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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낚싯바늘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좀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김기덕의 <섬>에서 자포자기한 도망자의 식도 안으로 밀어넣어진 한 움큼의 낚싯바늘이라고. 유럽 각지에서 수상을 하며 <섬>은 베니스에선 구토를, 뉴욕에선 졸도를 야기했다. 그 한순간 한국영화에 관한 오해가 생겨났고 폭력은 서구 관객의 마음속에서 단단하게 굳어졌다.
5년을 뛰어넘어보자.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지만, 그 영화가 뒤늦게 미국에서 개봉하던 저녁, 미국 평론가들은 그리 깊은 감명을 받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뉴욕타임스>의 마놀라 다지스는 “파산 상태의, 위축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라고 강도 높게 공격했다. 반면 <뉴욕 옵서버>의 앤드루 새리스는 좀더 저열한 지점에서 시작했다. “생마늘과 썩을 때까지 파묻어둔 배추를 혼합하여 질그릇에 담아 공항에서 기념품이라고 파는, 김치를 먹는 나라에 도대체
영국 평론가 그레이디 핸드릭스가 본 한국영화 속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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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방송, 영화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장애인 심승보씨가 <씨네21> 앞으로 메일 한통을 보내왔다. 정신지체아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허브>의 감독, 배우와 대담을 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허인무 감독과 주연배우 강혜정은 조심스럽게 참석 의사를 비쳐왔고,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심승보씨는 2006년의 마지막 날 일반 시사를 통해 영화를 관람했다. 장애와 비장애, 편견과 차별. 너무나 오랜 시간 닫혀 있었던 대화의 벽이 두 시간의 대담으로 허물어지진 않았겠지만, 질문과 답변, 공감과 아쉬움이 오갔던 자리엔 어느새 은은한 허브향이 감돌고 있었다. 완전하지 않아서 더욱 의미있었던 대화, 그 소통의 순간을 여기에 전한다.
심승보: 지난 12월31일 드림시네마에서 일반 시사로 영화를 봤어요.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별 네개 반 정도? 관객의 반응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여기 오기 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시사회 반응들을 살펴봤는데
장애우와 <허브>의 감독·배우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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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프로듀서스> <드림걸즈>. 세편의 뮤지컬영화가 1월과 2월에 찾아온다. 뮤지컬영화의 부활을 알린 <시카고> 이후 할리우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하는 데 다시 재미를 붙였고, 이 세 작품은 2005년과 2006년에 나온 ‘브로드웨이산 할리우드 뮤지컬영화’의 대표 주자다. 지난 한해 일어난 국내 뮤지컬 붐을 타고 뒤늦게나마 찾아오게 된 셈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영화로 옮겨진 과정이,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들의 모양새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가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지금 한국 공연예술계는 뮤지컬이 대세다. 지난 한해 115편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400만명의 관객이 보고 갔다. 전체 공연 매출의 절반, 관객 3분의 1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그 기세를 몰아 2007년 역시 크고 작은 라이선스 작품과 창작물 등 150여편의 뮤지컬이 대기 중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겐 <렌트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어떻게 할리우드를 매료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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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여신>의 맹인 소녀, <하나와 앨리스>의 깜찍한 여고생, <릴리슈슈의 모든 것>의 원조교제하는 여중생…. 약간 어눌하면서도 조용조용한 말투, 긴 생머리, 교복 치마, 단정한 길이의 스타킹까지. 아오이 유우가 가진 순수함에는 야동이나 노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이 숨어 있다. 그녀의 연기는 단지 남성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안의 감성을 자극한다. 일본을 벗어나 아시아 스타로 급부상한 아오이 유우의 매력을 알아본다.
Yu Aoi 아오이 유우
1999년 뮤지컬 <애니>의 폴리 역 오디션에서 1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했다. TV도쿄의 <오하스타>(おはスタ)에서 ‘오하걸’로 고정출연하는 등 잡지와 CF 등에서 폭넓은 활동하던 그녀는 2001년 이와이 순지 감독의 <릴리슈슈의 모든 것>으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이후 미야자와 리에, 이케와키 치즈루 등 수많은 미소녀를 배출한 광고
일본 스타 아오이 유우의 은밀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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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이 밝았다. 돼지의 해를 맞이하여 로또 한번 터지는, 아니면 멋진 애인이 생겨 ‘러브러브’ 모드에 돌입하는 머나먼 환상에 잠시 빠져본다. 그러나 2005년과 2006년이 그 밥에 그 나물이었듯, 2007년이라고 그다지 화사하게 운세가 필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올해도 무탈하게, 적당히 묻어가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 그 출발은 우선 본인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돼야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서 배우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 이들은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지독한 액운의 포스도 눌러버릴 긍정적인 에너지의 소유자들이다. 부디 여러분도 이들처럼 새해에는 가볍게, 발랄한 하루하루를 맞이하시길(단, 자라나는 미래의 꿈나무들에겐 부작용이 생길 수 있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은 댄스 댄스!
