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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브>로 만난 강형철 감독은 알려진 모습보다 한결 살이 빠져 있었다. 7년 만의 신작을 내놓는 일이 그의 수명을 좀 줄인 게 아니냐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들이 오갔지만 정작 그는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며 조용히 웃었다. “언론시사회 전날에도 평소와 달리 잘 잤고, 집 근처 작업실을 오가며 산책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걱정은 줄여 달라.” 한국전쟁 당시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탭댄스로 자유를 꿈꾸던 이들(<스윙키즈>)에게 맞춰졌던 그의 시선은 동시대 평범한 초능력자들로 향했다. 신원 불명 초능력자에게 장기를 이식받고 각기 다른 능력이 생긴 보통 사람 다섯명, 심장의 완서(이재인), 폐의 지성(안재홍), 신장의 선녀(라미란), 각막의 기동(유아인), 간의 약선(김희원)이 팀 ‘하이파이브’를 이룬다. 반면 여섯번째 이식자 췌장의 영춘(신구/박진영)은 이들의 능력을 흡수해 초월적 존재가 되겠다는 야망으로 멤버들을 좇는다. 귀를 사로잡는 음악을 타고, 소중한 사람을
[기획] 바로 옆 사람을 위한 판타지, <하이파이브> 강형철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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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인연의 재회는 일종의 시간 여행이다. 오늘 네 눈에 비친 나는 과거의 나와 얼마큼 멀어졌을까. 여태 벗지 못한 허물은 또 얼마나 못나 보일까. 걱정을 삼키며 그 시절의 우리를 마주하다 보면 알게 된다. 과거에 바랐던 현재는 이런 꼴이 아니었다고. 그러나 낙담하고 떠나기엔 잠시 들른 관광지의 경치가 너무 근사하다. 고봉수 감독의 신작 <귤레귤레>는 그 행운을 붙잡아 음미하고, 다시 걸음을 떼기 위해 마음의 근육을 주무르자고 제안한다.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대식(이희준), 지금 사랑을 믿지 못하는 정화(서예화)는 그렇게 튀르키예 카파도키아를 함께 둘러본다. 풍광을 만끽하던 그들의 시선이 자기 내면으로 향할 수 있도록 안내한 고봉수 감독을 만났다.
- 아내 이주예 감독(<보조바퀴>)이 <귤레귤레>의 공동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더라.
지금까지 멜로와 관계없는 영화를 찍어왔는데 이희준 배우가 <펀치 드렁크 러브> 같은 멜로를 찍고 싶다
[인터뷰] 지질했던 어제를 향해, 안녕, <귤레귤레> 고봉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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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2022)로 한국에서만 120만 관객을 불러 모은 미키 다카히로 감독이 신작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와 함께 내한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소녀를 잇는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평행우주에 떨어진 베스트셀러 작가. 잘나가는 남편 리쿠(나카지마 겐토)와 주춤하는 아내 미나미(미레이)의 유명세가 완전히 뒤바뀐 땅에서, 두 사람은 서로가 성공보다 소중했던 시절의 향기를 다시 맡는다. <소라닌>(2010)으로 데뷔한 이래 2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만든 미키 다카히로 감독은 여전히 “내 작품이 관객 각자의 삶에 양분이 되기를 바라며” 로맨스 장르를 수호하고 있다. “사랑 이야기는 곧 성장담”이라는 믿음으로.
