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베이커의 멜랑콜리한 음색을 연상시키는 목소리로,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곡은 <Everything Happens To Me>다. ‘골프 약속을 잡으면 비가 오고 파티를 열려고 하면 위층 남자가 불평한다’는 내용의 가사처럼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개츠비(티모시 샬라메)에겐 별일이 다 생긴다. 여자친구이자 대학 신문기자인 애슐리(엘르 패닝)가 뉴욕에서 유명 영화감독과 인터뷰할 기회를 얻으면서 개츠비와 애슐리는 뉴욕에서의 주말 데이트를 계획한다.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피에르 호텔에 짐을 풀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저녁엔 칼라일 호텔의 바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로맨틱한 계획. 그러나 1시간이면 끝날 것 같던 애슐리의 인터뷰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개츠비는 비 오는 뉴욕의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길에서 만난 영화감독 친구는 즉석에서 영화 출연을 제안하고, 즉석 출연의 상대 배우는 전 여자친구의 동생 챈(셀레나 고메즈)이고, 영화감독 인터뷰를 한다던 애슐리는 스타배우와의 스캔들 뉴스로 TV에 등장하고, 엄마의 파티에 데리고 간 직업여성의 정체가 들통나는 우중충한 일들의 연속. 물론 예상 밖 시련이 소득 없는 시련은 아니라는 건 클리셰 아닌 클리셰다.
센트럴파크 델라코트 시계 아래에서의 낭만적 키스로 개츠비의 시련이 씻기는 것과 달리, 우디 앨런 감독의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 출연하며 티모시 샬라메가 겪은 곤란함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영화 촬영이 끝난 2017년 말, 우디 앨런이 입양딸 딜런 패로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7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상습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는 딜런 패로의 고백은 미투 운동과 더불어 힘을 얻었다. 딜런 패로는 2014년 <뉴욕타임스>에 편지를 보내 우디 앨런의 성추행 혐의를 알린 바 있지만, 당시 딜런 패로의 주장은 우디 앨런의 이후 영화 제작에 영향을 미칠 만큼 파급력을 가지지 못했다. 이번엔 달랐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문이 할리우드를 뜨겁게 달구던 때였고, 이제는 변화를 위해 행동할 때라는 인식이 크게 확산됐기 때문이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 출연한 배우들도 행동에 나섰다. 레베카 홀, 셀레나 고메즈와 마찬가지로 티모시 샬라메는 영화 출연료 전액을 할리우드의 성폭력 및 성차별 문제 해소를 위해 결성된 단체 ‘타임스 업’ 등에 기부했다. “우디 앨런의 영화에 출연한 것을 후회하며 이 영화로 이익을 얻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우디 앨런은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부인했지만, 배급을 맡은 아마존에서도 배급 포기 결정을 내리면서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미국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애초 계약을 맺었던 출판사가 출간을 거부하면서 최근 새로운 독립출판사에서 회고록을 낸 우디 앨런은 책 에서 <레이니 데이 인 뉴욕>과 티모시 샬라메에 대해 언급했다. “티모시 샬라메는 당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었고, 나를 비난하면 수상 가능성이 더 높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젊은 남자배우가 자신과의 작업을 후회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것을 두고 우디 앨런이 옹졸하게 복수했다는 인상을 주는 말이랄까. 아무튼 <레이니 데이 인 뉴욕> 촬영을 마치고 난 2017년 후반, 티모시 샬라메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로 할리우드에서 뜨겁게 주목받는 중이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대 세 번째로 나이가 어린 남우주연상 후보가 되었고(당시 남우주연상은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먼에게 돌아갔다), 조연으로 출연한 <레이디 버드>는 작품상과 감독상 등에 후보로 오른 상태였다. 돌아보면 당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덩케르크> <더 포스트> <쓰리 빌보드> <블레이드러너 2049> <겟 아웃> 등 보석 같은 작품들이 경쟁한 특별한 해였고, 티모시 샬라메는 쟁쟁한 스타들이 모인 시상식 레이스에서도 줄곧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일찍이 티모시 샬라메의 스타성을 알아본 그레타 거윅은 말했다. “티모시 샬라메는 크리스천 베일, 대니얼 데이 루이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모두 타고난 스타성과 뜨거운 열정과 끝없는 탐구와 노력으로 최고가 된 배우들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사랑에 빠진 엘리오, 티모시 샬라메는 분명 난데없이 도착한 시대의 아이콘 같은 인상을 줬지만, 정열적이면서도 잘 다듬어진 섬세한 연기는 결코 그가 준비 없이 스타가 된 애송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도 말했다. “티모시 샬라메와 대화하면서 이 젊은 친구가 이미 수년간 TV, 연극,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배우가 되고자 하는 도취적인 야망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티모시 샬라메는 댄서이자 배우 출신인 어머니와 유니세프에서 편집자로 일한 아버지를 두었다. 