진 사람들, 잃어버린 시간들, 잊었던 감정들이 탄생하는 그곳을 영영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막 해가 떠서 대지의 이슬이 상쾌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아침, 지평선이 펼쳐진 초원에 100명이 넘는 스탭과 연기자들이 촬영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 꿈이 이뤄지고 있는 걸 실감했다.” 중국에서 <무사>를 찍고 있을 때 김성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과 살을
내 영화인생 최고의 순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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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명/ 명필름 대표움직이는 차를 몸으로 막으며 프로듀서의 삶 시작할 때93년 초여름, 잠실 롯데월드 앞 광장. 밤늦은 시각, 김의석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그여자, 그남자>의 마지막신 촬영이 한창이었다.그 여자, 강수연과 그 남자, 이경영이 서로를 찾아 서울 도심을 헤매다가 그 광장에서 드디어 만나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 광장엔 반드시 꼭 있어야 할 것이 있었으니 요즘 흔히 보게 되는 ‘영상이동차량’이 그것이었다.그런데, 이 힘겹게 빌려놓은(아마도 당시 최초이자, 유일하게 시험운영되던 차량으로 기억된다) 영상차량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애초의 약속시간을 어겼다며 운전기사와 시스템 운영자가 막무가내로 그냥 가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었다. 앞의 진행이 좀 늦어져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으나, 실은 사용료를 더 벌어보겠다는 심산이었을 터. 이미, 30m 높이의 대형 조명크레인과 대형 촬영용크레인이 와 있고, 수십명의 보조출연자가 대기하고 있었으며, 건너편 아파트 주민들은
내 영화인생 최고의 순간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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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승/ 영화감독유영길 감독님이 카메라 뷰파인더 보여줬을 때유영길 촬영감독님을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라는 영화에서 만났다. 조감독으로서 선망의 마음을 품고 있던 나는 촬영현장에서 유 감독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지. 하지만 평소 농담 같은 건 일절 기대할 수 없는 무뚝뚝함과 차돌 같은 작은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가 만들어내는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는, 비록 데뷔를 눈앞에 둔 조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식당에서 가끔 겸상을 하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촬영현장이 늘 그렇듯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잘 보이기는커녕 거듭되는 실수에 유 감독님의 직격탄도 몇번 맞았고, 이러다가는 감독돼서도 유 감독님과는 일 절대 못한다 싶어 몸사리고 일할 즈음 그분께서 주신 선물 하나가 기억이 난다. 어느 현장에서, 트라이 포트에 세워진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지나가던 촬영부 서드가 멋모르고 들여다봤다가 모모 촬영감독에게 개맞듯 맞고 쫓겨났다는 전설이 면면히 흐르던 시절, 마음 약한 신인감
내 영화인생 최고의 순간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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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뒤에 이런 일이!!영화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 중에 뉴스 가치를 따져서 보도하다보면, 체 밑으로 쏙 빠져나가는 소식들이 있다.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기자들끼리 내막을 읽으며 쿡쿡거리다 한곁으로 치워둔 사건파일들을 여기 모았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모두가 사실이다. 영화계 또한 세상이 늘 그렇듯이, 요지경 속이다.01 영화평론가, 영화만 평론하나?아니다. 가끔 극장비평도 한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유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와 리처드 로퍼는 지난해 6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쇼웨스트 행사에서 미국 멀티플렉스 극장들을 ‘특별비평’했다. 멀티플렉스에서 만날 수 있는 온갖 다양한 토픽을 가지고 최고의 평론가들이 농담처럼 씹어댄 극장문화의 진담 평론. 그중 일부를 간추려 소개한다.“사람 방광이 라지 사이즈 콜라보다 작은 거 아세요?” “그거 다 마시는 사람도 없어요.” “당연하죠. 빨대가 짧아서 바닥에 안 닿거든요.”에버트의 불평은 이어졌다. 빨대는 더 길어져야 하
세계 영화계의 황당한 사건파일 넘버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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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러셀 크로식 <글래디에이터>는 가짜다!지난 2월,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가 역사적 사실과 상당부분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핵심은 검투사의 사회적 지위와 삶. 여기서는 영화 속 검투사들과 실제 로마시대의 검투사들을 비교하면서 <글래디에이터>의 허구를 짚어보기로 한다.영화 속 검투사들: 온전한 의식주 생활이 불가능했고 노예와 다름없이 천대받았다. 주심도 없는 무법천지 경기장에 내몰려 피에 굶주린 관중 앞에서 끔찍하게 죽어갔다.실제 검투사들: 고도의 훈련을 거친, 일명 프로페셔널 파이터 클럽. 외부와 단절된 훈련캠프에서 들어가 최소 3년 이상 훈련받았다. 고품질 식단 및 당대 최고 유명의들이 담당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았고, 싸움에 유리한 건강과 근육질 몸매를 열심히 다졌다. 엄청난 비용은 스폰서가 지불했다. 싸움에서 이기면 상금의 일부를 자기 몫으로 챙겼다.경기 주심은 무기와 보호장비 고르는 것조차 간섭했고 경기를 공정히 진행했다. 사람들의
