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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 미스터리, 수수께끼. <킬러들의 쇼핑몰>의 정진만(이동욱)은 베일에 싸인 남자다. 분명한 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조카 지안(김혜준)은 10년간 단둘이 살았던 진만 삼촌을 안치실에서 마주하고 충격에 빠진다. 뒤늦게 삼촌이 지금껏 아무도 모르게 킬러들을 위한 무기 거래 사이트를 운영해왔단 사실을 안 뒤에는 배신감과 혼란을 느낀다. 진만은 현실엔 없지만 지안의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쉰다. 갑작스러운 킬러들의 등장 앞에서 지안은 삼촌이 생전에 했던 말들이 일종의 방어법이자 공격법이었다는 걸 깨닫고 그의 가르침대로 대항에 나선다. 배우 이동욱은 표정에서도 행동에서도 속내가 읽히지 않도록 통제된 연기를 펼쳐 정진만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인물로 만든다. 특히 시청자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정진만의 포커페이스에서 지난 25년간 실력과 감각을 쌓아온 그의 진가가 발휘된다.
- 진만이 두드러지는 캐릭터가 아닌데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 처음부터 치
[인터뷰] 배우 이동욱과 나, <킬러들의 쇼핑몰> 이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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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소설가의 <살인자의 쇼핑몰>을 원작으로 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은 삼촌 진만(이동욱)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함께 다른 킬러들의 표적이 된 지안(김혜준)의 분투기를 그린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지안은 유일한 가족인 삼촌과 가까운 듯 먼 관계 속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평범해 보이던 그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갑작스러운 삼촌의 죽음 이후다. 자신의 목숨을 겨냥하는 미지의 세력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안은 자기 안에 감춰진 본능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삼촌이 남긴 족적을 쫓아가면서도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지안의 두 가지 목표는 극 중 긴장감을 촘촘하게 쌓아올린다. 이 여정에 따라 자리를 잡지 못하던 퍼즐들은 진만으로 시작하여 지안으로 끝나는 그림 전체를 완성하고, 정보 공백을 마침내 메워내는 희열까지 선사한다. 비밀과 진실, 은둔지와 안식처. 다소 상반된 줄다리기 시합
[커버] 비밀과 거짓말, ‘킬러들의 쇼핑몰’ 이동욱, 김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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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같은 회사. 나도 그렇지만, 직장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싫어하는 말일 테다. 가족으로만 구성된 회사는 있을 수 있어도, 가족의 화목함을 기대할 만한 회사란 없다. 가족조차도 애초에 화목함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목적이 있는 기업, 특히나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는 화목함이 아닌 다른 운영 원리에 기초를 둘 수밖에 없고 그게 훨씬 더 바람직하다. 따라서 가족 같은 회사란 가족보다도 못한 회사의 다른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도 전에 대학이란 곳에 학생이 되어 다닐 때에도, 같은 ‘족’(族)자가 붙는 단어인 민족이란 말이 쓰일 때 거슬린 적이 많았다. 게다가 그 거대하기만 한 민족을 좁디좁은 가족으로 환원하는 어법은 더욱 싫었다. 국토를 어미나 누이의 몸으로 환유하고, 침략자를 그 여성 신체를 유린하는 이민족 남성으로 묘사하는 발언을 들을 때마다 돋아 올랐던 소름. 내가 침략당하는 민족에 속한 남성‘으로서’ 같이 분노해주길 바랐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분노는 오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그들이 그렇게도 밉고 우스워 보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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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이 영화는 유럽 사회의 어느 단면을 서늘한 시선으로 지켜보거나 도난 사건을 발단에 둔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든 다다를 법한 결말로 향할 것이라 믿게 만든다. 1.37:1의 화면비와 핸드헬드 카메라가 빚어낸 <티처스 라운지>의 화법은 이따금 다이렉트 시네마를 모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게 한다. 그렇지만 두말할 것 없이 이 영화는 일정 부분 장르 법칙을 따르고 있다. 관계의 정치학과 그 반응의 화학작용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은 한편의 심리 드라마다. 이런 점을 제외한다면 영화는 대체로 자연 발생한 듯한 사건들이 연쇄되며 파문에 파문을 일으키는 듯한 양상을 띠며 카메라는 그런 현상의 관찰자처럼 행동한다. 공들여 살펴보지 않더라도 드러나는 건 독일 학교와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이민자 차별이라는 유럽 정치 사회의 민낯이다. 그러나 <티처스 라운지>는 사안의 핵심에서 비켜서 세워진 세계다. 당연한 세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오랜 시간 우리
[비평] 진실의 윤리학, ‘티처스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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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질 때까지.” 활짝 폈을 때가 아니라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을 소멸시키는 순간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벚꽃의 이미지는 일본 미의식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모노노아와레’의 대표적인 표상이다. 슬픔이 동반된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 그것이 <경성크리처>가 구현하려 한 영화의 주된 정서다(이러한 정서와 관련된 몇몇 장면은 <화양연화>에서 차용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경성크리처>는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가 그 아름다움이 슬픔으로 끝맺을 수밖에 없는 비극을 잉태했다고 말하려 한다. 하지만 <경성크리처>가 추구하는 슬픔의 정서는 ‘크리처’를 제목으로 내세운 작품에 대한 관람자의 기대에서 크게 어긋난다. 관람자는 괴물의 힘으로 미칠 듯이 질주하는 속도감의 작품을 기대했겠지만, 슬픔의 정서를 추구하는 경향은 이 질주의 속도를 한없이 늦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와 감독이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크리처를 중심으로 한 재난의
