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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마저 버린 것 같은 황폐한 쓰레기 폐기장. 주위는 온통 처분을 기다리는 고철 덩어리뿐이다.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간간이 불어오는 먼지바람밖에 없는 이곳에, 어느 날 처량한 몰골의 강아지가 찾아든다. 산전수전 다 겪고 마지막에 이곳으로 발길을 돌렸을 게 틀림없는 강아지는 놀라워라, 운 좋게도 음식이 들어 있는 캔을 발견한다. 냉큼 달려들어 덥석 물지만, 단단한 포장을 어찌할 수 없다. 아, 역시 난 뭘 해도 안 돼.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갈고 닦은 재주라고는 눈치 보는 것밖에 없는 강아지는 이번에도 좌절한다.어? 그때 고철더미 속에서 뭔가 움직인다. 또 뭐야! 잔뜩 경계하며 뒤로 물러서는 강아지 앞에 망가진 로봇이 삐걱삐걱 일어서더니 캔을 집어든다. 앗! 비겁한 놈! 너에게 빼앗길 순 없어! 나도 이제 막판이라고!! 인상 팍 쓰면서 머리 굴리는 강아지 앞에 로봇이 내민 것은 뚜껑을 딴 캔이었다. 로봇과 강아지의 우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박재모의 스톱모션애니메이션 <리사이클링&g
더이상 인간의 똥은 썩지 않아,<리사이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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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이니 <내 남자 친구 이야기>의 연재가 끝날 즈음이다. 일본의 한 잡지에 야자와 아이로서는 매우 놀랍게도 ‘시리어스한 미스터리’라는 카피로 <하현의 달>(下弦の月)에 대한 예고가 나왔다. 귀엽고 발랄한 여자아이들의 웃음과 꿈을 줄곧 그려온, 말하자면 인생의 가장 밝은 부분을 (실체감 있는 한에서) 최대한 화려하게 그려온 만화가로서는 놀라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 그녀의 외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기다려왔지만, 후속작 <나나> <파라다이스 키스>가 한참이나 진행되고도 이 작품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두어번 해적판이 나와 속아서 이야기할 뻔도 했다. 그러나 6년을 기다린 뒤, 뒤늦게나마 정식으로 국내에 번역되었고, 이제 야자와가 말하는 ‘심각함’의 실체를 이야기해볼 수 있게 되었다.고등학생인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미즈키. 그녀는 새어머니가 데리고 온 동생이, 이미 그녀의 친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햇빛이 만든 그림자,야자와 아이의 <하현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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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동 끼자매`도 굉장했지<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를 보고 잠시 마음고생을 했다. 남들이 다 좋다고 소리높여 이야기하는 영화를 재미없게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이 소외감이라면 남들이 다 후지다고 거품 무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자괴감이다. 역시 나의 수준이란…. 게다가 가짜 페미니즘에 소프트포르노라는 비판까지 나온 이 영화에 열광하다니 나의 빛나는 ‘정치적 올바름’은 다 어디로 간 거야?그래서 곰곰이 생각했다. 왜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정신 못 차린 건가. 내 인생의 어떤 트라우마가 이 한심하다는 영화에 대한 강한 호감으로 병적 징후를 드러낸 것일까. 그리고 나는 알아냈다. 그 이유를. 그것은 이제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였던 것이다.믿을 수 없겠지만 나, 한때는 미녀였고, 나, 한때는 삼총사의 일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만리동 고개와 효창공원 일대에는 이른바 ‘만리동 끼자매’, ‘효창공원의 천사들’이라고 소문으로 떠돌던 미녀 삼총
아가씨,<미녀 삼총사2>를 보고 아련한 향수에 열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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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똥개
엄지원이 예뻤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개인적으로 들었던 첫 감상 또는 의혹이다. 이런 개인적인 감흥은 만일 이 영화가 곽경택 감독의 연출작이 아니었다면 이 지면을 빌려 사사로이 적는 팬레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김보경이나 <챔피언>의 채민서의 경우에서도 그랬듯이 상대적으로 무명이거나 신인인 여배우 한 사람의 (영화 내 비중에 상관없이) 매력만으로 영화 전체에 탄력을 불어넣도록 했던 곽경택 감독의 전력을 고려한다면 그 감흥은 다소 석연치 않은 ‘착시현상’이라고 해야겠다.