프랑스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데, 그의 프랑스어 구사력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더 킹: 헨리 5세> 등 영화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심지어 서부극 <몬태나>에선 필립 데자르뎅이라는 프랑스식 이름을 부여받은 이병으로 출연해 미국의 유럽 이민자라는 사실을 알린 채 초반에 일찌감치 퇴장하기도 한다. 10대 땐 알 파치노, 제니퍼 애니스턴 등을 배출한 뉴욕의 라과디아예술고등학교에 다녔고, 이후 컬럼비아대학에 진학했다가 1년 뒤 학교를 그만둔다. 10대 때부터 광고,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고 연극무대에도 섰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에 매튜 매커너헤이의 아들로 짧게 등장할 땐 연기다운 연기를 선보일 기회가 없었지만, <미스 스티븐스>에선 연기에 재능 있는 고등학생 빌리로 출연해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속 독백 연기를 선보이며 그 모습을 숨죽이고 지켜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기회. 1983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소년 엘리오와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의 사랑 이야기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피사체그 이상의 존재로 특별함을 안긴다. 영화에 고대의 조각상 사진을 보며 올리버와 엘리오의 아버지(마이클 스털버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올리버는 아름다운 조각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마치 자신을 갈망해보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고. 이 말이 곧 엘리오를, 티모시 샬라메를 향한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복숭아 향이 날 것 같은 마른 몸, 소년성이 극대화된 티모시 샬라메의 몸은 영화에서 수많은 대사와 감정을 대신 전한다. 그 육체적 매력과 소년성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후 다양하게 변주되고 연주된다. <레이디 버드>에선 마이웨이 스타일의 허세미 풍기는 소년으로, <뷰티풀 보이>에선 몸과 영혼이 한없이 구겨지는 약물중독 소년으로, <핫 썸머 나이츠>에선 약 팔다 사고치는 아웃사이더 소년으로 그 매력을 드러낸다. <더 킹: 헨리 5세>에선 왕실 밖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탕아였지만 혼돈 속에 왕위에 올라 전쟁을 치르는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고, 모던한 시대극 <작은 아씨들>에선 아름답고 로맨틱한 한량 로리로 분해 네 자매의 든든한 친구이자 연인이 된다. <작은 아씨들>의 의상감독 재클린 듀런은 극중의 조(시얼샤 로넌)와 로리를 두고 “잘생긴 시얼샤 로넌과 아름다운 티모시 샬라메라고 부르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며 캐릭터와 캐릭터, 배우와 배우간의 화학작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티모시 샬라메를 두고 “그는 매우 아이코닉하며,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스타일리시하다”고 말했다. 티모시 샬라메를 향한 구애는 실제로 영화계뿐 아니라 패션계에서도 뜨겁다.
티모시 샬라메의 차기작은 웨스 앤더슨의 <프렌치 디스패치>와 드니 빌뇌브의 <듄>이다. 독보적인 개성과 스타일을 가진 두 감독과는 모두 첫 작업이다. 두 영화 모두 스틸과 예고편이 공개됐을 뿐이지만 틸다 스윈턴, 프랜시스 맥도먼드, 빌 머레이, 에이드리언 브로디, 오언 윌슨 등 끝내주게 연기 잘하는 웨스 앤더슨 사단 속에서도 존재감을 뽐내는 티모시 샬라메의 모습엔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후속작 작업도 현재 진행 중인 상태. 차기작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차오르는 이 배우는 1995년생, 이제 겨우 20대 중반을 통과하는 중이다.
매직 아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내내 여름의 공기 속에 머문다. 마지막 장면만 빼고. 눈부신 여름이 지나가고 찾아온 눈 내리는 12월의 겨울. 엘리오는 올리버의 전화를 받는다. 그러곤 자신의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벽난로 앞에서 가만히 눈물 흘리는 엘리오의 모습을 4분가량의 롱테이크로 담아낸 영화의 엔딩. 오로지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와 영화음악 <Visions of Gideon>으로 채워진 이 엔딩은 엘리오와 올리버, 그리고 티모시 샬라메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영화 2020 <듄> 2020 <프렌치 디스패치> 2019 <작은 아씨들> 2019 <더 킹: 헨리 5세> 2019 <레이니 데이 인 뉴욕> 2018 <뷰티풀 보이> 2017 <몬태나> 2017 <레이디 버드> 2017 <핫 썸머 나이츠> 2017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6 <미스 스티븐스> 2015 <원 앤 투> 2014 <인터스텔라> 2014 <맨, 우먼 & 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