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의 독립/단편 영화계에서는 새로운 마케팅 마인드를 가지고 PPL이나 현물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지원을 유치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의 고영민 감독은 극중에서 사용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SK글로벌에서 현물지원 받았으며, 브랜드 로고를 노출하는 방식으로 LG화재에서 제작비 300만원을 지원받았다. 영화 속 소품으로 노트를 사용하면서 문구회사 바른손에서 300만원을 받은 민동현 감독의 <외계의 19호 계획> 역시 PPL을 활용한 예.김지현 감독의 <뽀삐>는 아예 ‘지원영화’를 표방하고 나섰다. CJ-CGV 사전지원금 2500만원에 영진위 지원금 750만원, 그리고 기업들의 협찬으로 촬영진행비를 충당하고 있는 것. 강아지를 등장시킨 영화이기 때문에 개 사료업체 ‘퓨리나’에서 사료를, 그리고 영화제목과 같은 제지업체 유한킴벌리에서 화장지를 각각 500만원어치씩 현물협찬 받았다. 장소를 빌려주는 카페에는 화장지로 사례를 대신하고, 동물병원이나 애견샵의 촬영비는
다른 단편.독립 영화들 어떻게 찍고 있나
-
첫작품으로 일약 스타가 되는 배우들도 많은 충무로에서,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스타덤을 향한 지난한 코스를 밟아온 배우가 있다. 이범수가 그렇다. 1990년, 대학 3학년일 때 영화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그는 12년이 지난 서른셋에야 처음으로 주연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포스터에 새겼다.
20대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한 뒤 30대 중반에 이르는 시간. 성실하고 착실하게 영화에 몸담았던 그에게 12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각종 인터뷰에서 “영화에 단역, 조역, 주연이 따로 있냐”는 말을 유난히 많이 하던 배우. 그런 그라, 주연이 된 것에 대해 담담할 법도 하건만, 웬걸. 이제사 밝히는 바, 그는 처음부터 주연을 향한 욕망에 몸사래쳤었다. 쉬 드러내지 않았을 뿐.
자꾸만 지연되곤 하는 욕망이 있었기에, 더욱 길었던 12년. 그 시간들은 이범수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해낸 훈련과정”이라거나 “오너가 되기 전 수위나 경리로 일해본 실무경험의 시간들”일
이범수의 `서른세살의 쿠데타` [1]
-
아쉬움 남는 조연 시절, “나도… 했다면…”
어쨌건 힘들게 출연한 영화 <태양은 없다>로 이범수는 처음 뜰 수 있었다. 홍기(이정재)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단발머리 깡패 고리대금업자 병국이 그의 역. 병국은 멋지구리한 정우성, 이정재와 또 다른 맛으로 시선을 끌었다. <태양은 없다>의 병국이 된 이후,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때 처음 들어온 인터뷰 요청이 제법 늘어났다. 하지만, “기분이 방방 뜨기보다는 그동안 도와준 선후배들께 감사한 마음이었다”라고 이범수는 그때를 떠올린다. 인기 하나 없던 자신을 캐스팅해준 김성수 감독은 지금까지 은인이나 다름없고.
조연으로의 입성 이후, 달라진 것은 언론의 관심이 늘어난 것만이 아니었다. 촬영현장에서, 그는 그동안 자제하던 것들을 맘껏 펼칠 수 있었다. “촬영현장이 대부분 배우 위주로 굴러가잖아요. 무명 시절에는, 만약 내가 인정을 받는다면 현장에서 더 열심히 하고 연기도 열연을 할 수 있을 텐데, 했었
이범수의 `서른세살의 쿠데타` [2]
-
[흥행배우] 나는 흥행배우란 말을 믿지 않는다. 배우 때문에 흥행이 되나? 결코 그렇지 않다. 흥행은 주위의 힘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메이저 배급사에서 극장 100개 잡고 트는 영화와 처음부터 작게 가는 영화가 있을 때, 배급사 잘 만나 흥행이 되면 그 영화의 출연배우는 흥행배우가 되는 것 아닌가. 작품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배우에게 흥행배우란 말은, 그래서 쓸 수 없다.