한마디로 그들은 곽경택 영화 속에서 ‘훨씬 예뻐 보인다’. 그 비밀은 영화 속에서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이 실은 남자들의 시선 속에서만 존재하는 종류라는 데 있다. 하여 그들은 아무리 우스꽝스러운 복색에 촌스러운 행색에도 아름답기만 하다. <친구>의 김보경은 남자들의 관음적 시선에 충실하고 <챔피언>의 채민서는 현모양처형의 ‘참하
<똥개> 곽경택 감독의 반성과 결의 그리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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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정보가 드러나는 글임을 밝힙니다.)
올 여름 ‘할리우드 인베이젼’은 속편한 속편들의 융단폭격이라 할 만하다. 여기엔 <매트릭스2>같이 이야기가 선조적으로 이어지는 일리아드형도 있고 <미녀 삼총사2>같이 에피소드를 병렬적으로 바꿔가는 오디세이형도 있는데, 특이하게 <터미네이터3>(이하 <T3>)는 둘 다에 속한다. 새로운 터미네이터가 왔다 사라지지만 상황은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장점이면 좋으련만, 속편의 단서가 될 모든 ‘꼼수’를 용광로에 내던진 전편을 떠올리면 <T3>은 속편을 만들라는 팬들의 성화를 상업적으로 승화하기 위해 억지 설정으로 전편을 우려먹는 듯도 하다. 슈워제네거 형님의 12년치 주름살이 여전히 빵빵한 알통으로 가려진다 한들, 은퇴한 가수의 은퇴 번복 컴백쇼가 그렇듯 예전의 아우라보다 이를 재현하려는 부담감이 더 커 보이는 것이다. 그 부담에 따른 의욕 과잉은 적절한 포인트를 못 찾고 종종 규모와
시리즈물의 관점에서 본 <터미네이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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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일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플라스틱 트리>(알지프린스필름 제작)가 2003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인 '아시아 영화' 섹션에 공식 초청됐다. 지난 프랑스 도빌아시아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바 있는 <플라스틱 트리>는 여러 영화제로부터 출품 제의를 받아오다가 이번에 몬트리올 영화제에 출품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플라스틱 트리>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동거를 중심축으로 전개되는 멜로 영화. 유년의 기억 때문에 성불구가 된 남자 '수', 그의 동거녀 '원영' 그리고 어느 날 이들 앞에 들이닥친 수의 친구 '병호'의 미묘한 삼각 관계를 그렸다. 김인권, 조은숙, 김정현이 주연으로 분해 호연을 펼쳤으며 <남과 여> <러브 스토리>의 프란시스 레이가 음악을 맡아 화제가 되어 왔다.오는 8월 27일부터 9월 7일까지 12일간 캐나다에서 열리는 몬트리올 국제영화제는 북미 유일의 경쟁 영화제로 올해로 27회째를 맞이했으며, 최
<플라스틱 트리>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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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공형진 주연의 <동해물과 백두산이>(감독·안진우/ 영화사 샘, 주머니 필름 공동제작)가 지난 25일 동해의 망상 해수욕장에서 크랭크인 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본의 아니게 동해에 표류하게 된 두 북한병사가 북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미디. 정준호는 북에선 일류였으나 내려와서 삼류로 전락하는 엘리트 북한장교 최백두 역을 맡아 흥행배우의 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줄 예정이다. 공형진이 맡은 배역은 위에선 혼쭐나고 남에선 우쭐대는 뺀질이 북한사병 림동해. 이번 영화로 처음 주연을 맡은 공형진은 물만난 제비처럼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망상 해수욕장을 활보하는 림동해 역에 적역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데뷔작 <오버 더 레인보우>로 신선한 연출력을 보여 준 안진우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오는 12월 개봉 예정이다.
