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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갈수록 더 재밌어요. 전 6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LTNS>의 일부 회차를 감상한 후기를 전하자 이솜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어질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예고했다. 호텔 프런트 직원인 우진은 불륜 남녀를 미행하고 협박하러 다니는 계획을 주도하는 캐릭터다. 설득력, 발표력, 기획력, 조직력. 만약 회사가 신입사원을 뽑는다면 우진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역량을 갖췄다. 이솜 또한 우진이 지닌 역량을 모두 가진 배우다. 이솜은 남다른 아이디어와 확신을 가지고 전에 없던 드라마에 완벽하게 융화돼 마찬가지로 전에 없던 캐릭터인 우진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해낸다.
- <소공녀> 이후 6년 만에 전고운 감독과 재회했다. <소공녀> 때의 디렉팅과 달라진 점이 있던가.
= 여전한 부분이 훨씬 많았다. 리허설을 통해 장면을 만들어가는 방식도 그대로였고 신과 대사에 대해 본능적인 느낌을 찾아가는 방식도 전과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지독한 디렉팅을 하신다.
[기획] 상상 그 이상, 'LTNS' 이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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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NS>는 배우 이솜과 안재홍이 섹스리스 부부로 출연한다는 캐스팅 소식부터 화제를 모았다. 둘은 6년 전 큰 사랑을 받았던 독립영화 <소공녀>의 가난한 두 청춘, 미소와 한솔이었기 때문이다. <소공녀>의 가장 슬픈 장면은 두 연인이 보일러도 떼지 못하는 한겨울 단칸방에서 사랑을 나누려다 추위를 이기지 못해 단념하는 순간이다. 몸은 데워도 방과 지갑은 데울 수 없던 이들의 관계는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도 여전히 불발에 그친다. <LTNS>의 7년차 부부 우진(이솜)과 임박사무엘(안재홍) 사이엔 모든 페로몬이 소강됐다. 제목 그대로 ‘롱 타임 노 섹스’ 상황이다. 오랜 기간 곤궁을 면치 못하는 건 둘의 스킨십뿐만이 아니다. 사무엘의 사업 실패와 자가 주택의 집값 폭락 이후 두 부부는 살림마저 구차해졌다. 호텔 프런트에서 근무하며 불륜으로 의심되는 헤테로섹슈얼 커플의 인적사항을 수집하던 우진은 자신의 데스노트를 본격적으로 사업화하며 살 길을 도
[기획] 범죄와 섹스의 서스펜스, 'LTNS'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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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새삼스럽지만 분명히 밝히고 들어가야 하는 <LTNS>의 공적이 있다. <LTNS>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제목에 섹스를 명시(LTNS, Long Time No Sex)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시도는 여전히 발칙하기 그지없고, 관례를 깨뜨린 만큼 자연히 드라마의 내용에 거는 기대도 남다르게 만든다. 다행히 <LTNS>의 파격은 제목에 국한하지 않는다.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이 합심해 쓰고 연출한 <LTNS>엔 서로를 아끼고 원하지만 육체까진 바라지 않게 된 섹스리스 부부, 우진(이솜)과 임박사무엘(안재홍)이 등장한다. 이들은 가지각색의 불륜 커플을 미행하고 협박하며 수완을 올린다. 추리물에서 범죄극으로, 와중에 섹스 코미디까지. <LTNS>가 단행하는 여러 시도들은 눈여겨볼 만하고 제안하는 여러 논의들은 이야기될 만하다. 1월19일 티빙에서 1, 2화를 공개하고 3주에
[기획] Long Time No Sex, 'LTNS' 리뷰와 배우 이솜, 안재홍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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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마자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선배는 물론이고 동료 에디터 들. 심지어 항상 자기 자리에만 앉아 있던 편집장까지 모두 원탁에 둘러서 있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소리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들은 모든 대화를 멈추고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마치 녹색 기사를 처음 대면한 원탁의 기사들처럼. 선배만이 눈을 몇번 깜빡이며 어리바리하지 말고 빨리 자리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걸어가면서도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침묵은 깨지지 않는다. 겨우겨우 선배 옆자리에 도착하고 주변을 향해 죄송하다는 의미의 묵례를 몇번 하고 나서야 정적이 깨진다.
편집장은 ‘맛과 요리’ 부서에 어울리는 풍채를 지니고 있지만 둔하거나 무거워 보인다기보다는 듬직해 보인다는 표현이 좀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먹는 것에도 진심이고, 먹는 것에 대해 쓰는 것도 진심처럼 보였다. 에디터들이 가져오는 기사 하나하나 주제를 다시 잡아주고, 표현을 고쳐주고, 내용을
[김민성의 시네마 디스패치] 맛과 요리 섹션: 기획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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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이 1283만 관객을 돌파했다(1월1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지난 4년간 한국영화 위기설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관객은 여전히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더군다나 <서울의 봄>은 여러 이유에서 흥행이 보장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는 더욱 의미 있다. <서울의 봄>을 만든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는 2014년 회사 창립 후 <내부자들> <덕혜옹주> <곤지암> <남산의 부장들> 등 다양한 색깔의 영화를 제작해왔다. 광고 회사에서 시작해 <스윙걸즈> <미스트> <렛 미 인> 등 200여편의 외화를 수입했던 경력은 그가 지금 충무로에서 중요한 제작자 중 하나로 자리 잡는 밑거름이 됐다.