[거품] 나는 거품이 없는 배우다. 아니, 거품이 없다기보다는 세제가 없다. 세제를 안 넣어주어도 깨끗이 빨아 온 게, 내 연기인생이다.
[불안] 이 바닥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늘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제일 두려운 건 나 자신이었다. 초심만 잃지 않으면 서른 전에 뭔가 된다는 확신이 20대 때는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자 “어차피 될 거 빨리 되지 되게 늦게 되네” 하는 생각은 들었다. (웃음)
[외모]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이범수의 `서른세살의 쿠데타` [3]
-
-
`여성의 눈`으로 보는 영화, 그 걸판진 잔치인 제4회 여성영화제가 내달 4~1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과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린다. 새로운 물결, 아시아영화특별전(인도여성영화감독전), 한국영화회고전(성의 무법자로서의 여성들), 딥 포커스(걸 파워), 아시아여성영상공동체, 아시아 단편경선 등 모두 7개부문에 21개국 80여편의 작품이 출품된다. 특히 격년제에서 매년 개최로 바뀐 올해부터 영화제쪽은 옥랑문화재단과 함께 여성감독을 대상으로 매해 1편의 다큐멘타리를 선정해 제작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영화제에선 우선 개막작인 <제비꽃 향기: 아무도 믿지 않는다>처럼 계급과 인종 등 사회적 문제와 성차별의 문제가 교차하는 지점을 잡아낸 영화들이 눈에 띈다. `여성의 눈'이 포착하는 이야기가 해가 거듭될 수록 깊어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여성이 자신의 방식으로 영화를 생산·소비하는 것이 `또다른 사회운동'임을 강조하며 여성단체가 직·간접적으로 제작한 행동주의(액티
`여성의 눈`으로 찍은 세상
-
지난해 아네스 바르다 특별전에 이어 올해 특별전에 초청된 여성감독은 이란의 타흐미네 밀라니(42)다. 79년 데뷔한 그는 여섯편의 장편영화를 통해 이슬람 사회와 여성의 관계, 특히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의 국가민족주의가 만들어 낸 이슬람 여성의 모습에 천착해왔다. 이번 특별전에 상영되는 세편 가운데 <숨겨진 반쪽>(2001)은 국제적인 표현의 자유 투쟁까지 불러일으켰던 작품. 이 영화 공개직후 그는 `사형'까지 가능한 이슬람 반혁명죄로 구속됐다. 79년 당시 이란 혁명세력이 모든 이념을 억누르고 탄압한 것 처럼 그려졌다는 이유였다. 카트린 브레이야, 수잔 손탁, 페이 더너웨이, 마틴 스코시즈 등 약 1500명의 영화인들이 석방서명에 참여하면서 밀라니는 하타미 대통령의 중재로 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재판에 계류중이다. <숨겨진 반쪽>엔 이란 혁명 직후 대학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풍족한 환경에서 판사의 아내로 살아가는 한 여성이 등장한
`이념은 인간의 삶 보듬어야`
-
근대적 형식의 감옥은 1790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월넛 거리에서 태어났다. 외부 세계와 죄수를 고립시키는 독방의 형태로, 처음에는 `회개소'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감옥은 죄수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엄격한 규율로 다스림으로써 그들을 유폐시켰다. 죄수들은 참회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났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에서 “아니”라고 말한다. 감옥은 범죄를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기보다는, “비행(非行)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독일 감독 올리버 히르쉬비겔도 미셸 푸코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001년작 <엑스페리먼트>에서 그는 제목 그대로 `감옥 실험'을 벌인 뒤, 그 광기의 현장을 기록영화처럼 보여준다. `2주 심리실험에 4천 마르크(우리 돈 240만원)를 주겠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온 20명 남자들은 처음에 그 실험을 거저 돈따먹는 게임처럼 여긴다. 전직이 신문기자였던 택시 기사 타렉(모리츠 블라입트로이)도, 평범한 월급
감옥실험 참여한 죄수·간수들 `현실로 착각했을까`
-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39) 감독이 만든 네 번째 장편 <복수는 나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5일 첫 시사회장에 나온 박 감독은 “기술 시사때 보니 내 취향에 딱 맞는 영화”라고 자평했다.