정준호, 공형진 주연 <동해물과 백두산이> 크랭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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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중순 열리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의 게스트와 애니메이션 영화제 애니마시아의 심사위원이 30일 발표됐다.장편경쟁부문, 단편ㆍ인터넷 애니메이션, TV&커미션드 등 세 부문으로 나뉘어 있는 본선 경쟁부문의 심사위원으로는 <애니매트릭스:허가>, <이온 플럭스> 등으로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감독 피터 정, '샌드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헝가리 출신의 페렝 카고, 강한영 선우엔터테인먼트 회장 등 모두 11명이 선정됐다.공식 게스트로는 <카우보이 비밥>의 일본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 <촉산>과 <황비홍>등의 감독 쉬커(徐克), <건담>의 제작사 썬라이즈의 마사오 마루야마 대표, 프랑스 앙굴렘 만화페스티벌의 창시자인 클로드 몰리테르니 등 15개국 83명이 서울을 찾는다.SICAF는 다음달 12∼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와 중구 예장동 서울애니메이션센터,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다.(서
쉬커(徐克) 감독, SICAF 참가차 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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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3>의 기세가 무섭다. 배급사 시네마서비스에 따르면 개봉 첫주말 전국 100만명을 돌파했다. <매트릭스2>의 기록엔 20만명 정도 못 미쳤지만, 주말 서울 관객수 21만 9천여명으로 최근 몇주간의 1위 관객 숫자를 2~3배 웃돌며 박스오피스를 평정했다.<터미네이터3>의 기세에 2주간 1위를 차지했던 <싱글즈>는 2위로 밀려났다. 지금까지 전국관객 누계는 182만명에 달했다. 3위권인 <똥개> 또한 지난 16일 개봉 이후 12일간 1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고 배급사 쇼이스트는 밝혔다. 한편 지난 4월25일 개봉했던 <살인의 추억>은 지난 24일을 마지막으로 공식 극장상영을 마쳤다고 CJ 엔터테인먼트가 밝혔다. 전국관객 510만여명 정도로 <친구><쉬리><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어 역대 한국영화 4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다.31일 오전 현재 맥스무비의 예매순위를 보면 여전히 <
<터미네이터3> 기세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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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 1탄의 듀프 네거 필름(원본 필름과 상영 프린트의 중간단계)이 영화진흥위원회 창고에서 발견됨으로써 복원 상영의 길이 열리게 됐다.국내 애니메이션 순회 상영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로보트 태권V>의 필름을 찾던 영진위의 김보연씨는 "영상자료원 소장 필름 등은 모두 복원 상영이 불가능한 상태의 프린트였으나 영진위 창고에 보관된 40여편의 옛날 필름 가운데 원본에 가까운 <로보트 태권V> 필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이 필름은 10벌 가운데 시작 타이틀과 종료 타이틀을 뺀 8벌이며 현재 영진위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복원 상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원작자인 김청기 감독도 상영에 동의한 상태이며 3D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하기 위해 판권을 사들인 영화사 신씨네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문제는 5억∼10억원에 달하는 비용과 최소한 1년에 달하는 기간. 흥행 가능성이 불투명한 형편이므로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성
<로보트 태권V> 복원 상영 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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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말고 이런 피서는 어떨까? 캄캄한 극장이 아닌 넓디넓은 행사장에서 영화를 실감나게 즐겨보는 것. 7월17일 개막한 부산 전시컨벤션센터(BEXCO)의 ‘2003 무비쇼’가 테마파크형 전시회로 꾸며졌다. 관람객이 영화 속 장면과 소품, 촬영현장의 체험과 특수효과 등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메인무대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 <그리스> <물랑루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시카고> 등 영화 속 뮤지컬 장면을 재연하여 공연하는 ‘엔터테인먼트관’을 비롯해 <엑스맨>의 한 장면인 철장 속 격투장면을 재연해 현장의 촬영장면과 영화 속 촬영장면을 대형 스크린에 번갈아 상영하는 ‘촬영현장관’, 블루스크린과 강풍기를 이용해 스카이다이빙 장면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해보는 ‘영화체험관’, 그리고 <젠틀맨 리그> <미녀 삼총사>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에서 실제
