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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한테 ‘나 너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요렇게 좀 전해주세요.” <헤어질 결심>의 해준과 서래만큼이나 임팩트를 남긴 건 해준이 수사하는 살인사건의 용의자 홍산오의 사연이다. 사랑의 한 속성을 관통하는 듯한 이 문어체의 러브레터는 배우 박정민의 핏발 선 눈빛과 충돌하며 형용하기 어려운 애절의 골짜기를 판다. 가수 화사와 특별 공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제 시상식 이후 ‘박정민의 멜로’에 대한 수요가 치솟았는데, 개인적으론 그 고점을 <헤어질 결심>을 통해 이미 봤다고 생각했다. <휴민트>를 보고 나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쩌면, 그는 애초에 멜로의 저점이 매우 높은 배우였을지도 모르겠다. 박찬욱 감독이 발굴하고, 화사가 붐업시킨 ‘박정민 멜로’의 수요를, 류승완 감독은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살뜰하게 활용한다. 역시 ‘대중영화’ 감독다운 영민한 감각이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2> 개봉 당시에도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트렌드와 클래식, 흐름 읽기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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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고 8분10초 동안 보이는 롱테이크 첫컷과 마주한 순간 카메라의 유려한 움직임과 매혹적인 빛에 사로잡혔다. 유영하듯 움직이는 카메라는 관찰자 위치에서 인물들을 바라보는 줄 알았다. 나의 착시였다. 나는 ‘아름답다’는 감각에 붙들린 채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횡적 이동에 머물지 않고 인물들을 향해 점진적으로 다가선다.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행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시선을 안내한다. 굳어가는 공간 안에서 자유롭고 아름답게 움직이지만, 마지막 경고다. 공간을 벗어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함을 인물들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카메라의 몸짓으로 외친다. 당시 상하이 조계지 거리에는 이미 전기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유곽 안의 청나라 관료들은 여전히 낡은 촛불과 램프 아래 고립되어 앉아 있다.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는 카메라
8분10초의 첫컷 안에서도 카메라의 움직임은 단순하지 않다. 처음에는 공간 전체를 보여주듯 천천
[박홍열의 촬영 미학] <해상화>, 아름다움이라는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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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방언으로 석회암동굴을 뜻하는 가마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마을 주민들이 몸을 피했던 피난처이자 죽음의 장소였던 전쟁 동굴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키나와현 요미탄손에는 지비치리 가마와 시무쿠 가마가 있다. 지비치리 가마는 일본군의 강요에 의한 집단 자결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이고,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무쿠 가마는 미군의 폭격을 피해 숨어 있던 1천여명의 주민이 생존한 장소다. 얼마 전 오키나와에 갔을 때 시무쿠 가마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두 일화를 뒤섞어서 기억하는 바람에 시무쿠 가마에서 1천여명이 죽었다고 믿은 채 그곳으로 향했다. 가마의 입구에 섰을 때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에 들어가기를 한참 망설였던 기억. 어둠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났다. 입구에서 몇 미터 못 들어간 지점에 앉아 있는데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한 손에 랜턴을 들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나는 캠코더의 야간 투시 기능을 켜고 그의 동선을 따라갔다. 남
[비평] 지하가 현실이다, 김예솔비 평론가의 ‘오다 가오리의 지하 삼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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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물의 연대기>를 말하기 전 원작을, 정확히는 이 회고록이 ‘아닌 것’을 언급하는 편이 좋겠다. 극복과 성공으로 귀결되는 전기가 아니다. 고백이나 고발, ‘친족성폭력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 A의 사례’가 아니다. 통상적인 연대기와도 거리가 멀다. 당사자이자 화자인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장면(이 글에서 일컫는 ‘장면’은 기억 속 상을 의미한다)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지 않았고, 주인공인 자신을 보편적으로 수용될 만한 인물로 다듬지 않았다. 유크나비치의 글은 몸과 밀착한, 몸의 리듬을 따르는 글이다. 이러한 원작의 속성을 일부 공유하는 영화는 사건을 재현하기보단 기억 소화 과정을 육화한다.
