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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가장 위험한 장면의 주역들
김현수 2017-06-19

할리우드의 여성 액션배우, 그리고 스턴트 배우들- <킬 빌>의 조 벨,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의 알리시아 벨라 베일리

<킬 빌> 비비카 폭스.

할리우드와 아시아를 비롯한 영화 역사상 가장 중요하다 싶은 여성 액션배우에게는 어김없이 현장에서 그들과 똑같은 의상이나 분장을 하고 언제든 위험한 장면을 대신 촬영하기 위해 5분 대기하는 이들이 있다. <원더우먼>의 갤 가돗,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샤를리즈 테론 등 최근 화제를 모으는 액션 스타들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뒤에서 묵묵히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스턴트 배우들은 때로 누군가의 대역을 넘어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 위해 연기까지 섭렵하기도 한다. 현재 IMDb에 등록된 스턴트 배우들은 400여명이 넘지만, 제대로 필모그래피 관리를 하지 못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를 다 헤아리기는 어렵다.

<킬 빌> 촬영현장에서 우마 서먼과 조 벨(왼쪽부터).

“창녀 역할이 아니어서 너무 좋았다”

<킬 빌>의 주연배우인 우마 서먼은 모두 알지만, 그녀의 스턴트 대역을 하다가 배우로 데뷔하게 된 조 벨의 존재를 관객은 잘 모른다. 그녀는 뉴질랜드 출신 스턴트 배우로 TV시리즈 <여전사 지나>와 <킬 빌>의 스턴트 대역을 하면서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렸다. 그녀의 놀라운 재능을 눈여겨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데쓰 프루프>에서는 아예 무지막지한 배역을 맡기는데 커트 러셀이 모는 닷지 챌린저 후드에 매달려 질주를 하는 장면을 연기한 게 바로 그녀다. 그녀는 이 장면에서 직접 스턴트 연기를 했다. 이후 <킹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등에서도 스턴트 대역으로 활약하다가 <장고: 분노의 추적자>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 <오블리비언>에 이르러서는 아예 작은 배역까지 맡아 연기에 입문한다.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여전사 지나> 촬영 때 척추 골절, <킬 빌2>에서 산탄총에 맞는 장면의 연기 대역을 하다가 늑골과 인대가 손상되는 사고를 당한 경험과 상처는 지금도 그녀의 자랑스럽지만 위험한 훈장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이에 포기하지 않고 직접 제작에까지 참여한 <레이즈: 데스매치>로 주연까지 맡았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정말 영화 내내 격투를 벌이는 여성 캐릭터를 원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역시 <킬 빌>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위장해 살아가던 암살단 멤버 버니타를 연기한 배우 비비카 폭스는 배우이자 프로듀서, TV 호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올리버 스톤의 <7월4일생>에서 매춘부 역할로 영화계에 데뷔한 그녀는 드라마 위주로 활동하다가 2003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발탁됐다. <킬빌> 촬영 당시 너무 힘들어서 감독을 죽이고 싶었다는 그녀는 타박상은 기본이요, 턱관절이 부서지는 부상까지 입었지만 한 인터뷰에서 “창녀 역할이 아니어서 너무 좋았다”며 촬영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숨을 건 연기를 해야 했던 스턴트 배우들의 역사는 무성영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할리우드 최초의 여성 스턴트 배우로 알려진 헬렌 깁슨은 카메라 앞에서 카우보이의 로데오 경기 장면을 직접 선보일 만큼 말타기에 능했다. 때로는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연기도 직접 했다고 전해지는데 언제 뛰거나 움직여야 최소한의 피해를 입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았던 타고난 액션배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 <원더우먼> 시리즈에서 원더우먼을 연기한 린다 카터의 스턴트 대역 배우였던 제니 에퍼 역시 할리우드에서 오랜 스턴트 경력을 지닌 배우다. 그녀가 <원더우먼> 외에 스턴트로 참여한 영화들은 존 휴스턴 감독의 <법과 질서>, 팸 그리어의 대표작 <폭시 브라운>과 <드럼>, 잭 힐 감독의 <스위치 브레이드 시스터즈> 등 당대 폭력적인 장르영화를 대표하는 영화들이었다.

