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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에 관한 첫 번째 시선순결의 귀환그러니까 세상에는 모든 이미지가 사라져도 살아남을 것 같은 영화가 있다. 브레송이 그렇고 고다르가 그렇고 <도그빌>이 바로 그런 영화이다. 라스 폰 트리에가 분필 하나로 만들어낸 세상은 세트를 없애고, 핍진성을 없애고, 스펙터클을 없애고, 교차편집을 없앤다.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창녀에게 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장님이 눈을 뜬 것처럼 행세하며, 값싼 유리를 비싸게 만드는 이곳은 인간의 모든 죄의식, 수치, 나약함, 허위, 사기를 모아 만든 유리의 성이다. 그곳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다시 도그마로 귀환한다. 177분 동안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보는 것 같은 단일한 무대 위의 종교적 수난극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와 연극과 소설이 삼위일체로 성큼 다가서는 기적 같은 순간이 다가온다. 히치콕이 우리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는 위치 대신 외화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물로 영화 안에 동참시킨 것처럼 라스 폰 트리에는 우리
<도그빌>로 돌아온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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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커칠 상할까봐 스탭들 양말 바람으로 다녔어”구상에서 시사회까지, 영리한 실험 <도그빌>의 전말“이게 다 뭐 하는 짓이요?” 친구 니콜 키드먼을 위문하기 위해 베를린영화제에서 곧장 전용기를 타고 스웨덴의 <도그빌> 세트를 방문한 러셀 크로가 내지른 일성이었다. 그를 특별히 무례하다고 욕할 수는 없다. 그를 맞이한 것은 글씨로 쓴 ‘개’가 짖어대는, 벽도 없는 집들의 마을이었으니까. 사실 <도그빌>의 세트에 처음 도착한 배우들이나 <도그빌>을 처음 본 관객의 머릿속을 지나간 첫마디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러셀 크로의 질문 아닌 질문에 붙일 수 있는 하나의 답은 ‘실험’이다. 실험의 목적이 무엇이건 라스 폰 트리에는 가운을 걸친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영화를 만들어왔고 <도그빌>을 만들었다. 햇빛과 물과 흙이 식물의 생장에 필수적인지 알기 위해 딱 하나씩 조건을 통제하며 강낭콩 싹을 관찰했던 초등학교의 과학 실습시간처럼. “한 가
<도그빌>로 돌아온 문제적 감독 라스 폰 트리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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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자료원 개선을 위한 6가지 제안연구인력, 기획력, 자료 확충, 저작권 제도 등이 화두최근 한국 영화계는 100년의 역사 속에서 최절정기를 맞고 있다. 제작, 배급, 극장 등 영화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한국영화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영화계에서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나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영상자료원이다. 영화필름을 수집, 보관, 복원하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교육, 연구사업을 펼치는 것이 목적인 한국영상자료원은 30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지금에 와선 부쩍 성장한 한국영화의 위상에 맞는 활동을 펼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 영화·영상자료는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예술적 가치를 가졌다는 측면에서 갈수록 중요한 현대의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인 탓에 영상자료원의 변화는 더욱 절실하다. 곧 이뤄질 신임 원장의 선임을 앞두고 한국영상자료원의 개혁 방향을 모색해본다. - 편
영상자료원,이렇게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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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배가르고, 쿠바 판자촌 싹쓸어버리고...올해엔 몇년 만에 돌아온 놈들이 참 많다. 네오(<매트릭스>)부터 천사들(<미녀삼총사>), T-800(<터미네이터>), 라라(<툼 레이더>),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녀석들이 이놈들이다. 나쁜 녀석들. <나쁜 녀석들2>는 8년 전 감독 마이클 베이와 주연 윌 스미스, 마틴 로렌스를 대스타로 만든 버디영화의 속편이다. 올해 나온 속편들이 어느정도 수준을 유지했듯 이 영화도 볼거리 많은 액션 버디 영화로는 빠지지 않는다. 근데 미국에선 이 영화의 폭력성이 꽤 논란이 된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이번 영화에선 시체의 배를 갈라 마약을 찾다가 심장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나온다. 둘의 수다로 일관하다 한참이 지나야 총을 빼들던 1편과 달리 아예 2편에선 KKK단의 집회에 숨어들어 흰 옷을 벗어던지며 총질을 해대는 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이애미의 이국적 풍광과 함께
진짜 ‘나쁜 놈’ 돼서 돌아온 <나쁜 녀석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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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자료 꽃단장해 대중 속으로"92년부터 <한겨레>에 영화비평을 실어온 이효인(43) 전 경희대 교수가 한국영상자료원장(차관급)이 됐다. 영화계나 문화계 원로에 대한 대우 차원에서 임명해온 이 ‘예우성 보직’을 그에게 맡긴 건 문화부 차원 뿐 아니라 새 정부 전체로 볼 때도 주목할 만한 개혁적인 인사이다. 이 신임 원장은 85년 서울영화집단에 들어가 문화운동 차원에서 영화일을 시작한 문화계 운동권 인물이다.92년 평론을 시작한 뒤에는 정성일, 이정하 등과 더불어 당시 영화평론의 부흥을 주도했다. 또 독립영화계에 몸담으면서 계간 <독립영화> 편집장을 맡았고, <한국영화 역사 강의1> <영화여 침을 뱉어라> <영화미학과 비평입문> <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등의 책을 펴냈다. 지난 29일부터 출근을 시작해 이틀째인 30일 만난 넥타이 차림의 이 원장은 어느새 공무원다워 보였다.-필름자료 1만3천여점, 비디오테잎
한국영상자료원장 된 ‘문화계 운동권’ 이효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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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파 연기자 조재현과 차인표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영화 <목포는 항구다> 가 드디어 8월 25일 목포에서 크랭크인, 첫 항해를 시작했다.