- `복수는 나의 것`이란 제목의 출전이 있나.
= 구약성서 <신명기>에서 야훼가 “유대민족을 괴롭히는 인간들은 내가 다 처치하겠다”고 선언한다. 정의는 내가 세워줄 테니 사사로이 너희들끼리 그러지 말라는 신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주인공들이 ‘신이 대신 보낸 처형자’라도 된 양 서로에게 앙갚음한다.
- 착한 인물들이 너무 극심한 악행으로 치달리는 게 아닌가.
= 사람들은 무언가 사태가 어긋나면 그 원인을 자기 바깥에서 찾으려 한다. 사회에 책임을 돌리거나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증오는 증폭된다. 그런 사람이 휘두르는 폭력은 더욱 극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악행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내가 왜 이렇
`폭력의 가속도 갈데까지 가봤다`, 박찬욱 감독과의 인터뷰
-
류(신하균)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한다. 그에겐 신장병에 걸린 누나가 있다. 당장 콩팥 이식수술을 해야 살 수 있다. 류는 자기 콩팥을 하나 떼어주려 하지만 혈액형이 달라 가능하지 않다. 류는 장기밀매조직을 찾아가 자기 콩팥과 함께 1천만원을 주고 누나에게 이식 가능한 콩팥을 받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장기밀매조직은 류의 콩팥과 돈만 챙기고 사라진다. 류는 누나를 살리려면 이제 콩팥과 함께 수술비 2천만원을 구해야 한다. 설상가상, 그나마 생계를 이어주던 쇠사슬 만드는 공장에서도 정리해고당한다. 류에겐 농아학교에서 만난 영미(배두나)라는 여자친구가 있다. 농아도 아니면서 농아학교에 들어갔다가 두 달만에 쫓겨난 영미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혼자 활동하는 몽상적 급진주의자다. 영미는 사장의 아이를 유괴한 뒤 수술비 2천만원만 받고 풀어주라고 류를 부추긴다. 사장 집 근처에서 현장을 답사하던 류는 경찰의 용의선상에서 비껴가기 위해 자신을 해고한 사장의 옆집에 사
콩팥…유괴…죽음 파멸의 `지옥도`
-
2002 스모키 첫 내한공연연세대학교 대강당/ 3월30∼31일 토 6시·10시, 일 6시/ (주)라이브플러스/ 02-573-0038지금 30대에게 너무나 친숙한 노래 <Living next door to Alice> <What can I do> <Mexican Girl>의 영국 록밴드 스모키가 그룹결성 27주년 기념 콘서트투어로 한국을 선택했다. 1974년 결성,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까지 큰 인기를 모았던 스모키는 아름다운 선율의 곡과 크리스 노먼의 허스키한 창법으로 우리나라에서 유독 사랑을 받았던 그룹. 내한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CAN 라이브 콘서트연세대학교 대강당/ 3월23∼24일 7시30분/ A.C펀드/ 02-6288-2381, 1588-7890, 1588-1555TV드라마 <피아노>에 삽입된 <내 생에 봄날은 간다…>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CAN의 라이브 콘서트. 배기성, 이종원의 뛰어난 개인기 덕분에
2002 스모키 첫 내한공연 / CAN 라이브 콘서트 / 봄바람 꽃노래
-
<시련은 곧 희망입니다>
커크 더글러스/ 인북스 펴냄/ 8천원
1995년 어느 날, <스팔타커스> <영광의 길> 등에 출연했던 할리우드의 노배우 커크 더글러스는 오른쪽 뺨에 예리한 통증을 느낀다. 뇌졸중이라는 병이 찾아왔다는 신호. 이 책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직후 절망에 빠져 권총자살까지 시도했던 커크 더글러스가 고통을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게 써내려간 고백록이자 인생회고록이다. 죽음 대신 삶을 선택했던 노배우의 심경과 고통 속에서 발견한 삶의 희망이 허심탄회하게 펼쳐진다.