16mm 필름에 촬영한 이유를 설명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문장 가운데에는 “영화가 조각나야 했기 때문”(2025년 5월18일, <인디와이어>)이라는 표현이 있다. 필름을 물리적으로 쪼개 다시 붙이고 포갠 결과물은 이음새를 드러내는 유동성을 지닌다. 자르고 기운 부위는 신체
[비평] 습기를 머금은 몸들에 관해, 김연우 평론가의 <물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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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여 송현수(宋玹壽)는 교형(絞刑)에 처하고, 나머지는 아울러 논하지 말도록 하였다… 노산군(魯山君)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 지냈다.- <세조실록>9권, 3년 10월21일 기사 중
삼촌(세조)의 권력욕에 희생된 노산군, 즉 단종에 관한 기사는 단출하다. 장인어른 송현수가 죽자 노산군이 자살을 했고 노산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예를 다해 장례를 치렀다’라는 내용이다. 참으로 모진 구절이다. 어린 나이에 국왕에 즉위해 자신을 돕던 수많은 사람들이 삼촌에 의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생을 다했는데 사관은 그 죽음의 책임을 묻기는커녕 예를 다했다는 말로 국왕을 변호하고 있는 모양새다. 실록의 기록이 단출한데 반해 중종 이후 등장한 문헌에는 당시의 사정이 좀더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통인(通引) 하나가 항상 노산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겼다.
[특집] 과감할 뻔했던, 하지만 결국 통념에 갇혀버린 – 심용환 역사학자가 본 <왕과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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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이 왕좌에서 물러난 연약한 어린 왕. 단종이 지닌 오랜 이미지는 쟁취하는 것보다 뺏기는 것, 힘 쓰는 것보다 잃는 것에 가까웠다.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적 사료에 상상을 뒤섞어 단종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생동하는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강인한 의지의 주인으로서, 격식 없이 백성들과 함께 웃는 평등한 지도자로서. 폐위된 왕 이홍위의 프리즘을 넓힌 영화는 박지훈의 처연한 눈과 강단 있는 목소리를 통해 단종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한다. 잊힌 역사는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박지훈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을 들여다봐야 한다. 왕의 슬픔을 체화한 그는 아직 채 흘러가지 않은 이홍위의 시간을 품고 있다.
- 언론·배급시사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인사를 했다. 시사를 보며 운 듯하다.
영화의 최종 버전을 그날 처음 봤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지막 여운이 훨씬 더 길게 남았다. 너무 이입해서 그런지 쉽게
[인터뷰] 슬픔의 왕좌에서 – <왕과 사는 남자> 배우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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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는 배우 유해진의 종합 선물 세트다. 코미디부터 무게 있는 드라마까지 그동안 배우 유해진이 보여줬던 거의 모든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에서의 능청스러움과 <이끼>(2010)에서의 광기가 공존한다. 중견 배우들을 향한 관객의 피로감이 종종 언급되지만 단언컨대 유해진 배우는 예외다. 비결을 물을 것도 없었다. 그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는 ‘재밌는가’다. 여기서 재미란 꼭 웃기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이다. 웃음을 주든, 생각할 거리를 주든, ‘이 영화를 왜 하는가’에 대한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요즘은 거기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과연 관객이 극장에 올까? 극장까지 와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가’를 고민한다.” 유해진 배우는 극 중 엄흥도를 “곁을 내어준 사람”이라 평했다. 이 말을 그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다. 그는 (한국영화의) 곁
[인터뷰] 곁을 지킨 사람, 곁을 내어준 배우 - <왕과 사는 남자> 배우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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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단종 이홍위(박지훈)와 엄흥도(유해진)의 관계를 ‘죽은 선왕과 그의 시체를 거둔 백성’으로 칭한다. “연차가 쌓이며 사건보다 인물의 동기에 집중하게 됐다”는 장항준 감독은 엄흥도가 죽음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한 이유와 생전 둘의 관계를 유추하며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살아남은 사실을 죄처럼 여긴 단종과 식구의 안위만이 중요했던 촌장 엄흥도는 영화에서 신분을 넘어선 친우가 된다. 상상력을 가미해 역사적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될 것이다.