스크린 밖으로 나온 영화들,`2003 MOVI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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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의 것이 아닌 듯한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미소, 성냥개비를 꼬나문 삐딱한 입매, 검은 바바리 코트의 주윤발은 천하무적 백발백중의 스나이퍼일 뿐 아니라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총탄 속에서도 언제나 무사했더랬다. ‘혹시 저 몸은 방탄이 아닐까’ 하며 탄복하게 했던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시절의 주윤발이 돌아왔다. 옛 동지 오우삼의 부름을 받아, 이름하야 <방탄승>이라는 영화로.수백년 동안 티베트 고승들 사이에 전해 내려온 전설의 두루마리가 있다. 읽기만 하면 엄청난 힘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비기가 담긴 두루마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린 무명승(주윤발)은 악의 무리가 쏜 총에 맞아 천길 벼랑 아래로 떨어진다. 60년 뒤 뉴욕. 그때 그 무명승은 후계자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지하철에서 위험에 처한 아기를 구한 소매치기 카(숀 윌리엄 스콧)를 발견한 무명승은 그를 후계자로 낙점하고 특별 훈련을 강요한다.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하는 이들. 과연 세
총탄은 그대를 피해갈지니,해외신작 <방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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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이 한통 날아왔다. 혼자 있을 때 열지 않음 옆에 동생들도 있는데 그냥 열어봤다간 그만 희한한 스팸메일에 눈이… 순간 썩고 만다. ㅠ ㅠ 이름으로 봐선 아마도 중학교 때 친구인 것 같다. <씨네21> 보고 학교 친구한테 연락이 온 놈은 이 녀석이 처음이다. 역시 나의 사춘기는 왕따 또는 존재감이 없는 음침한 꺽다리였는지도…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씨네21> 같은 잡지를 보는 노처녀… 음… 말 안 해도 감이 온다. 우린 곧 약속을 하고 버거킹에서 만났다. 사실 난 조금 두근거렸다. 내가 너무 뚱땡이가 되서 못 알아보면 어쩌지? 그녀가 너무 변했으면 어쩌지? 아니면 혹시… 다단계이면 어쩌지? 저 멀리서 그녀가 들어오는데 나의 두려움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중학교 때 보던 그 모습 그대로다.그녀는 속눈썹이 길어서 기억이 뚜렷이 난다. 키가 큰 나와 걷다가 난 그녀를 본의 아니게 내려다보면 그 긴 속눈썹에 감탄하며 심지어 그 위에 성냥개비를 올려놓고 싶다고 생각해본
영원하라!빠순이,<와일드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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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의 외할머니는 무식했으나 나름대로 당당했고 사랑스러운 분이셨다. 맞은편 동네의 따뜻한 백열전구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져 어슬어슬 건너다 보이고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저 집도 오늘 저녁 끼니는 거르지 않는구나’라고 서로를 안심하던 달동네. 그 달동네 외가댁에서의 기억은 곧 외할머니와의 추억이다.
나의 수호천사 외할머니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무조건의 사랑을 주셨다. 그러나 유일하게 화를 내며 주장하시던 일이 있었는데 ‘밤에 똥을 누지 말라’는 것이었다. 손자에게 이끌려 푸세식 뒷간 문 앞을 지키고 앉아서 “똥 누냐? 밤똥 누지 마! 먹은 것도 없는데 배를 비우면 아침에 배고파지잖아∼”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면 나오던 응아도 당황하고 멈칫거리기 일쑤였다. 배설을 참으면 배가 덜 고프리라 여기시는 할머니의 사랑(?)어린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유난히도 튀어나온 텔레비전의 뒤통수가 손도 못 대게 뜨거워지도록 TV 보는 일이
“그 미국 할머니, 한국말도 잘하네”,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