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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타] 본질을 더듬는 마음으로 - <어느날> 김남길
장영엽 사진 최성열 2017-04-04

“생일에 뭐했어?” “그냥 집에 있었어. 기념일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라.” 천우희김남길의 대화를 듣고 며칠 전이 김남길의 생일(3월 13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남길에게 생일은 특별한 ‘어느 날’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그는 “특별함보다 일상의 소소함으로부터 오는 행복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평범한 이들의 마음속 상처를 보듬는 영화 <어느날>을 선택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멜로라는 드라마틱한 장치를 끌어오지 않고서도 남자와 여자의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말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영화는, 최근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진 배우 김남길에게 좋은 힌트가 되어줬다고 그는 말한다.

-<어느날>의 출연을 처음에는 고사했다고. 다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에는 어른 동화 같은 느낌의 작품을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촬영하던 도중 시나리오를 다시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 내가 연기하던 인물이 연쇄살인범이다보니, 어떤 인물이 가지고 있는 결핍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어느날>의 강수가 가졌을 법한 감정에 대해 공감이 가더라. 누구에게도 아픔을 공유하지 못하고 산다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일까. 자신의 상처에 대해 정면으로 돌파하려 하지 않고 도망치려고만 했을 때 강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 인물에 더 마음이 갔다.

-<무뢰한>(2014)의 형사,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의 산적 등 그동안 캐릭터의 개성이 뚜렷한 역할을 맡아왔다. <어느날>의 보험조사원 강수는 전작의 인물들에 비해 다소 평범한 느낌이다.

=처음에 감독님과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보험조사원이 사실은 경찰에 버금갈 정도로 사건 조사도 많이 하고 추격도 하고 질문도 한다더라. 하지만 이건 보험조사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날>은 캐릭터보다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영화이기때문에 직업적인 전문성보다는 인물이 이야기에 편안하게 스며드는 데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강수는 과거의 상처를 늘 마음 한편에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감정을 표출하는 인물이 아니기에 겉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고.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와 집에 홀로 남겨졌을 때 강수의 모습에 차이를 두려 했다. 예전에 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때 제약회사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새로 나온 의료기기 홍보도 하고 병원 사람들과 가족같이 편하게 지내더라. 보험조사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모습을 참고했다. 반면 혼자 남겨진 강수는 혼자 있을 때조차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지 못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면 그건 자기 연민일 텐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지 못하는 모습에서 그의 상처가 보여지길 바랐다.

-미소를 연기한 천우희와의 호흡이 좋아 보였다.

=우희와 찍은 첫 장면이 미소와 강수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신이었다. 평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오다가 영혼이 되어서 처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미소가 기뻐하는 장면이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주고받는 대사를 애드리브로 촬영했는데, 그때 합을 맞춰보고 굉장히 센스가 좋은 친구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미소와 강수의 관계가 멜로로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물론 상처 많은 두 사람이 사랑으로 아픔을 치유하는 영화도 있다. 하지만 <어느날>은 그런 방향성과는 거리감이 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고현정 선배와 드라마 <선덕여왕>을 촬영할 때에도 박성연 작가가 “절대 멜로로 안 보이게 연기해주세요!”라고 대본에 써놓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우희와 연기할 때에도 그런 거리감을 유지하려 했다.

-최근에는 <어느날>처럼 배우가 감정적으로 스트레이트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반전과 놀라움, 자극적인 소재가 있는 트렌디한 상업영화에 익숙해져 있어서 <어느날>을 촬영하며 ‘이게 맞나’ 하는 물음을 재차 던지게 됐다. 하지만 점점 ‘본질적인 건 이런 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에는 캐릭터가 강렬한 이야기에 끌렸다. 지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소소함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영화에 끌리고 <어느날>이 그런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잘 알아가고 있다는 느낌? 결국 중요한 건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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