[비평] 괴물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경성크리처’와 한국 크리처물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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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지음 /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푸코가 공간 연구의 대표 격 철학자라고 할 순 없다. 공간을 연구한 사상가로는 자본주의를 아케이드로 읽어냈던 발터 베냐민이나 공간을 개념적으로 나누었던 앙리 르페브르 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판옵티콘의 관계를 지적했던 푸코의 저작물은 물론이고, 건축과 지리, 도시의 건축물(특히 병원과 감옥)에 대해서는 푸코가 새로운 논의를 제시했다고 말할 수 있다. 2024년 한국의 사회, 경제의 여러 논의들은 사실상 공간의 점유가 쟁점이다. 공간이 자본이 되고, 자본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푸코가 공간에 대해 사유한 8편의 텍스트(강연, 대담을 비롯)를 담은 <권력과 공간>은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를 경유해서 읽었을 때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와닿는다. 푸코의 철학을 잘 모를지라도, 결국 그가 평생 해왔던 연구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왜 ‘당연하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권력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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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지음 / 난다 펴냄
주의 사항이 있다. 이 책은 버스나 지하철 혹은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종종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 오늘 실연당했나봐’ 혹은 ‘가족 중에 누가 죽었나’ 싶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틀린 추측은 아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1월의 일기임에도 이 책에는 김민정 시인을 둘러싼 죽음과 헤어짐, 만남의 설렘이 쓰여 있다. 난다의 새 시리즈 ‘시의적절’의 첫권 <읽을, 거리>는 일기 형식처럼 1월1일부터 31일까지의 시, 에세이, 인터뷰 글이 묶여 있다. 1월1일은 후배와 만나서 술을 마시다 들은 음악에 대한 짧은 생각, 1월3일은 작가의 친한 동생이기도 했던 코미디언 고 박지선의 인터뷰가 차례로 독자를 반긴다. 시리즈 ‘시의적절’이 시인들이 한‘달’씩 맡아 자유롭게 글을 쓸 예정인지라 <읽을, 거리>에도 김민정 시인이 만난 사람, 그가 겪은 이별과 가벼운 에피소드 등이
씨네21 추천도서 - <읽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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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지음 / 창비 펴냄
역사 (답사)여행의 붐을 일으켰던 유홍준 작가가 돌아왔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서문의 유명한 첫 문장이 진화해서 새로운 시리즈가 됐다. 첫권은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그리고 삼국시대 중 고구려까지를 다루고, 2권은 백제, 고신라, 그리고 가야 중 비화가야 답사를 담았다. 이미 여행지로 유명한 전국 방방곡곡이 역사 여행이라는 범주로 새롭게 읽힌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매력인데, 대표적으로 1권의 부산 영도가 있다. 대형 카페가 많아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이곳에는 신석기시대 유적지인 부산 영도 동삼동 패총이 있다. 패총이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나 생활 쓰레기들이 쌓인 것으로, 조개더미 또는 조개무지라고도 부른다. 부산은 한반도에서 패총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한국전쟁 중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잣집의 풍경으로,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
씨네21 추천도서 - <국토박물관 순례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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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해, 서미애 외 지음 / 나비클럽 펴냄
제17회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이 출간됐다. 수상작인 박소해 작가의 <해녀의 아들>을 포함해 모두 일곱 작품이 실렸다. 미스터리 장르의 특성상 실제 사건에 모티프를 얻은 작품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는데, 이번 책에는 당선작인 <해녀의 아들>과 송시우 작가의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이 각각 제주 4·3 사건과 인천 초등학생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해녀의 아들>의 주인공인 형사 승주는 휴가를 맞아 집에 왔다. 해녀인 어머니를 만나러 간 그는 어머니의 친한 친구인 해녀 영순이 물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경찰에서는 사고사라 생각하고 조사 중이지만 승주의 어머니는 영순이 살해당했으리란 추측을 내놓는다. 뜻밖에도 단서는 승주의 아버지, 그리고 4·3 사건으로 뻗어간다. ‘작가의 말’에 박소해 작가는 “<해녀의 아들>은 미스터리만이 해낼 수 있는 해원굿입니다”
씨네21 추천도서 -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2023년 제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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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2023년 제17회 - 박소해, 서미애 외 지음
국토박물관 순례 1, 2 - 유홍준 지음
읽을, 거리 - 김민정 지음
권력과 공간 - 미셸 푸코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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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킬러들의 쇼핑몰>
요즘 최대 관심사. 뭐든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아직 완성본을 못 봐서 작품 생각을 계속한다.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
겨울 이적 시장에 큰 계약도 많고 아직 계약 못한 우리나라 선수들도 있어 매일 뉴스를 찾아보고 있다.
