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의 로마 버스 풍경. 로마의 평범한 시민들, 외국인들이 함께 보이는 지극히 일반적인 밤 버스 풍경이다. 흰머리 노인이 교황 후보(미셸 피콜리)이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전통 가운데 하나가 ‘일상성’의 강조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하는 일에서 독특한 의미를 찾는다. 이런 태도는 촬영장소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하는 역사적 유적지가 아니라, 로마의 평범한 사람들이 늘 걷고 지나치는 무명의 장소가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다. 네오리얼리스트들, 그리고 이들의 후예들이 피하고 싶은 게 윌리엄 와일러의 <로마의 휴일>(1953)처럼, 또는 우디 앨런의 <로마 위드 러브>(2012)처럼 로마가 관광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현대 이탈리아 감독 가운데 도시에 대한 낭만적 환영을 깨고, 네오리얼리스트들처럼 이웃마을 같은 ‘평범한 로마’를 그려내는 대표적인 작가가 난니 모레티다.
모레티의 ‘관광지 기피증’
영화사적으로 볼 때 ‘로마의 주인’은 페데리코 펠리니다. 그의 <달콤한 인생>(1960)은 로마에 대한 영화적 찬사일 테다. 펠리니의 대표작들은 주로 로마를 배경으로 제작됐고, 1972년 그는 로마에 대한 사적인 생각을 에세이처럼 써내려간 <로마>를 발표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로마의 ‘역사적 주인’이 펠리니라면, ‘동시대적 주인’은 단연 모레티다. 모레티는 장편 데뷔작 <나는 자급자족한다>(1976)부터 거의 모든 작품을 로마에서 만들었다. 펠리니는 이탈리아 중부 리미니에서 로마로 이주한 사람이다. 반면에 모레티는 로마의 가정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로마 사람이다(별나게도 모레티는 부모가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중에 태어나는 바람에 출생지는 볼차노 근처의 브루니코로 돼 있다).
먼저 밝혀두고 싶은 사실은 모레티의 영화에서 로마의 명소를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그는 펠리니와 달랐다. 펠리니의 영화에서 트레비 분수, 콜로세움, 아피아 가도 등 로마의 명소는 쉽게 볼 수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일상을 찍는 모레티의 영화에서 관광지 같은 특별한 장소는 끼어들 틈이 없다. 유명 장소가 등장한 작품으론 바티칸 배경의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2011)가 거의 유일하다. 영화 자체가 교황을 다루다보니 성 베드로 성당, 성 베드로 광장, 시스티나 성당, 그리고 로마제국의 유적지인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로마의 광장이란 뜻) 등이 등장했다. 포로 로마노에서 교황은 비밀리에비서를 만나 교황청의 새 문양을 정한다. 사실 모레티의 강박에 가까운 ‘관광지 기피’를 고려하면, 이 장면의 등장도 놀랄 만한 변화였다. 그 정도로 모레티는 관광지 로마의 이미지를 지우려고 애쓴다. 새로 선출된 교황이 혼자 로마 시내를 방황할 때도 특별한 장소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보통 사람들의 공간이 강조된다. 이를테면 ‘밤 버스’ 장면이 인상적인데, 두칸으로 연결된 대형 버스에 이탈리아인뿐 아니라 동양인 여성과 아프리카계 남성등 로마의 ‘평범한’ 시민들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모레티의 일상성은 바로크 시대 네덜란드의 장르화 같다. 이를테면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인물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편지 쓰고, 책 읽고, 설거지하고, 포도주 마시는 것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를 반복하듯 영화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적인 일상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까지 고민케 하는 게 모레티 코미디의 미덕이다. 이런 미덕은 <나의 즐거운 일기>(1993)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다(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 세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나의 즐거운 일기>의 첫 챕터는 ‘베스파’(이탈리아의 작은 오토바이 이름)이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모레티가 혼자서 베스파를 타고 텅 빈 로마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영화의 기본적인 구성이다. 그는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다 영화를 보고, 칸초네를 부르고, 춤추곤 한다(영화, 칸초네, 춤은 모레티 코미디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다). 모레티가 돌아다니는 지역은 특별히 유명한 곳이 아니라 주로 그의 집 근처다. 오래된 길, 오래된 가로수, 조용한 거리 등 전형적인 로마의 주거지역이다. 모레티는 오랫동안 시내 중심의 서쪽에 있는 몬테베르데 베키오(Monteverde Vecchio) 지역에서 살고 있다. 다시 말해자기가 사는 곳 주변이 영화의 배경이지, 로마의 특별한 곳이 나오지는 않는다.