- 근 1년의 시간을 들여 각색 과정을 거쳤다고. 어떤 방향을 중요하게 여겼나.
각색하며 달라진 점은 단종 이홍위에 대한 묘사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라이언 일병 한명을 구하기 위해 1개 소대가 피를 흘리지 않나. 그때 누군가가 말한다. “제발 라이언이 우리가 목숨을 걸 만큼 좋은 애였으면 좋겠다”고. 나도 마찬가
[인터뷰] 과감하게 상상하되, 지켜야 할 선을 지키다 – <왕과 사는 남자> 감독 장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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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가 그리는 단종은 세조에 의해 폐위된 비운의 어린 왕 이상이다. 백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고 나란히 앉아 평안하게 웃는다. 활쏘기에 능하며 불굴의 얼굴로 세력에 저항한다. 박윤호 프로듀서는 박지훈 배우를 섭외할 때 이 굴곡을 가장 먼저 기대했다. “그간 역사 속 단종은 유약하고 힘없는 존재로만 그려졌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속 단종은 마을 사람들에게 동화되면서 주군으로서의 면모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박지훈 배우의 슬픈 눈빛을 알기에 단종 초기 느낌은 제대로 매칭될 거라 생각했다. 다만 개혁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힘 있는 장면을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됐는데 기대 이상으로 더 잘해줬다. 불가역적인 분노가 박지훈에게 보였다.”
광천골이라는 빈곤한 오지의 촌장 엄흥도(유해진). 그가 쓰고 다니는 귀여운 둥근 모자는 탕건 계열의 모자를 기본 삼아 캐릭터 설정에 맞게 변주한 결과다. 심현섭 의상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의상 자체는 최대한
[특집] 서글픔이 읽히는 그의 흰색 도포 - 프로듀서, 미술·의상 감독이 전하는 <왕과 사는 남자>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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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찢기고 피를 토하는 사육신의 뒷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고문을 받으면서도 단종(박지훈) 복위의 당위성을 고하는 외침을 들으며 왕은 차마 식사를 들지 못한다. 그때 세조의 최측근인 한명회(유지태)가 단종을 찾아오고 이후 유배지인 강원도로 향하는 단종의 걸음이 이어진다. 16살에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왕. 조선의 왕 중 가장 단명한 비운의 왕. 이것이 익히 알려진 계유정난 이후 단종의 역사다. 영화 <단종애사> <관상> <나랏말싸미>, 드라마 <한명회> <왕과 나> <공주의 남자> 등 단종의 서사는 1950년대부터 다양하게 다뤄져왔다. 세조와 비교해 위태로운 어린 왕으로 빈번히 묘사되던 전과 달리 <왕과 사는 남자>가 주목한 것은 힘없이 스러진 왕의 전사가 아니다. 단종이 유배지에서 반격을 도모한 과정, 그 곁을 지킨 엄흥도(유해진)의 관계가 <왕과 사는 남자>의 중심축이다.
극의 무대는
[특집] “작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 <왕과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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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있겠느냐? 누가 오든 말이다.” 촌장 엄흥도(유해진)는 가난한 마을 사정에 보탬이 되도록 광천골을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마침내 광천골에 도착한 이는 기대와 달리 노산군으로 강등된 이홍위(박지훈)였다. 유배지를 돌보는 보수주인으로서 엄흥도는 가까이서 이홍위를 살피기 시작한다.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왕과 사는 남자>에선 1457년, 단종의 유배지 영월을 배경으로 엄흥도와 왕의 깊은 우정을 그린다. 광천골 백성들을 만난 뒤로 소중한 이를 더 이상 잃지 말자고 다짐한 단종의 결심과 변화가 인상적으로 서술된다.