<녹차의 맛>의 할아버지 가슈인 다츠야(아키라 도도로키)
할아버지, 나이를 망각해도 한참 망각하셨다. 9:1 가르마로 곱게 빗어넘긴 머리에 밤무대
영화 속 캐릭터들이 말한다, 새해에는 이렇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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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물을 먹고 일부러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갑자기 목 디스크가 와서 거동이 불편한 전직 철근노동자는 배고프다고 조르는 어린 딸을 보다 못해 한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한손에는 칼을 들고 집을 나선다. 그러나 그는 혼자 있는 늙은 노파에게조차 칼을 들이밀지 못하고, 그 지겨운 물을 얌전히 한 모금 더 얻어 마실 뿐이다. <배고픈 하루>의 그는 별수없이 착한 사람이다. 혹은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 친구에게 주겠다며 상어를 메고 대구에 온 섬 총각은 카드놀음에 빠진 친구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고 공원에 발이 묶였다가 비슷한 신세의 동행을 만난다. 상어는 썩어가는데, 어느 미친 여자는 그걸 자기의 죽은 아들이라며 그들을 쫓고 또 쫓는다. <상어>의 그 여자는 병든 사람이다. 힘들고 병들었지만 착한 이들을 위해 김동현 감독의 영화에는 치유가 준비되어 있다. 그들은 모두 죄가 없고, 나아서 돌아간다. 허리가 아팠던 아버지는 놀랍게도 펄떡펄떡
<상어> 김동현 감독의 신작 <처음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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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2006년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극본상 등을 받은 창작뮤지컬이다. 가톨릭재단 무료병원에 7년째 입원해 있는 환자 최병호가 사라진 사건을 계기로 버림받은 이들을 다정하게 들여다보는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통속적이지만 내치기 어려운 사연을 전해주었다.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한때 분홍치마 입은 고운 모습이었던 치매 노인의 연정과 스스로를 망각에 묻고 만 아버지의 눈물이 오래오래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 뮤지컬을 최익환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시리즈에 속해 있으면서도 실험성이 돋보였던 <여고괴담4: 목소리>로 데뷔했고, 실사에 애니메이션을 덧입힌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한 <그녀는 예뻤다>를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을 시작한 최익환 감독은 어떤 이유로 지극한 신파이자 가장 밑바닥
<여고괴담4: 목소리> 최익환 감독의 신작 <오! 당신이 잠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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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승 감독의 신작 <연인>(가제)이 펼쳐놓는 상황은 대략 이렇다. 3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50대 부부가 있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가 암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제야 남편은 상상조차 한번도 하지 않았던 그녀의 부재를 떠올리고 슬픔에 빠진다. 잠깐, 여기서 굳이 감독의 이름을 다시 확인할 필요는 없다. 맞다, 김대승.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 <가을로>를 만든 그 감독 말이다. 당신이 이 시놉시스와 감독의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그 이유도 알 만하다. 그의 전작은 모두 멜로영화에 해당하지만 빙의와 동성애, 시대물과 스릴러, 거대한 재앙에 대한 기억 등의 이질적인 코드를 엮어놓은 독창적인 멜로였다. 그런데 TV단막극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이야기 틀이라면 결국 신파 멜로영화 외에 갈 길이 있을까.
“이건 누가 봐도 신파잖나.” 김대승 감독은 이 조심스러
<혈의 누> <가을로> 김대승 감독의 신작 <연인>(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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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의 <여자 핸드볼>(가제)은 2004년 여름 아테네올림픽에서 전 국민을 울린 여자핸드볼 대표팀 이야기다. 1035개 실업팀을 보유했고 올림픽 3연패에 빛나는 덴마크 대표팀과 단 다섯개의 실업팀뿐인 한국 대표팀의 대결은 90분의 정규 경기, 두번의 연장,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절체절명의 승부 끝에 36 대 38로 덴마크가 승리했다. 이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한 임오경, 조성옥 선수를 주인공으로 한 인간극장 <히로시마의 두 여자>가 만들어졌다. 그걸 본 MK픽처스 심재명 이사는 전격적으로 영화화를 결심한다. 당시 임순례 감독은 <무림고수>를 준비 중이었다. <무림고수>가 캐스팅에 어려움을 거듭하자, 심 이사는 임 감독에게 “<여자 핸드볼>을 만든 다음 <무림고수>를 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현 작가가 쓴 <여자 핸드볼> 초고를 읽은 임 감독은 “다른 사람들이 심지어 ‘네가 직접 쓴 게
<와이키키 브라더스> 임순례 감독의 신작 <여자 핸드볼>(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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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이 <거룩한 계보>를 촬영하기 전부터 트리트먼트를 써놓았던 <아들>은 매우 단순한 이야기다. 무기수 강식은 15년 전 세살난 아들을 바깥에 두고 살인강도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왔다. 교도관 박 경사와 동행하여 하루 동안 귀휴를 나가게 된 강식은 할머니와 살고 있는 고등학생 아들 준석을 만나러 간다. 상영시간이 85분 남짓 될 <아들>은 이처럼 15년 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정이 쌓이는 것은 고사하고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의 하루를 담을 뿐이지만, 밋밋한 드라마 위에는 애틋하고 당혹스럽고 코믹한 감정이 스쳐가곤 한다. 장진 감독은 <아들>이 단 하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무기수가 귀휴를 나왔는데 그 시간이 이틀이든 일주일이든, 그것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는 다르다. 강식은 아들이 홀로 집에 돌아오면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아들을 교문 앞까지 마중나가지 않는가. 관객도 하루라는 시간 때문에