목포에서 진행된 첫 촬영은 대규모 마약거래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백성기(차인표 분)가 이끄는 조직에 위장 잠입을 시도한 이수철(조재현 분)이 첫 단계로 다방 커피배달 운짱으로 취업하는 장면이었다. 이 날 이수철로 분한 조재현은 까치머리에, 피부까지 검게 태우고, 촌티나는 알록달록 칼라풀 남방과 꽉 끼는 녹색 츄리닝으로 어설프고 코믹한 분위기를 한 껏 연출했다.
강력계 찬밥형사의 목포 조직 입성기를 그릴 코미디 영화 <목포는 항구다>(투자/ 배급 코리아픽쳐스/ 제작 기획시대/ 연출 김지훈)는 9월 말 모든 촬영을 마치고 내년 1월 개봉 예정이다.
인터넷 컨텐츠팀 cine21@news.hani.co.kr
<목포는 항구다> 목포에서 크랭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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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난 가족> (감독 임상수/ 제작 명필름)이 오는 27일부터 9월6일까지 이태리에서 열리는 제6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 (VENEZIA60)에 초청되었다.베니스 국제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모리츠 데 하델른 (Moritz de Hadeln)은 31일 해외 배급사인 이픽처스(대표 폴이)를 통해 "가족의 붕괴라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통렬하면서도 경쾌한 해석과 인물들에 접근해가는 임상수 감독의 독창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 라는 평가와 함께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 (VENEZIA60) 선정을 알려왔다.지난 5월 깐느 마켓에서 처음으로 상영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바람난 가족>은 일찌감치 베니스 영화제 본선 진출 유력작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그리고, <바람난 가족>은 베니스 영화제 외에도 9월 4일부터 열리는 북미 최고의 영화제인 토론토 영화제 등에서 이미 초청을 받아놓은 상태다.한편, 지난해 베니스 국제 영화제
<바람난 가족>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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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진흥기금 폐지 적절한가
2875억원. 1973년부터 극장 관객의 쌈지에서 나온 문예진흥기금 액수다. 이걸 2002년 기준 소비자 물가지수를 반영하여 환산하면 4588억원이나 된다. 티끌 모아 태산 되고, 방울 모아 젖줄된 셈이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전폭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미비했던 시절, 문예진흥기금은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든든한 보루였다. 이러한 문예진흥기금 모금은 올해 말로 끝이다. 준조세 폐지 입장에 따라 문예진흥기금 모금 폐지를 추진해왔던 정부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상정할 예정으로 그동안 기금을 운영해왔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까지 마련한 상태다.
원칙적으로 정부의 조치가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관객으로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입장요금에 포함됐던 모금액 475원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예진흥기금이 폐지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극장 입장료가
입장료는 안내리고 지원은 축소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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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인생은 한 개인의 삶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인생이 있다. 배우도 생존과 자기성취를 위한 하나의 직업에 불과할 수 있지만, 스크린에 투영되는 배우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 아닌 대중의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즐기는 대중의 감동은 배우의 인생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서 출발한다. 대중이 열광하는 배우에 대한 사랑의 시선에는 그들의 삶과 스크린의 인생을 하나로 보고 싶은 욕구와 판타지가 있다. 단순히 인기만 있는 것이라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뭐 그리 궁금할까 싶다. ‘스타’라는 딱지가 존경의 마음으로 우러러는 것이지만, 때로는 경멸과 야유로 돌변하는 사슬인 것은 스타의 인생을 자신의 우상으로 영원히 간직하고픈 욕망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배우는 우리 모두의 자산이자 자랑거리이다.스타 배우가 한 사람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통이 숨어 있다. 배우들의 개런티가 갈수록 높아만 간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있지만, 이것은 배우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생
스타도 영화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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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영화가 원래 그런 영화예요."<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등을 연출했던 임상수(41) 감독이 또다른 문제작 <바람난 가족>(제작 명필름)으로 돌아왔다.<바람난 가족>은 젊은 여자를 애인으로 둔 변호사 남편, 병든 남편을 두고 딴 남자를 만나는 시어머니, 고등학생과 '섹스'를 나누는 며느리 등 '바람난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발칙한' 영화.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20대의 섹스를, '눈물'이 10대의 성을 다루고 있다면 <바람난 가족>은 30대에서 60대를 아우르는 성적 욕망을 전작들 못지않게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29일 오후 영화의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감독을 만났다. "힘든 인생에 연애가 힘이 된다면 까짓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라며 연출의 변을 밝히는 감독은 "우리 영화가 원래 그런 영화"라는 말로 자신의 영화를 정의했다.다음은 감독과의 일문일답.▲영화에서 궁
