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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은 그 어떤 공간도 닫힌 공간으로 만든다. 한국의 해안선은 3중의 의미에서 ‘벽’이다. 민간인들은 밤이 되면 아름다운 해안선의 어떤 부분을 넘을 수 없다. 반대로, 그 선은 수색대원들에게는 세상과의 단절을 뜻하는 선이기도 하다. 또 크게 보아 그 선은 ‘통일’로 가려는 조선인들의 열망을 막는 벽이다.이렇게 3중의 벽으로 닫힌 공간 속에 연기자들이 투입된다. 김기덕의 남자들은 그 속에서 넘어서는 안 될 것/넘고 싶은 것 사이의 심연을 깨닫는다. 김기덕은 다시, 그 남자들을 그 심연 속으로 침투시킨다. 그리고 김기덕의 여자들은 종종 그 ‘심연’에 존재하는 희생양들이다. 연기자들은 심연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닫힌 비극의 상태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꿈을 깨듯 영화는 끝난다.<해안선>은 그 닫힌 상태의 한 기록이다. 펼쳐져 있지만 드넓은 벽인, 닫혀 있는 물. 어떻게 음악적으로 그 공간을, 그리고 그 공간 속의 상황을 표현할까. 음악을 맡은 장영규(for 복숭아) 역시
닫힌 구조 속의 양떼,<해안선>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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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두드러진 출판경향 중 하나는 그동안 문단과 독자로부터 냉대받아온 추리소설의 주요 작품들이 완역·출간되어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난 도일의 걸작 <셜록 홈스 전집>과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전집>이 큰 인기를 누리는가 하면, 추리문학의 숨은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브라운 신부 전집>이나 고급 역사추리소설 <캐드펠 시리즈>가 완역되기도 했다.이런 흐름에 발맞춰 추리소설과 함께 아웃사이더 장르 취급을 받아온 SF소설의 걸작들도 하나둘씩 다시 출간될 채비를 하고 있어 각별히 주목된다. 그 첫 번째 신호탄으로, 미국 SF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SF소설가 어슐러 K. 르 귄의 수작 <어둠의 왼손>(시공사 펴냄)과 <빼앗긴 자들>(황금가지 펴냄)이 세련된 편집본으로 재출간된 것은 자유추리문고 문고판으로 처음 르 귄을 접했던 SF마니아들에겐 감격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어슐러 K. 르 귄의 <어둠의 왼손>과 <빼앗긴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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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연재를 시작했다니 내가 연재 당시 이 만화를 읽었을 가능성은 없다. 양구에서 군바리로 ‘좆나게 기’던 때니까. 한데도, 모든 것이 낯익고 본 듯하다. <삼국지> 줄거리를 줄줄 외게 되었으니 그렇고(나는 최근 <삼국지>를 여러 용도본으로 여러 차례 읽을 기회가 있었다) 1972년, 내가 대학 1학년일 때 그가 연재하여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던 <임꺽정> 이래 ‘고우영표’로 명명된, 절묘하게 살을 섞은 익살과 재담과 풍자가 다시, 문학에 달하는 지문과 대사(지금 읽어도 문체가 전혀 신세대적이다), 그리고 미술에 달하는 세필화(지금보아도 전혀 빛바래지 않았다) 속으로 절묘하게 녹아드는 광경 때문에 그런가그것만은 아니다. 그의 만화는 5년 동안 세상과 격리되었던 나의 빈자리를 매우 적절하게 채워주고 빈자리 그 전과 그 뒤를 아주 편안하게 또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그 이어줌과 채워줌은 아직도 내 안에 잠재해 있을지 모르는 공허한 성(聖)의 관념,
무삭제판 고우영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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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처마 밑에서 짤랑이는 풍경 소리, 자줏빛 꽃 화분을 든 손에서 힘없이 걸음을 옮기는 발로 미끄러지는 카메라. 낮은 담 옆을 걸으며 집안을 들여다보는 소년의 눈에 툇마루의 고무신이 들어온다. 고무신의 주인인 소녀가 자줏빛 꽃잎을 띄운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화사한 예복으로 갈아입으며 내키지 않는 혼례를 준비하는 동안, 소년은 안타깝게 입술을 깨물 뿐. 혼례 행렬과 가마 안의 소녀, 그뒤를 쫓는 소년의 모습이 교차되는 영상 위로, “못된 못된 나를 잊어주기를” 하는 연인들의 애잔한 이별사가 흐른다. 결국 신방 앞에 놓인 소녀의 고무신이 비에 젖지 않도록 연잎을 덮어주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사랑 이야기,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당부>다.99년에 발표된 이승환의 <당부>는 지난 4∼5년 사이 국내 뮤직비디오의 주류로 자리잡은 ‘드라마타이즈(dramatize) 뮤직비디오’의 한 정점으로 기억될 법한 작품. 중국 전통 음악풍의 선율에 어울리는 시대극의 고풍스
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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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의 장첸이 김현주, 이범수와 주연한 <벌써 1년>은 복서인 두 남자와 그들의 매니저 역인 김현주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한다. 이범수가 경기에서 비참하게 패하고 사라진 자리에 새로 들어온 복서 장첸과 그를 보면서 이범수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는 김현주. 로드웍을 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 다가갈 듯 다가가지 못하는 두 남녀의 미묘한 심리전은 미완으로 남았지만, 곧 발매될 브라운 아이즈의 2집 <점점>의 뮤직비디오로 이어질 예정이다.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는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신은경과 그 대신 감옥에 간 김영호의 기다림을 담은 뮤직비디오. “내가 만든 뮤직비디오를 쫙 늘어놓고 보면, 정말 보편적인 스토리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라는 그의 말대로, 다수의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는 어디선가 읽거나 들은 듯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박명천 같은 감독은 지금도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대중을 놓고 타협하려고
