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목욕탕>에서 미야자와 리에는 두딸의 엄마이자 한 남자(오다기리 조)의 아내 후타바를 연기했다. 어떤 일 때문에 가족에 헌신하는 후타바의 희생을 보니 미야자와 리에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젊은 시절 일화들이 생각나 괜히 울컥했다. 일본 최고의 아이돌이었던 그녀가 배우로 발돋움하고 인정을 받은 작품 4편을 소개한다.

<유원경몽>(감독 욘판, 2001)

중국의 유명한 곤곡 중 하나인 <모란정>에서 ‘유원’과 ‘경몽’을 따로 떼내어 재구성한 영화. 미야자와 리에와 왕조현이 <모란정>의 남녀 주인공에 해당되는 캐릭터를 각각 맡아 낙원을 함께 누리다가(유원), 꿈에서 깨어날 만큼 깜짝 놀랄 만한 일을 겪는다(경몽). 미야자와 리에는 이 작품으로 제23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그녀가 파혼, 불륜, 거식증 등 온갖 스캔들로 얼룩진 삶을 살다가 1996년 연예계 활동을 중단한 뒤 미국에 건너가 다시 복귀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이 영화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황혼의 사무라이>(감독 야마다 요지, 2002)

막부 말기, 하급무사 이구치 세이베이(사나다 히로유키)가 친구의 여동생이자 첫사랑 도모에(미야자와 리에)에게 행패를 부리는 그녀의 전남편을 말리다가 결투를 벌이게 되고, 그 결투 때문에 귀신같은 칼솜씨가 드러나 일이 커지는 이야기다. 미야자와 리에가 맡은 도모에는 번주의 아들에게 시집갔다가 이혼한 뒤 친정에 들어가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여성이다. 야마다 요지 감독이 미야자와 리에의 굴곡 많은 인생을 도모에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은 셈이다. 미야자와 리에는 이 작품으로 일본 아카데미상, 키네마준보상, 블루리본상 등 거의 모든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부활을 완벽하게 선언했다.

<토니 타키타니>(감독 이치카와 준, 2004)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동명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 어린 시절 외롭게 성장한 토니 타키타니(잇세 오가타)는 에이코(미야자와 리에)와 결혼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에이코는 옷 쇼핑 중독자. 에이코가 불의의 사고로 숨지자 토니는 에이코가 남긴 옷 731벌을 대신 입을 여성을 구하고, 히사코라는 여자가 토니를 찾아온다. 잇세 오가타는 토니와 그의 아버지, 미야자와 리에는 에이코와 히사코를 각각 1인2역 연기했다. 미야자와 리에의 무표정은 영화의 메시지인 현대인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반영하는 얼굴이었다. 이 영화를 찍었던 2004년은 미야자와 리에의 전성기라 할 만하다. 그녀는 첫 연극 <투명인간의 증기>로 요미우리 연극대상을 받았고, 반전영화 <아버지와 산다면>(감독 구로키 가즈오, 2004)으로 또다시 많은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종이 달>(감독 요시다 다이하치, 2014)

버블이 빠져나간 1996년, 평범한 가정의 아내이자 은행원인 리카(미야자와 리에)의 사연을 그린 이야기. 우연한 계기로 사귀기 시작한 대학생 고타(이케마쓰 소스케)가 대부업체로부터 거액의 빚을 졌다는 얘기를 들은 리카는 은행 문서를 위조해 고객의 예금을 빼돌리고, 더 많은 돈을 횡령해 고타와 함께 화려한 생활을 즐긴다. 사치의 쾌락도 잠깐일 뿐, 그녀가 횡령한 돈으로 사치를 즐길수록 그녀의 속은 점점 공허해진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인 까닭에 미야자와 리에의 허무한 얼굴은 꽤 섬뜩하다.