<나의 어머니>의 한 장면. 운명을 상징하듯 버스 종착역이 강조돼 있다.
모레티가 사는 곳 주변이 주요 촬영지
출세작 <나의 즐거운 일기> 발표 이후, 후속작 <4월>은 무려 5년이 지난 뒤인 1998년에야 나왔다. 이유가 있었다. 1994년 총선에서 ‘그 유명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의 총리가 됐고, 1년 반 뒤 베를루스코니 내각이 무너졌으며, 1996년 총선이 다시 실시돼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좌파 정부가 들어서는 정치적 급변이 일어났다. 이 시기는 박근혜 정부의 출범, 탄핵, 문재인 정부의 탄생 같은 극적인 정치적 반전과 비교된다. <4월>은 1994년 ‘파시스트’라고 비판받았던 베를루스코니의 승리, 1996년 과거 이탈리아 공산당이 중심이 된 좌파 정부의 등장, 그리고 좌파 정부에 대한 모레티의 실망까지 5년에 가까운 그동안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일들을 통해서다.
모레티는 그때부터 실비아 노노와 동거했고(실비아 노노는 이탈리아 현대음악의 거장인 루이지 노노의 딸이다. 실비아의 외조부는 12음조의 창시자 아르놀트 쇤베르크. 부친이 쇤베르크의 제자이자 사위였다), 두 사람은 아들 피에트로를 낳았다. 아들의 탄생이라는 사적인 이야기가 최초의 좌파 정부 탄생이라는 공적인 사건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모레티는 베스파를 타고,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몬테베르데 베키오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처럼 모레티는 ‘멍한’ 표정으로 주변의 집들을 구경한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래도록 로마에서 살아온 평범한 시민들에 대한 관심의 표현일 테다.
<4월>은 보기에 따라서는 가족다큐멘터리다. 아들의 탄생을 계기로 아내나 다름없는 실비아 노노, 실비아의 모친이자 쇤베르크의 딸인 누리아 쇤베르크, 그리고 모레티의 실제 모친인 아가타 아피첼라까지 나온다. 그의 초창기 영화에 종종 등장했던 부친 루이지 모레티는 이미 죽어서 안 나왔을 뿐 주요 가족들이 대거 등장했다(부친은 로마대학 문학철학부 교수였다). 모레티의 초창기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은 항상 미켈레 아피첼라였다. 이는 모친의 성에서 따온 것으로, 모레티의 모친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나의 어머니>(2015)는 그 모친의 죽음에 관한 드라마다. 모친은 영화 속 모친처럼 실제로 인문계 고등학교 라틴어 교사였다.
<나의 어머니>는 죽은 모친에 대한 애도일기 같은 작품이다. 현실 풍자와 자기 아이러니의 유머로 빛나는 모레티의 일반적인 코미디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런 비극적 성향은 <아들의 방>(2001)에서 시작됐다(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 영화는 로마가 아니라 동부 해변도시 안코나에서 촬영됐다). 그렇게 우디 앨런처럼 코미디 갈래와 더불어 비극의 갈래에 속하는 작품들이 나온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때문인지 <나의 어머니>에선 버스 터미널이 유난히 강조돼 있다. 터미널, 곧 ‘종착역’이 사람의 운명처럼 보인 까닭이다. 여기서도 로마의 ‘테르미니’ 같은 유명한 종착역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로마의 평범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평범한 시내버스의 종착역이 등장한다(만치니 광장에서 찍었다). <나의 어머니>는 <아들의 방>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와 더불어 ‘죽음 3부작’으로 묶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점점 어두워지는 그의 영화세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레티는 최근엔 거의 5년에 한번꼴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차기작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차기작이 어떤 색깔을 띠든 영화적 공간은 여전히 평범한 곳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곳에 사람들의 일상, 사람들의 진실, 곧 모레티의 리얼리즘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