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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든다는 건 때로 생명을 거는 일이다. 타흐미네 밀라니 감독에겐 그렇다. 이란 현대사의 그늘을 증언한 작품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그녀에게 영화 만들기란, 생사를 건 투쟁이다. 그 엄중한 진실을 우린 받아들일 수 있을까. 4월5일 개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녀를 만나는 일은 설레고 두려운 일이다. 편집자우리의 영화 동지 타흐미네 밀라니가 이란 정부에 의해 체포됐다는 소식에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영화감독에게 이런 폭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란에서도 전례 없던 일이다. 우리는 밀라니 감독을 지지하고 그와 연대할 것을 선언한다(영화인들의 연대선언문).지난 가을, 인터넷에 연대선언문이라는 것이 떠돌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여성감독 카트린느 브레이야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구명운동에는 모두 1500명의 영화인이 서명을 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시스, 스티븐 소더버그, 숀 펜, 리 안, 마이크 리, 페이 더너웨이, 스파이크 리, 두산 마
카메라를 든 이란의 여성전사, 타흐미네 밀라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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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전주국제영화제(26일~5월2일) 조직위원회(jiff.or.kr, 위원장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어 총 271편에 이르는 올 영화제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개막작으로는, 1973년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김대중 납치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사카모토 준지(44) 감독의 정치 스릴러 <케이티>가 선정됐다. 폐막작으로는 경쟁부문인 `아시아 독립영화 포럼'의 최우수상 수상작을 앵콜 상영한다. 중심 프로그램인 `아시아 독립영화 포럼'엔 일본 후루마야 도모유키 감독의 <나쁜 녀석들> 등 17편이 초청됐다. 정치적 후진성의 극복에서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 아시아인들의 다양한 고민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다. 필리핀 내란 과정에서 상처받은 젊은이들의 사랑에 관한 영화인 마리 오하라 감독의 <악령>이 정치적 주제를 다룬 영화라면, 중국 리위 감독의 <물고기와 코끼리>는 중국 대륙에선
대안영화로 찾는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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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생활의 발견>은 매우 짓궂다. 삶에서 작은 좌절을 겪은 한 남자(김상경)의 우연한 여행 길목에 두 여자(예지원·추상미)를 세워둔 뒤 이들이 벌이는 `사랑, 그 우스꽝스러움'에 카메라의 앵글을 맞춘, 얄궂고도 씁쓸한 코미디다.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처음 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는, “우리가 인간이 되기는 힘들지만 괴물이 되지는 말자”란 말이었다. 선배에게 이 말을 들은 주인공은, 이 얘길 춘천에서 만난 다른 선배와 여자에게 써먹는다. 감독 스스로 이 영화의 열쇠말은 `모방(흉내)'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머리 속에서 맴돌았던 이유는, 이 말과 거의 정반대인 문장 하나가 한때 나의 좌우명과도 같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은 단재 신채호(1880~1936)의 <문예계 청년에게 참고를 구함>이란 에세이에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단재는 이 글에서 남 흉내내기에 급급한 조선의 현실을 매섭게 질타한다. “누
`괴물이 되지 말자`는 <생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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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일하려면 스스로 여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려면 2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성으로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믿지 않는다. 이란에는 10명 정도의 여성감독이 있다. 그러나 나머지 500명은 남성감독들이다.” 지난 200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란의 여성감독 마르지예 메쉬키니는 ‘이란에서 여성감독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여성을 전통의 상징으로 여겨 현대 문명에서 소외시키는 이 문화권에서 영화를 찍는 여성들이 그런 굴레에 갇힌 자신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이란에서 활동중인 여성감독 중에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들은, 타흐미네 밀라니를 빼면, 마흐말바프가의 사람들이다. 그 중 하나가 언급한 마르지예 메쉬키니로,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아내다. 그의 작품 <내가 여자가 된 날>은 ‘여자의 생애’를 보여주는 세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아
이란의 여성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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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극장가가 웃음으로 들썩거릴 전망이다. 12일 첫 선을 보일 <재밌는 영화>를 필두로 <아이언 팜> <울랄라 씨스터즈> <해적, 디스코왕 되다> <일단 뛰어> <뚫어야 산다> <묻지마 패밀리>등 코미디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 채비를 갖춰 나른한 봄기운을 폭소로 날려버릴 태세다. <신라의 달밤> <조폭마누라> <달마야 놀자>등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코미디 영화가 주로 조폭 일색이었던 것과는 양상이 좀 다르다. 다양한 형식과 소재를 갖춘 작품들이 건강한 웃음과 유머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재밌는 영화>는 <쉬리>의 기본 틀에 한국영화 28편으로 갖은 양념을 치고버무린 국내 최초의 패러디 영화. 김정은ㆍ임원희ㆍ서태화가 <엽기적인 그녀> <거짓말> <친구> <인정사정 볼 것 없다>등 히트작들을