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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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택이 꼽은 `나의 뮤비 베스트7`,그리고 뒷이야기<당부> 이승환 ┃ 1999년혼례를 앞둔 소녀와 그 소녀를 연모하는 소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시놉시스를 쓰곤 광고로 치면 ‘유레카!’란 느낌이었는데, 여기저기 보여주니까 반응이 시큰둥했다. 목욕하는 여인, 풀을 뜯고 있는 소년, 어디에 연꽃이 하나 올려져 있다, 뭐 그런 이미지들이 글로는 다 한두줄이니까. 사흘을 꼬박 새우면서 촬영 막판, 새벽이 됐을 때는 제발 끝나게 해달라고 빌 만큼 힘들게 찍었다. 어떻게 찍으면 어떤 그림이 나온다는 것도 모르던 때, 잘 나왔다면 우연이다.”<그대는 모릅니다> 이승환 ┃ 1999년진심을 몰라주는 연인처럼 무심한 표정을 한 쇼윈도 안의 마네킹을 바라보는 그녀. 부랑자처럼 피폐한 심신으로 배회하다가 결국 그 마네킹을 끌고 텅 빈 놀이공원의 불빛 아래 둘만의 파티를 벌인다. 물 속을 유영하는 듯한 이미지가 현실과 교차되면서, 환상 속에서 사랑을 이루는 인물의 심리
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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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택을 키운 광고 5대우자동차 라노스-안정환 편 ┃ 1999년달리는 안정환과 달리는 라노스의 이미지를 교차편집한 영상으로 ‘젊은 차’의 컨셉을 부각시킨 광고. 도시 속을 달리고, 축구공을 드리블하는 안정환의 움직임과 자유롭게 회전하는 앵글에 담긴 라노스의 질주가 역동적인 에너지를 드러내고 있다.야후! 쇼핑-DDR편, 드럼편 ┃ 2000년인터넷 야후!쇼핑몰에 접속해 DDR을 주문하더니 신명나는 댄스 파티를 벌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드럼편에서는 다듬이질을 하던 할머니가 피로한 듯 어깨를 주무르자 할아버지가 드럼을 주문해 어깨를 풀게 한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경쾌하게 비튼 발상이 돋보이는 광고.SONY 핸디캠-운동회편, 수족관편 ┃ 2001년거실에서 엄마와 미리 달리기를 연습할 만큼 들뜬 아들의 첫 운동회날, ‘평생 간직할 만한 기억’을 핸디캠에 담는 아빠. 수족관 안의 노란 열대어와 바깥의 흰 고양이를 차례로 카메라에 담는 남자. 각각 언제든 중요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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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의 배신을 넘어, 지하전영은 전진한다˝˝정성일, 지아장커에게 중국 영화의 현재를 묻다같은 이야기를 두번 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지만,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두 번째 볼 때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5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온 지아장커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를 보는 순간 이 영화가 올해 내가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때의 나의 흥분은 <씨네21> 355호 77쪽에 실려 있다). 이 영화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 엘리아 슐레이만의 <신의 간섭>,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불확실성의 원리>,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아팟차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과 함께 올해의 영화라고 부를 만하다. 칸은 그동안 소문이 나돌았던 첸카이거의 &
정성일,지아장커를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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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오늘은 먼저 당신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任逍遙: Unknown Pleasures)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야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당신은 내게 두 번째 영화 <플랫폼>을 만들고 난 직후에 준비했었던 영화는 (두보의 시구를 옮긴) <눈 속을 걸으며 매화를 찾아서>(雪中探梅)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 영화는 <임소요>입니다. 제목만 바뀐 것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영화를 만든 것입니까지아장커: 완전히 다른 영화입니다. 저도 <임소요>를 찍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플랫폼> 직후 디지털 다큐멘터리 <공공장소>를 두 번째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의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전주에서 돌아온 뒤로 계속 ‘디지털 삼인삼색’에서 찍었던 따퉁(大同)이란 도시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기로 다시 돌아가서 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아마도 디지털
정성일,지아장커를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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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요>, 장자의 사유 또는 젊은이의 절규정성일: <임소요>에 대한 질문을 저는 이렇게 한번 시작해보겠습니다. <임소요>라는 제목은 장자의 철학적 자구입니다. 당신에게 장자(莊子)는 어떤 의미를 갖는 사람입니까지아장커: 원래는 장자(莊子)라든가, 나비의 그런 이미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차오차오를 연기한 짜오타오는 나비 문신을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왜 여자 들이 나비 같은 것을 붙이는 것을 좋아하니, 하고 물어봤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날 수 없으니까,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는 많은 것을 연상했습니다. 아직 젊은 세대들, 짜오타오의 친구세대들은 장자 안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과 같은 성어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젊은이들은 몇 천년 전에 철학자가 말했던 것을 간단한 부호로 자기 스스로 깨닫고 마음을 표현했습니다.나비가 되어 자기가 날고 싶다는 것을 간단하게 명시한 것이죠. 자유라는 것은 몇 천년