<데쓰 프루프> 조 벨.

클로에 브루스에 주목하라

스턴트 대역 배우들의 출연 기회가 많아지려면 당연하게도 여성배우들의 역할 비중이 큰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 근 슈퍼히어로영화가 영화계를 평정하기 시작하면서 스턴트 대역 배우에 대한 관심 역시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상황이다. 캐나다 출신 스턴트 배우 모니크 간더턴은 배우 트리시아 헬퍼, 레이첼 니콜라스, 대릴 한나, 팜케 얀센 등의 스턴트 대역을 하다가 <시카고>의 단역을 시작으로 작지만 소중한 배역을 맡아 연기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엑스맨: 아포칼립스>에서 호스맨-데스 역을 맡아 슈퍼히어로영화에 진출한 스턴트 배우가 되었다. 마블의 강세에 대항해 DC가 성공시킨 캐릭터 원더우먼이 처음 등장하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갤 가돗의 대역을 맡았던 스턴트 배우는 알리시아 벨라 베일리로, 어려서부터 체조 선수로 활약하다가 스턴트계로 입문한 배우다. 그녀는 <울트라바이올렛>의 밀라 요보비치, <언더월드: 어웨이크닝>의 케이트 베킨세일의 대역을 훌륭하게 맡으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샤를리즈 테론, 제니퍼 로렌스, 조이 살다나, 니콜 키드먼, 앤 해서웨이 등 당대 최고 여배우들이 모두 그녀의 스턴트 대역을 거쳐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덕분에 그녀는 슈퍼히어로영화 제작의 양대산맥인 마블과 DC의 현장을 모두 섭렵한 스턴트 배우가 됐다. 그녀는 갤 가돗의 코스튬을 입기 전에 이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제니퍼 로렌스의 스턴트 대역을 한 주역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최근에 많은 관객이 그녀의 놀라운 관절 연기를 본 적 있다는 사실인데 바로 제임스 완 감독이 제작한 공포영화 <라이트 아웃>의 무시무시한 어둠의 존재 다이애나 역할을 그녀가 연기했다는 것. 함께 연기한 테레사 팔머에 따르면 그녀의 관절 연기가 너무 무서워서 굳이 억지로 리액션을 할 필요가 없었다며 연기를 칭찬하기도 했다.

또 한명의 주목할 만한 히어로 전문 스턴트 대역 배우로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에서 데이지 리들리가 연기하는 레이 역할의 스턴트 대역 배우인 클로에 브루스다. 1983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경력을 시작한 그녀는 1분 안에 가장 많은 킥을 차는 기네스 세계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타이탄의 분노>를 시작으로 <월드워Z> <킥애스2: 겁 없는 녀석들> <토르: 다크 월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쌔신 크리드> <미이라>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그녀의 스턴트 대역 차기작은 <블레이드 러너 2049>와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다. 마치 꼭 봐야 할 할리우드 기대작 리스트를 보고 있는 듯하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크고 작은 영화에서 직접 연기도 한 이력이 있어 언제 어디에서 스턴트 대역을 넘어 연기까지 섭렵할지 모를 일이다.

<익스펜더블3> 론다 로지.

스턴트 배우들의 다재다능한 능력은 유명 배우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을 넘어 자기만의 특기를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2012년 UFC 여자 밴텀급 챔피언 출신인 론다 로지가 <익스펜더블3>와 <분노의 질주: 더 세븐>에서 자신의 육체적 기량을 마음껏 뽐낸 경우처럼 말이다. 그들은 대부분 진짜 목숨을 내걸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이제는 조금 더 꼼꼼하게 그들을 향해서도 응원의 박수를 쳐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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