- 12·12 군사반란은 실패의 이야기다. 일견 영화화하기에 재미있는 소재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영화적으로 소구할 키를 잡아
[인터뷰] ‘서울의 봄’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 의무감이 아닌 나의 관심사를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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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의 온라인 연기 클래스를 구독했다. 바리캉으로 직접 머리를 밀었다. 오디션 결과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까까머리를 하고 본 오디션 <피타는 연애> <신병> <도적: 칼의 소리>에서 전승훈은 끝내 배역을 거머쥐었다. “깡패, 일진, 군인 그리고 외국인” 역할을 다 해봤을 것 같다는 말에 그는 “운동선수”를 더하며 웃었다. 192cm의 키. 개성파 장신 배우 계보 속 뉴 페이스는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일진 그룹의 이인자 나태석 역으로 <씨네21>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왜, 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몸이 움직이지 않는” 지독한 해석파인 그는 단 한회 등장하는 작은 배역의 깊은 마음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일진 사회의 역학에서 치욕만을 느껴온” 웹툰 캐릭터 나태석은 전승훈을 만나 “힘으로 이진상(유인수)을 제압해 일인자가 되고 싶지만 반란이나 혁명이 차단된 상황에서 갈등하는 입체적인 양아치”로 완성됐다.
동네 교
[WHO ARE YOU] ‘이재, 곧 죽습니다’ 전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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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뤼크 베송 감독의 신작 <도그맨>은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한마디로 문을 연다. 위 문장은 인간을 위로하는 존재로서의 신을 긍정하고 오랜 세월 인간과 공생 관계였던 개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말이다. 이는 이제부터 펼쳐질 극의 방향성과 분위기를 암시하는 장치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에 따르면 <도그맨>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 첫째는 ‘불행’이고, 둘째는 그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을 구원해줄 누군가이다.
돌이켜보면 ‘불행’과 ‘구원자’의 서사는 40년간 20편에 달하는 작품을 연출한 뤼크 베송의 영화 세계에 자주 등장한 레퍼토리다. 아니 어쩌면 라마르틴의 저 한 문장만으로 이 감독의 여러 영화들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를 세상에 널리 알린 <그랑 블루>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자크에게 신이 돌고래를 보낸 영화이고, 대표작인 <레옹&
[커버] 개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세계, ‘도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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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디디온 지음 / 홍한별 옮김 / 책읽는수요일 펴냄
잊을 만하면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는 나라에 살지만 사회적 애도에 대해서는 유독 박하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상실에 대해 슬픔에 잠기기보다는 그로부터 뭔가를 배우고 성장하는 서사로 치장하는 데 분주한 사람들이 애도를 금지된 것으로 만든다. 조앤 디디온의 <상실>은 남편 존 그레고리 던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이 기묘한 방식으로 잠시 멈추었던 나날에 대한 글이다. 원제 ‘The Year of Magical Thinking’(마술적 사고의 해)은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믿음을 뜻한다. 애도가 끝나기까지의 필요한 마음의 시간을.
2003년 12월30일. 조앤 디디온 부부는 집중 치료실에 입원 중인 딸을 면회하고 귀가했다. 조앤 디디온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자리에 앉는 순간 남편이 이상하다는 것을- 더는 살아 있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이 순간은 <상실>에서 몇번이고 반복해 등장하는데
[리뷰]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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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노백(미아 바시코프스카)은 엘리트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양 교사다. 환경과 건강을 염려하는 아이들에게 노백은 ‘의식적으로 먹기’라는 느린 식사법을 제안한다. 눈앞의 음식을 천천히 응시하면서 먹으면 먹는 속도가 줄고 자연스레 먹는 양도 줄게 된다. 음식을 적게 소비하면 환경을 지킬 수 있고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마음의 평화까지 얻게 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아이들의 심리적 부담을 부드럽게 헤아려주는 노백의 관심에 학생들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고, 결국 믿음을 향해 완전히 잠기게 된다. 의식적 식사를 성공적으로 터득한 학생들은 노백의 지도에 따라 다음 단계로 향하며,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는 모노 다이어트를 거쳐 아예 음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금식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도전한다. 이것은 영양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다. 이미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게 된 아이들은 다음 과제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노백은 아이들에게 세상 어딘가에 먹지 않고 지내며 비밀스럽게 편견에 맞서고 있는 ‘
[리뷰] '클럽 제로', 웃을 수도 화낼 수도 없는 무기력한 부조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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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도래하는 순간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혼란한 와중에도 정직 테크의 경리 영미(이유영)의 짝사랑은 변함이 없다. 같은 회사 직원 도영(노재원)의 횡령을 눈감아주고 금액을 맞추기 위해 부업을 병행하면서도 말이다. 사촌 대신 큰어머니까지 부양하는 상황임에도 영미는 불평 한마디 없다. 1999년 12월31일, 영미가 큰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는 와중에 도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20세기의 마지막 날 두 사람은 못다 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미는 도영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69세>를 연출한 임선애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미쓰 홍당무>의 미숙(공효진)을 상기시킬 만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영미의 행보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두 파트로 분리해도 무방할 만큼 영미의 삶은 2000년을 기점으로 극단적으로 변한다. 도영의 범죄를 묵인한 죄로 옥살이를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앞에 도영의 부인 유진(임선
[리뷰] '세기말의 사랑', 이상하고 독특한 여성들의 다정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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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화(김금순)는 남편의 사고사 이후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갑작스럽게 정리 해고 대상이 된 그녀에게 악재가 겹친다. 윤화의 아들이자 집안 장손 세진(최우빈)이 그녀 몰래 전 재산을 비트코인에 투자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친척들은 어려워진 사정을 핑계대며 문중 땅을 빼앗으려 한다. 윤화의 남편 기일에 맞춰 등장인물 모두가 울산에 모이며 영화가 막을 올린다.
