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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중 뭘 제일 좋아하나요. 직업적으로 ‘당신의 올 타임 베스트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솔직히 묻는 사람도 진짜 궁금하진 않을, 자기소개서의 취미와 특기란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예정된 테스트는 익숙해지긴커녕 매번 곤혹스럽다. 왜 그럴까 고민하며 작품들을 복기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나 이 작품들 고르기 어려울 만큼 하나하나 되게 진심으로 좋아했구나. 상황과 형편,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리스트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와중에 요즘은 조금 엉뚱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의 단편 중 <On Your Mark>가 계속 뇌리를 맴돈다. <On Your Mark>는 일본의 록밴드 차게 앤 아스카의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단편애니메이션이다.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과 동시상영된 이 작품은 6분37초의 짧은 분량이지만 감히 지브리의 낭만과 정수가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만하다. 안도 마사시의 작화, 야스다 미치요의 채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희망찬 비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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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스 카락스는 자전적인 영화이자, 영화 세계를 정리하는 영화에 <잇츠 낫 미>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붙인다. 부정의 진술은 언뜻 자전적 측면과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둘은 평화롭게 공존한다. 자전적 영화에 <잇츠 낫 미>라는 표제를 붙인 것은 흡사 명백한 파이프 그림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자를 새기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불러온다. 파이프 그림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힌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회화를 보충 설명하는 역할에 머물던 활자를 작품의 일부로 포함한다. 마그리트가 푸코에게 서신과 함께 보낸 그림 사본 뒷면에는 ‘제목은 그림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방식으로 긍정한다’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부정이 부정하는 대상만이 아니라 부정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역설이 담겨 있다.
부정을 감독의 세계에 관한 논의로 끌어올 때, 그것은 지속과 변화에 관한 논의로 변형된다. 감독의 작품에서 무언가는 연속되지만, 무언가는
[비평] 청춘의 변증법, 김소희 평론가의 <잇츠 낫 미> <해피엔드>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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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이 영화를 접했다면 감회가 달랐겠다. 작품 속 불법 체포된 2022년 이란 히잡 반대 시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도록 사법부를 압박하는 검사, 여기에 독립적이기는커녕 순응하는 사법부, 현실과 다른 보도를 일삼는 매스미디어와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세속적인 군중의 모습을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저 멀리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스펙터클로 즐겼을지 모른다. 그러니 이 얼마나 시의적절한 등장인가. 현실을 반영한 영화의 시차적 성격은 자주 잊힌다. 앞서 당도하거나 뒤늦게 도착할 영화는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현전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어떤 영화는 무해한 픽션이 아니라 엄습하는 현실로 우리의 감각을 괴롭힌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픽션에서 출발해 현실로 나아가는 경로에서 현실을 비추는 일을 넘어 성찰과 반성을 개입시키며 현실을 더욱 매섭게 감각하도록 한다.
이 영화의 존재 이유가 고발에 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 만큼 작품에서 현실은 픽션에 거울처럼 비친다. 수사판사로
[비평] 픽션을 흔드는 현실, 김성찬 평론가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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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를 건너온 다음 다시 되돌아서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 라고 질문하는 대신 무얼 잃어버렸지, 라고 물어보면 비로소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가 해나간 일들이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었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 숏이 있었다. 거기에 카메라가 있었고, 카메라가 찍으면 그 시간은 영화라는 사건이 되었다. 이걸 구태여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기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한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아이가 물장난하는 것을 영화라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홍상수는 바다로 나가는 배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물결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눈싸움하는 거리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또 보았다. 거기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거기에 무엇이 출현한 것일까. 여기에 개념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다음 각자 개념의 차이라는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 우리가 잃어버린 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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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영화는 진정 21세기의 영화일까? <씨네21>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꾸린 연재 기획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는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물음표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과연 21세기 영화는 20세기 영화의 그림자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20세기를 벗어나 어떤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럴 수 없을까. 애초에 ‘21세기 영화’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일까. 마침 21세기는 이제 막 사반세기를 지나고 있다. 자신을 되돌아볼 때다.
요컨대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연재는 20세기 영화의 역사를 검토하되 그것을 재론하려는 자리가 아니다. 20세기의 주류 담론으로 포섭할 수 없는 21세기 영화만의 요소를 찾아내려는 시도에 가깝다. 연재는 총 6개의 대주제로 구성된다. 각 대주제 아래에는 4개의 소주제를 선정한다. 연재 기획의 편집위원은 이도훈, 김병규 평론가와 이우빈 기자다. 동시대 영화 연구, 비평,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이들이 연재의 큰 틀을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물음에서 물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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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사반세기를 맞이한 지금, <씨네21>이 창간 30주년 특별 연재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를 펼쳐본다. 21세기 영화를 매개로 하여 영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비평적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앞으로 1년간 총 6개의 키워드 아래에서 영화 안팎의 여러 담론들에 대한 비평적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도훈·김병규 평론가, 이우빈 기자로 이루어진 편집위원회가 다양한 분야의 필진과 대화하고 비평의 장으로 초대하여 21세기 영화를 진단하려 한다. 이 무모한 여정에 매체로서, 물질로서, 개념으로서, 행위로서의 ‘영화’에 대해 고민을 이어가는 여러분의 동승을 요청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이우빈 기자의 서문과 정성일 평론가의 비평이 계속됩니다.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씨네21> 30주년 기념 연속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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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구해줄 수 있을까요?’