사료의 행간에 상상을 더해 완성된 <왕과 사는 남자>의 제작 과정은 어땠을까. 장항준 감독, 유해진·박지훈 배우가 작품에 관한 각자의 애정을 들려주었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박윤호 프로듀서, 배정윤 미술감독, 심현섭 의상감독의 준비 과정과 심용환 역사학자가 바라본 작품에 관한 해석도 함께 전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왕
[특집] 기록되지 못한, 실현되지 못한 나날에 대하여 <왕과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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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세계에서 벌어지는 연민 가득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삼각관계를 다루는 <영원>은 할리우드의 전통을 사랑하는 관객에게 단순한 로맨틱코미디 이상이 될 수 있다. 지하실에 잠들어 있던 장르, 필름 블랑의 부활을 의미해서다. 1940년대 초반 번성했던 일군의 할리우드 판타지영화들이 A24 신작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는지 탐구해보았다.
필름 블랑과 색채의 귀환
나란히 앉은 세 주인공의 뒤로 그들의 형상이 무한히 펼쳐지는 <영원>의 포스터는 마이클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1946년 걸작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묘사한 림보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1940년대 초반 흥행한 필름 블랑 장르의 대표작이다. 필름 블랑은 필름누아르의 정신적, 미학적 대척점 역할을 하는 영화들로 정의된다. 누아르가 배신, 복수, 도덕적 타락으로 점철된 사회의 어둡고 냉소적인 이면을 파헤쳤다면, 필름 블랑은 낙관과 용서, 사후 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과 초월적 로맨스를 제시했
[기획] A24가 향수에 빠진 까닭은? - 에른스트 루비치, 빌리 와일더, 파웰과 프레스버거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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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재결합 로맨스 코미디의 조건은 한 커플이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재협상하는 것이다. 이때 인물들의 선택은 또다른 자기 발견의 은유와 같다. 1930~40년대 할리우드 스크루볼코미디의 하위 장르로 ‘재혼 코미디’를 정의한 스탠리 카벨(<행복의 추구: 할리우드 재혼 코미디>, 1981)은 재회하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던지는 궁극적 질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가?’가 아니라 ‘당신은 누가 되고 싶은가?’가 핵심이다.” <영원>은 그 질문을 사후 세계로 데려간다. 67년 전 사별한 첫 번째 남편 루크(캘럼 터너)와 이후 평생을 함께한 두 번째 남편 래리(마일스 텔러) 사이, 극도의 혼란을 토로하는 조앤(엘리자베스 올슨)은 주어진 과제의 진위를 일찌감치 자각한 인물 같다. 환승장에 늘어선 천국행 기차편은 시시각각 출발시간을 알리고, 여자는 이제 자신의 영원을 직접 조각해야 한다.
<영원>의 망자들은 죽음 직후에
[기획] 평범한 나날들의 천국, <영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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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가정법의 실현은 할리우드영화가 입증한 가장 유효한 쓸모 중 하나다. 죽어서 천국에 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한다면? <영원>의 골치 아픈 주인공 조앤(엘리자베스 올슨)에게도 문제적 행운이 주어진 참이다. 무대는 영원으로 가는 환승장. 가고 싶은 천국을 망자가 직접 선택하는 합리적 사후 세계가 펼쳐진다. 암 투병 중 생을 마친 조앤은 그곳에서 67년 전 전쟁으로 사별한 전남편 루크(캘럼 터너), 평생을 해로한 현 남편 래리(마일스 텔러) 사이에 놓인다. 사후 환승 연애를 펼치는 세 남녀의 로맨스 <영원>에 깃든 저마다의 사정은 복잡하겠으나 영화가 맺히려는 영점만큼은 단일하다. 화사한 색채와 아날로그적 물성의 질감을 최대한 살린 세트장의 스크루볼코미디가 삶의 뭉클함에 닻을 내릴 때까지, 어떤 영화는 도착지를 알고도 즐거운 여정처럼 관객을 실어나른다. 이 익숙함은 달리 말해 필름누아르의 맞은편에 선 필름 블랑을 향한 향수이기도 하다. 사후 세계와 초월적
[기획] 환승장에서 생긴 일, 천국 로맨스 <영원>과 할리우드 ‘필름 블랑’의 노스탤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