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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몬스터>의 덴마, <바람의 검심>의 켄신, <하얀 마음 백구>의 성견 백구까지. 성우 구자형의 팬카페에 올라온 ‘쾌남전문성우’라는 말은 그동안 그가 맡아온 캐릭터들의 공통점을 단박에 짚어낸다. 구자형의 목소리는 언제나 정의를 지키고 진실을 밝혀왔다. 냉정하면서도 차분한 그의 음색과 높낮이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안 그래도 잘생긴 미남 캐릭터들의 외모마저 돋보이게 했다. 하다못해 백구마저 잘생긴 토종 진돗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구자형 자신은 주변의 이런 평가에 대해 조금은 냉정한 태도를 견지한다. “매력으로 느껴준 것은 고맙지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비슷한 캐릭터만 맡아온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는 것은 아니다. “모두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죠. 스파이크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고, 덴마는 처음에는 어수룩하지만 점점 인간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바람의 검심>의 켄신 목소리 구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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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유치원 원장님은 노처녀 선생님들 사이에서 외롭게 떠 있는 섬이다.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뜻하지 않게 화를 내는 것으로 오해받고 아이들에게는 두목님으로 불린다.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다. 타고난 섬세함과 본의 아닌 터프함을 지닌 원장의 성격은 목소리를 덧입힌 성우 설영범의 연기 덕에 더욱 구체화된다. <곰돌이 푸>의 감성적인 호랑이 티거와 <이상한 나라의 폴>에서 버섯돌이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대마왕 목소리기 모두 설영범의 것이라면 원장님의 야누스적인 목소리 역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유치원 원장은 여자분들이잖아요? 아이들을 엄마처럼 따뜻하게 감싸주는 이미지를 갖고 있고요. 짱구의 원장님은 거칠게 생긴 남자지만, 그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에요. 남들이 듣기엔 내 목소리에도 그런 모습이 있었나봐요. (웃음)”
베테랑이란 말을 붙이기에도 부족한 경력 30년의 성우지만, 설영범은 원
<짱구는 못말려>의 유치원 원장, <곰돌이 푸>의 티거 목소리 설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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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지하철 안에서 졸고 있던 당신은 아마 정차역을 알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졸음을 쫓아냈을 것이다. 퇴근 뒤에는 집에 돌아와 <무한지대 큐!>를 보며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주말에 찾을 맛집을 알아보기도 했을 것이고, 밤에는 <비타민>의 그녀 덕에 몸의 이상여부를 각성했을지도 모른다. 성우 강희선의 목소리는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시청자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낭랑하면서도 또렷하고, 빠르면서도 정확하다. 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쉴새없이 뿜어대는 내레이션이 힘에 부친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멘트도 많지만, 잡아죽일 듯이 질러대잖아요. (웃음)” 1년에 한번씩 새로 녹음하는 지하철 안내방송도 힘들긴 마찬가지. “같은 음으로 노래를 부르듯” 일정한 톤을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 저녁 에너지 가득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고객이 원하니까
지하철 안내방송, 샤론 스톤 전담 목소리 강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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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검색창에 제목만 쳐도 동영상과 자막이 한 묶음으로 뜨는 시대다. 한데 유독 ‘한국어 버전’을 찾는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가 있다. 원작만큼이나 더빙판에 관심이 몰리는 상황. 그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애니맥스에서 방영 중인 <허니와 클로버>다. 한국의 유명 성우들이 일제히 포진한 한국어판 <허니와 클로버>에서 기청감(旣聽感)을 절로 자아내는 목소리 중 하나는 하나모토 교수. 귀가 밝은 이라면 포착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유쾌한 콧소리는 짱구 아빠와, 정갈하게 떨어지는 어조는 <ER>의 닥터 그린과 꼭 빼닮았다는 것을. 이래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아기공룡 둘리>의 명곡 ‘라면과 구공탄’을 떠올려보시길. “후루룩짭짭 후루룩짭짭 맛좋은 라면~”을 열창했던 마이콜, 그가 바로 성우 오세홍이다.