<거룩한 계보> 장진 감독의 신작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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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전>은 김유진 감독이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가기까지 2년 넘게 공을 들인 사극이다. 2003년 <와일드카드>를 마친 김유진 감독은 잊혀진 한민족의 검과 검술을 발굴하여 중국의 무협영화와는 다른 스타일을 가진 검술영화를 만들고자 했지만, 어느 문헌에서도 그 원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과 중국의 검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우리 고유의 검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던” 김유진 감독은 오래전에 읽었던 신문기사를 떠올리고는 어쩌면 비슷한 주제를 다른 소재로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기사는 조선시대 설계도면에 따라 제작한 중신기전이 발사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세계 최초의 미사일인 신기전은 수학과 물리와 화학이 모두 고도로 발달하기 전에는 나오기 힘든 무기였는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있다. 할리우드에는 자국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영화가 많은데, 우리 영화는 너무 우울하지 않나. 민족적 자긍심이 뿌듯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약속> <와일드카드> 김유진 감독의 신작 <신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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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를 개봉시킨 이후 윤종빈 감독의 머릿속에는 ‘서울, 그리고 강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돈, 자본(주의), 계급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맴돌았다. 쉽게 얽힐 것 같았던 이 두 이야기는, 하지만 서로 궤도가 다른 위성처럼 좀처럼 결합되지 않았다. 폭넓게 소통할 수 있고 색다른 재미를 주는 영화가 뭐 없을까, 고민하던 그는 고향인 부산의 한 친구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이른바 ‘호빠’, 즉 호스트바에서 ‘마담’으로 일했던 그 친구의 생생한 이야기를 그의 뇌가 되새김질한 것이다. 특히 그의 촉수를 잡아당긴 것은 ‘일을 해서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일을 통해 여자를 꼬여 빌붙어살려 한다’는 호스트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호스티스들은 술을 마시건 몸을 이용하건 일을 해서 돈을 벌지만, 그들을 주고객으로 삼는 호스트들은 호스티스들을 상대로 착취해서 살아간다는 그들의 현실은 그가 고민하던 두개의 축을 하나로 엮어줄 것 같았다. “
<용서받지 못한 자> 윤종빈 감독의 신작 <비스티 보이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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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쇼! 여기는 모던의 기운이 도래한 1930년대 경성. 저잣거리 구석에 숨어 있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다면 당신은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지하에 당도한 승강기 문이 열리면 ‘문화구락부’의 은밀한 전경이 펼쳐진다. 자욱한 궐련과 대마 연기 사이로 맥고모자를 쓴 남자가 피아노를 두드리고, 치파오를 입은 여급들이 종종걸음친다. 흥청대는 군중 가운데 쪽 빠진 줄무늬 양복에 은빛 프린스 시계를 번득이는 출중한 미남이 눈에 띌지니, 바로 <모던 보이>(가제)의 주인공 이해명이다. 이 청년은 방금 사랑의 벼락을 맞았으니, 말걸지 말라. 상대는 카리스마로 무대 위를 휘젓고 있는 가수 조난실. 마를렌 디트리히도 울고 갈 그녀가 이끄는 곳이라면 지옥불 속이라도 따르리라는 결심을, 청년의 풀린 눈은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해피엔드> <사랑니>의 정지우 감독이 각색하고 연출한 시대극 <모던 보이>(제작 KnJ엔터테인먼트)는 아무 생각없는 경성 최고의
<해피엔드> <사랑니> 정지우 감독의 신작 <모던 보이>(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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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찬 감독의 <로마빵집의 휴일>은 <소름>과 함께 준비됐다. 데뷔 당시 그가 준비한 이야기는 세 가지. 심리공포에 가까웠던 <소름>, 누아르풍의 폭력물, 그리고 멜로 성향이 짙은 <로마빵집의 휴일>. “세 이야기는 장르적 차이는 있지만 주제적 측면에서는 하나로 관통된다”는 윤종찬 감독은 <로마빵집의 휴일>과 재회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그는 대작 <청연>을 끝낸 뒤 <인간극장>을 원안으로 한 <친구와 하모니카> 시나리오 집필에 한동안 매진했다. 그러나 <친구와 하모니카>는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도 아니었고 촬영환경과 이야기 구성의 어려움이 겹쳐 난항을 계속한다. 고심 끝에 윤종찬 감독은 가슴에 품었던 <로마빵집의 휴일>을 꺼내어 차기작으로 결정한다. 그가 수년 동안 반복해서 찾아갔던 강원도 철암의 공간적 아우라가 이러한 결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윤 감독이 강원도 철암
<청연> 윤종찬 감독의 신작 <로마빵집의 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