욱동이
배우 이동욱의 공식 캐릭터인 아기 백사자다. 앞으로 욱동이를 어떻게 잘 키울지 부모된 입장으로서 고민이 많다.
어깨 재활 운동
<킬러들의 쇼핑몰>을 찍다가 어깨 근육이 파열돼 두달 넘게 병원에 다녔다. 아직도 특정 동작을 하면 아파서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어깨 운동법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블랙
머리색을 밝게 바꾼 뒤부터 검은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블랙 아이템만 보면 마음이 끌린다.
[LIST] 이동욱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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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넷플릭스 | 8부작 / 감독 알렉스 피나, 에스테르 마르티네스 로바토 / 출연 페드로 알론소, 사만타 시케이로스, 나와 님리, 이트시아르 이투뇨 / 공개 2023년 12월29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예술적인 하이스트의 대가는 지독한 사랑의 열병
베를린(페드로 알론소)이 아직 조폐국 강도에 가담하기 전, 그는 파리 최대의 경매 회사에서 4400만유로의 보석을 훔치기 위해 드림팀을 모아 흔적도 없이 일을 성공시킨다. 문제가 있다면 그때의 베를린은 정열이 넘치는 로맨티스트였다는 것. 그는 경매 회사의 금고 담당자의 아내 카미유(사만타 시케이로스)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로 인해 완벽했던 계획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스페인의 두 경찰 시리아 경감(나와 님리)과 무리요 경감(이트시아르 이투뇨)이 이들의 뒤를 쫓는다.
<베를린>은 인기 시리즈 <종이의 집>의 주인공 ‘베를린’을 다룬 스핀오프다. 화려한 언변과 타고난 지
[OTT 추천작] ‘베를린’ ‘나 혼자만 레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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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감독·각본 A. V. 록웰 / 출연 테야나 테일러, 윌리엄 캐틀렛, 에런 킹슬리 아데톨라, 테리 애브니 / 공개 2023년 12월30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망가진 도시에 맞서는 검은 박동
형량을 마친 이네즈(테야나 테일러)가 뉴욕 라이커스섬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그녀는 아들 테리(에런 킹슬리 아데톨라)를 찾아간다. 위탁 가정을 전전하던 테리는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며 눈물을 흘린다. 어린 아들의 애원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네즈는 복지국의 감시를 피해 아이와 함께 뉴욕 할렘가로 도주한다. 머물 곳을 구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고 미용 기술로 푼돈을 벌어 살아간다. 이네즈의 연인 러키(윌리엄 캐틀렛)가 이들과 합류하며 망가진 도시에 맞서는 가족이 탄생한다. <어 사우전드 앤드 원>은 1990년대 뉴욕 할렘가에 거주하는 흑인 가족의 삶을 다룬다. 정치인들은 연신 ‘더 나은 뉴욕’을 캐치프레이즈로 외쳐댄다. 할렘 집중
[OTT 리뷰] ‘어 사우전드 앤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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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의 경력 동안 배우 지승현이 남긴 몇 순간을 지승현의 목소리로 전한다.
※ 작품의 경미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바람>
지승현의 얼굴을 처음 알린 작품이자 그를 한동안 ‘짱구(정우) 옆 그 일진 선배’로 인식시킨 작품이다. 지승현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바람> 이야기만 건넬 때면 “내가 배우로서 발전이 없나” 고심했다. “<태양의 후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등에서 주목받은 후에도 끊임없이 <바람>이 소환됐다. 한동안은 ‘내가 <바람>보다 더 나은 연기를 보여준 적이 없어서 그런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내 자아가 너무 작았다. 이제는 그저 감사하다. 지금은 현장에서도 스탭 동생들로부터 ‘형, <바람> 톤으로 양규도 연기해주시면 안돼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라는 배우를 처음 알린 작품이라 평생 가져갈 것이다.”
<무뢰한>
<무뢰한>
[인터뷰] 지승현이 이야기하는 그때 그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