[인터뷰] <바람난 가족> 임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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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살에 죽어서 전설이 된 사람들이 있다. 3J라고 불리는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이 바로 그들인데, 60년대 록음악을 절정으로 끌어올리고 찬란하게 산화해버린 이 전설의 인물들을 차치하고, 60년대 록음악을 거론하면서 자주 튀어나오는 이름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에릭 클랩튼. 그의 초기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록(과 블루스)의 고전격인 음반들이 유니버설에서 재발매되었다(유니버설에서는 최근 마스터피스 시리즈를 통해, 그간 절판되어 구입하기 힘들었던 24장의 걸작 앨범들을 재발매했다).60년대는 에릭 클랩튼이 솔로로 활동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그의 활동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야드버즈, 블루스 브레이커스 위드 에릭 클랩튼, 블라인드 페이스, 데릭 앤 더 도미노스, 그리고 크림이라는 이름이다. 에릭 클랩튼은 각각의 밴드에서 한두장 정도의 앨범에만 참여했지만 매번 ‘슈퍼밴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70년대 초반, 약물중독으로 침체기를 보내던 그는 74
백문(百文)이 불여일청(不如一聽),유니버설 명반 재발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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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 감독의 신작 <똥개>는 서민적인 영화다. 그 특유의, 일상적인 사물들과 환경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잘 발휘되어 있다.
첫 장면은 엄마의 꽃상여가 나가는 장면이다. 철없는 ‘똥개’는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배고프니 떡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프랑스의 어느 시골에 찾아온 봄날을 자축하기라도 하는 듯한 3박자의 아코디언(프랑스어로는 방도네옹) 연주가 흥겹고 경쾌하게 흐른다. 흔들흔들 아지랑이 어지럽고 하늘하늘 꽃이파리 흐드러지는 봄날의 꽃상여라. 껄껄, 이 음악은 현실을 꼭 곧이곧대로 보지 않겠다는 감독의 큐 사인이다. 대신 여유있고 즐거운 시선으로, 파로디 하는 시선으로 보겠다는, 그리하여 곽경택 특유의 그 ‘추억하는 즐거움’을 다시 한번 누려보겠다는 전언으로 읽히는 음악이다. 이 역설적 선택 자체가 너무 직접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고민하다가 의도 전체가 꼬이는 길을 경상도 사나이가 택할 리 없다. 영화는 장면에 걸맞
트레이닝복 같은 매력,<똥개>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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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란 대체로 현실보다 다채롭다. 일상보다 더 느리고, 더 건조한 게임은 드물다. 개 산책을 시킨다던가 지팡이 하나 쥐고 전국의 절을 순례하는 게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공중제비를 돌며 권총을 휘두르는 게임이 훨씬 많다.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 게임 속에서 사회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검열 때문에 못하는 일들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짜릿한 것이다. <업링크>는 해킹이라는 일탈 행위를 체험하는 게임이다.시작하자마자 도스 분위기의 퍼런 화면이 압박해온다. ‘업링크’라는 해킹회사 에이전트로 등록한다. 해킹에 성공해 보수를 받으면 컴퓨터와 네트워크 환경을 업그레이드한 뒤 다시 새로운 임무에 나선다. 해킹이란 말을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해킹이라는 하드코어적 테마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들 수 있을까?처음 떨어지는 임무는 어떤 사이트로 가서 특정 데이터를 카피해오는 것이다. 그 사이트에 접근하려
해커가 되자,<업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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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총기사건의 대명사’로 불리며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컬럼바인고교 사건의 가해학생들이 <매트릭스>의 팬이었다는 발표 이후, <매트릭스>는 청소년들에게 폭력을 조장하는 영화의 대명사로도 깊게 각인돼 있다. 현실세계와 영화 속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현실에서 당하는 억눌림을 폭력으로 표현한 것에 <매트릭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종의 ‘마녀사냥’에 반대하는 이들도 끊임없이 반론을 제기해왔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대표적인 경우.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여론 주도층들은 <매트릭스>와 같은 할리우드영화가 청소년을 중심으로 심약한 이들에게 그릇된 세계관을 심어주고, 그를 기반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만들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그런 증거는 얼마 전 ‘미국 10대 3명, <매트릭스>를 본뜬 범행 계획’이라는 식의 제목으로 각 언론에 소개된 한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매트릭스 놀이,<매트릭스>가 선사한 또 하나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