<울산의 별>은 여성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계급을 다루는 여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화에 발생하는 사건의 원흉은 대부분 돈이다. 하지만 <울산의 별>은 전형적인 ‘사회고발 독립영화’의 틀 안에 머물지 않는다. 독특한 소재나 플롯 구조를 활용하는 건 아니다. 작품의 참신함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각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들간의 차이에 있다.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를 보며 인혁(도정환)이 내뱉는 불만이 대표적이다. “전근대적이야.” 젠더 고정관념은
[리뷰] '울산의 별', 우리는 모두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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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은수(크리스 필립스)가 양자들과 함께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는 이후 왕좌를 차지하지만 기주후 소호의 딸 달기(나란)를 후궁으로 맞이하면서 폭군이 되고 만다. 은수의 천륜을 저버린 만행과 폭정으로 하늘이 노한다. 곤륜산의 원시천존(천쿤)은 천벌이 내려진 인간들을 구할 봉신방을 강지아(황보)에게 주어 인간계로 보낸다. 사대 백후를 제거한 은수에게 마계가 동참하고, 마침내 신계와 인간계 그리고 마계의 전쟁이 일어난다.
<봉신연의: 조가풍운>은 명대 소설 <봉신연의>와 송대 소설 <무왕벌주평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은 역사적 사건에 도가 사상을 씌운 동양 판타지 장르물이지만 영화의 주제는 권력 앞에서 한없이 비정해지는 인간상에 가깝다. 이미 수차례 영상화됐지만 5400억원의 제작비와 8년의 제작 기간은 새로운 기대를 심어준다. 특히 영화 초반 기주성 대규모 전투 장면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연상시킬 정도로 장대한 스케일을
[리뷰] '봉신연의: 조가풍운', 전투 신 하나만큼은 장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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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을 마친 학생들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들이 다니는 시마다 고등학교는 폐교가 정해져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교실은 마냥 들뜬 분위기다. 졸업식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모교와 작별을 준비한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도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더 큰 세상을 향한 발걸음이지만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소녀들에게 첫 이별은 무척이나 시린 경험이다.<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로 국내에서 호평받은 아사이 료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네 사람의 시점이 교차하며 벚꽃이 만개한 졸업식 풍경이 스크린에 담긴다. 하지만 영화는 정교한 서사를 통해 각 학생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엔 관심이 없다.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장면 연출도 없다. 오히려 영화는 공간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온전히 담아내고자 한다. 카
[리뷰]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그 시절 우리의 작은 세상은 참으로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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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드레스에 금발 머리를 한 남자가 한밤중에 긴급 체포된다. 거동이 불편한 그는 수십 마리의 개를 트럭에 태운 채 이동 중이었다. 경찰 앞에선 함구했으나 정신과 의사가 찾아와 사연을 묻자 그는 조금씩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자신을 더글라스(케일럽 랜드리 존스)라고 소개한 남자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였다. 어머니는 가출했고 형과 아버지는 투견을 키우던 사육장에 오랜 기간 그를 방치했다. 결국 경찰에 구조됐지만 아버지가 쏜 총탄에 맞아 보조 장치 없인 걸을 수 없게 됐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그의 곁을 마지막까지 지킨 건 수백 마리의 개들이었다. 인간관계보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신뢰하는 영화의 태도는 뤼크 베송 감독의 전작 <그랑 블루>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도그맨>은 인간-동물의 관계를 감동적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악을 처단하는 수호자로서 묘사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일부 비약적인 요소가 존재하지만, 더글라스의 비극을 노래로 승화한 케일럽
[리뷰] '도그맨', 인간과의 관계엔 불행이, 동물과의 관계엔 구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