수인의 메시지였다. 난감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지 일주일 남짓한 때였으니, 세상은 온통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과 함께 그녀의 책이 얼마나 불티나게 팔리는지 타전하기 바빴다. 한국 문학계의 오랜 숙원인 노벨문학상이었으니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인 것은 당연했다. 나라 안에서만이 아니라 노벨문학상이라면,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읽고 싶겠지. 그것은 아주 평범한 바람이겠지. 멀리서 전해진 누군가의 평범한 바람이 이토록 슬프다는 것이 아연해서 메시지창을 붙들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책을 꼭 구해야겠다는 다짐이 일었다. 비로소 실감되었다. 나는 곧 ‘로힝야’ 난민캠프에 간다.
수인은 국제평화단체 ‘개척자들’의 활동가다. 로힝야 난민캠프가 있는 방글라데시를 들락날락하는 것이 그녀의 일인데, 나도 늘 따라붙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어렵사리 서로의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박 로드리고 세희의 초소형 여행기] 6년 사이의 포트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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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염색 머리에 표정 없는 얼굴. 시골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떠나지 않는 젊은이. 그의 이름은 미지(박보영)다. 성인이 된 후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향하거나 반대로 고향에 귀농하여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 목표지향적인 주변인들과 달리 미지는 단기계약직을 전전한다. 학문, 취업, 연애 등 사회가 지정해둔 생애주기 앞에서 미지는 제 이름처럼 불확실한 낙오, 불량, 하자에 가깝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유동적인 생활 방식을 ‘선택’한 것이지만 “그게 대수냐”는 엄마의 말마따나 그 노고를 쉽게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미지의 반쪽이자 일란성쌍둥이 언니 미래(박보영)는 미지와 완전히 다른 현재를 산다. 태어나자마자 선천심장병을 앓으면서 의도치 않게 고강도 인내심을 체득한 그는 어디서든 전교 1등을 도맡는 인텔리, 완벽주의자, 두손리의 자랑이다. 다만 미래는 남들에게(특히 가족에게) 쉽게 말 못하는 어둠을 쥐고 있다. 한국금융관리공사에 입사한 이후, 내
[이자연의 해상도를 높이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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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부러져 병원에 누워 있는 조카에게 <도망치고, 찾고>라는 그림책을 선물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보러 전주에 갔다가 ‘잘익은언어들’이라는 동네 책방에 잠깐 들렀을 때 그곳 주인장이 권한 그림책이다.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서는 멀리 도망치고 나를 이해해줄 사람을 찾아 나서라는, 사람에게 다리가 있는 이유가 그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랬다. 다리 다친 조카에게 어쨌든 다리와 관련된(?) 책을 선물한다는 게 재밌어서 샀는데, 무심코 뒤적이다 보니 나야말로 지금이 ‘도망치고 찾아야 하는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과 사연과 목적과 욕망과 돈이 뒤엉킨 ‘산업’의 한복판에 있다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사사롭고 오염된 마음의 덫에 걸려들기 십상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조바심, 인정욕구, 이해를 따지는 마음, 경쟁심, 시기심, 때로는 받아들일 수 없고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방어하다 모든 게 다 미워지기도 했
[김신록의 정화의 순간들] 절룩거리며 찾아 나설 정화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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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8일 오후 2시40분. 서부지법 앞 도로가 차단됐다. 경찰 버스들이 미로처럼 배치되어 있었고, 그 사이로 기자들과 시위대가 뒤엉켜 있었다. “대통령 석방!” 구호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이 김밥을 나눠주고, 아저씨들은 소주를 돌려 마셨다. 마치 동네 잔치 같은 분위기였다. “한잔하세요.기자님.”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에 나는 작은 종이컵을 받았다.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로 법원 건물을 올려다봤다.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앉아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았다. “여기서 찍으시면 안돼요.” 경찰관이 다가왔다. “기자분이세요?” “예술가입니다.” 서로 멋쩍게 웃었다. 이제 익숙해진 대답이었다.