“성우 일을 한 지 벌써 만으로 30년째예요. 시작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죠. 솔직히 내가 성
<아기공룡 둘리>의 마이콜 목소리 오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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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 <궁s> 등 이름만 시즌제 드라마인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의 현실과 한계
만들 당시부터 시즌제를 표방했고, 연출자와 세트는 같다. 그리고 제목은 ‘비슷’하다. 이 드라마는 시즌제 드라마일까 아닐까. MBC <궁> 뒤에 ‘s’를 붙여 나온 MBC <궁s>는 한국에서 시즌제 드라마 만들기의 ‘애매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정대로라면 <궁s>는 <궁 시즌2>가 돼야 했다. 그러나 <궁> 1년 뒤 등장한 <궁s>는 제목도, 캐스팅도, 심지어 제작사도 다른 작품이 됐다. 같은 건 <궁>의 제작사에서 나와 새로운 회사를 차린 <궁>의 제작진이 <궁s>도 만든다는 것뿐이다. 미국 기준에서 <궁s>는 잘 봐줘야 <CSI>와 <CSI: 뉴욕>의 관계처럼 같은 설정을 가지고 만든 스핀오프일 뿐이다. 그러나 <궁s>는 ‘한국적인’
스핀오프와 시즌제 드라마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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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 직딩 생활백서
<오피스>(The Office)
동서양을 불문한 진실 하나. 직장은 지옥이고 상사는 악마다(어머 정말?). <오피스>는 미 동부의 침울한 소도시 스크랜튼에 위치한 제지회사 직원들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다. 얼마나 현실적인고 하니, 아예 다큐멘터리팀이 직장인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촬영을 한다는 컨셉이다. 이른바 모큐멘터리(Mockumentary)드라마라 일컬을 만한 이 같은 설정에서 제작진은 과도한 극적 양념을 제거한 채 캐릭터와 상황만으로 승부를 걸고, 볼품없는 보통 샐러리맨들의 숙맥 같은 삶은 금세 브레히트적 슬랩스틱과 블랙코미디로 변한다. <오피스>는 원래 영국 <BBC>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미국에서도 인기를 모았던 동명의 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작품. 솔직히 말해 미국판 보스 스티브 가렐보다는 영국판 보스 리키 저비스가 훨씬 악질적으로 웃기지만, 두 버전 모두 기절할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은 미국 TV드라마 시리즈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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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로마>부터 정정훈 촬영감독의 <24>까지
미국 드라마의 놀라운 변화는 영화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충무로 영화인들 역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화인 10명으로부터 자신이 좋아하고 지지하며 즐겨보는 미국 드라마와 그 이유에 관해 들어봤다.
영화는 불가능한 거대 서사의 힘
<로마>(Rome) SBS 목요일 밤 1시30분, DVD 출시
TV를 안 본 지 4년째 되는데, “요즘은 할리우드영화보다 미국 TV시리즈의 완성도가 좋다”는 프로듀서의 강압에 못 이겨 보게 됐다. 그런데 막상 DVD를 플레이한 뒤 그 자리에서 12부를 모두 볼 수밖에 없었다. 졸려 죽겠는데 다음 디스크를 넣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게 <로마>였다. 우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거나 역사적 사실을 조금씩 뒤트는 재미가 대단했다(이를테면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나온 아이의 비밀). 그리고 영화가 도무지 따라잡을 수
영화인 10인의 ‘나의 베스트 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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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브룩하이머, 지나 데이비스, 마이크 피기스 등… TV 방송국으로 몰려드는 인재들
성격파 배우 제임스 우즈의 2000년대는 우울했다. 기억에 남는 영화라고 해봐야 <겟 쇼티>의 지지부진한 속편 <쿨!>과 패러디영화 <무서운 영화3> 정도가 전부였다. 들어오는 대본이 점점 뜸해지는 건 참을 만했다. 그러나 대본들의 질이 갈수록 형편없어지는 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우즈는 B급 비디오 직행 영화계의 수렁으로 발목을 잡아채는 할리우드를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장소를 환갑의 나이에야 발견할 수 있었다. 브라운관의 세계다. “지난 몇년간 영화 산업이 처한 끔찍한 상황을 지켜보며 비통해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TV는 달랐다.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할리우드 사람들은 TV를 멸시했다. 요즘은 TV를 켤 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흥미진진한 시리즈를 매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우즈는 <CBS>의 새로운 법정드라마 <샤크>에 출연하기로
할리우드발 TV행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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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V드라마가 한국에서도 전성기를 맞고 있다. 공중파를 통해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만 소개되던 과거에 비해 케이블TV의 활성화와 다양한 DVD의 출시 등에 따라 한국에서 ‘미드’(미국 드라마) 팬들이 급속히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열혈 미드 마니아인 불법 다운로드족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한국 시청자가 <CSI> <24> <위기의 주부들> <로스트> <그레이 아나토미> 같은 최신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최근 들어 미국 TV드라마가 ‘혁명’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나날이 변화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의 과거, 현재, 미래를 미국 현지에서 조망해본다. 아울러 ‘혁명’의 중요한 힘이 된 창조적인 인물들과 한국의 영화인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미국 드라마를 알아봤다. 또 한국에 아직 공식적인 루트로 소개되지 않았으나 돌풍을 일으킬 여지가 있는 미국 드라마를 소개하고, 한국에서
미국 드라마, 황금시대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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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애들은 모른다, 동네 슈퍼마켓 할아버지 같은 이대근이 한때 에로영화의 남자주인공으로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슈퍼히어로의 집사로 잘 알려진 마이클 케인이 젊어서는 주드 로 뺨치는 미남이었다는 사실을. 한때 대중적인 인기를 한몸에 끌었으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역으로, 단역으로 사라져버린 배우들과 다시 활발한 연기활동을 보이는 배우들을 한데 모았다. 이 사람들, 한때 잘나갔었다!