코미디영화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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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네번째 영화는 그 제목을 통해 최소한 세편의 영화(제목)를 상기시킨다. 먼저 한글제목 ‘복수는 나의 것’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1979년 작품 <복수는 나의 것>을, 영어제목 ‘Sympathy for Mr. Vengeance’는 장 뤽 고다르의 <사탄에 대한 동정>(Sympathy for the devil, 1968)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글제목과 영어제목이 함께 어울려 아벨 페라라의 <복수의 립스틱>(Ms. 45: Angel of Vengeance, 1980)을 끌어들이는 식이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감독의 영화광적 기질을 문제삼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이 보여주는 형식적 특징들과 주제적 요소에 대한 암시를, 위와 같은 다분히 장난기 어린 영화제목으로부터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서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다른 이에게 복수하는
유운성의 <복수는 나의 것> 지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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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우연과 필연,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대한 책들을 깊이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밋밋하게 절충이라고 불리는, 세련되게는 종합이나 지양이라고 불리는 어중간한 태도를 벗어나 어느 한쪽을 편들어야 한다면, 내 생물체적 감수성은 나를 필연과 결정의 편으로 내몬다. 그러니까 나는 우연(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결국 필연이고, 자유(의지에 바탕을 두었다고 생각되는 사태)가 시간의 처음부터 미리 결정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우연과 필연, 자유(의지)와 결정(론)이 결과적으로는 동일하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일회적인 한, 그리고 우리가 겪어왔고 겪어갈 시간축 이외에 다른 시간축(들)을 상상하기 힘든 한, 자연스럽게 다다르게 되는 결론이다. 그런 유일한 시간축을 가정한다면, 생명의 발생은 우연적이었다라는 자크 모노의 명제는 생명의 발생은 필연적이었다라는 명제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발설하는 것은 세상을 극도로 부도덕하
<세렌디피티>를 본 아저씨의 `사랑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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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1979년에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봐도 좋은 그런 영화다. 이마무라 영화가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이 레퍼런스로 활용한 영화가 아님은 아마도 (두)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편의 <복수는 나의 것>은 단지 제목이 같다는 점 외에 어떤 공통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영화들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그건 이 두 영화가 모두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즐거움이 아닌, 아니 그것과는 반대되는 감정, 즉 불쾌의 감정을 느끼게 할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들이기에 그렇다. 박찬욱의 영화나 이마무라의 영화나 둘 다 끔찍한 범죄를 매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결코 살 만하지 않다고 하는 불쾌한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전하는 ‘불쾌한 영화’이며, 그래서 편한 주류영화에 익숙해 있는 관객에게는 낯
홍성남의 <복수는 나의 것> 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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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체데이 내한공연>예술의전당 토월극장/ 4월18∼24일 평일 4시·7시30분, 토·일 3시·6시(월 쉼)/ 02-548-4480, 1588-7890, 1588-1555/ 서울예술기획(주)1968년 페테르부르크에서 작은 마임극단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마임 컴퍼니로 성장한 러시아 마임극단 리체데이의 세번째 내한공연. 리체데이는 스텀프, 탭덕스 등 다른 비언어 포퍼먼스와 달리 타악기를 많이 쓰지 않고 전통적인 팬터마임에 음악과 다른 소도구들을 접목하는 특유의 방식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 ‘시적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광대극’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이루마 내한공연>영산아트홀/ 4월27일 3시/ 02-658-35467/ 스톰프뮤직드라마 <겨울연가>에서 최지우의 테마곡으로 삽입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When the Love Falls>의 이루마가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루마는 5살 때부터 영국에 유학하여 음악을 공부한 24살 뉴에이지 피아니스
리체데이 내한공연 / 이루마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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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와 집착의 역사>
콜린 에번스 지음/ 이마고 펴냄/ 1만5천원
카인과 아벨 이후, 세상에는 수많은 라이벌과 정적이 있어왔다. 선의의 라이벌은 서로를 성장시키고 더욱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지만, <음모와 집착의 역사>에서 다루는 ‘라이벌’은 주로 서로를 파멸로 몰아넣은 정적들이다. 엘리자베스 대 메리, 올리버 크롬웰 대 찰스 1세, 스탈린 대 트로츠키, 아문센 대 스콧, 에드거 후버 대 마틴 루터 킹 등의 대결을 ‘전형적인 단편소설의 테크닉’으로 끌어간 것도 흥미롭다.