서부지법 정문 앞 사람들은 두개의 무리로 갈라졌다. 좌측에는 “탄핵 무효” 피켓을 든 지지자들, 우측에는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시민들. “윤석열 석방!” “구속!” 서로의 구호가 교차하며 공명하기 시작 했다.
나는 도로 위 노란 ‘경계선’ 위에 트
[정윤석의 R.E.C: 서부지법의 시간] 오늘은 쉬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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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칸영화제 참석 여부를 묻는 메일을 받았다. 영광스러우면서도 재능 있는 젊은 촬영감독들이 많은데 내가 받아도 되는 걸까 싶더라. 그런데 여자 동료, 후배들이 소식을 공유하며 좋아하는 걸 보면서 그들이 힘을 얻을 본보기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다.” 그렇게 긴장과 기대감을 안고 조은수 촬영감독은 제78회 칸영화제를 찾았다. 촬영감독에게 헌정상을 수여하는 피에르 앙제뉴 트리뷰트에서 조은수 촬영감독은 차세대 촬영감독을 조명하는 올해의 스페셜 인커리지먼트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자에게는 수상의 영예와 함께 특별 지원금이 전달된다. 극영화 외에도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그가 처음 촬영감독의 꿈을 꾸게 된 것은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부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99년에 곧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했다. 앞에 나서서 여러 제작진을 아울러야 하는 연출보다 감독 옆에서 긴밀하게 합을 맞추는
한 앵글도 소중히, 피에르 앙제뉴 트리뷰트 ‘스페셜 인커리지먼트’ 수상자 조은수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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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호스와 파울라 베어가 갖는 공통점은 명확하다. 내가 이 두 배우에게서 좋아하는 점은 영혼이 망명하는 인물의 연기에 탁월하다는 점이다. 두 사람과는 언제나 고향과 조국을 잃고 새로운 집을 찾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파울라 베어는 <거울 No.3>를 통해 크리스티안 페촐트와 네 번째 협업을 완수했고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라벨의 피아노곡 제목을 따온 이번 신작에서 베어는 교외에서의 교통사고 이후 중년 여성 베티(바르바라 아우어)에게 발견되어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는 인물 로라를 연기했다. “로라는 사고 이후 태어났고 풀밭의 모세처럼 발견된다. 그리고 따뜻한 침대로 옮겨져 커피와 옷을 제공받는다. 새집에서 첫 저녁, 첫 자전거, 첫 친구를 얻으며 사실상 재탄생의 과정을 거친다.”
<피닉스> <트랜짓>에서 시험한 복수의 정체성과 오인의 모티프를 잇되 보다 산뜻한 행장을 꾸린 이번 작업을 두고 감독은 고전의 영향도 거리낌없
정체성의 독립을 위한 우화, <거울 No.3>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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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플랜 75>에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75살 이상 노인의 죽음을 지원하는 정책을 권장하는 근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노년 여성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말년의 모습을 담담히 제시했다. <르누아르>에선 80년대 일본으로 시선을 돌려 11살 소녀 후키(스즈키 유이)의 일상에 주목한다. 이번 신작에서도 죽음을 주요하게 다루지만 어린아이를 통해 그려지는 죽음은 “단순히 두려움뿐만 아니라 경험해본 적 없는 매혹적인 호기심의 대상”이다. 후키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고, 일찌감치 상실을 경험해본 이들의 심정을 궁금해하며 영적 존재와 소통하는 텔레파시에 몰두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에 끌린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후키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영화의 색감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다.” <르누아르>는 80년대에 실제로 11살이었던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경험이 상당수 반영됐다. “스즈키 유이 배우가 캐스팅된 이후로 배우의 면모가 많이 반
상실을 경험한 아이는 더 빨리 성장한다, <르누아르> 하야카와 지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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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널뛰며 동유럽 현대사의 어두운 진실을 일관되게 추적해온 세르게이 로즈니차 감독이 전체주의 체제가 그들의 가장 밝은 미래를 짓밟는 아이러니를 차가운 시선으로 해부한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스크린 데일리> 최고점인 3.1점을 기록한 <두 검사>는 1937년 소비에트연방을 배경으로, 감옥에서 불타버린 수천통의 편지 중 한통이 기적적으로 새로 부임한 지방 검사 알렉산드르 코르니예프의 책상에 도착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실험물리학자인 조지 데미도프의 원작을 발견한 과정에 대해 감독은 “지난 30년간 화장로 없는 아우슈비츠라 불린 굴라그와 나치수용소 수감자들의 책을 상당히 많이 수집해왔다”며, 1969년에 쓰였지만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에 의해 1980년에 모든 원고가 압수되었다가 2009년에야 비로소 출간된 소설을 “러시아 고전 동화의 구조로 복각”했다고 말한다. “거기로 가라. 하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모른다.
권력을 성찰하는 방법, <두 검사> 세르게이 로즈니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