- 리쿠가 쓴 무협소설의 한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오프닝 신이 작품의 전체적인 톤과 구별되는데, 연출에 있어 달리 신경 쓴 지점이 있나.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시작할 때 ‘잘못 들어온 거
[인터뷰] 성장하는 연인을 지켜보는 즐거움,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미키 다카히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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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하순이면 두 사람의 김군이 생각난다. 한 사람은 1980년 5월22일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김군’이라는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둘렀던 시민군이다. 다른 한 사람은 2016년 5월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을 거둔 김군이다. 참사 직후 구의역에 붙은 메모에는 나의 것도 있었다. “2013. 1. 19. 심OO(성수역) / 2014. 4. 22. 노OO(독산역) / 2015. 8. 29. 조OO(강남역) / 2016. 5. 28. 김OO(구의역).” 모두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사망한 노동자들이다. 연결되어야 할 열차 운행과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는 원청과 하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런 외주화는 ‘전문화’가 아니라 원청 퇴직자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뿐이며 그만큼 현장 노동자는 쪼들린다. 김군은 2인1조 규정이 무너진 자리에서 혼자 일했다. 나는 2015년 한 조직에서 상근을 시작하며 강남역 참사에 관한 논평을 썼다. 이듬해 상근을 그만두기 사흘 전 구의역 참사가 일어났
[김수민의 클로징] 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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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귀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작은 서점 운영을 꿈꾸며 로마로 이주한다. 유대인 차별과 늦은 행정 처리로 인해 호텔에서 일하던 그는 학교 선생인 도라(니콜레타 브라스키)와 사랑에 빠진다. 이미 약혼자가 있었음에도 도라는 귀도와 가정을 꾸리고 아들 조슈에(조르조 칸타리니)와 단란한 생활을 이어간다. 조슈에가 5살이 됐을 무렵 이탈리아 정부는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수감시키고 조슈아와 귀도도 군인들의 손에 붙들린다. 가족의 소식을 접한 도라 역시 수용소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귀도는 조슈에가 겁에 질릴 것을 염려해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게임의 일환이라 속이고 1000점을 먼저 따는 우승자에게 선물로 탱크가 수여된다고 전한다. 어느 날 장교가 증거 인멸을 위해 수감자들을 전부 사살할 것이란 소식을 들은 귀도는 조슈에를 숨겨두고 아내 도라를 찾아 나선다. <인생은 아름다워> 는 로베르토 베니니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개인의 삶을 투과해 홀로코스트
[리뷰] 재개봉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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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세찬 감독의 다큐멘터리 <빛의 혁명, 민주주의를 지키다>는 2024년 12월3일부터 윤석열 탄핵 선고일까지 꺼지지 않았던 광장의 열기를 담으려 노력한다. 12월3일 밤에 국회로 나선 익명의 시민, 재치 넘치는 깃발과 응원 봉을 들고 시위를 축제로 만든 청년,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 전봉준투쟁단과 키세스 군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이 영화에 인터뷰로 참여했다. 푸티지와 언론 보도, 정치인과 교수, 신부, 시인 등 전문가의 인터뷰가 광장을 의미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실시간으로 제작된 다큐임을 참작하더라도 다양한 의제를 다루며 최소한의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쓴 점이 인상적이다. 앵커 출신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의 내레이션도 다큐에 안정감을 더한다. 다만 지나치게 친절한 구어체의 내레이션 대사, 쟁점을 소개할 때마다 등장하는 큼지막한 타이포그래피 및 그래픽 등 낡은 감각의 연출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리뷰] 교실에서 많이 틀어줄 듯한 교과서다운 다큐, <빛의 혁명, 민주주의를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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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유튜브 PD 정현수(안내상)는 수년간 검찰총장 출신 정치인 김석일(주성환)과 그의 아내 윤지희(김규리)를 둘러싼 의혹을 추적 중이다. 부부가 권력의 중심부로 다가설수록 정현수는 그들의 주변에서 발생한 기이한 사건들이 주술과 관련돼 있다는 걸 직감한다. 영화 <신명>은 정치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가 제작한 극영화다. 조금씩 바꾼 인물들의 이름은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 내외의 이야기임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취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사이비 무속 논란을 지적하려 오컬트적 세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풍자적 의도라고 해도 비윤리적인 서술이 난무한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 특히 삼풍백화점,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주술적인 인신공양으로 묘사하는 것은 최소한의 영화 윤리조차 위반한 것처럼 보인다. 도덕성이 부재한 풍자는 시민들이 애도와 연대로 뭉친 광장에 대한 모욕일 뿐이다.