정성일,지아장커를 만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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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그런 것이 디지털의 실험성과 경제성이라면, 그렇다면 당신이 이끌리는 디지털의 미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지아장커: 서사방식에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시나리오에 기대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는 마치 글을 쓰는 것처럼 영화를 찍게 만듭니다. 생각하는 것을 바로 영화로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것은 고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화면과 화면의 합성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화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영화방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 예는 에릭 로메르의 <영국 여인과 공작>입니다. 회화를 찍었고,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다시 찍은 사람을 한 화면으로 합성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전에는 생각하지 않은 영화의 한 방향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디지털영화가 좋은 것은 디지털카메라로 표류하는 느낌을 찍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마음내키는 대로, 마음가는 대로 자유자재로 찍을 수 있다는! 최후에 완성될 작
정성일,지아장커를 만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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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의 중국, 2002년의 중국정성일: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소무>의 1995년 중국과 <임소요>의 2002년 중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지아장커: 가장 큰 차이는, 1995년에는 사람들이 현대화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감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임소요>에 들어와서는 그런 기대와 희망은 이미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소무>에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고, 중국 안에서 산다는 것의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2년 중국을 산다는 것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잘산다고 말하는데 실제 삶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소무> 안에 TV에서 나오는 내용은 거의 다 중국 지역,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관련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임소요>에 나오는 것들은 현대사회의 부호 같은 소식들만 전합니다.더 추상적인 듯한 내용들이고 실제로 내 생활
정성일,지아장커를 만나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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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대선후보 릴레이 인터뷰 기획의 세 번째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인터뷰했습니다. 이 기획의 목적은 12월19일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 및 정당의 영화영상 관련 정책의 밑그림을 미리 살펴보는 것입니다. 아울러 독자들이 후보들의 문화적 소양이나 문화관까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단, 각 후보의 의사와 사정을 반영해 직접 만나거나 서면으로 하거나 둘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후보마다 달리 인터뷰가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편집자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5년 전 대선을 앞두고 <씨네21>이 같은 기획을 했을 때 인터뷰에 응한 바 있다. 당시에는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으나, 이번에는 일정 조정이 힘들어 서면인터뷰로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지난번 대선 때 지금까지 보신 영화 중에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가 <미션>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같으신지요. 또 <미션> 외에 몇편을 더 꼽는다면.→ 제가 97년에 그렇게 대답했
한나라당 대선후보 이회창 서면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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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개막 4일째를 맞이한 서울퀴어아카이브는 현재 란위, 음란소년들, 물고기와 코끼리 등의 작품이 맥스무비의 예매 순위 수위에 오르는 등 영화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란위의 경우 이미 현매와 예매티켓이 모두 매진되었고, 목요일 마지막 프로그램인 '음란소년들/닥쳐 흰둥이들아'도 현장에서 티켓이 모두 매진되었다.
토요일에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상영관 방문해 성적소수자 관련 유세를 할 예정이다. 7시 반의 상영작인 '란위'의 시작 전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일시 : 2002년 12월 7일 토요일 저녁 7시 10분부터
장소 : 서울아트 시네마(구 아트선재센터)
서울퀴어아카이브에 권영길 대선후보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