시련은 곧 희망입니다
-
<Come With Us> 케미컬 브라더스 EMI 발매“우리와 함께 가요”라며 케미컬 브라더스가 안내하는 세계는, 다시 뿅뿅대는 전자음과 비트가 끌어가는 일렉트로니카의 실험장이다. 케미컬 브라더스는 89년 영국 맨체스터의 나이트클럽에서 팀을 이룬 두 DJ 톰 롤랜즈와 에드 시몬즈의 듀오. 힙합부터 록까지를 녹여내고 전자음의 결과 리듬을 풍성하게 샘플링하며 일렉트로니카의 표현력을 넓혀온 이들은, 봉고를 비롯한 퍼커션의 리듬이 역동적인 <It Began In Africa>, 서정적인 기타가 섞인 <Hoops> 등 초현대적이면서도 정서적인 전자음악을 들려준다.memories of Sanremo포니캐년 발매칸초네의 산실로 유서 깊은 이탈리아 산모레가요제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에 나온 곡들을 4장의 CD에 모았다. 클래식을 제외한 이탈리아의 대중가요를 의미하는 칸초네는 영미권의 팝과는 또 다른 질감. 1958년 1위곡이며 <Volare>
케미컬 브라더스 / memories of Sanremo
-
닥터 드레의 1992년작 <The Chronic>, 스눕 도기 독의 93년작 <Doggystyle>에 이어 최근 <Death Row Greatest Hits>가 라이선스로 발매됐다. 데스 로의 음반이 잇따라 라이선스로 나오다니, 정말 힙합 관련 문화가 국내에서도 대세이긴 한가 보다.데스 로(Death Row), ‘사형수 감방’이란 이름만큼이나 험악한(?) 갱스터랩의 산실. “Nuthin’ But A ‘G’ Thang”(갱스터일 뿐)이라고 당당히 읊조리는 닥터 드레를 필두로, 총과 마약이 지배하는 거리의 거친 삶을 적나라하게 내뱉는 갱스터랩과 G-펑크로 90년대 힙합의 흐름을 이끌었던 레이블. 폭력, 마약, 섹스에 대한 과격한 직설법과 욕설이 넘치는 데스 로의 음악은 늘 ‘parental advisory’(부모의 조언 요망) 같은 딱지를 훈장으로 얻었고, 국내에서는 결코 라이선스 음반으로 나올 수 없었다. 꽤 묵은 이들 음반의 발매소식에 눈길이 가는 것
데스 로 베스트 앨범
-
‘딱부리 눈’이 너무도 선량한 조병래(인터넷신문 프레시안 www.pressian.com 사회 에디터)는 만난 지 서너달 만에 ‘술 속으로 급속히’ 친해진 경우다. 이런 경우 친함의 깊이가 뭔가 위태롭고 동시에 걸쭉한 체념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거라서 애매모호-지지부진하기 십상인데 그 짧은 시간에 그가 나를 두번이나 경악-환호케했으니 말년에 이런 ‘친구복’도 드물겠다.하나는 그의 부인이 20년 전, 내가 신인이었을 때, 너무도 착해보여서 ‘흠모’해마지 않았던 서화숙(한국일보 문화부장)이라는 거. 며칠 전 그 얘기를 너무도 뒤늦게 듣고 나는 감탄 또 찬탄했었다. (뒤늦게나마 결혼 축하) 또 하나는 그가 음악애호의 명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들을 것 같지 않은’ 클래식 CD를 200장 넘게 회사로 들고나와 사원들에게 골라가라 하였는데 이것은 내가 알기로 음악 애호의 최고 경지다. 가장 육감이 생생한 ‘음악의 기억’을 망각화, ‘기억 총체’를 음악-사회화하는 경지. 더
인생을 치유하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