[리뷰] 참사에 대한 몰윤리는 광장에 대한 모욕이다, <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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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서 통역사를 꿈꾸는 여고생 미우(가미시라이시 모카)는 어느 날 병원에서 운명적인 뒤바뀜을 겪는다. 음악을 만들고 싶은 선배 미나토(아카소 에이지)와 부딪치면서 음반이 바뀐 것. 맞교환한 뒤 가까워진 둘은 사귀게 되고, 이들의 인연은 성인이 된 뒤 도쿄에서도 이어진다. 함께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나토가 미우에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요구하며 둘은 각자의 길을 걷지만 이들에게는 다시 만나야 할 이유가 남아 있다. 일본의 장기 흥행작 은 2003년부터 2024년까지의 긴 시간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사랑과 엇갈림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와 도쿄의 회색빛 풍경은 이들의 감정선과 절묘하게 연결되며 서로를 너무 배려한 나머지 결국 놓치게 되는 안타까운 순간들을 포착한다. 작품의 영감이 된 오키나와 밴드 HY의 동명 곡이 후반부 클라이맥스를 감정적으로 끌어올리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리뷰] 딱 하루만 자신을 더 챙겼더라면, <36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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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사라진 세계가 사람에게만 지옥은 아닐 것이다. 이제 막 동면에서 깨어난 곰 어네스트(램베르트 윌슨)는 겨우내 악몽을 꾸었다. 셀레스틴(폴린 브루너)은 자신에게 툴툴대기 바쁜 어네스트에게 아랑곳하지 않은 채 친구를 챙기지만, 어네스트의 바이올린을 망가뜨리는 사고를 친다. 바이올린을 수리할 곳은 장인 옥타비우스가 사는 어네스트의 고향 샤라비. 하지만 샤라비엔 음악이 금지되었고, 옥타비우스는 마을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가브리엘 뱅상의 동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11년 만에 정식 개봉한다. 속편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엔 수채화와 파스텔화를 섞은 듯한 뱅상의 화풍이 전작에 이어 그대로 구현된다. 포용의 가치에 근간을 둔 우정과 화합이라는 작품의 대주제도 여전히 유효하다. 구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의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는 메시지가 어린이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그려진 점이 인상적이다.
[리뷰] 전체관람가로 그린 앙시앵레짐 타도,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멜로디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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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인 태민(장성범)과 민지(임영주)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먼 해외에 도착했다. 영어를 곧잘 하는 민지와 달리 태민은 영어에 익숙지 않아 외국인들과의 대화에 곤욕을 겪는다. 두 사람은 외딴곳에 자리한 숙소에 도착하고 잠시 쉬려 한다. 그러던 중 미지의 소리와 함께 민지가 사라진다. 당황한 태민은 지역의 보안관에게 민지의 실종에 대해 설명하지만, 보안관은 행적이 수상한 태민을 용의자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태민은 누명을 벗기 위해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언해줄 사람들을 찾아 헤매기에 이른다. <어브로드>는 낯선 장소에 떨어진 이방인의 공포와 불안정한 심리를 추적 스릴러 장르에 접합해 극의 톤 앤드 매너를 일정하게 이끈다. 다만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 의도적으로 설치한 서사적 비약들이 외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202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 등을 수상했다.