<음모와 집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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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 20년 골든앨범>삶의 문화 발매20여년을 한결같이 한국 포크계를 지켜온 정태춘, 박은옥의 골든앨범. 정태춘의 1978년 첫 앨범 <시인의 마을>에서 1998년에 발표한 20주년 기념 앨범 <정동진/건너간다>까지 총 11장의 앨범에 실린 100곡 가운데 33곡을 가려뽑은 편집앨범. <시인의 마을> <회상> <떠나가는 배> <북한강에서> <사랑하는 이에게3> 등 시대와 민중을 어루만져주었던 추억의 명곡들을 만날 수 있다.<The Best of Me> 데이비드 포스터 워너뮤직 발매오랫동안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온 팝 작곡가 겸 프로듀서이자 영화음악가로도 잘 알려진 데이비드 포스터의 베스트 음반. 척 배리의 백밴드부터 출발해 스카이락이란 밴드로 히트곡을 내고, 존 레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 당대 톱 뮤지션들의 녹음 세션으로도 이름을 떨친 포스터는 79년 어스, 윈드&파
<정태춘 박은옥 20년 골든앨범>/[The Best of Me] 데이비드 포스터/[Papa Loves Mambo] 나카소네 가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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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족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드루이드’ 때문이었다. 언젠가, 영국 남부지역의 갖가지 거석 건조물이 드루이드의 종교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가설을 봤을 때였다. 켈트족의 사제인 ‘드루이드’. 그뿐이었다. 켈트족에 대한 책은 거의 없었고, 유럽의 역사나 고대 문명을 이야기할 때 조금씩 곁가지로 다루어지는 정도였다. 이번에 나온 <켈트>(줄리에트 우드 지음/ 들녘 펴냄)가 유난히 반가운 이유는 그것이다. 그동안 조각조각 알아온 ‘켈트’에 잘못된 상식과 오류가 많았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실감했다. 일례로 나는 켈트족이 영국과 유럽 일부 지역에만 존재한 소수 민족으로 알았다. 그러나 켈트족은 고대에 지중해와 북유럽을 제외한 유럽 전역을 지배했다.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켈트족은, 기원전 500년경 유럽 대륙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아일랜드에서 황금시대를 누렸다. 자연 특히 숲을 숭배해온 켈트족의 사원은 숲 속의 공터였고, 그들은 이집트나 마야
<켈트> <마야>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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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업을 하는 공간은 두 군데다. 아들 두놈에게 일찌감치 안방을 헌납하고 아내와 내가 공용 침실-거실 겸 서재로 챙긴 마루(덕분에 우리 집은 애들이 조용한 편이다)와 역삼동 소재 한국문학학교 사무실이 그것.마루에는 책상을 조합하여 평균치의 3배는 족히 되는 면적을 확보했다. 그리고 벽 2면을 사전류와 CD로 채워놓았다. 학교 사무실 책상 면적도 2배는 된다. 옛날에는 글을 쓰다 말고 후배들과 회의를 해야 하는 일이 많았지만 변변한 공간이 없어서 조태일(시인, 작고)과 김주영(소설가)의 공간을 솔찮은 세월 동안 빌려썼었다.얼굴이 꾀죄죄해서 ‘공간 없는’ 태가 나는지 내게 ‘책상 하나 주마’고 이기웅(열화당 사장)과 정병규(디자이너)도 호의를 베풀었었다. 그래서 이리 뒤늦게 면적 욕심이 큰 건가.그렇단들, 참고서적이 아무리 좋아도 두권을 사서 한 군데씩 비치할 돈 능력은 아직도 안 되는 셈인데, 웬일로, 위 책은 가장 가까운 곳에 세권이나 있다. 1994년 9월30일 재판3쇄, 누계
내 기억의 씨줄과 날줄 <세계사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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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은 조금 의도적인 영화다.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처절한 비극의 원인이 썩어빠진 자본의 세상이라 생각하도록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비극의 원인은, 더 정확히 말해 그 동인은, 실은 영화 자체이다. 카메라는 낭자한 피를 끔찍하게 잡아내는 하드보일드한 눈과 처연하게 비를 맞고 있는 착잡한 달동네의 풍경를 단번에 훑어내려는 야심찬 현실적 조망의 눈 사이에서, 사실상 방황하고 있다. 그 방황 자체로 인해 이 영화는 문제작이 된다. 아직, 역사적 문제의식이 있는 영화작가들의 의도는 더 영화 속에 녹아 들어가거나, 아니면 더 현실로 나오기 위해 영화적 스타일이라는 것 자체를 일시적으로 망각하거나 해야 한다.
영화의 음악을 맡은 어어부프로젝트는 이미 <반칙왕>을 통해 음악을 영화에 붙이는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바 있다. 어어부프로젝트의 음악은 한마디로 슬픔과 우스꽝스러움의 결합이다. 이 결합은 한국 록 음악사에서 어어부프로젝트를 통해 거의
<복수는 나의 것>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