제인 폰다: 관능미의 화신, 시간을 이기다
제인 폰다는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남성들의 꿈에 자주 등장하던 헐벗은 미녀의 대명사였다. 1968년작 <바바렐라>는 SF만화를 영화로 각색한 영화인데, 영화 사상 가장 섹시한 영화로 언급되는 작품이다. 감독이자 남편이었던 로제 바딤은 제인 폰다의 관능미를 돋보이게 하는 영화를 찍었고, 그 결과가 <바바렐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뾰족한 이빨을 가진 인형들이 바바렐라를 둘러
요즘 애들은 모르는 옛날 미남미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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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몇분이 채 지나지 않아 시작된다. 세신이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시작하는 영화의 속도는 놀랍기만 하다. 이 초반 장면은 방대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뜬금없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한 훌륭한 장면이다. 이어지는 장면, 괴물에게 납치된 현서의 가족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이 위급 상황을 무마하려는 미군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현서를 구출하겠다는 계획에 착수한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을 묘사하는 코믹한 장면은 전형적인 괴물영화의 특징을 변질시킨다. 영안실 장면을 보자. 딸을 잃은 슬픔에 바닥을 구르며 오열하는 아버지, 삼촌 뒤로 메가폰을 들고 등장하는 사내. 그는 대사를 뱉기도 전에 바닥에 깔려 있던 박스를 밟고 넘어진다. 이 장면은 가족멜로, 정치 블랙코미디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코미디적 요소를 섞어놓은 초장르적인 영화, 또 다른 <괴물>의 출현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영화는 이러한 난리 법석 속에서 가치를 가지게 된다. 말하자면
프랑스 평론가 장 필립 테스테가 본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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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고통스럽게 추구해온 목표로, 전제주의 사회에서 추구할 때 더더욱 비극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왕조 500년, 안정을 이룬 조선이지만, 혼란하고 불안한 시국을 맞고 있다. 조선 역사상의 유명한 폭군이면서 희로의 변덕이 잦았던 연산군 시대에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하고 피폐하여 거리로 나서는 이들이 많았다.
<왕의 남자> 중 장생과 공길 두 사람은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 시기의 유랑하는 거리 광대패다. 그들은 현실에 대한 이해는커녕 오히려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광대패 수장을 죽이고 한양으로 도망친 그들은 거리에서 한판 놀이를 벌이다 궁중으로 잡혀가게 되고, 나중에 왕의 남자가 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그들은 서로 약속한다. 내생에서 다시 만나 한판 놀자고. 희망을 내세에 둔다는 건, 의심할 바 없이 지금 생에 대한 절망을 뜻한다. 자유를 갈망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것은 없고 그저 한낱 허무한 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중국 평론가 디에이가 본 <왕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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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
판타지? 메르헨(Mrchen, 독일어로 동화라는 뜻)? 동화와 같은 전쟁영화로 이름 붙이면 될까? 2년 전쯤 개봉한 한국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한국전쟁의 비극성과 심각성을 정면에서 그려내어 힘있는 감동을 끌어냈다면, 이 작품은 그런 슬픈 전쟁의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풍자 섞인 웃음으로 비극성과 심각성을 호소하는데, 이 부분 또한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
이 마을의 한 일원으로 약간 머리가 모자란,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순진무구한 소녀의 존재가 키워드가 되고 있는데, 병사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서 심각한 현실을 주장해도 소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왜 너희들은 사이좋게 지내지 않나” 하면서 예의 그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들에게 묻는다. 병사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소녀나 마을 사람들에게 점차 감화되어가고 결국엔 일치단결하여 마을을 위한 결사적인 작전에 임하게 된다.
유교정신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한반도이기 때문에 배려와
일본 평론가 니시와키 히데오가 본 <웰컴 투 동막골> <너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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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토머스/ <LA타임스>
곽경택이 연출한 강력하고 액션 넘치는 핵무기 스릴러 <태풍>은 정치적인 편의에 희생된 무구한 사람들이 처한 고난에 관해 격렬하게 항의하는 데까지 진화해가는 영화다. 곽경택은 또한 남한과 북한 사이에 낀 이들의 고통, 그리고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참사를 덮어두려 했던 소비에트연방의 태도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재앙을 덮어두려는 정부의 과거 회귀적인 경향에 관해서도 신랄한 코멘트를 던진다.
의도한 것처럼 분절돼 있는 오프닝 시퀀스 때문에 <태풍>은 처음에는 스토리를 쫓아가기가 어렵고, 몇몇 디테일과 배경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명의 주인공과 그들을 끌어안는 중심 플롯은 점점 제대로 정리되어간다. 도발적인 주제, 한국과 러시아와 타이 세트와 로케이션을 활용한 멋진 프로덕션디자인 모두에서 야심만만하고 인상적인 <태풍>은 먼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관객에게도 충분한 보상
미국 평론가 케빈 토머스와 로라 컨이 본 <태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