세계 영화계의 황당한 사건파일 넘버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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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들은 어떻게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는가게이머 그리고 P세대에 대한 오해와 진실.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보였던 젊은 세대가 갑자기 광장으로 쏟아져나오고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정치적 캠페인을 벌였다. 붉은 악마, 촛불시위,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나온 현상을 놓고 사람들은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다고 입을 모았다. 해석과 분석, 이름붙이기가 쏟아져나왔다. 최근 한 광고회사가 발표한 ‘대한민국 변화의 태풍, P세대’란 보고서는 그 완결판처럼 보인다. 그런데 “월드컵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적극적 참여(Participation) 속에 열정(Passion)을 바탕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있는(Paradigm-shifter) 젊은 층”이란 분석은 정말 옳은 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총체성 혹은 통일성이란 ‘신화’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P세대는 네티즌이며 게이머이다’라는 그럴듯한 가정법을 가지고 게임평론가 박상우씨에게 게임이 어떻게 새로운 세대를 만드는지 살펴보는 에세이를 요청했
게임 그리고 새로운 세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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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게이머가 손을 대지 않는 이상 더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가만히 멈춰 있다. 세계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는 온전히 게이머의 몫이다. 선량한 게이머라면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내가 죄수지만 그렇다고 탈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보자. 게임은 멈춰 있다. 조금도 진행되지 않는다. 게이머와 게임 사이에 인내심 겨루기가 시작된다. 아무리 기다려도 죄값을 치르기 위해 교도소로 보내주지는 않는다. 답답해진 게이머가 움직임을 시작한다. ‘이럴 바에야 훔친 차를 몰고, 옆에서 태워다 달라는 다른 죄수나 도와줘볼까?’ 게이머가 움직이는 그 순간, 게임 속 세계도 언제 멈춰 있었냐는 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게이머는 자신의 행동이 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아쇠가 되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이 세계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뛰어다닌다.<투하트>해석과 참여의 차이는 간단하다. 영화에서의 해석이 눈에 보이는 다른 세계를 지금
게임 그리고 새로운 세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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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금살금 스며들어 확 뒤집어 놓는다곽경택 감독은 어떻게 꽃미남 정우성을 ‘똥개’로 만들었나곽경택 감독은 수차례 말했다. 좋은 연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이 기준은 그가 만드는 영화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친구>가 뿜어내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배우들의 연기가 빚어내는 데서 기인한다. 그 공은 대부분 유오성, 장동건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몫으로 돌아가지만 이들을 조련한 건 다름 아닌 곽경택 감독이다. 지난해 <챔피언>을 내놓은 뒤 그리 만족할 만한 흥행 성과를 내지 못한데다 이후 갖가지 송사에 휘말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그가 이번에는 ‘정우성 변신’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섰다. 한때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정우성에게 ‘똥개’라는 촌스런 이름의 인물을 입힌 것이다.자, 떠올려보라. 아버지가 달걀 후라이 하나를 더 먹었다고 밥상을 엎을 듯이 성질내는 정우성을, 눈은 구영탄 마냥 반쯤 뜬 채로 양손에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를 버무리는 정우성을. 상상이 가는
4가지 키워드로 본 곽경택의 연기연출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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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 3: Relax - 스스로 무너지기정우성 촬영이 3분의 1쯤 지났나. 감독님이 내게 “너, 철민이 맞지, 맞지?” 그랬는데 ‘아니라’고 했어요. 그러다 3분의 2쯤 촬영이 진행된 시점에서 감독님이 똑같은 질문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네, 맞아요” 그랬고.곽경택 술을 먹였더니 다음날 촬영하는 데 폐차장에서 뒹굴뒹굴하는 거예요. 그거 보면서 아, 이제 정우성이 아니라 차철민이 다 돼뿟구나 싶더라구요.<친구>의 장동건과 <똥개>의 정우성은 비슷한 욕망을 품고 곽 감독과의 작업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삶 대신 이미지의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채웠던 한 배우는 칼 맞고 쓰러지는 악역을 자처하면서 궤도권을 이탈했고 결국 자신의 영토를 늘리는 데 성공했다. “제목만 듣고서 출연을 맘먹었다”는 정우성 역시 그동안 자신을 옥죄어온 이미지의 갑옷이 갑갑했고 그것을 떨치고 싶었을 것이다. 촬영현장에서 이들을 연이어 마주했던 곽 감독은 어땠을까. “두 배우 모두 촬영현
4가지 키워드로 본 곽경택의 연기연출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