[리뷰] 흥미로운 목적지로의 경로에서 조금은 휘청휘청, <어브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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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외선에 노출되면 건강이 나빠지는 XP증후군 환자인 미솔(정지소)은 스무살이 되어서도 은둔 생활을 이어간다. 방에서 홀로 기타를 치고 노래를 쓰고 부르는 일이 그녀의 유일한 낙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과일 트럭 장수이자 배우 민준(차학연)이 나타나고 둘은 곧장 사랑에 빠진다. 미솔은 민준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의 노래를 유튜브에 공개한다. <태양의 노래>는 2006년에 제작된 동명 일본 음악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원작의 설정을 따라가되 동시대 청춘 멜로의 감수성을 반영해 각색했다. 원작의 담백한 연출과 달리 화사한 역광과 뮤지컬을 보는 듯한 연출, 곳곳에 삽입된 콩트 등이 눈에 띈다. 하지만 서사가 허술하고 각 캐릭터의 사연이 피상적으로 그려져 있어 감정이입이 힘들다는 게 큰 단점이다. 정지소와 차학연의 연기와 가창력,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이찬혁의 사운드트랙이 이러한 단점을 포장한다.
[리뷰] 두 배우의 맑은 눈망울과 목소리만 조각별처럼 빛날 뿐, <태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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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부터 30여년간 당대 최고 유명 인사들을 태우고 다녔던 전설적인 크루즈 퀸메리호. 현재는 영구 정박된 상태로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는 상태다. 그곳의 흉흉한 소문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한 작가 앤(앨리스 이브)은 함께 간 아들 루카스(레니 러시)가 이상행동을 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파트너 패트릭(조엘 프라이)과 선박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내 알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며, 과거 퀸메리호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퀸메리호: 저주받은 항해>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실제로 많은 괴담이 생성되는 근원지이기도 한 퀸메리호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미스터리 공포영화다.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을 연출한 게리 쇼어 감독의 신작으로 과거와 현재의 미스터리를 동시에 진행시키며 극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방식을 취한다.
[리뷰] 언젠가는 반드시 인양될 추악한 인간 욕망의 역사, <퀸메리호: 저주받은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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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족의 오랜 터전인 버크섬. 이곳에선 식량을 사냥하는 드래건들과 족장 스토이크(제라드 버틀러)를 필두로 부족을 지키려는 인간들이 매일같이 필사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스토이크의 가장 큰 고민은 아들 히컵(메이슨 템스)의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드래건에 맞서기 위해선 강인한 신체와 용기가 필요한데, 히컵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소년이기 때문이다. 그런 히컵에게 날지 못하는 드래건 투슬리스가 나타난다. 각자의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존재였던 서로를 알아본 둘은 비밀스러운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드림웍스의 대표 작품인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의 첫 실사영화다. 아이맥스 촬영을 포함한 라이브 액션으로 구현된 드래건 액션 신이 인상적이며, 원작에서 호평받은 보편적인 메시지들이 그대로 담겨 전 연령대의 관객들을 감동시킬 만하다. 인기 캐릭터 투슬리스를 비롯한 드래건들의 개성 또한 여전하다.
[리뷰] 거대 원작을 잘 길들이며 실사화하는 방법, <드래곤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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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고봉수 감독의 신작 <귤레귤레>가 한달 만에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튀르키예어로 ‘웃으며 안녕’이라는 뜻이 담긴 작별 인사를 제목 삼았듯이 영화는 튀르키예 올로케이션을 지향했다. 그 배경이 되는 지역은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이자 <스타워즈> 시리즈의 우주 지형에 영감을 준 것으로도 알려진 카파도키아. 고봉수 감독의 카메라는 카파도키아 패키지 투어에 참가한 군상의 뒤를 따르다가 오랜 인연을 간직한 두 남녀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중 한 사람은 대식(이희준). 극 중 이름보다 ‘이 대리’라는 호칭으로 더 자주 불리는 그는 자동차 부품을 다루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 상사 원창(정춘)과 튀르키예까지 출장 와서 계약도 성사시켰지만 여정이 개운치만은 않은 인상이다. 눈치 없이 말만 많은 원창을 보필하느라 기운을 빼앗긴 것 같기도, 지금 하고 있는 일 자체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공허하던 대식의 시선이 한
[리뷰] 그 선택이 포기가 아닌 용기었음을 기억하며, 귤레귤레! <귤레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